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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이야기
별이야기
▲ © 행복세종타임즈
정미숙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자연치유학과
초월영성상담전공 교수
별 이야기는 어스트랄러지(astrology)이다. 어스트랄러지는 ‘아스트로(Astro)’는 별이며, ‘로지(logy)’는 이야기를 뜻하는 복합어 이다. 어스트랄러지는 수천 년이 넘도록 인도와 서양에서 발전해 온 학문이므로 기본적인 원리 및 해석법을 설명함에 있어서 인도와 서양 연구가들의 이론을 소개하는데 주력한다. 동서의 사상을 탐구하여 통합된 세계관을 구축하려 애쓰고 실제로 여러 면에서 동서의 구분이 거의 사라져가는 오늘날이다.
여기에서 다루고자 하는 어스트랄러지는 상징주의와 인본주의의 입장을 취하려 한다. 상황이나 사건의 외형을 예측하기 보다는 어스트랄러지와 인생의 관계를 본질적인 측면에서 설명하고자 하며, 따라서 길흉화복의 사건을 구체적으로 예언하기보다는 주인공의 개성과 잠재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혹시 본의 아니게 이런 의도에서 벗어난 운명론적인 글귀가 눈에 띄더라도 그것을 경향이나 가능성의 뜻으로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천문학과 어스트랄러지의 관계는 물리학과 심리학의 관계에 비유될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을 소개 받을 때 그의 혈압이나 맥박수 같은 것들보다 그의 성격이나 직업 등을 더 궁금하게 여기고 그 측면에서 소개를 받는다. 그리고 인간을 물질적, 신체적인 차원에서만 이해할 수는 없다. 어스트랄러지는 천문학과는 다른 관점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행성들의 위치에 의거하여 특정 시간들을 구분 짓고 그 시간들의 성질을 좀 더 정신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심리학적인 면에서 어스트랄러지에 대한 견해를 보면, “어스트랄러지는 심리학에 많은 것을 공헌할 수 있다. 그러나 어스트랄러지 역시 심리학의 존재를 인식함이 유익할 것이며, 특히 개성과 무의식을 취급할 경우 그렇다. 나는 어스트랄러지의 상징 언어로부터 우리가 무언가 배울 점이 있음을 확신한다.” 이것은 현대의 위대한 분석 심리학자인 칼 융의 말이다.
프로이드의 무의식의 연구와 칼 융의 심층심리학 이론에 자극받아 생겨난 프랑스의 상징주의와 미국의 인본주의 어스트랄러져들은 각각 ‘분명히 개념화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의 실체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오직 상징뿐이다.’ ‘어스트랄러지는 사건 예측이 아니라 인간 이해의 한 기법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고 주장한다.
별 이야기는 먼저 자신이 태어난 달과 함께 싸인을 접하게 된다. 나는 어떤 싸인의 특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태양의 특징을 이야기 한다. 태양은 그 사람의 본성을 이야기 한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싸인에 대해 먼저 알아보도록 한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는 각 개인의 특성인 별과 하우스, 어스펙트에 대해 차근차근 이야기 해보고, 차트리딩을 할 계획이다.
201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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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떳떳하게 자수하라.
▲ © 행복세종타임즈
경찰이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자진 출석하지 않으면 영장을 집행하겠다고 밝힌 시각이 오후 4시, 이제 2시간을 앞두고 조계사의 긴장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조계종은 경찰의 공권력 집행 예고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하고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법집행을 하루 늦추어줄 것을 제안했다.
논란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종교시설의 공권력의 성역제공이라는 초법지대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지금 입장에서 보면 남감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여기서 오랜 역사의 현장을 거꾸로 돌려보면 옛 우리의 조상들은 그러한 초법적인 지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곳이 바로 삼한시대(三韓時代)에 천신(天神)을 제사지낸 소도라는 명칭을 가진 곳이다.
