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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일상이 된 나라, 800만 1인 가구 시대의 경고
혼자 산다는 것, 선택이 아닌 구조가 되다
대한민국이 마침내 ‘1인 가구 800만 시대’를 넘어섰다. 통계 속 숫자는 차갑지만, 그 안에 담긴 삶의 얼굴은 뜨겁고도 처연하다. 지난해 홀로 사는 1인 가구는 804만 5,000가구. 전체 가구의 36.1%에 달한다. 다섯 집 가운데 두 집 가까이가 이제 ‘혼자 사는 집’이다. 불과 5년 전 30.2%였던 비중이 해마다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쯤 되면 변화가 아니라 구조다.
초혼 연령은 늦어지고, 기대수명은 길어졌다. 젊은이는 결혼을 미루고, 노인은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다. 그 사이를 채운 것이 바로 1인 가구다. 29세 이하 청년층 1인 가구 비중은 17.8%, 70세 이상은 19.8%에 이른다. 남성은 20~30대에서, 여성은 60대 이후에서 홀로 사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서울은 이미 1인 가구 비중이 40%에 육박한다. 대전, 강원, 충북도 뒤따른다. 이 흐름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인구 구조의 방향이다.
청년의 고독, 노인의 고립… 세대가 다른 외로움
청년의 1인 가구는 자유와 독립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그 실상은 불안한 생존의 다른 표현이다. 월세와 전세, 고금리 대출에 짓눌린 청년들은 ‘결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할 수 없는 현실’에 내몰리고 있다. 일자리는 불안정하고, 주거는 불안하며, 미래는 막막하다. 혼자 사는 것은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은 강요된 생존 방식이다.
반면 노인의 1인 가구는 상실과 단절의 결과다. 배우자를 떠나보내고, 자식은 멀어지고, 이웃은 낯설다. 특히 초고령 사회로 갈수록 홀로 남는 여성 노인이 급증한다. 기대수명의 성별 격차는 고독의 성별 격차가 된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 날이 반복되고, 병원 문턱은 높고, 냉장고는 비어간다. 고독사는 더 이상 뉴스 속 비극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상시적 위험이 되었다.
1인 가구의 폭증, 사회 시스템은 여전히 4인 가족에 멈춰 있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다. 문제는 준비되지 않은 사회다. 대한민국의 제도와 복지는 여전히 ‘4인 가족 표준’에 묶여 있다. 주거 정책도, 세제도, 건강보험 구조도 1인 가구 현실과 엇박자를 낸다. 소형 주택은 부족하고, 1인 가구 맞춤형 공공임대는 턱없이 모자란다. 전기·수도·가스 기본 요금 구조는 혼자 사는 사람에게 오히려 더 가혹하다.
소득은 줄었는데 지출은 줄지 않는다. 병원비, 간병비, 통신비, 관리비, 배달비까지 1인 가구의 생활비 부담은 다인 가구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노인 1인 가구의 빈곤율은 OECD 최고 수준이다. 청년은 소득이 적고, 노인은 소득이 끊긴다. 두 세대 모두 ‘혼자’라는 이유로 사회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서 있다.
고독이 병이 되고, 고립이 재난이 되는 사회
1인 가구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삶의 방식에 머물지 않는다. 이는 곧바로 정신건강, 범죄, 안전, 의료, 복지, 재난 문제로 연결된다. 우울증, 고립감, 알코올 의존, 극단적 선택의 위험은 1인 가구에서 더 높게 나타난다. 집 안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존 가능성은 급격히 떨어진다. 고독사는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사회의 실패다.
범죄도 1인 가구를 노린다. 특히 여성 1인 가구는 주거 침입, 스토킹, 불법 촬영의 표적이 되기 쉽다. 노인 1인 가구는 보이스피싱과 금융사기의 주된 피해자가 된다. ‘혼자’라는 존재는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표적이 된다.
1인 가구는 문제가 아니라, 정책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제 1인 가구는 예외가 아니라 표준이다. 그런데 정책은 여전히 뒷걸음질 치고 있다. 정부 부처마다 흩어진 1인 가구 정책은 통합적 컨트롤 타워 없이 파편화되어 있다. 청년, 노인, 안전, 정신건강이 따로 취급되어 각각의 조각 대응만 반복된다.
이제는 ‘1인 가구 전담 국가전략’이 필요하다. 주거, 복지, 일자리, 의료, 안전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야 한다. 소형 공공주택의 대대적 확충, 1인 가구 맞춤형 건강관리 시스템, 응급 안심 IoT 기기의 전국 보급, 고독사 예방 전담 인력 확충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혼자의 삶을 지키는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을 세워야 한다
청년 1인 가구에게는 ‘독립 유지가 가능한 소득’이 필요하다. 단순한 취업 숫자 늘리기가 아니라, 주거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 안정적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공공임대 확대와 월세 부담 경감, 청년 1인 가구 전용 금융 안전장치도 필수다.
노인 1인 가구에게는 ‘고독을 줄여주는 국가’가 필요하다. 안부 확인이 형식이 아닌 실질이 되어야 한다. 복지 공무원이 아닌, 생활 돌봄 인력이 정기적으로 삶을 점검하고, 병원·약국·마트·은행까지 연계된 생활 안전망이 작동해야 한다. 노인 돌봄을 더 이상 가족에게만 맡겨서는 안 되는 시대다.
1인 가구 사회는 공동체를 다시 정의하라는 요구다
1인 가구의 증가는 공동체의 해체가 아니라, 공동체의 재정의를 요구한다.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은 사회, 혼자여도 위험하지 않은 사회, 혼자여도 빈곤하지 않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함께 살아야 공동체’라는 오래된 공식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각자의 공간에서 안전하게 연결되는 새로운 공동체가 필요하다.
동네 돌봄, 공유 주방, 커뮤니티 라운지, 1인 가구 협동조합, 세대 공존형 주택 모델 등은 더 이상 실험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야 한다. 고독을 민간 자원봉사에만 맡기는 나라는 결국 고독으로 붕괴된다.
800만의 고독, 국가가 외면하면 재앙이 된다
800만이라는 숫자는 통계가 아니라 경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병을 앓고, 혼자 불안을 견디고 있다. 이 거대한 고독의 파도가 사회 안전망을 집어삼키기 전에, 국가는 방향을 틀어야 한다.
1인 가구 문제는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존립의 문제다. 노동력, 출산율, 의료비, 사회적 비용, 공동체 유지 비용이 모두 이 흐름과 직결된다. 1인 가구를 방치하면, 대한민국은 ‘고독한 국가’가 된다.
혼자 살아도 괜찮은 나라, 그것이 선진국이다
선진국은 소득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증명된다. 혼자 살아도 병들지 않고, 혼자 살아도 굶지 않고, 혼자 살아도 죽음 앞에서 방치되지 않는 나라. 그것이 진짜 복지국가의 기준이다. 800만 1인 가구는 짐이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안아야 할 시대의 얼굴이다.
혼자가 늘어났다고 사회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는 더 촘촘해져야 한다. 더 세심해져야 한다. 더 인간적이어야 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과연 ‘혼자의 시대’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고독이 일상이 된 시대, 국가의 품격이 시험대에 올랐다
1인 가구 800만 시대는 대한민국 사회의 품격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가장 약한 존재를 어떻게 보호하느냐가 그 사회의 수준을 말해준다. 혼자를 방치하는 국가는 결국 모두를 위험에 빠뜨린다.
이제는 숫자를 세는 정치를 넘어, 삶을 지키는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고독이 구조가 된 사회에서, 국가는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
202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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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마지막 달력이 우리에게 묻는다
어지러운 정세, 마지막 달력의 묵직한 울림
달력이 마지막 한 장만 남았다. 바람 끝이 매서워지고, 도시의 불빛이 차갑게 흔들리는 12월의 초입에서 우리는 다시 한 해를 돌아본다. 세계는 격동했고, 국내 정치는 하루도 조용할 틈이 없었다. 대통령 선거와 조기 정국, 정책 혼선, 사회적 갈등의 확산까지, 2025년이라는 시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불안과 긴장의 굴곡 위에 놓여 있었다. 국민들은 시시각각 바뀌는 뉴스의 헤드라인 앞에서 숨을 고를 틈조차 없었다.
