MORE NEWS
-
신념으로 위기를 극복하자
© 세종타임즈
위기속에서 영웅 헤라클레스와 만나다.
‘위기는 곧 기회다’ 라는 말이 위안이 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 신화 속 영웅 헤라클레스의 신념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힘을 얻어 보고자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헤라클레스는 우리 인간이 간절히 바라고 동경하는 영웅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이뤄내는 영웅을 보며 위안과 기쁨과 통렬함을 느끼며, 나아가 그 영웅에게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용기와 지혜를 배운다. 제우스신의 피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헤라 여신의 저주와 탄압을 받아야 했고, 그 저주로 시작된 열두 가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수많은 고난의 여정을 떠나야 했던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삶은 이처럼 온갖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은 해내야 했고, 목숨을 위협하는 수많은 괴물들과 맞서야 했지만 험난한 삶 앞에 무릎 꿇지 않고 고난과 역경을 지혜롭게 이겨낸 영웅, 신화 속 헤라클레스는 모험과 투쟁 끝에 찾아오는 달콤한 휴식에 안주하지 않았으며 온갖 형상의 괴물과 짐승, 신과 인간과의 투쟁에서 진정한 영웅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웅 헤라클레스는 감히 흉내낼 수 없는 불멸의 영웅이 아니라, 바로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숨어 있는 어려움을 이겨 내려 애쓰는 우리 인간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 있다.
신념으로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2020년 6월 우리의 환경은 과거 그 어떤 어려움 보다 더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경제적 어려움까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위기와 난관이라도 헤쳐 나갈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이 필요할 때이다.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힘을 사람들은 ‘의지’라고 하며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는 신념으로 이어진다.
삶을 지탱해주는 일터, 온 생애를 바치며 선택했던 직업이 환경적 영향으로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직장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생소한 직종에 뛰어들어 만신창이 상태로 죽음에 내몰리는 격일 수 도 있는 가운데 처절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고 한계상황을 넘어 살아남는 고난과 역경의 스토리를 써내려가야 하는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게를 접어야 하고 꿈을 포기해야 하고 목표 달성을 할 수 없다고 한숨지을 때 결국 신념이라는 믿음과 이념이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 아닐까? 자신이 정한 신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의 관습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고이기는 것이 아니다. 항상 꿈꾸어 왔던 일을 이루기에는 2020년 6월의 환경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간절한 믿음으로 위기 속에서 생존하여 전진하고자 하는 삶, 위기극복을 위한 의지는 신념으로 이어지고 신념 있는 사람의 행동에는 자신감과 일관성, 고정된 틀에 묶이지 않는 유연함과 창의성 돋보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무리
위기가 닥쳐도 포기하지 않으며 열정과 추진력으로 만들어진 제품과 서비스는 사용자를 감동시키는 훌륭한 브랜드로 태어나는 것이다. 헤라클레스에게 주어진 선택이 두 갈래길, 고통스럽고 불편하지만 타인을 위한 영광의 삶을 살 것이냐 편안하고 안락하지만 평범한 일상의 삶을 살 것인가? 와 같은 위대한 선택은 아닐지라도 일상의 선택에서 자신감과 일관성 고정된 틀에 묶이지 않는 유연함과 창의성을 발휘해 개인의 역량과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위기 속에서 빛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응원해 본다.
2020-06-10
-
스마트폰의 노예인가? 주인인가? <하이 젝시>
© 세종타임즈
4차 산업혁명시대,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상을 점점 바꿔 놓고 있는 것은 이제 두말하면 잔소리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세상을 불과 10년전만해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우리의 출근 모습만 비교해 봐도 너무나 많이 바뀌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당시(10년전쯤) 우리는 출근길 지하철이나 버스안에서 책이나 무료일간지를 보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광경은 사라진지 오래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의 휴대폰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출근을 하고 있다.
출퇴근시 휴대폰을 보는 것 말고도 휴대폰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출근길에 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가 휴대폰을 들고 나왔던 경험이 있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의 일상에서 휴대폰이 없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휴대폰 분리 불안” 증상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학계에서는 핸드폰이 없어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가리켜 “노모포비아(nomophobia)”라고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스마트폰 이용자(만 3세~60세)를 대상으로 조사한 ‘2019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5명중 1명(20%)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으로 조사 되었다. 이는 전년대비 0.9% 증가한 수치이다. 조사에 따르면, 의존도가 높은 사람들은 과의존 심각성에 대해 더 높게 인식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우리사회의 스마트폰 과의존 심각성에 대해 78.7%가 ‘심각하다’라고 응답하였다. 본인의 스마트폰 과사용에 대해 36.6%가 ‘이용 시간이 과도하다’라고 응답하였다.
우리 손에 항상 들려 있는 휴대폰 속의 개인비서가 되어 가고 있는 애플의 “시리(siri)”, 삼성의 “빅스비(Bixby)”는 정보검색이나 스케쥴관리 등 우리의 삶을 점점 편리하게 해 주고있어 활용도와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인공지능 비서에 관한 영화가 출시되었는데 라는 영화이다.