후한서와 삼국지 등에 소도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제사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은 마한(馬韓)을 중심으로 한 삼한에서는 매년 1∼2차에 걸쳐 각 읍별로 제주(祭主)인 천군(天君)을 선발하여, 특별 장소를 설치하고 제사를 지내 질병과 재앙이 없기를 빌었다. 이 제사지내는 장소를 소도라 하는데, 그 명칭은 거기에 세우는 솟대[立木]의 음역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문헌을 살펴보면 소도는 신성(神聖) 지역이므로 국법의 힘이 미치지 못하여 죄인이 이곳으로 도망하여 오더라도 그를 돌려보내거나 잡아갈 수 없어 도둑이 성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소도에 영고(鈴鼓)를 단 큰 나무를 세우고 제사지내던 당시의 주술적인 민속신앙은 오늘날에도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마을 입구나 신당에 세우는 솟대다. 이 같은 상고시대 부족국가들의 제천의식에는 종교·문화·생활 등 제정일치의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우리들이 가진 포용의 정신을 담고 있다
서양에서도 이런 것들이 존재하였는데 그리스·로마의 아실리(Asillie) 또는 아실럼(Asylum)이 그것이다. 죄인이 아실리로 도망쳐 오더라도 돌려보내거나 잡아가는 것은 되레 종교적인 범죄행위가 되었다. 도둑이 성행하기도 했다지만 성역은 난민, 노예, 채무자, 범죄인의 보호장소로서 피의 복수와 사형의 남용을 막는 사회적 순기능도 하며 인간 구제와 인간 존엄의 보루로 떠오르기도 했다.
어제 강신명경찰청장은 입장문에서 “한상균이 수차례의 조직적인 불법 폭력행위를 주도한 후 종교시설로 도피한 채 계속적인 불법행위를 선동하고 있는 것은 법과 국민을 무시하는 매우 중대한 범법 행위”라며 “지난 6일까지의 자진 퇴거 약속을 스스로 어기고 계속적인 불법 투쟁을 선언한 것은 20일 넘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준 국민과 불자들을 배신한 행위”라고 했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명동성당이나 조계사 등 종교시설이 민주화 사건 수배자들을 숨겨줬던 것은 충분히 국민적 공감을 얻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불법시위나 불법파업으로 경제에 큰 손실을 끼친 주동자에게 종교시설이 소도나 아실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더 큰 눈으로 사건을 살펴보면 조금의 여유를 두는 것이 우리 대다수의 국민의 정서에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권력에 맞서자는 것이 아니라 성역이라는 여유를 조금 가짐으로서 국민의 바듯해가는 정서를 어루만져주자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총무원장스님의 기자회견 후 경찰은 대한불교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이 "10일 정오까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영장 집행을 중지해달라"고 요청한 것과 관련, "기자회견 내용을 감안해 일단 집행을 연기하겠다"고 9일 밝혔다고 하니 한숨은 돌렸다.
지금의 문제는 단순히 범법자를 체포하기 위한 영장집행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탐욕에 대한 경계와 더불어 당시의 엄격한 신분제도마저 부정하며 평등하고 따뜻한 대자대비의 가르침을 펼친 부처님의 도량에서 이루어지는 공권력에 대해서이다. 불교야말로 중생에 대한 대자대비를 통해 소외되어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성역이 무너진다는 상징성이 무너지는 것이다. 중생의 고통을 직시하며 함께 하는 대승불교의 수행은 언제나 삶의 현장 속 실천을 중요시하며 있어야 하거늘 지금의 스님들의 처사는 부처님 가르침에 전혀 적합한 행동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번 아닌 것은 끝까지 아니어야 한다.
아울러 이것은 종단의 정체성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 조계사 상황은 종교의 자비심과 포용력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실현하고 보여줄 수 있는 계기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내부 갈등이 있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이다. 성역에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다시 그곳을 성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죄를 진 범법자지만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서 앞장서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도 이제 이정도의 여우는 있는 것이 아닐까? 그들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주고 그들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장소를 모른 척 봐주는 여유말이다.
201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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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위문화 시민들이 만들자
▲ © 행복세종타임즈
문화는 인류학의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을 이루고 있는 개념이면서도, 인류학자들 간에도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계에서 인간을 다른 종으로부터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인간은 문화를 가진 유일한 동물’이라는 점에 학자들은 의견을 모으고 있다. 좀 더 나아가보면 한 사회의 구성원들 간에 찾아볼 수 있는 관습적인 행위 및 그런 행위의 산물을 문화라고 부르고 있다. 즉, ‘한 인간집단의 생활양식의 총체(totality)’를 가리킨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의를 내린 학자 중 ‘타일러(E.B. Tylor)’는 그의 저서에서 문화를 “지식, 신앙, 예술, 법률, 도덕, 관습 그리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에 의해 얻어진 다른 모든 능력이나 관습들을 포함하는 복합총체”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문화는 인간 고유의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학자로 ‘화이트(Leslie A. White)’는 ‘인간은 상징(symboling)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임에 유의하여 이것이 바로 문화의 기초라고 파악하고 있다. 즉, “상징행위에 의거한 사물 및 사건들을 인간 유기체와의 관련에서보다는 다른 상징물들과의 관련에서 고려했을 때 그것을 문화”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두 학자들은 모두 문화를 인간 고유의 소유물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문화의 의미는 크게 좁은 의미의 문화와 넓은 의미의 문화로 나눌 수 있다. 좁은 의미의 문화란 문학이나 예술 분야와 관련된 의미로 정신적이고 물질적으로 진보된 상태나 세련되고 교양 있는 모습을 말한다.
