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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변화되고 교육이 변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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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인구 동향조사에서 2020년 1~11월 전국 출생아는 253,788명이고, 사망자는 278,187명으로 24,398명의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15,057명), 서울(2,921명), 인천(634명), 세종(2,018명), 울산(1,319)등이 소폭으로 증가하고, 경북, 부산, 전남, 전북, 경남, 강원, 충남, 대구, 충북, 광주 순으로 비수도권 지역의 인구가 감소되었다. 이러한 인구 변화는 과거와 비교하면 매우 가파르게 나타나고 있다.
인구의 자연감소는 세계1위 수준의 출산률 감소가 크게 한 몫을 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크게 줄고 있어 수도권 조차도 그 영향권에서 위협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젊은 인구의 급격한 인구감소는 우리경제의 생산능력을 떨어트리고 활력이 감소되며, 노년인구 비율의 증가로 사회적 비용 또한 크가 증가 됨에 따라 우리 후손세대에 부담이 가중될 것이다.
인구의 자연감소에 따른 활력이 급락하는 시점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COVID-19)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생활에 흘러 들어오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회-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준비하고 계획하고 활동적인 우리의 삶에 서서히 먹구름이 되어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COVID-19는 사회를 변화시키며 비대면 시대를 만들어 나갔고, 비대면 시대의 우리들은 지금까지의 디지털 활용능력을 맘껏 활용하며 디지털 비대면 교육환경을 만들며 대면 시대보다 더 나은 교육환경을 만들어 나가고자 노력하고 우리들은 서서히 적응해가며 교육이 변화되고 있다.
얼굴을 마주보면서 재잘거리고 웃으면서 학교생활을 해야 할 학생들이 매일 집에서 혼자 온라인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방식의 변화는 비단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변화되는 사회에 따라서 교육이 변화되는 것이며 결국 미래의 흐름이자 대세로 비대면 교육환경으로 자리 잡아 나갈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 반복된 행동의 안정화 또는 자동화된 수행을 습관이라 한다. 좁은 의미로는 반복에 의한 근육 운동이나 건(腱) 운동이 정형화되는 것을 말하지만,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식사나 수면 습관, 풍속·문화 등 넓은 관습에 대해서도 습관이라고 한다. COVID-19에 의한 사회적 습관의 변화로 대면교육에서 비대면 교육의 습관이 변화되고 있다. 우리는 이 습관을 변화시켜야 될까? 아니면 습관의 변화를 거부하고 대면 교육의 습관을 지켜나가도록 인내를 가져야 될까?
2021-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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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확보 늑장 책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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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을 보내는 세밑에도 대한민국 사회는 진통 그 자체다. 특히 코로나19 백신과 관련 국민들의 불신과 분노는 하늘을 찌를 정도이다. 올 한해 코로나19 때문에 겪은 지긋지긋한 일상이 아직까지도 진행형이다. 진정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만이나 태국 심지어 베트남까지도 안정세를 보이고 국민들이 활기를 되찾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참으로 한심한 나라꼴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그동안 무엇을 했기에 이 지경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진정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인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1차 유행은 신천지 때문, 2차 유행은 이태원 때문, 3차 유행은 n차 감염 때문으로 교회나 병원, 요양시설 등의 탓으로 지목한다. 그동안 확산원인과 책임을 돌릴 때면 집회나 시위, 교회 탓을 해 왔다. 대규모 경찰병력까지 동원하며 차단 모양새를 보여 왔던 것이 바로 정부이다. 여기에다 틈만 나면 진단키드 자랑과 K방역 자화자찬으로 마치 세계에서 최고인양 허세를 부렸다. 한마디로 신선노름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다. 이러는 사이에 다른 나라들은 국민들을 위해 해외유입을 차단하고 사회적 피해를 신속히 줄이기 위한 각종 전략을 펼치며 대단한 성과를 거뒀다. 반면에 대한민국은 코로나19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도 개정하면서 코로나19가 가져온 펜데믹에 나름대로 대처해 왔다. 겨울철 방역관리체계 보완과 감염병 장기화에 따른 환자, 의료인 및 전문 인력 등에 대한 보호 장치도 강화했다. 질병관리본본부도 질병관리청으로 격상시켰다. 펜데믹 상황시 국가가 백신확보를 의무화하는 법률 개정안도 뒤늦게 발의가 됐다. 국가의 늑장대처에 대한 후속 행동이다. 그것도 개정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나서 13일 만에 또 고치자고 하는 것이다. 할 때 같이 하면 ‘어디가 덧 나냐?’는 국민들의 비아냥 거림이 나오는 이유이다. 사실 내년도 본예산에 백신확보비도 책정하지 않다가 뒤늦게 1조3천억 원이 반영되는 상황도 연출했다. 도대체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국정을 이끌어가는 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를 보면 지금 우리나라가 백신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늑장 대처하는 이유를 엿볼 수 있다. 허세 때문이다. 우리보다 못한 후진국들도 확보하고 있는 백신들을 제때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궁색한 변명이나 거짓말이나 늘어놓고 있는 천연덕스런 모습에서 국민들은 그야말로 천불이 나고 있다는 말을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코로나 19 확산세가 이어지던 지난 3월 22일부터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모임과 외출자체, 재택근무, 영업시간조정, 심지어 다중이용시설도 운영을 중단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11월7일부터는 1.5단계, 2.5단계가 추가되어 3단계에서 5단계로 변경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호전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12월 들어 2단계, 2.5단계까지 시행되는 등 단계가 강화되는 심각한 상황이다. 1,000명 이상의 확진자가 연일 발생하고 집단감염이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처럼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확진자 발생추이를 보면 3단계 상황인 것이다. 이미 지난 24일부터는 전국에서 5인 이상의 집합금지 등 초강력 특별방역대책이 시행되고 있다. 2021년 1월 3일까지 시행된다. 타종식, 해돋이 등 연말연시의 모든 행사들도 줄줄이 취소되었다. 각종 모임들도 취소사태를 빚고 있다. 곳곳이 난리다. 사회 경제적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역대 이런 사태를 빚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어쩌다가 이런 사태에 이르렀는지 답답할 지경이다. 이것이 K방역의 현주소가 되어버렸다. 공든 탑이 무너진 느낌이다.