정치의 소용돌이는 끝을 모르고, 국제정세는 오히려 복잡해졌다. 중동 분쟁과 미·중 갈등, 새로운 경제블록의 등장과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까지 세계는 요동치는 파도 위에 서 있다. 이 거대한 외부 요인은 곧바로 우리 경제와 안보에 직격탄이 되었고, 민생은 그 충격의 한가운데에서 시름 깊은 겨울을 맞고 있다. 달력 한 장을 남겨둔 오늘, 우리는 이 혼돈의 시대에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절실히 묻지 않을 수 없다.
불안한 사회, 차분함을 요구하는 시간
정치의 불안정은 결국 국민의 삶을 뒤흔든다. 경제는 불확실성의 그늘 아래 위축되고,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출렁였다. 민생정책의 혼선은 서민들의 삶을 더욱 자극했고, 청년들은 미래 불안을 토로한다. 자영업자의 시름은 깊어만 갔으며, 고령층은 복지·돌봄의 걱정 속에서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혼돈이 깊어질수록 필요해지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차분함’과 ‘성찰’이다. 사회 전체가 과열된 듯한 지금, 분노와 불신보다 절제와 숙고가 절실한 시점이다. 가짜 뉴스와 과도한 정치적 선동이 난무하는 시대일수록 더 많은 이들이 냉정한 판단을 잃는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국민 개개인이 정신적 기준점을 다시 세우고, 묵직한 한 해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때이다.
국제정세의 파고, 우리 사회의 대응력 시험대
또 하나의 중요한 돌발변수는 국제정세다. 올해는 세계 곳곳에서 다극화와 지역 분쟁이 확대된 한 해였다. 국가 간 동맹 구조는 복잡해졌고, 경제 패권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무력 충돌, 대만해협 긴장, 우크라이나 전선의 재격화는 전 세계를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었다.
우리나라 역시 이 변수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글로벌 충격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도체와 에너지, 곡물과 방산 등 주요 산업은 공급망 재편 속에서 새로운 도전에 놓여 있다. 이런 환경일수록 국가는 냉철한 전략을 가져야 하고, 사회는 조급함보다 단단한 공감대를 축적해야 한다. 국가적 위기 대응력은 결국 국민의 신뢰와 사회적 안정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혼돈의 시국, 성찰 없는 미래는 없다
올해의 정국은 국민에게 많은 상처와 피로를 남겼다. 정치권은 국가 미래보다 눈앞의 이익을 좇는 듯 보였고, 사회의 갈등 구조는 더 촘촘하게 얽혔다. 경제·교육·안보·복지 등 어느 분야 하나도 불안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현실은 우리 사회가 공통의 가치와 방향성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성찰은 상처에서 시작된다. 실패의 기록은 때로 미래를 밝히는 가장 명징한 지표가 된다. 지금의 혼란과 분열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리가 잃어버린 공동체의 정신, 서로를 향한 최소한의 존중, 그리고 국가적 위기 앞에서 함께 뛰어넘었던 연대의 기억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성찰 없는 미래는 없다. 성찰이 없다면 같은 실수는 또 반복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삶, 국가의 미래는 작은 마음가짐에서 시작된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은 언제나 국민을 겸손하게 한다. 지나온 시간의 무게를 헤아리고 남은 시간을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거창한 이념도, 정치적 선언도 아니다. 일상의 작은 질서를 되돌리고, 타인에 대한 예의를 회복하며, 공동체를 향한 책임 의식을 다시 점검하는 것이다.
정치가 흔들릴수록 국민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정국이 불안할수록 더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나라가 어지러울수록 개인의 정신적 균형이 국가의 균형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차분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음을 가질 때, 그 마음은 결국 사회 전체의 안정력으로 확산될 것이다. 지금의 혼돈은 잠시지만, 성찰에서 비롯된 지혜는 오래 남는다.
희망의 2026년을 준비하며
다가오는 2026년은 새로운 과제가 산적해 있는 해다. 경제 회복, 민생 안정을 위한 국가적 과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국제정세는 더욱 예측 불가의 국면을 맞고 있고, 정치권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성숙한 리더십을 보여줄 중대한 시험대 위에 서 있다. 사회는 이미 새로운 방향성을 요구하고 있고, 국민은 더 높은 질의 정치와 행정을 바라고 있다.
마지막 달력장이 펼쳐진 이 순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다음 한 해를 준비해야 한다. 혼란을 넘어 안정으로, 분열을 넘어 통합으로, 대립을 넘어 상생으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이 바로 중요한 시기이다. 희망은 멀리서 오지 않는다. 국민 각자의 성찰에서 시작되고, 그 성찰이 모여 국가를 다시 세운다.
마무리하며 – 난세를 건너는 지혜는 성찰과 차분함에서
2025년의 마지막 한 달을 남겨두고 우리는 다시 묵직한 물음을 마주한다. 이 혼돈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무엇을 놓쳤으며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정치의 소음 속에 우리의 삶은 얼마나 흔들렸는가. 이 질문들 앞에서 차분히 멈춰 서는 것, 그것이 바로 성찰의 시작이다.
나라의 시국은 여전히 어지럽다. 세계는 격동하고, 우리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한다. 그러나 난세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이들은 늘 있었다. 그들의 지혜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 차분한 성찰에서 비롯됐다. 그 지혜를 오늘 우리가 다시 붙잡아야 할 때이다.
마지막 달력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올해 무엇을 배웠고, 내년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 질문에 답하는 순간, 새해의 희망도 조용히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다.
202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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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시장 불장 속의 눈물
한국 증권시장, 뜨거운 욕망과 차가운 손실의 뒤틀린 풍경
최근 통계는 한국 증시의 이면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NH투자증권이 올해 1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주식을 매도한 개인 투자자 171만 8천여 명을 분석한 결과, 28.6%인 49만여 명이 손실을 확정했다. ‘불장’이라 떠들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손실 규모는 총 3조 원을 넘어섰고, 1인당 평균 613만 원에 달했다. 특히 3천만 원 이상 잃은 투자자만 2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은 지금의 주식 시장이 누구를 위한 상승인지, 무엇이 뒤틀려 있는지를 말없이 증명한다.
대한민국 증시는 지금 불길처럼 타오른다. 전광판은 매일 같이 새 역사를 쓰고, 언론은 ‘사상 최고’라는 수식어를 경쟁하듯 내건다. “코스피 사상 첫 4,221.87 마감.” 전광판의 숫자는 한국 경제가 마치 새로운 황금기를 열었다는 듯 화려하게 반짝인다. 그러나 이 찬란한 풍경 뒤편에는 말없이 깊어지는 개인 투자자들의 한숨이 있다. 코스피 ‘불장’이란 이름의 축제 속에서도 개인 54%인 절반이 넘는 투자자가 평균 931만 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은 오늘 우리 자본시장의 성적표가 결코 단순한 승리의 기록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숫자는 오르고 있지만 마음은 떨어지고, 지수는 뜨거운데 지갑은 차갑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직면한 뒤틀린 현실이다.
착시의 장세, 눈부신 숫자 속에 감춰진 진실
코스피가 연일 고점을 새로 갈아치우자, 시장은 마치 모든 이가 이익을 챙긴 듯한 환상에 빠져 있다. 하지만 실제 계좌를 펼쳐본 투자자들은 고개를 젓는다. 개인 투자자의 절반 이상이 손실 상태다. 불장이라고 부르지만, 이는 전체 시장의 기쁨이 아니다. 한쪽에서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 불꽃이 떨어진 재를 떠안고 버티는 투자자들이 존재한다.
SNS 속의 ‘수익 인증’은 단순한 자랑을 넘어 투자 심리를 집중적으로 흔든다. 친구가 벌었다는 말 한마디에 뒤늦게 뛰어들고, 이미 오른 주가에 손을 대며 평균단가만 높아진다. 불안과 탐욕, 확증편향과 군중심리가 뒤엉키면서 위험은 농축되고 손실은 깊어진다. 시장은 전체가 오르는 듯 보이나, 실제로는 일부 종목이 지수를 끌어올리는 편향된 상승이다.