문화라는 용어는 라틴어의 cultura에서 파생한 culture를 번역한 말로 본래의 뜻은 경작(耕作)이나 재배(栽培)였는데, 나중에 교양·예술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영국의 인류학자 E.B.타일러는 저서 ‘원시문화 Primitive Culture 1871’에서 문화란 “지식·신앙·예술·도덕·법률·관습 등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라고 정의를 내렸다. 여기에서 문화란 인류에서만 볼 수 있는 사유思惟, 행동의 양식이나 생활방식 중에서 유전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에 의해서 소속하는 사회와 협동을 학습한 사람들의 집단으로부터 습득하고 전달받은 것 전체를 포괄하는 총칭이다. 그러므로 사회 속에서 행해지는 사람들의 행위나 그 결과물에는 필연적으로 그들의 가치관, 신념, 인식 등 정신적인 내용도 함께 반영되는 것이고 그런 요소들이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에게도 받아들여져 그 사회 전체가 공유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
미국의 한 인류학자는 '문화란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 학습되고, 공유되고, 양식화되어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것'이라 했다. 또한 문화는 사람들에게 구속력을 행사하기도 하지만 결속력을 부여하기도 한다. 같은 언어를 쓴다든가 아니면 같은 종교를 갖고 있다든가 하여, 같은 문화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 간에는 쉽게 친근감이 형성되고 쉽게 단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같은 사회 속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문화가 서로 다르면 대립 의식이 생기고 사회적 분열이 초래되기 쉽다. 요즘 다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집회가 말썽이다. 우리 사회에서 집회 및 시위는 다중이 모여 평화적인 방법으로 집단의 의사나 요구를 표명하는 ‘의사표현의 한 방법’으로서보다는 무질서․폭력사태․사회불안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로 인한 불법폭력시위로 국민과 경찰관이 부상을 당하는 일도 빈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정작 집회 및 시위를 필요로 하는 당사자들의 집회 및 시위자유권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 불필요한 경찰력 동원에 따른 치안력을 낭비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 동안 준법집회의 자율적 관리와 평화적 집회 및 시위 문화 정착을 위한 부단한 노력들이 집회하는 사람들이나 경찰 측에 있었다. 그 결과 화염병이나 쇠파이프를 이용한 폭력집회가 대폭 감소하는 등 집회 및 시위 문화의 평화적 진전추세가 확산되기도 했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사회질서유지는 물론 경제안정․대외신인도 확보를 위해서도 국민의 준법집회는 한층 더 보호하고 평화적인 집회 및 시위 기조를 유지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문화를 만드는데 동참해야한다. 또한 집회를 기획하는 집단이거나 참가자들은 평화로운 집회 및 시위문화를 만드는 최일선의 당사자들이므로 경찰이 제시하는 폴리스라인을 지키는 의식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불법시위를 할 것이며 언제까지 이렇게 강압적인 과잉진압을 할 것인가? 합법적이고 평화로운 집회시위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집회문화는 서로의 공동이익을 위해서도 그렇거니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도록 문화국민의 자질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직도 기회는 있다. 다시 시작해보자.
201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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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살리기가 곧 통일 대박이다.
▲ © 행복세종타임즈
우리가 살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에 있어서 미국과 러시아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새로운 외교안보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그 동안 안보·경제복지·국위선양·조국통일을 외교정책의 기본목표로 삼고, 구체적인 상황변화에 따라 그 우선순위와 내용을 조정해 나가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건국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한국은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미약한 국력 때문에 주변정세나 국제질서에 영향을 주기보다는 이에 적응하는 형태로 외교정책을 수립해 온 것이 사실이다. 또한 상황변화에 대한 장기적인 예측을 할 수 없었고, 외교적 선택이나 영향력의 범위도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의 외교정책은 발전을 거듭하여 그 활동범위가 계속 확대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얼마 전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9월 3일 출국했을 때 국내언론들이 치열하게 찬반으로 나뉘어 논쟁을 벌였다.