이런 가운데 복지부는 애꿎은 정신병원들만 대상으로 환자 간 병상 이격거리를 늘리는 시설기준을 강화하는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했다. 문제는 1만8,0000여명의 환자가 대책 없이 강제퇴원하고 병원들마저 생존권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모기 잡는다고 함마 휘두르는 격이다. 한마디로 평지풍파이고 코로나19 책임전가 행정의 전횡이 아닐 수 없다. 구해야할 백신확보에는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엉뚱한 정신병원만 괴롭히고 있다. 툭하면 교회 탓이나 집단시설 등의 탓을 하면서 코로나가 전파되면 책임전가행태에서 한발 더 나갔다. 이러는 사이에 끊임없이 연일 20∼30명이 넘는 해외유입자들이 들어오고 있다. 한쪽에서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 모기 잡는다고 난리가 아니다. 무슨 사오정놀이를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해외유입자들을 보면 27일까지 무려 5,273명에 달한다. 전체 확진자 5만5,902명의 9.4%나 된다. 태국의 6,020명, 베트남 1,440명, 대만 783명 전체 확진자와 비교하면 그 심각성을 단적으로 읽을 수 있다. 강화된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1,100명 이상이 나오고 있다. 이러면서 국민들에게 거리두기만을 강조하고 K방역타령만
하면 과연 코로나19 전파를 막을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라.
유럽도 백신접종에 들어갔다. 무려 30개국에 달한다. 일본은 물론 동남아 국가, 남미국가들조차 우리나라보다 백신을 먼저 확보했다. 부러울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도 백신확보를 놓고 책임을 전가하며 국민을 우롱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K방역을 자화자찬하고 국산백신이니 치료제니 하면서 잔뜩 허풍만 떨다가 ‘닭 쫒던 개 지붕 쳐다 보 듯’ 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이 겨울 국민들은 남의 나라 백신접종 소식만 듣고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옴짝달싹도 못한 채 연말연시를 보내고 있다. 억장이 무너지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지금 그런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사회통제를 하는 나라가 지속되는 것이 얼마 큰 고통이고 피해인지는 1년 내내 경험했다. 지금 일선 현장의 의료진과 전문 인력들의 고생은 상상을 초월한다. 장기화가 불가피할 경우 그 후유증이 염려될 지경이다. 이 마당에서 정부부처의 관계자 헛소리로 국민들의 반발을 불러온 중국산백신이나 러시아산이나 만지작거린다면 그 저항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국회나 정부나 복지부나 질병관리청마저 백신불신으로 국민저항에 부딪힌다면 이는 불행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단계만 강화한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백신확보는 절박한 현안이다. 국민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책무를 다하지 못한 관련 책임자들의 철저한 문책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같은 코로나19 상황을 자초해 국민고통과 불행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제 백신확보와 방역을 추진하면서 남의 탓이나 책임을 전가하는 식의 비열한 행태는 멈추어야 한다. 거짓말이나 임기웅변, 가래 끓는 소리로 국민을 기만하거나 우롱하는 작태도 그렇다. 법만 강화해 국민을 옥죄는 식의 처방은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 지금 같은 코로나 사태에 백신만큼 절박한 것은 없다. 전문가들의 간곡한 조언을 무시한 채 받아들인 해외유입자들을 무려 5천명이나 넘겨 놓았다. 이런데도 코로나19 펜데믹을 자꾸 국민책임으로 전가하는 논리를 펴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모든 책임의 1차 원인은 방역당국과 정부, 국회, 나아가 대통령에 있다. 그 책임을 마땅히 져야 한다. 보건복지부장관만 바꿀 일이 아니다. 직무유기한 책임자들 모두가 해당된다. 이제 이들 때문에 더욱 지친 국민들을 그만 괴롭혀야 한다. 국민들은 지금 이 순간 사회적 거리두기나 영업장폐쇄, 외출금지, 재택근무가 아니라 정상적인 일상을 원하고 있다. 정부는 우리 국민은 피해자이지 결코 가해자가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들은 투명한 백신확보대책과 함께 조속한 백신접종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늦어질수록 고통과 피해가 더욱 더 가중되기 때문이다.
2020-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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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해 2020년의 세밑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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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경자년 쥐의 해가 저물고 있다. 아마도 코로나19로 고통을 겪은 2020년은 인류 역사에 최악의 해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12월 6일 현재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확진자는 6,662만4,207명이고 사망자는 153만1,159이다. 대한민국도 3만6,915명에 사망자는 540명에 달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발병한 나라는 미국이 1,486만2,058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인도, 브라질, 러시아,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독일 순이다. 한마디로 미국과 유렵, 남미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중국 최초로 코로나 19가 발생한 2019년 11월 17일 이후 1년 여 만의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듣도 보도 못한 우한폐렴이란 용어로 연초(年初)인 지난 1월 20일 전날 우한에서 입국한 35세 중국여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어 대구 경북지역에 집단감염 사태로 확산되면서 3월 개학을 앞둔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가 개학을 연기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빚었다. 전국 확산의 매개가 되었던 신천지는 집중포화를 당했다. 올해 펜데믹이 되기까지 1년도 걸리지 않았다. 코로나 19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것을 뒤바꾸어 놓았다. 어린아이 얼굴에까지 마스크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코로나19의 전파가 마치 애꿎은 국민들의 잘못인양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과태료까지 무는 세상이다.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코로나19확산을 막는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3차 대유행의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총선에 이어 지난 3일 수능시험을 치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2020년 세밑은 모든 것이 만신창이가 된 듯 자괴감으로 추운 날씨만큼이나 삭막하기만 하다.
올해는 보신각 타종행사도 사라진다고 한다. 송구영신의 마음조차 갖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답답하고 무겁게만 느껴지는 세밑의 모습이다. 더욱이 모든 이의 가슴을 짓누르는 것은 코로나19보다도 더한 갈등과 대립의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사나운 개 콧잔등이 아물 날이 없다’는 말이 어쩌면 그대로 실감이 나는지 법무부와 검찰의 치졸한 싸움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한 해 동안 멈출 날이 없을 정도이다. 국민들의 눈에는 그야말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법을 다루는 법무부란 기관이 법을 어기면서까지 검찰총장을 내치려는 수준 낮은 시나리오를 연출하며 국민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는 여론을 귀담아 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검란’이라고 부를 정도로 검사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이러는 순간에 월성원자력발전소 감사관련 산자부공무원의 구속과 이른바 ‘옵티머스사건’ 관련 검찰 조사자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달았다. 한쪽에서는 코로나 창궐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어 상인들이 비통의 눈물의 흘리고 있는데도 다른 한쪽에서는 눈만 뜨면 싸움질과 갈등, 대립으로 국민감정을 외면한 채 표독하고 극단적인 모습만 보이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싸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국민을 위한 것이고 개혁이고 정의라면 참으로 착각 중에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이미 국민들은 모든 것을 눈치 채고 있다. 아마도 이 역시 2020년의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은 분명하다.