세대별 희비, 가계와 노후를 흔드는 충격
불장은 젊은 층보다 오히려 중장년층의 상처를 키우고 있다. 40대와 50대의 과반수가 손실 구간에 있으며, 60대 이상은 평균 천만 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노후를 앞두고 주식 시장을 ‘마지막 기회’로 삼은 이들이 많다는 점에서 이 손실은 단순한 투자 실패가 아니라 생활 기반을 흔드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자산 규모가 큰 투자자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3억 원 이상을 투자한 계좌조차 절반 넘게 손실을 보고 있다. 시장은 누구에게도 온정적이지 않다. 자본의 크기보다 냉정한 흐름에 더 크게 반응한다. 이는 오늘 한국 시장의 구조적 위험이 결코 개인의 실력 차이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소수 종목의 독주, 테마주의 그림자
지수를 끌어올린 주역은 소수의 대형 반도체 종목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시장을 이끄는 ‘쌍두마차’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찬란한 상승의 그늘에는 수많은 테마주 피해자들이 존재한다. 카카오, 에코프로, 2차전지 관련 종목 등에 진입한 투자자들은 여전히 원금 회복조차 바라보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테마주가 급등할 때는 모두가 그 열기에 취하지만, 하락의 속도는 더 빠르고 잔인하다. 최근 급등 이후 급락 상황이 그렇다. 급등의 기억을 잊지 못한 투자자들은 “조금만 기다리면 회복한다”라는 희망에 포로가 되어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 사이 손실은 고착되고, 계좌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진다. 평균 손실액 931만 원, 손실자 131만 명, 손실액 1,000만 원 이상이 13만 명, 5천만 원 이상 손실이 무려 5만 3천 명. 화려한 외피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개인 투자자의 내부 상황은 실로 충격적이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냉정한 원칙
증시가 뜨거울수록 투자자는 더 차가운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생활비, 비상금, 노후 자금은 절대 시장에 투입해서는 안 된다. 기본 원칙은 늘 같다. 분산투자, 리스크 관리, 감정 배제. 그러나 불장은 이 단순한 원칙을 가장 지키기 어렵게 만든다.
성공담이 난무할수록 분할매수와 손절 기준 마련 같은 기본 원칙은 오히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빚투와 레버리지 투자야말로 개인의 인생을 뒤흔드는 폭발력이 있다. 특히 중장년층에게 이 선택은 회복 불가능한 상처가 될 수 있다.
개인의 무게를 사회가 함께 덜어야 한다
주식 시장은 더 이상 개인의 선택 문제만이 아니다. 개인 투자자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커진 지금, 투자 실패의 충격은 곧 가계로, 사회로, 경제 전체로 확산된다. 금융당국은 고위험 투자에 대한 경고 체계를 강화하고 공적 투자 교육을 현실화해야 한다.
특히 고령층과 은퇴자를 위한 재무 상담, 채무 조정, 심리적 안정 프로그램 등 사회적 안전망은 필수다.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수록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맺음말
불장의 화려함 뒤에는 ‘눈물의 경제학’이 자리한다. 시장은 때로 잔인할 만큼 정직한 곳이다. 탐욕은 빠르고, 희망은 느리며, 손실은 오래 남는다. 지금 한국 증시는 뜨겁지만, 그 뜨거움이 모두를 비추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시장은 우리에게 말한다. 그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증시는 언제나 인간의 욕망에서 태어나고, 인간의 두려움에서 움직인다. 불꽃이 높을 때는 그 열기보다 그림자를 보라. 살아남는 투자—그것이 진정한 승리다.”라는 말이다.
최근 한국 증권시장이 뜨거운 욕망과 차가운 손실의 뒤틀린 풍경은 풍요 속의 빈곤이다. 신용대출까지 끌어 쓴 투자자들이 증권사 반대매매로 겪는 허무한 손실도 뼈아픈 현실이다. 한마디로 빈 깡통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 증권시장 상황은 강렬하고 단호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숫자에 취하지 말고 현실을 보라고. 탐욕이 아닌 원칙으로 서라고. 시장의 환호가 아닌 양심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불장 속에서도 냉정한 투자자, 흔들리지 않는 투자자가 결국 살아남을 수 있다고.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견실한 시장만이 건강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
202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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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난 자리에서 – 진짜 인생의 시험은 이제 시작이다
진인사대천명, 그 치열했던 여정의 끝에서
13일 오후, 전국의 고3 수험생들이 한 해를, 아니 인생의 한 시절을 통째로 바쳐온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마지막 종소리가 울렸다. 시험지를 걷어내던 감독관의 손끝에는 긴장의 흔적이 남았고, 교실마다 번져나가던 깊은 숨소리에는 안도의 빛이 스며 있었다. 그동안 이 나라의 수험생들은 한겨울을 뚫고, 장맛비를 견디며, 교과서와 문제집 사이에서 청춘의 가장 빛나는 시간을 견뎌냈다.
부모는 뒤에서 숨죽이며 도시락을 싸고, 학원비를 감당하며, 마음속으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기도를 올렸다. 그 치열한 과정이 13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가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새로 설계해야 할 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능이 끝났다고, 인생의 답이 끝난 것은 아니다
수능은 분명 인생의 큰 관문이지만, 결코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시험 하나가 한 사람의 가치를 정의할 수는 없다.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도, 기대 이하의 결과를 얻은 학생도 결국 같은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문제는 수능 이후의 시간이다. 긴장이 풀리며 생기는 해방감 속에 자칫 방황과 일탈의 유혹이 스며드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동안의 억눌린 자유를 폭발시키듯 밤새 거리를 배회하거나, 무분별한 음주와 유흥에 빠지는 일들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잠깐 쉬는 것’이 아니라, ‘삶의 균형을 잃는 것’이다. 이 시기는 청춘의 자유와 절제가 시험대에 오르는 두 번째 수능이다.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진짜 세상은 훨씬 냉정하게 그 대가를 요구한다.
학부모들에게 – 이제는 놓아주는 용기가 필요하다
수능이 끝난 순간, 부모의 손도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아이의 옆에서 학원 스케줄을 챙기고, 모의고사 점수에 울고 웃으며 함께 달려왔지만, 이제부터는 ‘조종사에서 관찰자’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부모의 지나친 간섭과 조급함은 오히려 자녀의 자립심을 가로막는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성적에 대한 불안과 비교 의식이 가정을 짓누르기도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점수표가 아니라 대화와 신뢰다. “넌 충분히 잘했어. 이제 네가 하고 싶은 걸 찾아봐.” 이 한마디가 때로는 그 어떤 입시 성적보다도 더 큰 인생의 자산이 될 수 있다. 성숙한 부모의 태도는 자녀의 인생을 단단히 세워주는 보이지 않는 기둥이다.
사회의 책임 – 경쟁만 부추긴 교육의 그늘
수능이 끝날 때마다 반복되는 논란은, 사실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모든 가치가 점수로 환원되고, 인간의 잠재력과 다양성이 ‘한 줄의 표준점수’로 평가받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일찍부터 경쟁에 내몰렸다. “수능이 끝났으니 이제 자유다.”라는 말이 오히려 슬프게 들리는 이유다. 교육의 목적은 인간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고 ‘성장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수능이 끝난 자리에서 우리 사회가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이제 우리는 어떤 청년을 길러내고 있는가?”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힘, 인간에 대한 통찰, 그리고 삶을 설계하는 지혜다. 그것이 없는 교육은 단지 지식의 암기장이며, 그 끝은 피폐한 경쟁의 악순환일 뿐이다.
수험생들에게 – 쉬어도 좋지만, 멈추지는 말자
이제 책을 덮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껏 웃어라. 그동안의 노력은 이미 수험생들을 한 단계 성장시켰다. 그러나 그 웃음이 ‘끝’이 아니라 ‘시작의 신호’가 되길 바란다. 쉬어야 한다. 그러나 멈춰서는 안 된다. 수능이 끝났다고 해서 인생의 시험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는 ‘정답 없는 문제’를 푸는 시간이 시작된다. 그 문제는 교과서가 아닌 현실 속에 있다. 자신의 진로를 찾는 일, 인간관계를 배우는 일, 사회의 불합리를 견디고 이겨내는 일 —그 모든 것이 진짜 수능보다 훨씬 어려운 인생의 문제집이다. 그러니 지금은 자신을 되돌아보고, 무엇을 위해 공부했고 앞으로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를 생각해야 할 때다.
성적보다 중요한 ‘자기 존중’과 ‘방향 감각’
수능 성적표는 숫자로 찍히지만, 인생의 가치는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시험결과가 좋지 않다고 스스로를 부정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인생은 언제나 두 번째 기회를 주는 법이며, 노력은 반드시 다른 문을 연다. 실패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방향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존중감이다. 남보다 늦을 수 있고, 다른 길을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길은 아니다. 세상은 이미 다양성의 시대다. 대학 진학이 전부가 아닌 세상, 기술과 창의력, 인성으로도 얼마든지 빛날 수 있는 길들이 열려 있다. 그 가능성을 볼 줄 아는 눈, 그것이 진짜 공부의 시작이다.