박대통령의 방중을 찬성한 측은 무엇보다도 북핵北核 문제 해결을 비롯한 한반도의 평화 구축을 위해 한국과 중국의 관계강화가 시급하기에 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과 달리 반대한 측은 그의 중국 방문이 우리에게 긴요한 한미동맹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내세웠었다. 작금에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면 국제정치의 성격과 권력구조의 큰 전환기라는 것은 도처에서 그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듯하다. 계속해서 악화되는 중동의 종파전쟁과 시리아와 우크라이나에서의 러시아와 미국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를 체결한 국가들 사이의 영향력 경합은 3차전쟁의 가능성마저 상승시키고 있다. 더구나 시리아난민의 집단적 이동은 향후 사태를 전망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럽연합 전체를 심각한 시련으로 몰아가고 있다. 또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남중국해에서의 중국과 베트남·필리핀 등 동남아국가연합국가들 간의 영토분쟁까지 더해 해양국제법과 해로안전의 원칙에 관한 미국과 중국의 입장 차이로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위험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한마디로 모두가 자국의 이익에 맞물려 세계평화와 아시아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살펴보면 이것은 모두 초강대국인 미국의 외교정책의 변화에서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그 동안 펼치고 있는 미국의 외교정책의 성과는 쿠바와의 국교정상화를 이루었고 곧이어 이란과의 핵 협상 타결을 이루는 큰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적성국가와 관계 개선 이후에 심상찮은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그것은 지난 7월에 있었던 미 하원의원의 ‘한국전쟁 종식 결의안’의 발의가 그것이다. 이 징후들을 대북관계의 개선으로 보는 외교전문가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또한 지난 10월20일에 있었던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대북정책 청문회에서 밥 코커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이 북한문제에 대해“아무런 변화도,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며 회의론을 제기했다. 청문회를 주최한 코커 위원장은 청문회 모두발언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비참한 실패’라고 비판하며 “북한은 미국의 역대 행정부를 거치며 핵과 탄도미사일 능력을 증강해왔고, 북한 주민들은 극심한 가난을 겪고 김정은 정권이 저지른 야만적 처우의 희생물이 됐다”고 말한바 있다.
한 국가의 외교 정책의 방향은 그 나라가 가진 외교 정책에 따라서 방향성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주변 국가들의 첨예한 이해관계 속에 자주적인 입장의 견지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찾아 온 신냉전의 앞에 서서 미국의 첨병의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 과거처럼 북방과 완전히 외교가 단절된 상황에서는 가능하겠지만, 지금 경우는 사정이 달라졌다. 우리가 어떤 외교적 원칙과 역량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서 오히려 세계의 외교가를 주도할 수도 있는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분단을 극복하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새로운 동북아의 역사를 만들어 가려면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있는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한 상생은 필수적 요소일 것이다.
이러한 때에 나온 미국 시민참여센터의 김동석이사의 발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중앙의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오바마의 마지막 한 수는 평양’이라한 발언이다. 2017년 1월 오바마대통령의 임기 종료 이전 북한 연락사무소 개설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하게 지켜볼 일이지만 미 유력 의원들이 한국전쟁 종료선언을 위해 발의를 하는 등 워싱턴의 기류도 심상찮은 관계로 이것에 대비한 준비도 있어야할 것이다.
이제 박대통령 임기가 반환점을 돌아 후반전을 시작하고 있지만 현재의 경색된 남북관계와 분단 70년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감안할 때 통일대박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다시 남북 당국 회담의 틀이 마련됐다. 장관급이 아니라 차관급이고 장소도 서울과 평양이 아닌 개성이지만 8.25 합의에 따른 남북 간 당국 회담 개최가 가능하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 과제인 '평화적 통일 기반 구축'은 '통일 준비'라는 구호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실제 일궈내고 남북의 화해 협력을 한걸음씩 실천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그 성패는 바로 남북 당국 회담의 성공에 달려 있다.
나아가 국정 및 통일정책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제문제 해결에 모든 힘을 쏟아내야 한다. 민생경제가 악화되고 경제적 불안감이 큰 상황에서는 국민들은 통일문제에 회피적인 대응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과 경제 회복에 전념하고 그 성과를 체감할 수 있어야 식어가는 통일대박론이 재 점화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외교안보라인의 책임자들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최선의 힘을 다해 대비하는 길만이 통일대박의 날을 확실하게 앞당기는 대드라마를 완성하게 될 것이다.
2015-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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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은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다.