는 고장 난 ‘시리(siri)’ 대신 나타난 인공지능 트레이너 ‘젝시’가 폰생폰사 ‘필(아담 드바인)’의 인생에 끼어들면서 펼쳐지는, 폰 없이 1분도 못 버티는 어쩌면 우리의 일상과도 닮은 삶을 사는 내용의 코미디 영화다. 주인공 필은 기상알림을 시작으로 샤워하면서 BGM, 출근하면서 내비게이션, 퇴근후 배달 앱과 너튜브, 잠들기 전 SNS까지 손에서 도무지 핸드폰을 놓지 못하는 인물이다. 폰 없이는 거의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의존적이었던 주인공 필이 자신의 인생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인공지능 젝시로 인해 사교성부터 체력, 그리고 연애 센스까지도 180도 달라지는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던 중 인공지능 젝시의 질투심으로 인해 ‘필’이 위기에 처하기도 하는데, 핸드폰에 대한 의존성이 강해질수록 인간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수도 있겠다는 우려감이 들게 만드는 장면도 볼 수 있게 된다.
사람이 편리하기 위해 휴대폰은 점점 많은 기능을 탑재하고 인공지능을 활용한 비서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조금은 편리한 듯 느껴지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시사하고 있는 바와 같이, 편리함을 느끼기 위해 이용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우리의 삶을 구속할 정도로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 잡게 되면 오히려 인간이 기계에게 구속되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 올수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나는 스마트폰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야야 할 것이다.
2020-06-09
-
성대한 졸업식 우울한 졸업생 2
© 세종타임즈
개교 이후 20년 동안 숙명여학교는 발전을 거듭했다. 학교 부지를 넓히고 교사와 강당을 새로 지었다. 실력 있는 교사들을 영입해서 1926년 졸업식 때에는 교사의 수는 20명을 헤아렸다. 교사 중 14명이 여성이었고, 5명은 숙명여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의 사범학교를 마친 후에 후배들을 가르치기 위해 돌아온 선배들이었다.
가장 크게 증가한 것은 학생 수였다. 제1회(1910년) 졸업생은 4명에 불과했지만 제9회(1918년) 졸업생은 15명, 제13회(1922년) 졸업생은 43명, 제17회(1926년) 졸업생은 76명으로 15년 사이에 약 20배로 늘었다. 1923년에는 입학 정원은 1백 명으로 늘었기 때문에 제18회 졸업식 때에는 전교생의 수가 4백 명에 가까울 전망이었다.
17년 전, 숙명여고보의 첫 번째 졸업식은 성대했다. 1910년 4월5일에 열린 제1회 졸업식에는 4명의 졸업생을 축하하기 위해 6백 명의 하객이 몰려들었다. 하객 중 4백 명은 졸업생과 재학생들의 친족이었지만, 다른 2백 명은 왕실 귀족과 정부의 고관대작들이었다.
그해 4월7일자 과 는 엄귀비의 사절과 왕실요인들이 이 졸업식에 직접 참석하거나 선물을 하사했고, 학부(=교육부)의 대신과 차관, 농상공부대신(=경제부장관)과 한성부윤(=서울시장)을 비롯한 정부의 고관들이 동부인으로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숙명여고보의 졸업식은 한양을 떠들썩하게 만든 국가적 행사였던 것이다.
1926년의 제17회 졸업식도 마찬가지였다. 단상 앞줄에 후치자와 노에(淵澤能惠, 1850-1936) 학감(=이사장)과 이정숙(李貞淑, 1858-1935) 교장을 비롯한 20명의 교사들이 각각 자리에 앉았고, 그들과 나란히 총독부 학무국장과 경기도지사 등의 중앙과 지방의 고위직 공무원들, 그리고 일제의 작위를 받은 귀족들과 그 부인들이 가득 앉아 있었다. 숙명여고보를 설립한 대한제국은 망했으나 이 학교의 졸업식은 여전히 국가적 행사요 경성의 화젯거리였다.
졸업생들은 옥색 저고리에 자주색 치마를 단정하게 갖춰 입고서 강당의 앞줄에 가지런히 자리를 잡았다. 평상시나 교내행사 때에는 학생들이 자주색 세일러 제복을 닮은 서양식 교복을 입었지만 졸업식에는 한식 교복이었다. 졸업생 뒤로는 3백명의 재학생들이 빼곡히 앉았고, 양옆에는 친족들이 앉거나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는 숙명여고보 졸업식장이 “문이 메일 지경이며 새로 지은 넓은 강당도 삽시간에 송곳 꽂을 틈도 없”었다고 보도했다.
이날 졸업식에 참석한 76명의 제17회 졸업생 중에는 오늘날까지 기억되는 인물이 많았다. 조선 최초의 여성 장편소설가 박화성은 이미 1918년에 숙명여고보를 제9회로 졸업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일본유학에 필요한 수학기간을 채우기 위해 재입학, 4학년 과정을 마치고 다시 졸업생이 된 것이다. 그의 4학년 성적은 평점 98점으로 숙명여학교 개교 이래 최고 기록이었다.