2020년의 고통은 비단 코로나19 사태만의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주요 언론들이 벌이는 이상한 언론행태로 인해 국민들의 언론관이 달려졌다는 사실이다. 주요 메이저 언론을 통하여 정보를 습득하기 보다는 이제는 1인 미디어 시대 주축이 되고 있는 유튜브 등을 통하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 같은 불신은 언론들의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지 않고 오히려 가짜뉴스를 남발하고 있다는 의식이 팽배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위적이고 의도적인 뉴스는 이제는 먹히지 않는 시대임을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 인터넷 시대 정보를 얻는 방법이 과거와는 달라도 너무나 달라진 시대가 바로 오늘날이다. 국민들 손에 휴대폰은 생필품이다. 심지어 노숙자도 휴대폰을 들고 다닐 정도이다. 새로운 정보는 카톡 등 SNS를 통해 순식간에 전달된다. 그러니 아무리 새로운 뉴스처럼 전달해도 댓글을 쳐다보면 거꾸로 기자들에게 역정보로 조언을 하거나 심지어 조롱과 비난도 서슴지 않고 있다. 쌍방향커뮤니케이션 시대의 모습이다. 지금 한국뿐만이 아니라 미국도 주요 매체들이 신뢰도를 잃고 있다. 특히 CNN은 허위정보전달을 꾸미는 추악한 회의가 고스란히 녹음이 되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한 마리로 호떡집에 불이 난 격이 되고 있다. 정론을 가장하는 허위와 작당의 수준이 목불인견이 아닐 수 없다. 거의 언론사기집단 수준으로 이미 정도언론의 기능을 상실해 향후 존립자체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벌써 적자경영이 심각해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까지 전해지고 있다. 불행한 일이다.
올해 세상을 시끄럽게 한 사건 중의 백미는 성추문스토리이다. 대한민국의 최대도시인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성추문 관련 소식은 국민들을 경악하게 했다. 결국 부산시장은 사퇴를 했으나 서울시장을 불행하게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지난 7월의 일이다. 한 때 미투사건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면서 많은 당사자들이 세간의 입질에 오르내렸다. 이 때문에 충남지사는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 지도층들의 이런 추한 모습에 국민들은 아연실색한 한해였다. 대통령까지 넘보는 지도층들의 일탈(逸脫)이었기에 더욱 충격파가 컸다. 겉과 속이 달라도 너무나 다른 모습에 국민들의 한숨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어쩌다가 이런 나라가 되었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역시도 역사에 크게 기록될 것이다. 아직도 피해자들이 고통을 받고 살아가고 있다는데 그 안타까움이 매우 크다. 세월이 지나 국민들의 뇌리에는 사라지는 듯 하지만 결코 잊히지 않을 역사 속의 사건으로 회자될 것이 분명하다. 사회지도층의 윤리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 이 사건들은 우리 사회의 허상도 함께 짚어보는 계기를 던져주었다. 한마디로 2020년의 비극이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도 경험했다. 지난 3월 임대차3법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면서 부동산 시장이 이른바 교란되었다. 수도권의 전세값이 폭등하고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지난 6월에 부동산대책이라는 것을 내놓고 수도권과 대전, 청주 등지에 조정대상지역과 투기과열지구를 확대 지정했다. 주택담보대출비율이 40∼50%로 떨어지면서 무주택 서민들이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오히려 박탈당하는 격이 되고 있다. 아파트 거래도 없는데도 배 이상이나 급등하는 현상에 IMF경제위기 당시에도 없었던 기현상을 보게 된다며 혀를 차고 있다. 전국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종부세와 소득세, 지방세, 법인세 등 부동산증세 4법도 시행됐다. 온통 난리가 아니다. 전국에서 아파트값이 폭등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정부가 내세우는 부동산 정책은 이미 실패작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하려던 청약저축 서민가입자들은 역차별을 받고 있다. 가득이나 코로나19로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데 대출마저 대폭 규제해버렸다. 청약을 통해 아파트에 당첨된다하더라도 50∼60%의 자기자본을 만들어야 하니 자칫 그림의 떡이 될 수 밖에 없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새워서라도 만들겠다, 호텔리모델링 임대주택 만족”등의 국토부장관의 말이 국민들의 빈축을 샀다. 결국 3년 5개월 만에 교체됐다. 장수장관의 의미는 퇴색한 채 부동산정책 실패 장관의 오명만 남았다. 국민고통만 남긴 채 교체됐다. 참으로 졸작품이다. 분명 2020년 고통의 주역으로 역사에 역시 기록될 것이다.
19대 국회에서 졸속으로 처리되어 지난 2017년 5월 30일 시행된 정신건강복지법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11월 26일부터 2021년 1월 5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정신의료기관의 코로나19 집단감염 발생에 따라 감염 예방관리를 철저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됐다고는 하지만 입원환자 절반이 퇴원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대책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입원실 규격·병상거리 조정안에 존립이 위태로운 정신병원들이 비상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 감염책임을 병원에 돌리고 있는 것이 마치 코로나19가 마스크를 쓰지 않아서 그런다며 국민책임으로 돌리는 것과 흡사하다. 입원실의 면적 기준을 1인실은 6.3㎡에서 10㎡로, 다인실은 환자 1인당 4.3㎡에서 6.3㎡로 강화하고 있다. 입원실 당 병상 수도 최대 10병상에서 6병상 이하로 줄이며 병상 간 떨어진 거리도 1.5m 이상 두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다 입원실에 화장실, 손 씻기 및 환기 시설을 설치하도록 하고 300병상 이상 정신병원은 감염병 예방을 위한 격리병실을 두도록 하고 있다. 내용은 그럴 듯하지만 과거 19대 국회에서 졸속 처리된 비현실적인 법을 만들 때와 유사하다. 탈원화를 유도하는 듯한 냄새가 풍긴다. 절반가량의 환자들을 내보내고 정신병원들이 과연 제대로 존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참으로 무책임한 것이고 어불성설이다. 정신질환자들의 절반을 어디로 보내라는 말인가도 묻고 싶다. 가족이나 당사자들이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병별 분류치료서비스개선이다. 탁상공론식 개정안은 현실을 무시한 정책추진으로 부동산정책을 실패한 국토부의 재탕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매우 크다. 가득이나 코로나19 사태로 국민정신건강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책 없이 무리하게 강행하는 개악의 시도는 평지풍파로 멈추어야 한다. 코로나19를 빙자해 일선에서 고생하는 병원들을 괴롭힐 일이 아니라 복지부는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를 확보해 국민들에게 하루라도 앞당겨 보급해야 한다. 벌써 영국은 접종을 시작했고 이어서 미국 등도 접종에 들어간다. 코로나19 사태나 감염 책임을 전가하는 식의 무리수를 두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19대 국회에서 졸속 처리된 정신건강복지법도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새로 시도하는 개정안도 역시 2020년 고통스런 역사와 함께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시간은 있다. 서둘 일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지혜롭게 풀어간다면 그 해법은 나올 것이다.