▲ © 행복세종타임즈
연극을 흔히 종합예술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정작 연극의 요소에는 ‘배우 ․ 희곡 ․ 관객’ 셋 밖에 없다. 관객이 연극의 요소에 반드시 들어가는 이유는 비교적 간단하다. 화려한 무대장치를 보여주거나 연출과 배우가 아무리 훌륭한 연극을 만들었다 해도 그걸 봐 주는 관객이 없다면 막은 결코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이 극장을 찾는 이유는 첫 번째 오락을 찾기 위해서일 것이고, 두 번째 뭔가를 ‘얻기’ 위해서일 것이고, 세 번째 ‘자극’을 받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처럼 ‘오락적 ․ 교육적 ․ 자극적’ 이유 때문이라 말할 수 있지만 좋은 연극이 되려면 관객들을 고루 만족시키기 위해 이 세 가지 이유들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
일반 대중들은 앞서 얘기한 세 가지를 얻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하지만 연극을 보려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현장성’의 경험에 있다. 지금 이 순간 배우의 현존을 경험한다는 것은 어떤 것도 흉내 낼 수 없는 연극의 매력이다. 이렇듯 직접성 속에서 집단 경험이 이루어지며 관객들은 영화나 TV에서 느끼지 못하는 새로운 경험을 얻게 되는 셈이다.
관객을 단순히 ‘관람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해선 안 된다. 관객은 재정적 후원자의 역할도 담당한다.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원금에 의존하거나 티켓 판매를 하는 것이다. 극단이 지원금에 의존하는 목적은 흥행에 실패했을 경우 그 부담을 줄이고, 저렴한 가격으로 연극을 제공함으로써 대중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이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연극은 대중에게 친근하지 못한데다 관람료마저 영화보다 비싸다. 따라서 일반 대중은 한 편의 연극을 보기보다 스케일이 훨씬 크고 값싼 영화를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연극을 보는 게 가장 유익할까? 연극을 보는 방법은 정말 따로 있는 걸까? 이들 물음에 답은 “없다.” 연극을 관람하는 데도 특별한 방법이 따로 있진 않다. 작품을 올릴 때 연출은 분명히 표현하려는 ‘무엇’이나 그 이유다운 이유를 갖고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 그건 연출의 생각일 뿐이며 관객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했다고 하여 ‘틀렸다’고 지적할 순 없는 일이다. 연극을 자주 접하지 못한 관객이라 해도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의 눈은 예리하고 냉철하다. 서투른 배우의 연기를 보면 교감이 되지 않음을 느끼고 냉정할 정도로 무관심하거나 속으로 야유를 보낸다. 그건 곧 관객이 ‘장면 관찰자’로서의 역할까지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출의 의도가 뭘까, 저 배우는 무엇을 표현하려는 걸까 고민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대로 느끼면 되는 것이다. 슬프면 슬퍼하고, 기쁘면 기뻐하고, 무서우면 무서워하고, 울고 싶으면 옆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울 일이며 그렇게 순간 무대를 보며 즐기면 되는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객석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며 ‘오늘 공연 보길 참 잘 했다’고 느꼈다면 그 공연은 좋은 공연이었을 것이고 ‘에이, 이게 뭐야 ~ ’란 생각이 들었다면 그 건 별로였을 것이다.
배우로서 내 공연을 보고 간 사람들이 그 공연을 생각할 때 마다 행복해 했으면 좋겠다. “그 공연 다시 안 해? 너무 좋았는데”라는 말을 들으면 설레기도 한다. 좋은 배우, 좋은 연극은 배우와 연출이 만드는 게 아니다. 당연히 좋은 희곡으로 ‘배우, 연출, 관객’이 하나가 될 때 의도치 않게 이루어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곧잘 질문한다. “연기를 잘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질문에 난 이렇게 답한다. “연기는 시스템도 아니고 특별한 방법도 없으며 그냥 자기 자신이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2015. 12. 08.
2015-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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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고르기를 마친 후 유일하게 찍은 사진 한 장..(보이는 컨테이너가 우리의 첫번째 살림집 이었다.)
▲ © 행복세종타임즈
그렇게 도착한 정선, 스므골 ...
주변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 그 자체 였다.
간혹 바람이라도 불어 숲이 흔들리면 바스락 거리는 숲 소리가 정적을 깨우는게 고작 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우선 집기며 살림살이를 컨테이너 살림집으로 옮기기 시작 했다.
나는 연신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무슨 말이라도 나올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의외로 담담하게 살림살이를
정리하며 때론 좌우를 둘러보는 여유도 부리며 그렇게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다행 이었다.
온 종일 정리를 마치고 저녁시간...
촛불을 밝히고 저녁상에 마주 앉았다. 도시에서의 그 어떤 훌륭한 음식이 놓인 만찬보다 근사한 식탁 이었다.
밤 하늘엔 별들이 쏟아지고 산과 들에서는 풋풋한 향내가 진동 했으며 풀 벌레 소리는 멋진 오케스트라가 되어
우리의 만찬을 축복해 주었다.