수능 이후 사회가 해야 할 일
수험생을 단순히 ‘입시 기계’로만 보던 시선을 거두고, 청년 세대를 위한 다층적 지원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심리적 공백기를 채워줄 상담 프로그램, 사회적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봉사나 체험활동,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멘토링 시스템이 필요하다. 수능이 끝나면 ‘놀아야 한다’는 공식 대신, ‘배움의 확장’과 ‘삶의 설계’로 이어지는 통로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교육당국과 지자체, 학교가 함께 이 시기를 인생 설계의 전환기로 만들어야 한다. 청년은 국가의 미래다. 그들의 잠재력은 시험점수보다 훨씬 크다. 지금 그들을 지켜보는 어른들의 태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한다.
진짜 수능은 인생 그 자체다
한 번의 시험이 끝나도, 인생은 늘 새로운 문제를 낸다. 그 문제에는 객관식 답안지도, 선택지도 없다. 오직 자신의 가치관과 노력으로 채워야 한다. 수능은 그저 한 챕터일 뿐, 인생은 훨씬 더 긴 서사다. 성공은 한순간의 결과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다듬고 세상을 이해해 가는 과정이다. 이제 수험생들은 그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 발걸음이 불안보다 희망으로, 방황보다 성장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 길 위에서 청춘들의 꿈을 응원해야 한다.
맺음말 – ‘결과’보다 중요한 ‘사람’의 가치
수능 종료는 누군가에게는 해방의 날이고, 누군가에게는 불안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시험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진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점수표를 걱정하고, 누군가는 내일을 그려보고 있다. 모두 다 옳다.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 ‘사람’이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세상을 향해 건강한 걸음을 내딛는 것 —그것이 진짜 수능을 통과하는 길이다. 진인사대천명, 그 말의 의미를 다시 새기자. 할 만큼 했으니, 이제 하늘에 맡기되, 다음 걸음을 향한 준비를 멈추지 말자. 수능은 끝났지만, 인생의 수능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교육은 점수가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일이며, 오늘의 수험생이 내일의 대한민국을 만든다.
202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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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연장의 명암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일자리 질서
다시 불붙은 정년 논의, 한국 사회의 시계가 움직인다
대한민국 사회의 시계가 ‘정년 연장’이라는 단어 앞에서 다시 요동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노동계가 동시에 뜨거운 논의의 장으로 뛰어든 이유는 명확하다. 고령화의 가속이다.
통계청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올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평균수명은 84세를 넘어섰고, ‘60세 정년’은 현실의 수명과 일할 의욕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더 오래 일하고 싶다”라는 열망이 아니다. 정년을 연장하면 그만큼 일자리가 오래 점유된다. 이는 곧 ‘청년 고용’이라는 민감한 균형추를 건드린다. 정년을 늘리느냐, 아니면 청년의 기회를 보장하느냐—이 두 축의 충돌이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정치권의 ‘정년 포퓰리즘’, 현실을 오판하다
정년 연장 논의는 정치권에서도 주요한 선거 의제가 되고 있다. 여야 모두 고령층의 표심을 의식하며 앞다투어 “일할 권리 보장”과 “고용안정 확대”를 외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현실을 정밀하게 계산하지 않은 ‘정치적 포퓰리즘’의 그림자가 짙다.
노동시장은 단순한 계산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정년이 연장되면 기업은 인건비 부담이 급증한다. 인건비는 늘어나고 생산성은 줄어드는 구조적 한계 속에서, 결국 기업은 신규 채용을 줄이거나 명예퇴직을 유도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일자리 총량의 축소’라는 역풍이 청년층에 직격탄을 날릴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은 표심을 얻기 위해 ‘정년 연장’을 마치 복지 확대처럼 포장하지만, 그 실상은 미래세대의 일자리와 연금, 그리고 산업 경쟁력의 문제로 연결된다. 단기적 정치 논리가 국가 장기 비전을 압도하는 순간, ‘정년 연장’은 더 이상 개혁이 아니라 ‘시간의 덫’이 될 수 있다.
청년의 분노, “기회는 왜 늘지 않는가”
청년 세대의 불만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취업 문은 좁아지고, 비정규직과 단기 일자리가 늘어나며, 청년층은 ‘경력 없는 늙은이’로 불리는 세태를 두려워한다. 만약 정년이 65세, 혹은 70세로 연장된다면, 기업은 기존 인력을 유지하기 위해 신규 채용을 더 줄이게 된다. 청년들은 ‘대기조’로 밀려나고, 노동시장 진입은 더 늦어진다.
이미 OECD 주요국 중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상위권이다. 고령층의 고용이 늘어나는 대신 청년층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세대 전이효과’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세대 간 경쟁을 넘어, 사회의 활력 자체를 떨어뜨리는 구조적 위기로 번질 수 있다. 정년 연장은 어쩌면 ‘노인의 생계’를 보호하는 대신 ‘청년의 미래’를 담보로 잡는 정책이 될지도 모른다.
기업의 현실, “사람이 아니라 비용이 남는다”
기업 입장에서 정년 연장은 결코 단순한 고용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냉정하다. 노동비용이 늘어나면, 인력 효율화를 모색한다. 실제로 대기업의 경우 50세 전후의 인력 구조조정이 이미 일상화되어 있다. 정년을 늘린다고 해서 기업이 선뜻 그 고령 인력을 활용할 여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명예퇴직 확대’나 ‘조기퇴직 프로그램’이 늘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
특히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른 산업 현장에서는 숙련보다 ‘적응력’이 더 중요하다. 인공지능, 자동화, 디지털 전환 등 산업구조가 바뀌는 가운데, 나이 많은 인력이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기업은 불가피하게 ‘퇴출의 합리화’를 시도한다. 정년 연장이 법으로 강제된다면, 기업은 고용을 줄이고 외주화·자동화를 확대할 것이다. 결국 “정년은 늘었지만, 일자리는 줄었다”라는 역설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연금과 복지의 균열, ‘일할 권리’가 ‘노후의 불안’으로
정년 연장은 연금제도와도 직결된다. 국민연금은 이미 재정적 경고등이 켜졌다. 수급자 수는 급증하지만, 납입자는 줄고 있다. 만약 정년이 연장된다면, 연금 납입 기간은 늘어나겠지만 수급 개시 시점도 늦어질 수 있다. 노후 불안은 줄지 않고, 오히려 “언제까지 일해야 하나”는 불안감이 더 커질 수 있다.
명예퇴직을 선택한 중장년층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한다. 실질적인 재취업의 문은 좁고, 재교육이나 직업훈련도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고령자 고용지원 정책이 현장성과 실효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정년 연장은 결국 ‘생계형 노동의 장기화’라는 새로운 사회적 빈곤을 낳게 된다.
일본의 사례에서 배워야 할 것
일본은 이미 ‘70세 고용 연장제’를 도입하며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방식은 단순히 법으로 정년을 늘린 것이 아니다. 기업 자율에 맡기되, 재고용제도·탄력근무제·직무 전환 등을 병행했다.
즉, 정년을 늘리기보다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한국이 지금 논의하는 정년 연장은 제도적 강제성이 강하다. 하지만 고령사회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정년의 숫자’가 아니라 ‘일자리의 질’이다. 노동 유연성을 확보하고, 연령별 직무 전환과 임금체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구조개혁이 병행되지 않는 한, 단순한 정년 연장은 사회적 갈등만 키울 뿐이다.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세대 간 사회계약’을 다시 써야 할 시점에 서 있다. 고령자는 존중받아야 하고, 청년은 기회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정년 연장 논의는 이 두 세대가 서로의 자리를 빼앗는 제로섬 게임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년을 연장하려면 ‘임금피크제의 실효성 강화’, ‘직무 기반 보상 체계의 개편’, ‘세대 간 멘토링 일자리 모델 구축’ 등 세밀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기업이 고령 인력을 재교육하고 재배치할 수 있도록 세제 지원과 기술훈련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정년은 더 이상 ‘퇴직의 나이’가 아니라 ‘일할 수 있는 능력의 나이’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정년 연장, 그 마지막 선택의 책임은
정년 연장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연장은 답이 아니다. 사회적 합의 없이, 세대 간 이해조정 없이, 정치적 공약으로만 추진되는 정년 연장은 또 다른 불평등의 불씨가 될 것이다.