세밑 끝자락에서 우리는 겸허한 마음으로 한해를 되돌아보게 된다. 특히 연 초부터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것이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치달았다. 한해의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2020년이다.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세밑에 서서 되돌아보는 2020년 쥐의 해는 한마디로 너무나 황당한 최악의 한해가 아닐 수 없다. 난파선의 쥐들의 모습을 보는 듯한 한해였다. 돌이켜 보건데 코로나에다 부동산 폭등에다 경제난에다 싸움질, 지도층의 성추문일탈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의 고통이 너무나 심했던 한해였다. 아직도 자영업자들을 비롯한 서민들의 경제적 고통을 이루 말할 수 없고 청년실업은 유구무언이다. 그야말로 황당한 2020년이었다. 코로나19와 함께 땅에 묻고 싶은 최악의 해이다. 경자년이 다 가는 시점에서 조차 우리 사회는 분열과 갈등, 무책임한 정치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분명 묵은 때는 씻어내야 한다. 잠시나마 제 정신을 차리고 역사에 남을 황당한 코로나 한해를 뜻깊게 잘 마무리해야 한다. 비록 보신각 타종소리가 멈춘다고는 하지만 새로운 각오와 마음가짐으로 2021년 '흰 소의 해' 신축년(辛丑年) 새해를 잘 맞이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바로 이것이 송구영신(送舊迎新)이다. 2020년은 코로나19 사태와 갈등으로 점철된 황당하고 암울한 부정의 한해였다면 2021년은 긍정과 새 희망이 차고 넘치는 한해이길 간절히 소망해본다.
20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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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와 취업은 코로나19와 치열한 전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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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린다. 50명 이하의 확진자가 나오면서 긴장이 풀렸던 것도 잠시, 이제 500명을 넘어 정신적 고통을 동반한 지역 확산까지 대한민국은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기업은 경영의 위기를 맞고, 소상공인은 생계파탄 지경으로 이르는 등 국민의 불안은 지속되고 그 여파는 우리 삶의 구석구석까지 확산 되며, 불안감의 도미노 현상을 방불케 하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백신 개발에 대한 희소식도 잠시 코로나가 변질된다거나, 2021년 가을이나 되어야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기사를 접할 때 마다 불안의 크기는 개개인의 생활패턴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비대면과 사회거리 두기로 인하여 나 홀로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관계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할 수도 있는 사회 환경이 만들어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자녀를 둔 부모, 그 중에서도 대입 혹은 취업을 앞둔 자녀를 둔 부모에게 이보다 더 혹독한 시간들이 있었을까?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계절처럼 단풍을 즐기고 하얀 눈을 기다리는 여유는 찾아볼 수 없는 혹독한 겨울 말이다. 유학길은 막힌지 이미 오래, 그뿐인가? 학교를 가지 못하면서 생겨난 각종 부작용은 교육에서도 빈익빈 부익부를 염려하는 이야기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거론되고 있다. 진로와 취업은 언제나 이슈 중 이슈였지만 코로나가 강타한 2020년은 이슈를 넘어 공포가 되고 있는 것같다.
진로 및 취업 등에 대한 다양성을 잊어버리고 주어진 환경을 돌파할 수 있는 열정과 의지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존재에 인간의 나약함 마저 실험에 들게 하는 것이다. 젊은 청춘이 힘을 내야 한다는 것도 위로가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진로 및 취업 등의 의사 결정은 고3 수험생 뿐만 아니라 대학 졸업을 앞둔 청춘들에게는 자기 이해와 직업세계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갈등요인에 대한 대안을 바탕으로 선택하는 행위이어야 한다.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미래가 좌우되는 부분이므로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올바른 진로 선택을 위한 고민을 해도 힘겨운 상황에 코로나19로 인한 많은 진로 지도 및 취업 박람회등이 취소되며 합리적 선택을 위한 다양한 직·간접 경험도 제자리 걸음이며 개인의 선택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올바른 의사결정을 통해 스스로의 판단과 책임하에 이루어 져야 하는 진로와 취업이 즉흥적으로 결정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는 중이다. 자신의 적성과 흥미, 가치관, 그리고 현실 여건들을 고려하여 선택되어야 할 많은 것들이 코로나19라는 우리 현실세계의 재앙속에서 일상생활의 선택권 마저 무딘 칼이 되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거나 미룰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정에 한계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고3수험생과 재수를 준비하던 대입준비생의 수능과 진로, 대학졸업자의 취업에 대한 불안함 등은 불확실며 불안정한 코로나19 시대에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해졌다. 먼저 현상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목표를 명확하게 세우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들을 정리하고, 일상생활에 접목하며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문제 해결을 위한 기준을 마련하고 나의 희망 진로 직업을 축소시켜야 한다. 개인적인 요인과 가족 등 환경적 요인과 직업이해 그리고 원하는 진로와 직업에 얼마나 욕구가 강한지 체크해 보고 선택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19도 이겨낼 목표의식이 요구되는 세상이 되었다.
20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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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가야 하는 길
© 세종타임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매스컴은 이른바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준말이다. 대중 전달(大衆傳達) 또는 매스 커뮤니케이션(mass communication)은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잡지, 인터넷 등의 매체들을 통해서 행해지는 대중에의 대량적인 전달을 말하는 사회현상이다. 매스커뮤니케이션은 매스 미디어를 연결고리로 한 커뮤니케이션이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기호를 전달하기 위한 통로로서 미디어를 사용한다. 말의 음파나 전달할 사연을 적은 편지지 등도 통로, 다시 말해 미디어이다. 그러나 매스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는 신문, 잡지,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등과 같이 그 미디어들은 하나같이 기술적인 장비가 필요하다. 그런가 하면 이들 미디어는 메시지를 거의 동시에 수억 혹은 수천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거나 조직체이다. 이런 의미에서 매스 커뮤니케이션은 대량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기술적인 장비를 갖춘 미디어 조직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뜻을 함축하게 된다. 매스커뮤니케이션은 일반적으로 송신자와 수용자간의 시·공간적인 거리까지도 갖고 있다. 매스커뮤니케이션은 매스 미디어를 연결고리로 한 커뮤니케이션이다. 송신자와 수신자를 사이를 연결해주는 기술적, 물리적 매개체, 다시 말하면 신문, 잡지, 영화, 라디오, TV, 인터넷 등을 통해서 가능한 간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과거의 아날로그는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인 반면 요즘의 디지털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다