그날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으로의 우리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했고 계획도 세우며 정선에서의 첫 날밤을
그렇게 보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바로 우리의 살림집인 컨테이너 하우스의 보수공사를 시작 했다.
사실 전날 밤에 얼마나 춥던지...
딱히 난방 시설이라고는 장작 난로가 고작이고 바닥은 차가워 그 당시 유행하던접이식 싸구려침대를 구입하여 간신히 새우잠을 잤으니 추울만도 했다. 장작도 부족했고 무엇하나 변변한 것이 없으니 추운것은 어쩌면 당연 했다.
더구나 도시생활에서의 편리함에 익숙해 있던 우리로서는 추위는 가혹한 형벌같이 느껴졌다.
특히 아내는 더욱 힘들고 고달펐으리라 생각 되었지만 의외로 잘 견뎌 주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앞으로의 삶에 대해
무척 걱정을 많이 했었을 것이다.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우선 주변에서 장작이 될 만한 나무들을 그러 모으는 일부터 마치고 추위에 대비한 보강공사를 해 나갔다.
이사 오기전 마땅히 머물 숙소가 없어 고민 하던중 컨테이너로 대체하면 이동성도 좋고 여러모로 편리하니 그렇게 해 보라는 지인의 소개로 주변 카센터에서 쓰던 중고 컨테이너를 헐 값에 사들여 집 터에 가져다 놓았다. 그것도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옮겨온 컨테이너 였다.
길이 험하고 개울을 건너야 하는 어려운 현장 여건 때문에 운반이 덜미를 잡고 말았다. 사람들은 길도 험하고 개울 건너는 일 등을 두고 안 된다고 포기 하라고 말렸지만 당시로는 방도가 없었고 우격다짐 이라도 운반을 해야만 했다.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운반을 감행했다. 어차피 이곳에 온것이 미친짓이라고 생각 했던 만큼 더 미쳐도 손해 볼 것은 없었다.
컨테이너를 실은 운반 트럭과 포크레인이 합동 작전을 (?) 전개해야 했다. 밀고 당기며,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컨테이너를 제 자리에 옮겨 놓을 수 있었다. 내 고집의 승리 였다. 아니 하고자 한다면 할 수 있다는 굳센 의지의 결과였다.
그렇게 마련한 컨테이너 하우스...
하지만 추워서 잠을 자지 못 한다면 큰 일 이었다. 아직은 봄이라 해도 조석으로는 쌀쌀함이 옷깃을 여미게 했으며 더구나 산 속에서의 추위는 일반 도시의 그것과는사뭇 달랐다.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내에겐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사전에 내려와 내부는 그런대로 완성을 해 놓은 상태였다.
씽크대도 만들고 이불장이며 신발장,선반등...그것도 나무자재를 사용하여 친 환경소재로 그럴듯 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단열재도 듬뿍넣고 하여 보온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그렇게 단단하게 대비 하고 했지만 산 속의 추위는 그리 만만한게 아니었다.
문틈이며 창틀 주변등 바람이 들어올 만 한 곳은 철저히 손보고 하여 그런대로 작업을 마쳤다.
다시 밤이 찾아왔고 차가운 밤공기는 온 산골로 퍼져 나갔다.
장작난로는 지글거리며 활활 타올랐고 바람 들어 오는곳도 없었다. 훈훈한 가운데 잠자리에 들었다. 이젠 됐다 싶었다.
한데 또 문제가 생겼다. 장작이 잘 타는것은 좋은데 너무 빨리 타 버리는 바람에 자다가 일어나 장작을 넣는것이 문제였다.
공기 조정기로 불의 강약을 조정해 주어도 별 효과를 보지 못 했다. 잠이 들만하면 일어나 장작 보충을 해야하니...
그것도 서너번은 깨어야 아침까지 무사히 설 잠 이나마 잘 수 있었다.이젠 별 방법이 없었다. 빨리 여름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그리고 빠른 시간안에 우리의 집을 짓는 방법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또다른 문제가 발생 했다.
화장실이 없다는 것 이었다. 할 수 없이 다급한 대로 앞에 있는 빈집의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수 밖에...
다행이 집 건너에는 오래전에 지은 허름한 집이 있었는데 여름에만 휴가 기간에 별장으로 사용하는 도시사람 소유의 집 이었다. 우선은 그곳을 사용 하기로 하고 화장실 짓는 일부터 착수하게 되었다.
화장실에 대한 웃지 못 할 일이 있었다.