조선의 무희 최승희는 1918년 숙명여자보통학교에 입학해 1922년 숙명여고보에 진학했으므로 수송동 교정에서 8년 동안 수학한 끝에 졸업생이 되었다. 배소득은 여자고학생상조회의 회원으로 주경야독으로 숙명여고보를 졸업했다. 그는 고통스런 고학 기간을 줄이기 위해 동덕여학교 1학년을 마치자마자 숙명여학교 3학년 편입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덕분에 그는 4년제 여고보를 3년 만에 졸업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입학은 함께 했으나 함께 졸업하지 못한 동창들도 있었다. 여성 비행사 이정희는 비행 훈련을 받기 위해 3학년 때에 자퇴했고, 여성 혁명가 노남교도 1922년에 최승희, 박화성 등과 함께 입학했으나 3학년 재학 중에 가담한 항일 사건으로 퇴학당한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숙명여고보 제17회 졸업식은 대한제국 황실학교의 자부심과 수많은 명사와 하객들의 축하 속에 성대하게 치러졌지만, 빈자리의 아쉬움이 뒤엉킨 복잡한 행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졸업식 순서에 따라 이정숙 교장의 학사보고와 후치자와 노에 학감의 훈화, 내빈들의 축사가 이어졌고, 재학생 대표의 송사와 졸업생 대표의 답사가 낭독될 때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졸업식 후에 마련된 재학생들의 학예회가 성황리에 끝나고 하객들을 대접하는 축하연이 마치자 마침내 졸업생들은 수송동 교정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 (계속)
2020-06-06
-
6월을 말한다
© 세종타임즈
6월 6일 현충일 오전 10시 전국에 사이렌이 일제히 울렸다.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을 위한 1분간 묵념의 시간이었다. 국민들은 여느 해나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여 경건한 마음으로 이들의 숭고한 희생과 위대한 정신을 기렸다. 이 위대한 정신은 바로 애국애족의 정신이다. 대한민국의 오늘은 이들이 목숨 바쳐 이룩한 결실이다. 그 토대 위에서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결코 잊을 수도 없다. 잊어서도 안 되는 고귀한 희생이다, 누가 이들의 희생을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가?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하고 있다. 6월 6일을 현충일로 지정하여 추념식을 갖고 참배도 하며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는 이유는 명백하다. 바로 애국애족의 정신이다.
현충일은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 숨진 장병과 순국선열의 충성을 기리기 위하여 정한 날이다. 태극기를 모두 조기인 반기로 게양한다. 대한민국을 지켜온 모두가 바로 그 희생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지키다가 희생한 모든 사람들을 진정한 마음으로 그 뜻을 바로 새겨야 한다. 어떠한 이유로도 퇴색시켜서는 안 된다. 이는 바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이자 고귀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과연 올해 65회 현충일에 우리 국민들은 오늘의 대한민국이 건재할 수 있도록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장병들을 위하여 얼마나 그 참뜻을 제대로 기렸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들이 지켜온 나라를 제대로 지켜가고 있는 지도 되돌아보아야 한다.
정부가 국민의 안보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현충기념일과 6월 25일 한국전쟁을 연계해서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해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을 추모하고자 했다. 1970년 1월 9일 국립묘지령 제4510호로 연 1회 현충추념식을 거행하였다. 현충기념일은 통상적으로 현충일로 불리다가 1975년 12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어 공식적으로 현충일로 개칭되었다. 지난 1982년 5월 15일 대통령령으로 공휴일로 정하기에 이르렀다. 현충일의 추모 대상은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이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자를 추모하는 날인 현충일은 올해 벌써 65회를 맞았다. 국립현충원, 국립묘지, 전쟁기념관, 독립기념관 등 위령을 모신 곳을 방문하여 헌화를 한다.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올해 추념식은 대전현충원에서 열렸다. 하지만 그 참뜻을 훼손하는 일이 벌어졌다. 올 현충일 추념식에 제1,2 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 연평도포격도발의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국가보훈처가 제외시켰다가 비난이 거세지자 뒤늦게 7명을 초청해 구설수에 올랐다. 희한하게도 코로나19 희생자가족은 참석시켰다. 보훈단체가 유족을 추천하지 않았다며 실수라고 변명했지만 호국영령을 기리는 현충일의 행사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 3월 서해수호의 날이 빚어졌던 일 때문에 천안함 유족을 불편해 하는 현 정부의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이유야 어떠하던 이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장병은 물론 유가족들을 위해서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는가? 피해자이자 희생자일 뿐이다. 이들을 미워하기에 앞서 그 고귀한 희생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 원인과 이유야 어떠하던 나라를 지키다 희생을 당한 것에 불과하다. 6월 현충일에 당연히 추념되어야 하는 대상이자 그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되는 나라이다. 우리의 국군장병들이 지금도 병역의무를 준수하며 대한민국을 지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보훈처가 현충일이 갖는 취지와 의미를 아직도 모른다면 65회를 맞는 현충일 역사를 다시 배워야 한다. 순국선열은 무엇이며 호국영령이 무엇이며 전몰장병이 무엇인지 부 터 개념을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보훈처가 왜 존재하는지 왜 국가유공자를 지정해 이들을 지원하고 보호하며 혜택을 주는 지도 마찬가지이다.