국가는 고령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청년 세대의 기회를 확장해야 한다. 기업은 사람을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보는 철학적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회는 ‘일하는 존엄’과 ‘쉬는 권리’가 공존하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시대의 결단, “일의 종말이 아닌 일의 재창조로”
정년 연장은 단순히 몇 살까지 일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의 의미’를 다시 묻는 사회적 성찰이다. 우리가 정말 연장해야 할 것은 ‘정년’이 아니라 ‘일의 가치’이며, ‘나이’가 아니라 ‘능력’이다.
정치권이 일시적 표심이 아닌 국가의 백년대계를 본다면, 지금이야말로 사회 전체가 노동의 패러다임을 다시 써야 할 시점이다. 청년과 노인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새로운 질서, 일하는 것이 행복한 사회—그것이야말로 정년 연장이 진정 추구해야 할 대한민국의 미래다. 정년을 늘리기 전에, 세대가 함께 설 수 있는 일터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2025-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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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환율 리스크와 대한민국의 선택
새 협정, 새로운 불안
지난 10월 말, 대한민국과 미국이 새로운 무역협정을 공식 체결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복귀 후 처음으로 맺어진 양자 협정이자, 한·미 경제 관계의 향방을 가를 중대한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양국은 자동차, 반도체, 에너지 분야의 관세 완화와 투자 확대에 합의했지만, 협정의 이면에는 ‘미국 중심의 무역질서’라는 냉정한 현실이 숨어 있다.
표면적으로는 한국 수출기업의 기회가 확대될 것처럼 보이지만 시장 반응은 복합적이다. 협정 체결 직후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며 외환시장의 불안심리가 확산되었고, 외국인 자금은 단기 이탈 조짐을 보였다. 미국의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달러는 여전히 강세를 유지한다. ‘금리 인하의 완화 효과’보다 ‘무역 불균형 심화’에 대한 우려가 더 컸다.
금리는 내려도 불안은 남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경기 둔화를 우려하며 금리를 인하했다. 그러나 시장은 이를 ‘완화의 신호’로 보기보다 ‘세계 경기 둔화의 징후’로 해석한다. 달러 유동성은 늘었지만, 자본은 여전히 미국으로 몰리고, 신흥국 통화는 약세로 돌아섰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원화 가치 하락은 수입 물가를 밀어 올리고, 생활물가는 다시 국민의 체감 경제를 압박한다. 금리는 낮아졌지만 대출 이자 부담보다 더 큰 문제는 불안정한 환율과 물가의 이중고다. 경제는 수치보다 심리로 움직인다. 시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APEC 정상회의를 전후해 미국은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보호무역 노선을 다시 강화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체제는 힘을 잃고, 각국은 ‘자국 우선’의 깃발 아래 새로운 무역 장벽을 세운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의 숙명적 구조에서 환율 한파는 곧 서민의 삶으로 직결된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입 물가는 오르고, 서민 가계의 물가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무역의 명암, 서민경제의 그림자
이번 한·미 무역협정은 한국 수출 구조를 다변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미국 의존도를 심화시키는 양날의 검이다. 자동차와 반도체 산업은 관세 인하의 수혜를 입지만, 농축산물·의약품·서비스 시장은 역으로 개방 압박에 직면한다.
수출 호조가 국민 체감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수출 대기업은 이익을 늘리지만, 내수·중소기업은 환율 불안과 물가 상승으로 고전한다. 달러 강세는 수입 물가를 자극하고, 전기·가스·식료품 가격을 끌어 올린다. 결국 환율의 파고는 서민 가계로 밀려와 ‘금리 인하의 효과’를 상쇄하고 있다.
외교와 경제, 분리할 수 없는 시대
무역과 환율 문제는 이제 경제를 넘어 외교 전략의 문제다. 미국의 통화정책 변화가 한국의 수출 구조와 금융시장을 직격하고, 그 영향은 정치·외교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APEC 정상회의에서 확인된 각국의 ‘자국 우선주의’ 흐름 속에서 한국은 새로운 외교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아시아 지역·유럽·신흥국 시장으로의 다변화를 병행해야 한다. 달러 의존도를 줄이고, 무역 구조를 다층화하지 않으면 환율 파고는 반복될 것이다. 단기적인 환율 안정 개입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무역 생태계’다.
외교·경제의 새 방정식
무역과 환율은 이제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외교의 언어이자 국가 전략의 바로미터다. 이번 협정은 한·미 간의 경제적 신뢰를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동시에 “한국이 미국 중심 경제권에 얼마나 깊게 편입되었는가”라는 우려도 남긴다.
미국은 이번 협정에서 자국산 에너지 등의 수출 확대를 관철시켰고, 한국은 첨단산업 분야의 관세 혜택을 얻었다. 그러나 ‘관세 인하’ 이상의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한국은 이 협정 속에서 자율적 선택권을 얼마나 확보했는가. 경제 주권은 지켜지고 있는가. 외교·안보·경제의 삼각 구도 속에서 한국은 어느 방향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하는가. 지금이야말로 외교와 경제를 분리해 보던 시대의 착각을 거둘 때다.
신뢰의 경제, 일관성의 정치
경제의 본질은 신뢰다. 정책은 변할 수 있어도 원칙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조가 뒤집히고, 정부 메시지는 일관성을 잃는다. 이 불확실성이 외국 자본의 가장 큰 리스크로 작용한다.
이번 협정 체결 이후 시장이 불안한 이유는 단순히 환율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얼마나 신뢰할 만한가’에 대한 물음 때문이다. 국내외 투자자들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정책을 원한다. 그것이 진짜 환율 안정책이자 경제 안보의 첫 번째 장벽이다.
위기의 시대, 대한민국의 선택
대한민국은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한·미 무역협정 체결로 새로운 기회를 얻었지만 동시에 더 큰 의존과 리스크를 떠안게 되었다. 금리는 내렸지만, 불안은 남았고, 수출은 늘었지만, 민생은 여전히 팍팍하다. 이제 한국이 취해야 할 길은 명확하다.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 자주성, 외교적 동맹보다 경제적 실리, 숫자보다 국민의 신뢰다.
환율과 무역의 파고는 결국 선택의 문제다. 역사는 늘 위기의 순간에 나라의 방향을 가른다. 이번 한·미 무역협정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이 될지, 또 하나의 종속적 굴레로 남을지는 지금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달려 있다.
그 답은 경제의 수치가 아니라 국민의 마음속 ‘신뢰의 저울’ 위에서 이미 무겁게 흔들리고 있다.
202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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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 국민의 눈을 외면한 정치의 장(場)
국정감사의 본뜻이 사라진 자리
10월의 대한민국은 ‘국정감사 시즌’이다. 국회는 헌법이 부여한 막강한 권한인 ‘감시와 견제’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 각 부처와 공공기관을 상대로 한 해의 행정을 점검하는 대장정에 들어간다. 이름 그대로 ‘국정을 감사’하는 자리다. 그러나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장면은 실망과 허탈감을 안겨준다. 국민의 눈에는 ‘국감’이 아니라 ‘정감(政監)’으로 비친다. 정책과 행정의 진실을 파헤치기보다, 여야가 상대를 향해 날선 정치공세를 퍼붓는 ‘정치 싸움터’로 변질된 지 오래다.
이번 국정감사는 대선을 통해 새롭게 구성된 정부를 대상으로 22대 국회가 처음 실시하는 감사지만, 새로운 변화나 민생 중심의 통찰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더 격화된 여야의 대립 구도가 국정감사 전면에 펼쳐지고 있다. 여당은 과거 정부의 정책 실패와 야당의 발목잡기를 성토하고, 야당은 현 정부의 인사 난맥과 민생 무능을 질타하며 맞불을 놓는다. 그러나 이 모든 공방의 한가운데에서 정작 국민의 삶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을 대신해 정부를 감시한다’라는 헌법 정신은 사라지고, ‘정쟁을 위한 무대’만 남았다.
국정감사는 본래 행정부의 정책 수행을 점검하고 국민 세금의 쓰임을 살피며, 부처의 비리나 부당한 행정을 바로잡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관심은 국민이 아니라 카메라다. 한정된 질의 시간 속에서 국민이 궁금해할 현안 대신, ‘유튜브용 질의’, ‘SNS용 발언’이 난무한다. 국민의 삶을 위한 질의보다 언론에 한 줄이라도 더 오르려는 ‘퍼포먼스 정치’가 국감장을 장악하고 있다. 질의보다 고함이 많고, 자료보다 말싸움이 많다. 국민은 묻는다. “이게 나라의 감사냐, 쇼냐?”