때는 이월 말 경... 무척 추운 겨울 이었지만 4월 중순에 이사도 해야하고 집지을 자재며 공구도 미리 챙겨야 했기 때문에 자주 정선에 와야 했었다. 그때마다 잠 자리 때문에 항상 불편을 겪었고 불편 해소를 위해서는 컨테이너를 보수하여 임시거처라도 시급히 마련 하는것이 급선무 였다.날씨는 추웠지만 컨테이너 내부 수리를 위하여 공구를 챙겨 간신히 선잠을 자며 작업을 했다.
혼자 있으니 누가 챙겨 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근근히 끼니를 챙기며 일 을 해 나갔다.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근 일주일이 넘는 작업기간 동안 생리 작용의 해결을 위해서는 화장실은 필요 했다.대충 아무곳이나 살펴서 해결하면 되기도 했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하여 앞집의 화장실을 주인의 사전 허락도 없이 무단 사용하게 되었다.
화장실은 깨끗했다. 정리도 잘 되어 있고 깔끔하게 사용 하였다. 하지만 똥통에 문제가 있었다.
지난 여름 다니러 와서 사용을 하긴 한 것 같은데 내용물이 꽉 차올라 간당간당 수준 이었다.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고 급한대로 볼 일을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매일 이용 하다보니 추운 날씨라 넘칠 염려는 없었지만 산처럼 솟아 오르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다.마치 한라산이 솟아 오른것 처럼 뾰족하게 산이 하나 만들어져 있었다.
도저히 쭈그리고 앉을수가 없었다. 똥 산이 엉덩이를 치받으려고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데 급하니 어정쩡한 자세로 볼 일을 보았다. 그리고 무사히 일 을 끝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힘도 들었을 법 한데도 일을 마친 후련함에 다음 일은 생각치도 않고 다시 일에 몰두 하였다. 아니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다음날 드디어 문제가 터졌다. 도저히 앉을 수 없게 똥탑이 쌓여 있으니 도저히 볼 일을 볼 수가 없었다. 급한대로 삽을 가져와 똥탑을 퍼 보려 했으나 꽁꽁 얼어버린 똥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함마와 곡괭이까지 동원하는 대공사(?)를 하게 되었다.
우선 함마로 내려치니 워낙 똥산이 밋밋하여 똥가루만 날리고 끄떡도 하지 않았다.상황이 그러니 다시 곡괭이를 집어 들었다. 휙~ 곡괭이가 똥탑을 찍는 순간 똥 덩어리가 사방으로 튀었다. 하~~....
옷 이며 얼굴 이며 곡괭이를 내리칠 때 마다 예고도 없이 튀어 올랐다. 하지만 멈출 수 는 없었다.
왜냐하면 볼 일은 봐야 했기 때문 이었다. 똥탑은 드디어 무너지고 내 몰골은 만신창이가 되었다.하지만 치열한 똥탑과의 싸움에서 드디어 승리를 쟁취(?) 했다.ㅎㅎㅎㅎ... 아무튼 그놈의 똥탑 때문에 스타일 확~ 구긴 하루였다.ㅎㅎㅎ...
그 일, 즉 똥탑을 허물고 다음부터는 화장실 가는 일이 즐거웠다나 ㅎㅎㅎㅎ...
어쨌든 열심히 작업을 한 결과 컨테이너 내부 공사가 무사히 끝이 났다. 똥탑과의 싸움도 끝이 났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201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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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
▲ © 행복세종타임즈
‘부어라~ 마셔라~’ ‘한잔 더, 한잔 더!’ 술이 술을 먹는 12월이 돌아왔다. 우리나라 12월 술 소비량이 연간 소비량의 절반이라고 한다. 송년회라는 말 대신에 ‘술년회’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이다. 특히 우리의 술 문화를 살펴보면 원 샷 하기, 돌려 마시기, 폭탄주, 2차·3차 가기 등 과격하게 즐기는 것들이 많다. 이 모든 것들이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문화다. 과도한 음주는 우리 몸의 간, 대장, 심혈관, 위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각종 모임과 회식자리가 많은 연말에 내 간을 보호할 수 있는 조그만 요령과 과음 후 숙취를 해소하는 요령을 알아보자.
첫 번째는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매일같이 술 마시는 것은 좋지 않다. 만약 과음을 했다면 적어도 2~3일은 쉬어야 간세포의 해독기능이 살아난다.
두 번째는 공복에 술을 마시는 것은 되도록 피하고, 안주는 기름이 많은 육류보다는 담백한 음식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권장하는 안주는 생선찌개, 해산물, 샐러드, 과일 등이다. 또한 짜고 매운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는 것이 좋다.