6월을 호국보훈의 달이고 참으로 경건한 달이다. 그 뜻을 기리는 현충일추념식 초청인사와 관련해 빚어진 해프닝은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의도적인 냄새가 난다. 코로나19 핑계를 대는 것도 궁색하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코로나19희생자 가족과 현충일이 무슨 관계인지 부터 설명해야 한다. 모든 것이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되어야지 억지를 부리며 견강부회(牽強附會),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국민들을 가볍게 보는 행태는 당연히 멈춰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국민들은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 남북문제부터가 그렇다. 도대체가 헷갈린다. 정부나 국민들이 일사불란하게 한마음 한뜻으로 가야 하는데도 엇박자가 수시로 발생한다. 국민의지와는 별개로 움직이는 듯이 가고 있는 형국이다. 누가 평화를 원치 않겠는가? 누가 전쟁을 원하는가? 진정한 남북화해와 평화를 위한 길이라면 우리 민족이 무엇인가를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분명히 있다. 일제 36년의 치욕도 거친 민족이다. 6.25 동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한 민족이다. 아직도 그 연장선상에서 남과 북은 양립하고 있다. 전쟁세대들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이산가족들의 만남도 이제 거의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모든 일은 상식이 통하는 마음으로 다가서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념과 갈등의 진통이 무척 큰 시대에 우리 국민들은 살고 있는 듯싶다.
우리는 6월 호국보훈의 달에 우리 민족사를 다시금 되돌아보고 오늘의 우리를 살피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6월은 우리 민족의 애환과 애국애족의 중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도 숙연하게 생각하는 달이기 때문이다. 선대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이룩한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도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책무가 주어져 있다. 선대의 희생만을 생각하고 후대를 위한 진정한 정신을 발휘하지 못하고 순간의 이익과 권력욕만 탐한다면 이는 호국보훈의 정신과는 멀어도 한참 먼 것이다. 목숨을 바쳐 지킨 무수한 순국선열들의 이름도 다시금 살펴보고 독립선언서도 한번 읽어보고 참혹한 6.25동족상잔의 비극사도 더듬어 보며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구호로만 호국보훈의 달, 진정한 추념정신이 없는 행사만을 위한 추념식과 허례의 묵념은 6월의 애국애족의 정신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보는 6월이 되어야 한다. 그런 뜻 깊은 6월을 말해야 한다. 나라를 망친 매국노를 기리는 달이 아니다. 호국보훈(護國報勳)에 담긴 참뜻은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위하여 힘쓴 사람들의 공훈에 보답한다는 뜻임을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그 뜻을 더욱 공고히 새기면 새겼지 어떤 이유로든지 그 의미를 퇴색시켜서는 안 된다. 이것이 다름 아닌 바로 애국애족의 정신이라는 사실과 함께 말이다.
2020-06-06
-
언택트 보험금 청구!
© 세종타임즈
언택트(Untact)'란 '콘택트(contact: 접촉하다)'에서 부정의 의미인 '언(un-)을 합성한 말로, 기술의 발전을 통해 서비스 담당자와의 접촉 없이 재화와 용역을 구매하는 등의 새로운 소비 경향을 의미한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를 대표 저자로 소비트렌드 분석센타의 연구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한 [트렌드코리아 2018]의 핵심 키워드인 소확행, 워라밸, 언택트에서 일반에게 소개되어 코르나 19의 확산과 함께 가장 많이 회자되는 용어가 되었다.
지금 우리가 여실히 느끼고 있는 것처럼 코로나19는 이 세상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오죽하면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전 세계의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나더라도 전통 제조업과 대면(對面) 서비스업 등은 지고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언택트(비대면) 산업’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금융의 많은 부문, 그중에서 보험 분야도 피해갈 수 없다.
보험업계에서 소비자들의 불편이 가장 큰 부분 중 하나가 상해, 질병 등 보험사고가 발생하여 의료기관에서 치료 후 이어지는 보험금 청구부분일 것이다.
특히 전 국민 대부분이 가입되어 제2의 건강보험으로 일컬어지는 실손 보험 가입 후 보험금 청구시 진단서(병명확인용), 진료비 세부내역서, 영수증(진료비 계산서, 약제비 계산서)이 필요하여 보험금이 작을 경우 아예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보험사들은 “언택트” 실손 보험 청구 간소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NH농협생명은 지난 2018년 말 업계 최초로 레몬헬스케어와 연계한 실손 보험금 간편 청구 시스템을 도입하여 신촌, 강남 세브란스 병원. 국립암센터를 시작으로 카톨릭대학 성모병원 계열 등 전국 주요병원으로 확대 중에 있으며 병원앱을 통해 본인 인증 후 고객들이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게 하였다. 이후 삼성화재, 미래에셋 생명, NH농협손해 등이 차례로 도입하였다.