여기에서 미디어의 개념도 살펴본다. 미디어(media)란 어떤 작용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대중 매체’, ‘매개체(媒介體)’, ‘매체(媒體)’이다. 나아가 매스미디어(mass media)는 대중 매체로서 말 그대로 많은 사람(Mass)이 보는 매체이다. 영화나 드라마, 서적, 인터넷 웹사이트나 블로그, SNS 등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해당한다. 대중 매체(大衆媒體)는 대중전달매체(大衆傳達媒體)의 줄임말로, 조직화되지 않은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여 대량의 정보나 시사내용, 당대의 이슈 등을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매체를 일컫는다. 그리고 뉴미디어(new media)는 전자 공학 기술이나 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등장한 새로운 전달 매체이다. 이용자의 필요에 따라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하며 사회의 정보화를 촉진시킨다. 문자 다중 방송, 쌍방향 케이블 텔레비전, 인터넷 등이 있다. 요즘 우리가 즐겨 쓰는 이른바 멀티미디어(multimedia)는 컴퓨터를 매개로 하여 영상, 음성, 문자 따위와 같은 다양한 정보 매체를 복합적으로 만든 장치나 소프트웨어의 형태로 ‘다중 매체’, ‘복합 매체’를 말한다. 말과 글로 정보, 사상, 감정, 기술 등을 전달하는 행위나 과정이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한다면 뉴스나 정보를 전달하는 행위에 바로 매스컴, 이른바 미디어가 활용되는 것이다. 이런 바탕위에서 비판과 감시 기능을 갖춘 언론은 여론을 형성하며 행정, 입법, 사법에 이어 제 4부라고 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과시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늘 언론장악을 장악해 여론을 통제하고자 하는 정치권력의 욕망과 셈법은 역사적으로 지속되어 왔다. 그 마법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인 듯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정기간행물 등록관리시스템에 등록된 종별 언론사는 2020년 11월 27일 기준으로 무려 2만 269개에 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인터넷 신문은 9,504개로 전체 47% 가량을 차지해 가장 많다. 그 뒤로 잡지가 5,485개인 27%, 기타 간행물 2,050개인 10%, 특수주간1655개인 8%, 일반주간신문1183개인 5%, 일반일간신문인 326개인 1.6%, 특수일간 38개, 뉴스통신28개 순이다. 언론사란 신문사, 잡지사, 방송국, 통신사를 일컫지만 이제는 다수로 등장한 온라인 매체인 인터넷신문이 빠질 수 없는 언론사의 주요 매체로 등장했다. 종이신문 매체 수는 모두 3,202개로 인터넷신문에 비해 3배 정도나 적다. 위기상황이었던 지난 2015년 6,347개였던 인터넷신문은 2020년 11월 27일 현재 9,504개로 5년 만에 50%가량인 무려 3,157개나 증가했다. 매년 630개 이상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셈이다.
방송은 현재 공중파방송사인 공영방송 KBS와 민영방송 MBC, SBS, ITV가 있다. 기타 EBS, 케이블TV가 있지만 특성화된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종합편성채널도 등장하여 뉴스를 전달하고 있다. 이른바 종편PP의 영향력이 막강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3년마다 재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종편의 생명줄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쥐고 있다. 물론 지상파도 재허가 심사를 받는다. 이들 매체들은 정부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지상파와 SO/위성, PP종편, 보도, 홈쇼핑 등 재허가·재승인을 받는 사업자는 대략 ‘158개 사업자에 367개 방송국’이다. 방통위는 이들의 방송 평가를 받아 재허가 및 재승인의 심사에 반영한다. 요즘 MBN이 조건부 승인을 받고 겨우 살아남았다. 내년에 6개월간 방송송출이 중지된다. 이런 결정권을 쥐고 있는 방통위의 막강한 위력을 실감케 한다. 신문과 종편을 겸업하는 이른바 메이저언론들의 숨통을 쥐고 있는 것이다. 다채널 다매체 시대의 자화상이다. 메이저언론들의 보도행태가 크게 달라진 것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여기에다 인터넷개인방송이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이른바 1인 미디어시대이다. 너도나도 유튜브 방송을 한다고 난리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까 방통위는 인터넷 개인방송의 불법·유해콘텐츠 규제를 위한 법 제도 개선방안 연구에까지 나서고 있다. 여차하면 규제의 칼날을 들이댈 태세이다. 아마도 시간문제이지 어느 순간 족쇄가 채워지는 날이 올 것 같기도 하다. 디지털시대가 낳은 다채널 다매체시대의 현주소이다. 요즘은 다소 줄어들었지만 한동안 종편들이 속보나 특보, 단독보도를 남발하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유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날로그 시절 일방통행식의 뉴스 전달로 주입식 시절이 있었다면 이제는 디지털 시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시대를 맞아 즉각적인 피드백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잘못 전달된 정보들은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게 되어 있다. 조작적이고 가식적인 뉴스를 전달하는 매체들의 불순한 의도는 시청자들의 눈길을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성숙했다.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작위적이며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정보전달이나 뉴스는 이제 금방 들통이 나는 시대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이른바 메이저언론들이 국내외뉴스전달에 있어 이런 우(愚)를 범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론직필이 없다는 지적이다. 시청자나 독자들의 비난과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금에 이런 언론들의 행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예사롭지 않다. 매스컴의 사명감을 상실하고 여론을 호도하려는 의도적인 논조로 세태를 곡해하는 일련의 보도행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모두(冒頭)에서 매스컴의 개념을 살펴본 것은 바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야 하는 언론들의 기본을 재삼 확인해보기 위한 것이다. 언론이 이런 본연의 사명감을 망각한 채 수준이 높아진 국민들을 향해 그릇된 정보를 자꾸 전달하려고 한다면 ‘늑대소년’이 될 뿐이다. 한번 신뢰를 잃게 되면 외면을 당하게 되는 것은 사필귀정이다. 부정과 불법을 파헤치고 사회정의와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언론들이 국민을 기망하는 행위를 자행한다면 이는 범죄행위에 다름 아니다. 언론이 갈 지(之)자 걸음을 걸으면서 국민을 향해 바르게 걸으라고 한다면 이는 어불성설이다. ‘바람 풍(風)을 바담 풍(風)’으로 읽으며 따라 하라는 것과 같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 디지털 시대를 맞아 리모컨으로 손가락만 누르거나 말 한마디 음성이면 채널이 팍팍 돌아간다. 이는 정보전달의 신속성 못지않게 신뢰성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물론 시청률저하는 치명적인 적자로 이어지고 있다. 가짜뉴스나 가짜정보로는 수준이 높아진 시청자나 구독자들의 환심을 사지 못한다. 요즘 미국에서도 대선결과를 높고 이른바 주류언론들의 보도행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력에 야합하며 기생하는 언론을 바른 언론이라고 할 수 없다. 미디어수가 많거나 빅테크, 메인스트림 미디어 즉 주류언론들이라고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듯이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식이라면 이는 대단한 착각이다. 미디어수가 많다고 해서 언론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무슨 이유인지 터무니없는 뉴스를 내보내고 조작하며 국민의 알권리를 왜곡하는 주류 언론들의 비호감 행태를 국민들이 접하고 있다. 대형언론이라고 교만한 자세로 ’눈감고 아웅‘하거나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식‘의 보도행태를 보인다면 결국 국민들의 외면을 받게 된다. 그 어떠한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올곧게 정도언론의 자세를 바로 잡지 못한다면 언론의 길을 멈추어야 한다. 작금에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갈 지(之)자 걸음을 걷고 있는 언론들이 냉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 직시해야 한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시대를 상징하는 댓글들을 살펴보면 언론이 가야 하는 길에 대한 답이 쉽게 나온다. 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허상의 언론이나 죄고우면(左顧右眄)하는 언론은 참으로 부끄러운 언론임을 자각해야 한다. 언론은 언론다워야 한다. ‘바람 풍(風)을 바담 풍(風)’으로 하는 언론은 정도언론이 아니다. 언론 춘추전국시대를 맞아 모두가 자성하면서 정의로운 사회와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언론의 자세를 재정립해야 할 절박한 시점이다.