시민들은 이미 냉소적으로 반응한다. “국감은 매년 하는 정치 드라마다.” “시즌 20년째인데 내용은 늘 비슷하다.”라는 자조 섞인 반응이 온라인을 채운다. 국정감사가 ‘권력 감시의 장’이 아니라 ‘정치 흥행의 무대’로 전락한 현실, 그것이 국민의 가장 깊은 피로감을 자아낸다. 정치의 무게 중심이 민생에서 멀어질수록, 국감의 권위는 무너지고 국민의 신뢰는 식어간다.
민생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때다
국정감사의 본질은 정쟁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정부의 행정을 점검하고 바로잡는 일’이다. 이 단순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국감은 아무리 화려한 의사진행으로 포장해도 결국 ‘정치의 무능’을 드러내는 무대에 불과하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정부를 향한 질책보다 현실을 바꾸는 해결책이다. 그러나 여야 모두 정책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상대방의 과오를 들춰내는 데 몰두하고 있다.
가령, 이번 국감에서도 청년실업 문제, 지방 소멸 위기, 농가 소득 감소,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 부동산 시장 불안, 국가채무 급증 등 국민 삶의 핵심 현안들이 산적해 있지만, 정작 이 문제들을 다루는 질의는 찾기 어렵다. 여야 모두 ‘책임 공방’에만 몰두한다. 여당은 “이전 정부의 부실한 정책 탓”이라 하고, 야당은 “현 정부의 무능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잘못했느냐’가 아니라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다. 국회가 이 단순한 국민의 질문에 답하지 못할 때, 국정감사는 존재 이유를 잃는다.
정치가 정쟁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는 사이, 행정은 안일해지고 권력은 비대해진다. 감사의 본래 목적은 행정부의 견제와 투명성 확보에 있다. 국감이 무력화되면 공직사회의 책임 의식도 함께 무너진다. 공무원들은 “어차피 국회는 정쟁만 한다.”라며 국감 준비를 형식적으로 대하고, 국회의원들은 “어차피 국민은 정치에 실망했다.”라며 책임감을 놓는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될수록 대한민국의 정치 시스템은 더 깊은 불신의 늪에 빠진다.
시중의 여론은 명확하다. “국감은 이제 쇼가 아니라 성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국민은 진정성 있는 질의를 원한다. 단순한 정치공세가 아니라 ‘대안’을 요구한다. “무엇이 잘못됐는가”를 넘어서 “어떻게 고칠 것인가”를 말하는 국회의원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질의의 상당수는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하고, 질의의 결론은 대체로 “정부를 규탄한다”거나 “야당이 발목을 잡는다”로 귀결된다.
올해 국감 역시 ‘여야의 정치 대결 구도’ 속에서 ‘민생감사’라는 본뜻이 실종됐다. 노동 현장에서는 산업재해가 끊이지 않고, 학교에서는 교육 불평등이 심화되고, 병원에서는 의료 공백이 커지고 있다. 이런 국민의 고통이 산처럼 쌓여 있는데도, 국감장은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국민이 느끼는 괴리감은 그만큼 깊다.
정치가 국민에게 배워야 할 시간
정치의 본령은 ‘국민을 위하는 책임’이다. 국감은 그 책임을 시험하는 자리다. 여야가 서로의 책임을 묻는 자리이기 전에, 국민이 국회를 평가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국감은 ‘국민을 위한 정치’보다 ‘정당을 위한 정치’로 흐르고 있다. ‘내가 이겼다’라는 정치적 점수 계산만 남고, 국민의 삶은 잊힌다.
국민은 더 이상 ‘감정의 정치’를 원하지 않는다. 국민은 실질적 대안을 원한다. 민생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점검, 비효율적인 예산의 절감, 국민 세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에 대한 투명한 공개, 공공기관의 책임경영, 청년과 서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와 일자리 대책 — 이런 현실적 해답을 요구한다. 그런데도 정치가 여전히 ‘상대 진영 흠집 내기’에 머무른다면, 국민의 심판은 더욱 냉혹해질 것이다.
정쟁의 국감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민에게 식상함을 넘어 분노를 불러왔다. 올해 국감이 끝나면 여야 모두 “성과가 있었다”라고 주장하겠지만, 국민은 알고 있다. 그들의 ‘성과’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을 위한 홍보전’이었다는 것을. 국정감사는 국민 세금으로 진행되는 국가의 공식 절차다. 그러므로 그 무대에서 벌어지는 모든 말과 행동은 국민 앞에서의 책임이어야 한다. 정치가 이를 망각한다면, 국정감사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국정감사가 진정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의 눈’으로 정부를 감시해야 한다. 정쟁이 아니라 협력과 대안의 경쟁이 필요한 시점이다. 불필요한 정파적 공세를 멈추고, 실질적 국정 개혁과 민생 점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의 연속에 놓여 있다. 경제는 둔화되고, 물가는 치솟고, 민생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청년들은 미래를, 노년층은 삶의 희망을 잃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정치가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서로의 탓만 하며 싸운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국정감사는 그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다.
이제 국감은 ‘국민의 국감’으로 돌아와야 한다. 국민이 묻는다. “누가 잘못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책임지느냐”를. 그리고 “누가 바꾸느냐”를. 여야 모두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국감에서만큼은 진심을 보여야 한다. 국민의 분노와 피로를 감동으로 바꾸는 국회, 민생을 회복시키는 국감,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이 절실히 바라는 정치의 모습이다.
정치는 언제나 국민의 거울이다. 그 거울이 흐려지면, 국가는 길을 잃는다. 올해 국정감사, 여야 모두 다시 거울 앞에 서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눈을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감사(監査)’의 시작이다.
정쟁에 빠진 국감은 국민을 잃고, 국민을 잃은 정치는 미래를 잃는다. 지금 국회가 해야 할 일은 싸움이 아니라 성찰이다. 국정감사는 ‘정치의 거울’이다. 그 거울 속에 국민이 웃을 날이 오기를 바란다.
20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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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안정인가, 서민의 좌절인가
규제의 칼날, 시장의 숨통을 죄다
정부가 10월 15일 내놓은 ‘10·15 부동산 대책’이 시장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서울과 수도권의 과열된 주택시장을 겨냥해 투기성 자금의 유입을 차단하고, 대출 규제를 강화해 이른바 ‘갭투자 종식’을 선언한 것이다. 겉으로는 주택시장 안정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하지만, 정작 시장의 반응은 불안과 혼란이 교차하고 있다. 정책의 방향이 투기 억제에만 머물고, 실수요자와 서민의 내 집 마련 기회까지 함께 옥죄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쏟아진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강화하고, 다주택자와 고가주택 보유자에 대한 세금 부담을 높이는 조치는 그 자체로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규제가 서민과 실수요자에게까지 동일하게 적용되면서, 내 집 마련의 문턱을 더욱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결혼과 출산을 앞둔 젊은 세대는 물론, 30~40대 실수요층마저도 자금조달의 길이 막히자, 시장을 떠밀리듯 외면하고 있다. 결국 ‘집값은 잡았지만, 사람들의 희망도 함께 꺼버린 것 아니냐?’라는 냉소가 들려오는 이유다.
수도권은 냉각, 지방은 불안
이번 대책의 목표는 수도권 부동산 과열 억제다. 하지만 정책의 여파는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서울과 경기, 인천을 중심으로 매수 심리가 얼어붙자, 지방의 중소도시들에서도 거래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이 식으면 지방은 얼어붙는다’는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지방의 부동산시장은 이미 인구 감소와 산업공동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대출 규제 강화까지 겹치자, 중소 건설사들은 신규 분양을 미루거나 사업을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재개발과 재건축을 기다리던 주민들도 불안하다. 대출이 막히면 조합원 분담금 마련이 어려워지고, 사업성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정부의 규제가 수도권 투기를 잡는 대신, 지방의 재건축시장까지 옥죄는 부작용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특히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국가 비전과도 엇박자가 난다. 수도권 쏠림을 완화하겠다는 국토 정책의 큰 방향 속에서, 지방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부동산 규제는 결과적으로 수도권 집중을 더 심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지방의 주택공급과 경기 활성화를 위한 별도의 보완 대책이 절실하다.