교보생명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 DB손보는 지앤넷과 업무 협약, 신한은행은 “SOL”에서 실손 보험 빠른 청구를, 삼성SDS는 블록체인 기반으로 삼성화재와 NH농협손해보험 실손 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언택트 보험금 청구”가 활성화 되어 고객은 보험금 청구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고, 병원은 진료비 영수증 등 불필요한 문서를 줄이고, 보험사는 심사비용 절감 및 신속지급으로 보험 산업에 대한 고객 신뢰도 향상을 기대한다.
2020-05-31
-
희망을 노래하자
© 세종타임즈
인간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부정보다는 긍정, 결점보다는 찬양할 점이 문학에서 많이 발견된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호메로스(Homeros)의 작품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유랑시인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로 알려져 있는 걸작 〈일리아스 Iliad〉·〈오디세이아 Odyssey〉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리스인들이 이 2편의 서사시에다 호메로스라는 이름을 결부시켰다는 사실 말고는, 그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헌데 일리아스의 첫 권 제목이 ‘역병,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멋진 주인공이 등장한다.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로, 제우스와 레토의 아들이다. 예언 ・ 의료 ・ 궁술 ・ 음악 ・ 시의 신이며, 광명의 신이기도 하여 후에는 태양신과 동일시되었다. 훤칠하고 준수한 미남으로 묘사되며, 여성 및 남성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가 많지만 오늘은 역병의 예언이다.
아폴론이 ‘왕에게 화가나 진중에 무서운 역병을 보내 백성들이 잇달아 쓰러진’ 사건 한가운데로 뛰어 들면서 서사시가 시작된다. 아폴론의 역정을 산 왕은 아가멤논의 탐욕이 아폴론과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수많은 영웅들의 죽음을 낳는 ‘감염의 서사’가 바로 일리아스다. 이렇게 인류사의 초기를 되짚어보면 지배 권력의 탐욕과 책임회피는 전염병의 해결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특히 초기 중국과 미국 일본의 지도자들이 보여준 행태를 보면 슬프게도 인간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정부는 대응을 잘해 시스템을 수출까지 이어지는 성과가 있었다. 그런데 슬픈 예감은 왜 틀리지 않을까. 바로 정의기억연대의 후원금문제다. 검찰이 회계부정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까지 하였고 관련자들을 소환조사 중이다. 상식적인 보통 국민들은 부도덕하지만 법의 맹점이나 합법을 이용해서 부당하게 사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더구나 이번 일로 일본의 아베정권의 지지율이 올라간다니 정의기억연대대표의 부도덕성이 크게 한건 하기는 했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을까. 여당의 대표까지 그를 엄호하는 것을 보면 그들은 노무현대통령의 탄핵과 그 후 사태를 잊은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다시 전 세계 베스트셀러에 오른 카뮈의 “페스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경멸한 점보다 찬양할 점이 더 많다.’ 공포에 굴하기 보다는 시민들은 사랑을 확인하고 용기를 간직함으로써 인간적 품위를 고양하려고 노력중이다. 희망은 한 줌의 권력이 아니라 다수 시민한테 나온다는 것을 알아차린 오늘이지만 질병의 서사는 패배도 아니오, 삶의 형식은 허무가 아니다. 시민들이 보여준 힘찬 희망의 노래다. 마치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찌름으로써 아폴론의 질병이 운명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을 거부했다. 많은 의료인, 소방관, 자원봉사자, 그리고 위대한 시민들에게 박수와 감사함을 힘차게 보낸다.
2020-05-31
-
21대 국회에 바란다
© 세종타임즈
5월 30일부터 21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시작되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치러진 지난 4.15총선에서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들이다. 2020년 5월 30일부터 2024년 5월29일까지 4년이다. 1987년 10월 개정된 현행 헌법에 의해 선출된 최초의 국회의원 임기가 1988년 5월 30일 시작된 이래 국회의원 임기는 4년마다 5월 30일에 개시되고 있다. 21대 국회의원 정당별 의석수는 비례위성정당의 합당으로 더불어민주당 177(더불어시민당 합당, 지역구163 비례14), 미래통합당 103(미래한국당 합당, 지역구 84 비례19), 정의당 6, 국민의당 3, 열린민주당 3, 무소속 6, 시대전환1, 기본소득당 1석이다. 이는 준연동형비례대표제란 기형적 선거법이 탄생시킨 국회이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여대야소의 국회로 여당이 막강한 힘을 갖게 되었다. 임기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21대 국회의 개원일은 6월 5일이다. 21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시작되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대 국회는 최악의 성적표를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번 21대 국회가 과연 국민들을 위해 바른 길을 걸어갈지는 미지수이다. 여야의 갈등 구조는 물론 국민갈등의 단초를 늘 정치권이 제공하고 있다는데서 그러하다. 이번에도 축하와 기쁨으로 탄생해야할 국회가 시작하기 전부터 국민갈등을 촉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부정선거 논란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총선 때 사용한 분류기와 노트북으로 공개 시연회를 갖고 부정선거의혹을 불식시키고자 했지만 오히려 궁색한 설명으로 의혹만 증폭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부정선거라며 선거무효를 주장하는 측들이 나서서 집회와 시위가 끊이질 않고 있는 것도 이번 총선의 후유증이 심각함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선거소송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대법원의 결정과정에 그 귀추가 주목된다. 문제는 이번 선거소송의 증거보전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투개표관리 과정과 보전절차 등에서 그동안의 상식을 벗어나는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는 데에 실망감을 더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조작이라는 주장에서부터 분류기 문제, 투표용지문제, 보관상자문제, 투표용지문제, 심지어 관내사전투표자수 문제에 이르기까지 제기되는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니다.