20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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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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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과 함께 일하는 시대, 밀레니얼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5인 이상으로 구성되어진 협동조합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서 이야기 하는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을 때 비로소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는 작은 지혜가 모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서 마을단위 수많은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운영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국제 협동조합연맹(ICA)에서 이야기하는 협동조합의 이념, 정의, 가치, 원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협동조합의 이념이란 한마디로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보통의 인간이 경쟁이나 도피가 아니라 협동에 의해서 보다 나은 인간적인 삶고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생각’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협동조합 운동의 지배적인 가치관, 규법, 신념 및 이상 등을 포함한 주체적 의지로써 협동조합이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관, 지도정신을 의미한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는 1995년 맨체스터에서 개최된 창립 100주년 기념총회에서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정의, 가치, 원칙을 모두 포함하여 이를 정체성이라고 발표하였으며 국제 협동조합 연맹(ICA)에서 말하는 협동조합의 정의는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enterprise)를 통하여 공동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의 자율적 조직(essociation)이다. 협동조합의 가치는 협동조합은 자조, 자기책임, 민주, 평등, 공정, 연대의 가치를 토대로 삼고 있으며 조합원들은 선구자들의 전통에 따라 정직, 공개, 사회적 책임, 타인에 대한 배려의 윤리적 가치를 신조로 삼고 있다. 협동조합의 원칙은 7가지로 첫째, 가입의 자유(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제도) 둘째,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 셋째,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넷째, 자율과 독립 다섯째, 교육 훈련 및 정보제공 여섯째, 협동조합간 협동 일곱째,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다.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운영하고자 한다면 위의 이념, 정의, 가치, 원칙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는 것이 경영의 위기 혹은 신뢰의 위기에도 굳건히 협동이라는 가치를 지킬 수 있는 단단한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후죽순 늘어나는 협동조합을 바라보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이유도 협동조합에 대한 가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협동이란 서로 마음과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라고 하지만 협동조합이 오래도록 지속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협동조합의 가치를 상실함에서 오는 결과가 아닐까? 가치란 무엇이 얼마나 중요한지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했다. 중요한 가치를 달리 생각하면 갈등이 오고 같이 생각하려면 소통을 해야 하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협동조합은 말 그대로 평생을 함께 중요한 판단을 내리며 이념과 정의, 가치 원칙이 포함된 정체성을 지켜려는 노력이 강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21세기 협동조합의 저자 레이들로는 협동조합의 참된 목적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협동조합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을 준비하고 희망하는 마을기업 혹은 영리, 비영리 법인의 리더와 구성원들이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함께 학습하고 집단의 공통의 목적과 목표를 달성하기위하여 협동의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도록 협동조합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협동조합은 단순히 마음과 힘을 모으는 것을 넘어 사업체(enterprise)로서의 역할에 한정하는 것이 아닌 협동조합의 정신을 뿌리깊이 이어갈지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의 속성을 알고 선택하면 그것을 조합원 스스로 지키고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훈련이 중요하다. 단련을 통해서 단단해 져야 한다. 알맹이가 없는 협동조합 즉 이념과 정체성이 존재하지 않는 협동조합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협동조합은 협동을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조직체가 되어 사회 전반에 선한 영향력을 행하며 이용자에게 최대 편익을 조합원에게는 최대이익을 제공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사업체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2020-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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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값 폭등세 정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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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파트에 이른바 ‘폭등 광풍’이 불고 있다. 몇 달 새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정부가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새 임대차보호법 3법 시행 이후이다. 서울에는 전세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가격도 2억 원이 14억 원으로 뛰어오른 사례도 있다고 한다. 서울에 인접한 파주와 김포 등도 마찬가지 현상을 보인다. 대전을 비롯해 대구와 부산 등 지방 대도시의 아파트도 몇 달 새 수 억 원이 폭등했다. 세종특별자치시도 예외가 아니다. 그 오름세가 예사롭지 않다. 세종시 청사 입주 초기에 공무원들에게 특별 분양했으나 전매자들은 그동안 배 이상이나 올라 아마도 지금쯤 후회막급일 것이다. 대전도 일부 아파트의 경우 분양 즉시 배나 오른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6월 부동산 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대전도 어김없이 과열 양상을 보인다. 전북 전주에서는 117.9㎡(45평) 모 아파트 매매가 지난 7월 7억 원에 거래됐으나 11월 5개월 만에 11억 원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이런 비정상적인 아파트 폭등세가 코로나19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집 없는 서민들은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상대적 박탈감과 상실감이 우리 사회를 엄습하고 있다. 정상적이지 못한 대한민국 사회상이자 경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남의 아파트에서 전세나 전·월세를 사는 서민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값에 앞날을 걱정하며 한숨을 짓고 있다. 전월세상한제나 계약갱신청구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알다가 모를 지경이다. 대한민국 이곳저곳이 참으로 우려스럽다.
세종시는 2016년 11월 투기 과열지역 조정대상지역에다 2017년 투기 과열지역으로 지난 8월 2일 부동산종합대책에서도 다시 투기 과열지역과 투기지역으로 중복으로 지정되었다.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거래규제의 칼날이 세종시를 겨누었다. 주택담보비율도 40%가 적용되고 1가구 2주택 이상 양도세 기본세율도 상향조정되었다. 물론 무주택서민들의 담보대출비율을 50%로 여유를 주어 차별화를 둔다고 하지만 이 역시 기존보다 크게 낮아져 내 집 마련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주택청약자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부가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내놓고 투기와 불법행위를 좌시하지 않고 실수요자 중심으로 주택시장을 관리한다고 하지만 안정화는커녕 폭등세만 부추겨놓은 결과를 빚고 말았다.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들은 이제 아파트 마련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버렸다. 주요 도시마다 주택담보대출비율을 크게 떨어뜨려 놓았으니 절반 이상의 자기 돈을 마련해야 하는 엄청난 부담이 짊어지게 되었다. 주택청약 저축을 들어놓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서민들은 마치 주식시장에서 막차를 탄 기분을 느끼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다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들도 아파트값 폭등세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맞고 있는 서민들은 IMF 경제위기 때와는 정반대로 가는 주택시장 과열 양상에 당혹감을 금치 못하고 있다.