‘갭투자 종식’의 명분과 현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갭투자 종식”을 강하게 내세웠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투기형 거래가 시장을 왜곡시켰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갭투자는 주택 가격 급등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그러나 문제는 시장의 전체 수요를 ‘투기’로만 보는 시각이다. 전세를 활용한 매입은 단순한 투자뿐 아니라, 장기적인 실거주 전환을 염두에 둔 수요도 존재한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채 일률적으로 대출을 막으면, 결국 시장에서 자금이 빠져나가고 주택공급은 위축된다. 건설경기가 냉각되면 일자리가 줄고, 지역경제도 타격을 입는다. 정부가 갭투자 억제의 명분을 내세우며 금융권을 옥죄는 사이, 시장은 이미 ‘거래절벽’으로 얼어붙고 있다. ‘투기 억제’가 곧 ‘경제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서민의 꿈, 정책의 벽에 가로막히다
이번 대책의 또 다른 그림자는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이 점점 멀어진다는 점이다. 실수요자 중심의 정책을 표방하면서도 정작 실수요자들은 대출 문턱에 가로막혀 집을 살 수 없게 되었다. 젊은 세대들은 이제 “정부가 집 사지 말라 한다”라는 체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출이 막히면 분양시장도 얼어붙는다. 미분양 물량이 늘고, 건설사의 자금경색이 심화되면 공공주택 공급까지 차질을 빚게 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분양 확대’나 ‘청년 맞춤형 주택 지원’도 결국 민간 시장과 연결되어 돌아가는 시스템인데, 민간이 멈추면 전체의 톱니바퀴가 멈추는 셈이다.
결국 부동산시장의 안정은 ‘억제’만으로는 달성되지 않는다. 안정은 균형 위에서 이루어진다. 규제와 지원, 공급과 수요, 금융과 주거복지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 지금은 ‘억제의 균형’이 아니라 ‘억눌림의 불균형’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정부의 방향은 옳지만, 속도와 방식은 문제다
정책의 방향성 자체는 나쁘지 않다. 투기 수요를 억제하고, 가계부채를 안정시키며, 건전한 시장 질서를 세우겠다는 목표는 분명히 옳다. 그러나 그 속도와 방식이 문제다. 시장은 생명체처럼 민감하다. 정책의 강도와 시기를 조금만 잘못 조절해도 급속히 위축되거나 과열될 수 있다.
특히 대출 규제는 단기간 효과는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부작용이 크다. 대출은 단순한 ‘빚’이 아니라, 경제의 순환을 움직이는 ‘혈액’이다. 이 혈류를 막아버리면 서민의 주거 기회는 물론, 중소건설업체와 지역경제까지 함께 마른다.
정부는 시장을 ‘교정’하는 역할을 해야지, ‘지배’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시장의 흐름을 읽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동산 정책은 단속과 규제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그 안에는 사람의 삶, 꿈, 그리고 경제의 맥박이 함께 뛰고 있기 때문이다.
내 집 마련의 희망을 되살려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규제의 완화’가 아니라 ‘균형의 회복’이다. 정부가 서민과 청년층의 내 집 마련 사다리를 복원하기 위한 실질적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 소득 수준별로 차등화된 대출한도,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대한 완화된 LTV·DSR 기준, 지방 중소도시의 재건축·재개발 지원 등 현실적 대책이 절실하다.
또한 단기적 시장 안정보다 중장기적 주거정책 비전을 세워야 한다. 부동산은 단순한 자산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다. 주거정책은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사회복지의 한 축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책은 국민의 신뢰 위에서만 작동한다. 규제와 세금, 통계와 수치 뒤에 가려진 ‘사람의 이야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집값의 하락이 아니라 ‘안정된 삶의 기반’이다. 부동산 정책이 그 본래의 목적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시장의 온기를 되살리는 용기
정부의 10·15 부동산대책은 분명 시장의 불안 요인을 억제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제는 ‘억제의 시대’를 넘어 ‘조율의 시대’로 가야 한다. 부동산시장에 필요한 것은 냉각이 아니라 온도조절이다.
시장은 언제나 인간의 심리 위에 존재한다. 정책은 그 심리를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민이 “이제는 살 만하다” 느끼는 순간이 진정한 안정이다. 냉정한 규제가 아니라 따뜻한 신뢰가 그 시작이다.
10·15 대책이 진정한 안정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정부가 ‘정책의 칼날’보다 ‘정책의 손길’을 기억해야 한다. 시장을 눌러서는 안 된다. 국민의 삶을 받쳐야 한다. 부동산 정책은 단순히 집값을 잡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희망을 세우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10·15 대책은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그 칼날이 서민의 가슴을 베어서는 안 된다. 집은 투기의 수단이 아니라 삶의 보금자리이다. 정부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 집 마련의 희망을 되살리는 길 위에서 다시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안정’의 시작이다.
202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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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의 본질을 다시 묻다 “정치가 국민에게로 돌아올 때, 자치는 비로소 완성된다”
물밑의 소용돌이, 벌써 시작된 전초전
2025년이 저물기 전, 내년 지방선거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고 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2026년 6월 3일(수)에 치러질 예정이다. 이 선거에서는 시·도지사, 교육감, 구·시·군의 장 및 지방의원 등을 동시에 선출하게 된다. 벌써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의 광역단체장 후보군이 속속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정치의 계절은 이미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 “시민을 위하겠다”라는 구호 속엔 정치적 셈법이 깔리고, “변화”를 외치는 목소리 뒤엔 권력의 욕망이 도사린다. 언론을 통해 쏟아지는 각종 공방과 폭로, 견제의 언어들은 마치 전쟁터의 포성처럼 들린다. 정치의 본무대가 아닌 지방의 현장이 권력투쟁의 전초기지로 변해버린 것이다. 정치는 본래 민심을 담는 그릇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현장은 민심을 담기보다는 쏟아내는 데 급급하다. 서로를 향한 ‘정치공격’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고, 시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 위한 언어의 폭풍이 연일 몰아친다. 한때 주민의 삶을 책임지는 ‘생활정치’라 불리던 지방정치는, 이제 중앙정치 못지않은 대립과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그 안에서 주민들은 점점 멀어진다. 그들의 한숨이 깊어질수록, 정치의 언어는 점점 공허해지고 있다.
지방자치의 본질은 ‘권력’이 아닌 ‘생활’이다 지방자치의 출발은 ‘생활정치’다.
주민과 가장 가까운 행정이, 그들의 목소리를 가장 빨리 듣고, 작은 불편 하나도 함께 해결하자는 데에 그 뜻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지방정치는 어느새 중앙정치의 축소판이 되어버렸고, ‘주민자치’의 이름 아래 권력의 향배만을 쫒는 정치놀음으로 변질되었다. 시장과 군수, 도지사의 이름이 ‘민생’보다 먼저 회자되고, 당의 색깔이 행정의 원칙을 대신하는 일이 다반사다. 지방의회 또한 예외가 아니다. 감시와 견제의 기능은 정당의 이해관계 속에 퇴색하고, 정책보다는 정략, 논의보다는 공방이 앞선다. 지역의 문제를 논하는 회의 석상은 어느새 ‘당파의 전장’이 되어버렸다. 이런 현실에서 ‘지방분권’은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주민의 삶을 바꾸는 행정이 아니라, 정당의 승패를 가르는 전장으로 변질된 자치의 현실— 그 속에서 우리가 잊은 것은 바로 ‘시민의 일상’이다.
정치의 언어는 약속이어야 한다
출사표는 단순한 정치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과의 약속이자, 공동체 앞에 내미는 신념의 증표다. 그런데도 많은 후보들의 출사표는 ‘공약’보다 ‘공세’로 채워져 있다. 상대의 약점을 들추고, 과거의 흠을 부각하며, 비난의 창끝으로 정치를 시작한다. 이것이 과연 시민을 위한 출발일까. 정치가 언어로 사람을 설득하는 행위라면, 지금의 언어는 신뢰를 세우기보다 불신을 쌓아 올리는 모래성에 가깝다. 정치인은 자신의 언어로 심판받는다. 말은 곧 품격이며, 품격 없는 정치에는 국민이 없다. 시민은 이미 수많은 약속의 잔해 위에 서 있다. 지켜지지 않은 공약, 책임 없는 발언, 변명으로 덮인 행정의 결과들— 그 모든 것들이 시민의 냉소를 불러왔다. 정치는 진실을 잃을 때 생명을 잃는다. 출사표의 언어는 다시 시민에게로 향해야 한다. 그 언어가 진심이라면, 그것이 바로 정치의 회복이다.