선거관리는 공명정대하게 이뤄져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민주주의 선거에서 당연한 것이다. 지금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부정과 불법의 마수가 선거에 개입할 수 있느냐는 것이 뜻있는 국민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시각이다. 우리는 지난 1960년 4.19혁명의 뼈아픈 과거를 갖고 있다. 3.15부정선거로 인하여 촉발된 4.19혁명은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독재와 부정선거에 항거한 위대하고 숭고한 사건이었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어린 학생들까지 나서서 피와 땀으로 이룩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이다. 그 숭고한 정신은 대한민국 역사에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비록 많은 희생이 따른 아픈 과거사이지만 오늘의 민주주의를 꽃피게 한 그 참뜻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이런 역사를 간직한 대한민국에서 이 21세기 대명천지에 누군가에 의해 부정선거가 획책되었다면 과연 이것이 가능하겠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는 국민들에게 한 점의 의혹이 없이 더욱 당당하게 해명이 되어야 하는 부분인 것이다. 제기되는 문제들과 의혹들이 단순히 ‘아니다, 그럴 리 없다’가 아니라 법과 원칙에 따라 명명백백하게 가려져야 하는 것이다. 왜 이런 문제가 나오고 제기되는 지를 신속하게 밝혀 갈등과 소모적 논쟁을 하루속히 벗어나야 한다. 이런 논란으로 인해 개원이후에도 자칫 대한민국의 정치를 또다시 상처투성이로 전락시킬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여대야소로 무소불위의 막강한 힘을 갖춘 여당이 과연 21대 국회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원구성에서부터 결코 말처럼 간단치 않은 국회모습을 예고하는 듯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는 민주주의 시금석이다. 국회가 만신창이가 되면 그야말로 민주주의가 만신창이 되는 것과 같다. 이번 국회는 초선의원만도 151명으로 전체 절반을 넘는다. 새로운 분위기를 갖춘 모양새이다. 이들에게는 대한민국 국회의 역사를 새롭게 써야 할 책임이 주어지고 있다. 20대 국회처럼 역대 최악의 국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의 소리도 들린다. 일하는 국회, 국민에게 인정받는 국회가 되겠다는 초심을 변치 않는다면 21대 국회는 성공한 국회가 될 것이다.
참신한 일꾼들이 대거 입성한 국회는 정말 새롭게 달라져야 한다. 과거와 같은 국회는 국민들의 정치 불신만을 가중시킬 뿐이다. 이러한 악순환은 이제 멈춰야 한다. 싫든 좋든 부정선거 논란도 법과 원칙에 따라 하루속히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여대야소의 21대 국회가 국민들에게 무엇을 보여줄지는 그야말로 개봉박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일에 당리당략이나 사심을 버리고 국민을 위하는 공익적 자세와 겸손하고 정의로운 자세를 늘 견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뛰어난 인물로 뽑혀 국민들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회의원을 선량(選良)이라고 하는 것이다. 21대 국회는 코로나19 사태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역대 최악인 20대 국회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결연한 각오와 의지가 넘치길 바란다.
2020-05-30
-
성대한 졸업식 우울한 졸업생 1
▲ 1906년 5월22일, 조선 왕실의 후원으로 왕후 엄귀비 소유의 용동궁터에 설립된 숙명여자고 등보통학교는 발전을 거듭해 신교사를 짓고 1920년 6월15일 낙성식을 가졌다. (사진은 에서 전재) = 사진제공 조정희 PD © 세종타임즈
1926년 3월23일 화요일, 경성(=서울) 수송동 79번지의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정문에는 아침부터 수백 명의 인파가 몰려 혼잡을 이루었다. 검정색의 육중한 고급 승용차들과 택시들이 줄을 지어 도착해 성장한 조선의 신사와 귀부인들을 내려놓았고, 한껏 차려입은 학부모들도 학생들의 안내를 받으며 강당으로 향했다. 이날은 숙명여고보의 제17회 졸업식이었다.
숙명여고보는 1906년 5월22일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황후 엄귀비가 설립한 여학교였다. 명성황후 민씨가 일본인들에게 살해당한 후 고종의 총애를 받아 황후 자리에 오른 엄귀비는 두뇌가 명석하고 대범하면서도 인내심이 많고 성품이 활달한 여걸 타입이었다. 그는 특히 백성의 교육, 특히 여성교육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엄귀비는 황실 재원으로 세 개의 학교를 세웠다. 양정의숙(1905년)과 진명여학교(1906년), 그리고 명신여학교(1906년)였다. 양정의숙은 법학과 경제학을 집중 교육하면서 국가를 경영할 인재 양성을 위한 남학교였다. 진명과 명신은 대한제국 황실이 세운 최초의 여학교였다.