과거에도 집 없는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내 집 마련 정책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대도시지역이건 중소도시이건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한 정부의 대책은 언제 어디서나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 같은 부동산 과열은 수요공급의 균형을 잃은 기형적인 부동산 주택정책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삶의 터전인 아파트가 투기의 장으로 전락한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여 대처해야 한다. 무조건 전근대적인 규제 일변도 정책으로는 애꿎은 서민들만 고통을 배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1가구 2주택 이상의 수요자들은 그렇다 치더라고 집 없는 서민들에게도 주택담보대출비율을 하향시켜 내 집 마련기회를 박탈하여 버린다면 이는 실수요자 정책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집 없는 서민들이 돈 쌓아 놓고 내 집 마련을 늦추며 살지 않기 때문이다. 전세자금도 대출해 주는 마당에 내 집을 마련하겠다고 나서는 무주택서민들에게 절반 이상의 자기 돈을 만들어 아파트를 사라고 하면 여력이 없는 수요자들은 사채시장이나 높은 이자의 제 2금융권을 기웃거리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주택서민들에게 자칫 또 다른 부작용과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사회문제화 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파트시장의 과열 양상을 반드시 진정되어야 한다. 거래가 없는데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값은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지방도시의 아파트값의 폭등세는 지방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수도권 등 자금 여력이 넘치는 투기세력들의 농간임이 분명하다는 지적도 많다. 임대차 3법을 내놓고 주택시장이 안정화될 것이라고 생색을 내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왜 굳이 비싼 아파트를 선호하냐는 말로 서민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때는 주택공사가 공급하는 아파트가 남아돌아 미분양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혜택을 주며 임대사업자들을 찾는 때도 있었다. 주택시장의 과열 양상이 투기성이라고 한다면 가장 기본적인 것은 아파트건설을 크게 늘려 공급을 확대하는 것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200만호 아파트건설 프로젝트가 추진된 적이 있다. 폭등하던 아파트값을 잡았던 정책이다. 이후에도 아파트 반값공급 등 무수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파트값의 폭등세와 과열 현상을 규제로만 잡으려고 한다면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만약 해법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면 과거 사례를 찾아 타산지석을 삼아 보면 어떨지를 권하고 싶다. 투기 과열 등 비정상적인 부동산시장의 문제는 그동안 늘 경험해 오던 일이고 해결해 온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꼬여도 한참 꼬인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구호만이 아닌 합리적인 해법과 장단기 전략이 시급하다. 코로나19 경제난 속에 널뛰는 아파트값 폭등세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 베네수엘라처럼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돈 가치가 휴지조각처럼 되어 버린 그런 상황이 아닌 바에는 그렇다. 이건 정말 아무리 보아도 정상이 아니다.
2020-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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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이 가중되는 피로사회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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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 남의 탓,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수많은 행동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자유를 넘어 침해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정보보호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니 말이다. 먼 옛날 갈릴레이는 지동설(태양이 우주의 중심이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주장한 학설)을 주장했지만 2020년 정보의 홍수 속에서 SNS등을 통해 개인을 중심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수도 인기스타도 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우주가 태양을 중심으로 라는 말에 비추어 개인의 삶을 중심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과 연결되는 삶인 것이다. 자유라는 것이 무색해질 만큼 개인의 인격보다 타인의 삶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개인이 살아가는 것이다.
반반으로 혹은 양자택일로 흑과 백을 나누어야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 마냥 목소리들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한 분야 혹은 개인의 문제는 아닐 것으로 보여 진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개인을 중심으로 주변이 밝아지고 주변을 중심으로 조직이나 사회가 좀 더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와 존중이 넘쳐흐르는 세상이 당연시 되는 것은 어려운 것일까? 2010년 가을 재독 철학자 한병철교수의 ‘피로사회’, 독일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피로사회’는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본문 중에는 우울증이 지배하는 시대에 대한 우아하고도 날카로운 철학적 진단을 함과 동시에 “피로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피로사회에서는 현대인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라는 글로 세상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피로사회는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문화에 대한 비판이 아니었을까?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2012년 16,000개의 컴퓨터로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던 시점의 피로사회와 컴퓨터가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면서 공상과학 속 상상이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인간다워 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함께 존재하는 2020년 이다. 오늘날 우리는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동시에 수많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안정적 성장과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변동성이 크고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한 시대이며 복잡하고 애매모호한 것들이 너무 많은 세상을 견디고 있는 것이 그저 기특할 따름이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2010년 피로사회에서도 한병철교수는 “절대적 경쟁(남과의 상대적 경쟁이 아니라 스스로 끝없이 뛰어 넘어야 하는 자기 자신과의 경쟁)의 무대로 몰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 무대가 2020년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지면서 전 세계 인구가 개인의 삶에 관전자가 된 것이다. 이러한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는 것이 답이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소소한 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존재해야 하는 것이었음에도 찾아야 보이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스스로가 영화 속 주인공 이라면 우리는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는 이유로 자기 감시와 자기 착취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살아있음에 감사하다는 말보다 다가올 미래의 불확실하고 복잡한 세상에 개인이든 조직이든 세찬 바람이 불어도 태풍이 몰아쳐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가진 뿌리 깊은 나무 혹은 차돌맹이 같은 삶을 위해 심신을 견고히 해야 하지 않을까? 힘겨울 때 마다 필자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온 날들 중 가장 힘든 날 이었는가?” 말이다. 이런 질문을 던지고 나면 곧바로 머릿속에서 생각이 답을 해 준다. “아니” 라고 말이다. 개인의 삶이 하루하루 명작이 될 수 있도록 가치(무엇이 얼마나 중요한지 판단하는 기준)를 만들어 가고 의미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힘겨움은 잠시 놓아 주고 소중한 것을 지키며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재정비 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자주 가지며 피로사회에서의 현명한 답을 찾아가는 날들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2020-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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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Digital Transformation)시대 SPECIAL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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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전환을 통해 많은 것들이 변해가고 있다.
단순한 변화가 아닌 세상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지 않으면 안되는 커다란 파고를 넘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로 몸살을 앓는 사회는 DT시대를 앞당기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DT시대를 인공지능이라고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큰 오류일 수 있지만 우리의 일상속에 무심히 들어와 인간의 삶과 함께 영위되어 가는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한다.
인간에게 최적화된 융복합을 우리는 어떤 자세로 받아 들여야 할까? 여기 DT시대에 필요한 7가지 전략 전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한다.
첫째 : Specialty(전문성)이다.
개인의 경험, 재능, 자산 등을 노동시장의 플랫폼을 통해 거래하는 시대, 학벌중심의 인재가 아닌 진짜 전문가를 채용하고 그 능력을 발휘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변화 되었다. DT시대의 전문성이라 함은 정해진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해내는 능력이 있는 인재보다 예측하지 못하는 복잡한 문제 또는 비정형화된 이슈를 민첩하고 정확하게 처리해 내는 해결사 즉 전문성이 돋보이는 인재를 말하는 것이다.