대립과 갈등의 정치, 그 끝은 무엇인가
지금의 지방정치는 ‘갈등의 정치’라는 이름으로 기록될 위험에 처해 있다. 서로를 향한 공격은 마치 일상처럼 반복되고, 정책논쟁보다는 감정의 충돌이 앞선다. 이는 단순한 정치행태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의 구조가 국민의 삶에서 멀어졌음을 의미한다. 이념과 당파가 행정을 지배하면, 행정은 곧 무너지고, 정책은 흔들리며, 주민은 방치된다. 이것이 바로 ‘정치가 실패한 지방’의 전형이다. 그 누구도 이런 현실에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정치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언론이 경쟁적으로 자극적 제목을 붙이고, 시민 역시 분열의 프레임에 익숙해진 사회의 분위기 또한 원인이다. 하지만 결국 책임의 무게는 정치가 져야 한다. 정치가 통합을 이끌지 못하면 공동체는 분열되고, 정치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국민은 불안을 느낀다. 이것이 오늘의 지방정치가 마주한 냉혹한 현실이다.
주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
지방정치는 다시 ‘주민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지방선거의 본질은 권력 교체가 아니라, 주민이 바라는 삶의 변화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지금의 선거판은 주민이 아닌 후보가 주인이다. 주민은 ‘표’로만 존재하고, 그들의 목소리는 선거 이후에야 잊힌다. 이 악순환을 끊지 못한다면, 지방자치는 결코 성숙할 수 없다. 주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 그것은 곧 책임정치다. 선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정치인은 당선 이후에도 주민의 곁에서 정책을 실현해야 하며, 그 결과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자치의 정신이며, 민주주의의 기초다.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의 하위기관이 아닌, 주민의 삶을 바꾸는 ‘생활의 주체’로 서야 한다. 이것이 지방자치의 회복이며, 정치의 본령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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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바람은 언제나 ‘현장’에서 시작된다
지방은 늘 변화를 먼저 겪는다. 경제의 어려움, 복지의 사각지대, 도시와 농촌의 격차—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자 해결의 최전선이 바로 지방이다. 그렇기에 지방정치의 실패는 곧 국가의 실패로 이어진다. 지방의 리더들이 진정한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국가의 중심은 흔들리고, 국민의 신뢰는 사라진다. 이제 정치인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진정성은 구호가 아니라 실천에서 드러난다. 작은 행정개혁, 지역경제의 활성화, 복지의 사각지대 해소, 이 모든 것이 바로 주민이 체감하는 정치의 실체다. 그 길은 화려하지 않지만, 묵묵히 걸어야 할 정치의 본길이다. 정치인이 그 길 위에 서 있을 때,
비로소 주민은 정치의 희망을 다시 믿을 것이다.
미래를 위한 마지막 물음, “정치란 무엇인가”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30년이 넘었다. 우리는 많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동시에 많은 후퇴도 겪었다. 이제 묻자. 정치란 무엇인가. 권력의 쟁취인가, 아니면 공동체의 약속인가. 정치가 ‘국민의 일상’을 지키는 일이라면, 오늘의 선거판은 그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가 민심을 담고, 행정이 삶을 바꾸는 구조—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지방자치의 미래다. 정치는 결코 전쟁이 아니다. 정치는 설득이며, 협력이고, 책임이다. 출사표는 권력의 출발점이 아니라, 시민 앞의 다짐이어야 한다. 지방의 지도자들이 다시 그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지방자치는 다시 희망의 이름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정치가 국민의 삶을 위한 것임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지방선거의 계절이 다가올수록 우리는 더 깊이 성찰해야 한다. 누가 당선되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마음으로 출발하는가이다. 정치의 언어가 다시 국민에게 신뢰로 다가설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는 새로운 역사를 쓸 것이다.
202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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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그 넉넉한 달빛에 담긴 우리의 삶
달빛 아래 피어나는 전통의 의미
추석은 풍요와 나눔의 명절이다. 예부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전해온다. 농경사회에서 추석은 한해의 결실을 수확하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자리였다. 햅쌀과 송편, 햇과일은 그 풍요의 상징이었다. 달빛에 비친 송편의 반달 모양은 모난 데 없이 원만하고 다복한 삶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렇듯 추석은 단순한 음식문화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모여 서로의 수고를 위로하고 감사하는 삶의 의례였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추석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명절 음식 장만의 부담, 장시간 귀성길의 피로, 갈등과 불화로 얼룩지는 가족 모임 등이 새롭게 대두되는 문제로 지적된다. 명절을 앞두고 ‘명절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언론에 오르내리는 현실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제 추석의 의미를 단순히 과거의 전통으로만 묶어두어서는 안 된다. 시대에 맞게, 사람들의 삶의 구조에 맞게 추석의 가치를 재해석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변화하는 명절 풍경, 세대 간의 간극을 메우다
최근 추석은 MZ세대를 비롯한 젊은 세대에게는 단순히 ‘고향 방문’이 아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긴 연휴는 여행의 기회가 되고, 가족보다는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많다. 과거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당연시되던 풍습은 점차 다양화되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명절의 개인화’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는 곧 명절의 본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대적 변화 속에서 또 다른 의미로 자리 잡고 있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세대 간 간극을 어떻게 메우느냐에 있다. 부모 세대는 자녀들의 귀성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자녀 세대는 긴 이동 거리와 업무 부담, 생활 패턴 때문에 고향 방문을 쉽지 않게 느낀다. 이러한 갈등을 줄이려면 전통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추석은 결코 의무가 아니라, 마음과 정성이 모일 때 비로소 진정한 명절로 완성될 수 있다.
‘나눔’과 ‘배려’의 가치를 되새기다
추석의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바로 나눔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추석이 되면 이웃과 음식을 나누고, 홀로 사는 노인을 챙겼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정신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정부와 지자체, 각종 기관과 기업들은 소외된 이웃을 위한 다양한 나눔 행사를 마련한다. 명절 때마다 푸드뱅크, 자원봉사 단체가 분주히 움직이는 것은 그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는 외로운 명절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 독거노인, 저소득층, 고향을 찾지 못하는 이민자와 노동자들은 추석의 풍요로움 속에서도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따뜻한 한 끼,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한가위 정신이다. 추석의 본질은 화려한 음식이나 풍습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연대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긴 연휴, 삶의 쉼표이자 새로운 출발선
2025년 추석은 유난히 길다. 일주일, 길게는 열흘 가까운 휴일이 주어지면서 국민들은 오랜만에 충분한 쉼을 누릴 수 있다. 그동안 바쁘게 달려오느라 미처 돌보지 못한 가족과 자신을 돌아보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어떤 이는 여행을 떠나 자연 속에서 마음을 치유하고, 또 어떤 이는 집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며 책을 읽는다. 긴 연휴는 각자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삶의 균형을 찾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긴 연휴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내수 경기 침체 속에서 소비 진작의 긍정적 효과가 있기도 하지만, 장기 휴무로 인한 산업 현장의 공백, 해외여행으로의 과도한 지출, 교통 혼잡과 사고 위험 등도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명절은 개인의 행복을 위한 시간이지만, 국가 경제와 사회 질서와도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달빛 아래서 하나 되는 대한민국
추석 보름달은 언제나 우리에게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하늘 높이 떠오른 보름달은 계층과 지역, 세대를 초월해 모두에게 똑같이 비춘다. 서울의 빌딩 숲에서도, 시골 들녘에서도, 먼 해외에서도 그 달빛은 차별 없이 내리쬔다. 그렇기에 추석은 민족이 하나로 이어지는 특별한 시간이다.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분열로 마음이 흐트러진 오늘의 대한민국에도, 그 달빛은 화합과 공존의 길을 비추고 있다.
2025년의 추석은 변화와 도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중한 성찰의 기회를 준다. 빠른 변화 속에서도 전통을 잊지 않고,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가치를 함께 존중하며, 나눔과 배려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곧 추석의 참뜻이다. 올해 한가위 보름달을 바라보며 우리 모두는 다시 다짐해야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따뜻한 한가위가 되도록 서로를 위하고, 함께 손잡는 대한민국을 만들어가야 한다.
2025-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