20세기가 되기 전에도 조선에는 여러 개의 여학교가 있기는 했었다. 한양에 이화학당(1886)과 정신여학교(1895)와 배화여학교(1898)가 있었고 평양에는 정의여학교(1894)와 숭현여학교(1896)가 있었다. 그밖에도 동래의 일신여학교(1895)와 인천의 영화여학교(1897), 개성의 호수돈여학교(1899) 등이 잇달아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 여학교들은 서양 선교사들이 세운 것으로 여성교육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선교사업을 위한 보조수단이었다.
한편 한양 북촌에 사는 양반부인 4백여명이 ‘찬양회’라는 부인단체를 결성하고 순성여학교(1898)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조선의 민간인이 설립한 최초의 여학교였다. 그러나 이 학교는 1910년 국권이 침탈된 이후 해체되었다.
대한제국 정부도 관립 한성고등여학교(1908)를 설립해 여성교육을 통해 국권을 지키고 국난을 극복하는 데에 힘을 보태려 했으나 때가 이미 늦었다. 대한제국은 이미 외교권과 행정권의 절반을 잃었고 머지않아 국권 전체가 일제의 손에 넘어가게 될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 숙명여학교 졸업생들은 옥색 저고리에 자주색 치마의 한식 교복을 입고 졸업식에 참석하게 되 어 있었다. (사진은 1920년 3월25일자 3면에 실린 숙명여고보 제11회 졸업식 장 면.) = 사진제공 조정희PD © 세종타임즈
명신여학교는 1909년에 ‘숙명(淑明)고등여학교’로 개칭됐고, 대한제국이 망한 후에는 일제의 1911년 제1차 조선교육령에 따라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로 이름이 다시 바뀌었다. 이름이 바뀌었어도 이 학교는 항상 특별한 학교였다. 명신여학교라는 정식 이름이 있었지만 ‘귀족여학교’라는 별명으로 불리곤 했다. 이 학교의 입학은 왕실 귀족과 명문대가의 여성들에게만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훗날 일반 입시를 통해 학생을 선발하게 되었을 때에도 조선의 가장 우수한 여학생들이 지원하는 가운데 3대1이 넘는 경쟁률을 보이곤 했다.
숙명여학교는 설립 이후에도 대한제국 황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황후 엄귀비는 학교 이름이 숙명으로 바뀔 때에 친필 휘호를 내렸고,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고종이 덕수궁에 머무르며 환행할 때에도 숙명여학교 학생들은 수동남문에서 그를 지영(祗迎)할 수 있었다.
고종과 엄귀비는 수시로 숙명여학교 학생들에게 학용품과 과자를 선물했고, 교사들을 위로하는 연회를 열었다. 고종과 엄귀비의 생일이 되면 숙명학생들이 손으로 정성스럽게 만든 조화나 자수 작품을 진상하곤 했다. 학교의 졸업식과 운동회와 원족회 때마다 고종황제 내외는 금일봉과 선물을 내렸는데, 심지어 엄귀비는 날이 덥다며 부채 1백 개를 하사한 적도 있었다.
대한제국 황실이 숙명여학교에 내린 최대의 선물은 학교를 재단으로 전환시켜 준 것이다. 망국의 기운이 짙어지자 엄귀비는 경기도와 황해도에 산재한 황실 전답 중에서 2백만 평을 떼어 숙명여학교에 귀속시키고 거기서 나오는 소출로 학교를 운영하게 했다. 나라가 망하더라도 학교가 유지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숙명여학교의 학생들과 교원들은 고종과 엄귀비의 유지를 잊지 않았고 엄혹한 일제강점기에도 후배들에게 이를 전승해 나갔다. (계속)
2020-05-25
-
조정희 PD의 최승희 이야기
조정희 PD © 세종타임즈
서울대와 뉴욕주립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알바니 대학에서 일탈 사회학과 범죄학을 강의했다.
무용가 최승희에 꽃혀서 다큐멘터리 작업 중이고, 터키 사회와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2020-05-24
-
경제 활력소인 긴급재난지원금
© 세종타임즈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면서 소비가 부쩍 늘고 있다. 일단은 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재난지원금은 4인 가구 이상 최고 100만원까지 지급됐다. 저소득층에는 현금이 지급됐지만 대부분 국민들은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충전방식이나 선불카드, 지역사랑상품권 등으로 받았다. 긴급재난지원금은 그야말로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정부의 한시적인 제도로서 국민생활안정과 경제회복지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지난 11일부터 시작되어 5부제로 신청을 받았다. 22일을 기점으로 요일제가 종료됐다. 25일부터는 은행창구를 통해 즉시 신청이 가능해졌다. 다음 달인 5일까지 신용카드와 체크카드의 충전이 가능하고 그 이후 읍면동 주민센터를 통한 선불카드와 지역사랑상품권 접수는 계속된다.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를 통해 수령한 긴급재난지원금은 오는 8월 31일까지만 사용이 가능하지만 사용하지 않은 잔액은 전부 환수 조치된다.