둘째 : Performance realization(성과실현)이다.
성과는 근면함에서 오는 것이라고 믿었던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성과는 문제 해결 능력과 소통능력이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성과를 내기위한 전략에 있어서 팀웍이 중요하다. 리더와 중간관리자 그리고 하부조직에서의 역할이 강조되는 시기는 지났다.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 있는 일을 해내기 위한 목적의식이 얼마나 뚜렷한가? 에 대한 구성원의 현명한 답이 요구될 것이다.
셋째 : Experience Marketing(경험마케팅)이다.
경험을 통한 마케팅은 빅데이터 분석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과거의 경험과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 하고 DT를 이야기 하는 지금시대의 경험을 단순한 노동이나 성과를 낸 경험치로 본다면 큰 오산이다. 이제 경험 마케팅은 수없이 쏟아지는 빅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해 내고 기업의 성과실현을 위해 최적화를 시킬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넷째 : Change and Innovation(변화와 혁신)이다.
역량이 부족한 개인이나 기업이 살아남기 힘든 시대, 즉 변화에 뒤처지거나 혁신을 두려워하는 개인은 기업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기업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코로나19상황을 보면 쓰러져 가는 소상공인이 속출하는 가운데 배달에 뛰어든 앱이나 이커머스 혹은 콜드체인 등 신선식품, 혼밥시장을 공략한 기업은 말그대로 대박이 나고 있다. 변화와 혁신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는 해안이 필요한 것이다.
다섯째 : Influence(영향력)이다.
성공한 개인이나 기업에게는 훌륭한 스승이나 멘토가 있다. 공통의 관심사와 방향을 가진 사람들의 조언을 구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한 영향력이 발휘될 수 있는 리얼스토리가 존재한다면 개인이나 기업 모두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꼰대같은 선배 삽질하는 후배의프레임이 아닌 전문성과 경험이 빛나는 영향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여섯째 : Agility(민첩성)이다.
이제 변화는 빅테이터,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시대이다. 구성원들의 전문성이 강화되고 플랫폼이 단일화되며 새로운 기술혁명이 일자리를 파괴하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속에서 애자일경영, 애자일 러닝 등 Agility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불확실한 예측속에서 민첩성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민첩성 이야말로 변화와 혁신을 위한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일곱째 : Leader training(리더양성)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 일컫는 2016년 이후 IT인재가 부족하여 고액연봉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이 인재 영입을 위해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훌륭한 인재가 세상을 바꾸듯 기업의 생존여부가 달려있는 리더를 영입할 것인가? 양성할 것인가? 훌륭한 인재일지라도 배울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문가 도입과 양성은 기업이 가진 숙제일 수 있다. 하지만 리더양성을 위한 노력이 미래지향적 투자이며 기업의 승패를 가르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DT시대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면 위의 SPECIAL을 기억해 보면 좋을 것으로 판단된다. 변화와 혁신 그 속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개인과 조직의 성장을 기대하기 위해 필요조건들이 셀 수 없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성, 성과실현, 경험마케팅, 변화와 혁신, 영향력, 민첩성, 리더양성은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꼭 챙겨야 하는 중요 요소들이라고 생각한다. 변화하는 세상을 주도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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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노후준비는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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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들도 취업을 걱정하는 시대, 능력보다 스펙이 중요한 시대를 넘어 이제 경험기술서를 통해 전문인력을 양성하여 취업에 까지 이르게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혹독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4차 산업혁명 그리고 DT시대 기술 발전은 노동시장에서 인간의 흔적을 남기지 않을 듯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며 개인과 기업에 급변하는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였으며 2020년 코로나19로 어두워진 시장경제와 더불어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혼돈의 세상을 경험하게 하고 있다. 원하지 않는 힘겨운 날들을 버티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당장의 현실을 견디는 것이 최선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노후준비 프로젝트는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노후 준비보다 더 막막한 현실을 살아가며 견디는 과정에서 어쩌면 노후는 그저 언젠가 다가올 미래 정도로 막연히 느껴질 것이니 말이다. 이제 의식과 지능이 분리되는 시대가 되었다. 인간다운 삶은 과연 영위될 수 있을까? 인간다운 삶은 어떤 삶일까? 이제 지능이 높은 알고리즘들이 인간보다 더 인간을 잘 알게 될 것이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연구를 통해 평균수명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고 노동시장은 인공지능화 되어 이미 줄어들고 있다. 노동시장에서 퇴출되면서 경제활동이 중단되어도 의료기술 발달로 인간의 평균수명은 증가 한다. 100세 시대는 옛 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수명연장관련 연구는 지속되고 있고 정년이 빨라지는 지금 미리 준비해도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은퇴 이후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당연하게 생각하며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부지런히 일만 하던 부모 세대 대부분이 경제적 부담 없이 노후 생활을 즐기고 있다면 노후준비를 미리 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들려오는 부모 세대의 현실은 안타까움을 넘어 절망일 때가 많다.
외롭고, 병들고, 경제적 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데 유병장수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인생에 기회는 세 번이 온다고 했지만 그 세 번의 기회는 매 순간, 매일, 매월, 매년 찾아오는 세 번의 기회일 것이다. 그 기회들 중 한번만이라도 ‘노후’라는 두 글자를 상상해 보길 바란다. 정년 이후 살아갈 날들이 40년이든 50년이든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잠시 멈추어 주위를 둘러보자. 돈 걱정 없는 노후 50년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20대 이후 직업을 한 번도 놓지 않았던 필자도 노후자금을 이야기 하면 절벽에 서 있는 듯한 두려움이 밀려 올 때가 있다. 이처럼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가 많은 재무설계 전문가들조차 100세 그 이상의 시대는 두려움이다. 예측 불가능한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동안 노후준비를 체계적으로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능한 이야기 일수도 있다.
하지만 40~50대의 경우 ‘마처족’으로 마지막으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처음으로 버림받는 세대라고 할 만큼 노후에 대한 자녀 의존은 있을 수 없는 전설이 되었다. 정년이 보장된 규칙적인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경우라면 체계적인 준비가 가능할 수 있지만 생계형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라면 몸과 마음에 쉼표 하나 없을 경제적 도구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재테크는 뼈를 깎는 고통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노후준비도 마찬가지이다. 노후준비 순위가 중요도에서 밀려날수록 100세 그 이상의 시간들은 고통일 수 있다. 복지라는 이름으로 정책적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노후준비는 사전에 철저한 계획에 의하여 준비되어야 하며 삶의 동반자로 평생을 함께 가야할 경제적 버팀목이 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술발전과 노동시장의 감소 속에서 삶의 원동력을 잃어 갈 수 있지만 노후준비는 반드시 계획적이고 실천적이어야 한다. 당신의 노후준비는 안녕하십니까? 삶 속에서 의미 있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2020-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