천문학적인 지원규모로 전 국민에게 지급되는 사상 초유의 지원금이다. 정부에서 전액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14조3,000억 원 규모의 재난지원금 중 14.6%인 2조1,000억 원은 17개 시·도 각 지방자치단체의 분담분이기도 하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긴급재난지원금 매칭분 조달이 비상이 걸렸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은 재원조달을 위해 안간 힘을 다하고 있다. 재원조달여력이 낮은 지자체는 당연히 그 충당을 위해 갖은 방안을 다 짜내야 하는 형편에 처한 모양이다. 국민들이 받는 긴급재난지원금의 재원조달이 이처럼 쉽지만은 않다. 재난관리금과 재해구호기금 등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지방재정의 건전성도 이미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강도 높은 세출구조조정이나 지방세 및 세외수입 등 체납액 징수강화 등의 특단의 예산대책도 뒤따르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전시예산을 편성하는 형편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이른바 가용재원이 바닥날 경우 포스트 코로나 이후에 심각한 문제 발생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받아든 긴급재난지원금을 긴요하게 쓰기 시작했다. 재래시장도 북적대는 모습이다. 슈퍼마켓을 비롯하여 음식점, 음식료품, 생필품 등 다양하게 많이 사용되고 있다. 지역사랑상품권과 선불카드로도 지급되면서 지역화폐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역상권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이 아사직전인 시중경제를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지원금을 사용하느라 분주하다. 성미가 급한 사람은 8월말까지 소진해야 하는 지원금을 벌써 다 써버린 경우도 보게 된다. 지원금을 받아든 사람들은 그 사용을 통해서 정부지원을 한층 실감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빚은 새로운 경제상황이다.
그렇다고 경제가 한꺼번에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사용하는 용처는 많지만 아직도 이런 사용의 사각지대에서 눈물짓는 자영업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극심한 소외감과 박탈감을 받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서는 대목이다. 사용제한업종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급기야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가 스포츠여가업종이 유흥사치업종으로 포함되어 여전히 생존위기에 처해 있다며 사각지대 해소를 촉구하고 나섰다. 골목상권 자영업종에 대한 사용처 배제는 즉각적으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패션업체 대리점주 300여명도 정부와 지자체에 민원을 제기한 상황이기도 하다. 물론 대기업 계열의 대형마트나 백화점, 온라인 전자상거래, 대형전자제품판매점, 유흥사치업종은 사용업종이 제한된 업종이다. 하지만 상대적 박탈감이나 소외감으로 또 다른 고통이 수반된다면 이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긴급재난지원금이라는 사상 초유의 지원금을 받아들었지만 국민들의 마음이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사용하는 지원금이 나라 빚이 되고 지자체의 빚으로 남아 고통이 수반된다면 결국 그 피해자는 도로 국민이 되기 때문이다. 우선 받아쓰기는 달콤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공동체의 빚 부담으로 남는다면 이는 보이지 않은 후유증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벌써 지방자체단체들은 분담금 마련에 비상상황이다. 말처럼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원금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전국적으로 살펴볼 때 재원마련이 쉽지 않은 자자체들은 벌써 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심지어 전시예산편성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할 정도이다. 물론 지금이 코로나19 비상시기 임은 분명하다. 정부나 지자체는 물론 국민들도 비상상황을 너무나 깊이 인식하고 있다. 위기의 경제상황을 이렇게 해서라도 되살려야 하는 절박감이 묻어난다. 분명한 것은 어렵게 마련된 재원이 시중경제를 되살리고 자영업자들의 숨통을 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힘든 가계경제에도 보탬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위기에 처한 경제가 살아나면 그것은 모두가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하지만 긴급재난지원금이 생각처럼 쉽게 만들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정부나 지자체가 힘들게 마련하여 국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지역경제를 되살리고자 하는 긴급처방전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시중에 돈을 쏟아 자영업자들을 살리고 재래시장을 살려 그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면 성공이다. 국민들이 재난지원금을 어디에 쓰던 그것은 경제 활성화를 위한 처방전에 다름 아니다. 삼삼오오 모여 긴급재난지원금의 사용처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모두가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을 가슴으로 느끼는 듯하다. 사용지역을 제한하는 것도 지역상권을 살리라는 의미이다. 소비가 경제 활력이기 때문이다. 소비 진작이야말로 튼튼한 지역경제의 근간이다. 그래야만 경제가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긴급재난지원금을 오는 8월 31일까지 다 소진하도록 하고 있다. 다행히 긴급재난지원금의 사용은 시중에 돈이 돌게 하고 소비심리도 다시금 되살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피폐해진 경제가 되살아난다면 긴급재난지원금은 분명 갈급한 나라경제의 생명수가 될 것이다. 이 위난의 시기에 긍정과 희망의 경제 활력소가 바로 국민들에게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이 되고 있다.
2020-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