세 번째는 술은 천천히 마셔야 한다. 원 샷 하기, 폭탄주 마시기는 피해야 한다. 맥주나 음료수의 탄산에 소주나 양주를 섞어 마시게 되면 체내 흡수력이 높아져 간독성이 훨씬 높아질 수 있다.
과음을 하고나서 숙취에 좋은 음식은 복어, 북어, 대구 같은 생선탕이 좋다. 라면, 짬뽕과 같은 맵고 자극적은 음식은 오히려 위장에 더욱 부담을 주게 되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또한 콩나물, 브로콜리, 미나리, 토마토, 오이도 숙취에 좋은 음식이다.
가장 좋은 숙취는 충분한 수면과 수분공급이다. 과음으로 인한 전해질 부족과 탈수는 충분한 수분섭취를 통해 보충해주고, 양질의 수면을 통해서 몸의 리듬을 회복해주는 것이 제일 좋다.
201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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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감증 국회의원
▲ © 행복세종타임즈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불감증이란 말이 있다. 안전불감증과 도덕불감증, 부패불감증, 성불감증 등이다. 불감증(不感症)이란 말은 말 그대로 감각이 둔하거나 익숙해져서 별다른 느낌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을 일컫는다. 사실 성적(性的))인 용어나 심리학 용어로 쓰이고 있지만 여기에 수식어가 따라 붙으면서 안전불감증, 도덕불감증 등으로 안전이나 도덕에 대한 무감각과 질타성(叱咤性)) 의미가 함축된다. 그래서 불감증이란 말에 어떤 접두어를 붙이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 현상과 사안에 대한 줄임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성적용어 이외로서의 용어로 활용범위가 넓어졌다.
일부 국회의원이란 자들이 최근 또는 그동안 벌였던 일련의 사건 및 사태들을 불감증이란 용어로 축약해 이들의 어처구니없는 공인의 행태를 정리해 보자. 먼저 신기남이란 국회의원의 사례이다. 경희대 로스쿨 졸업시험에 낙방한 아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학사행정에 개입하여 세간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아들 로스쿨 구제 청탁 및 압력’ 의혹은 고발대상으로 아마도 관련 사안에 대한 수사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이란 신분으로 자신의 아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압력을 행사하였다는 사실 자체부터가 참으로 사려가 깊지 못한 행동이다. 로스쿨 관련 학생들은 물론 국민들의 비난이 거세다. 국민이 위임한 국회의원이란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자식을 해당학교 로스쿨 졸업시험에 통과시켜 변호사를 만들려고 한 이런 못된 행동에 불감증을 붙여본다면 공인의식불감증과 부정부패불법불감증, 직무불감증, 수치심불감증이다. 4선의 중진 국회의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그간 직무를 수행하면서 이것 말고도 다른 청탁 버릇이나 압력 행위가 타성이 되어 이른바 청탁불감증에 젖어 있는지 모를 일이다. 다시 말해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는 그럴만한 연조가 있는 중진의원이 ‘공과 사’ 조차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가관행위는 또 있다. 국회에서 ‘하늘아래 딱 한 송이’란 자신의 시집을 남의 회사 신용카드체크기까지 동원하여 판매한 국회의원인 노영민 의원의 황당 행위이다. 국민들은 아연실색했다. 정당대표의 비서실장까지 하고 국회 산업자원위원장이란 중차대한 직책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하게 됐는지, 머리가 있는 사람인지 그 인격과 공인으로서의 수준을 국민들은 의심하고 있다. 얼마나 좋은 시집이고 얼마나 필요한 시집인지는 모르지만 장사꾼이 되어 판매인지 강매인지 모를 행위를 한 것이다. 그것도 국회에서 버젓이 자행했다는 사실에 모두가 경악하고 있다. 낯이 두꺼워도 이렇게 두꺼운가. 이것을 후안무치(厚顔無恥)라고 한다. 수치심불감증과 도덕불감증이 극치를 이룬다. 자신이 책장사인지 국회의원인지 사리분별조차 하지 못하니 국민들만 억장이 무너진다. 이것은 부패불감증에 다름이 아니다. 국회의원이란 직분을 이용한 이런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자신의 책이름처럼 ‘하늘아래 딱 한 사람’이다. 국민과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고 올곧은 일을 생각해야 하는 국회의원들이 불감증의 정도가 이 모양이니 정말 한심하다. 이런 함량미달인 이런 사람이 국회의원과 산업자원위원장으로 중책을 맡고 있었으니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격 이었다. 무슨 일이 제대로 되었겠는가 싶다. 모두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청탁불감증 사례도 있다. ‘윤후덕의 따뜻한 동행’이란 책을 펴낸 윤후덕 이란 국회의원도 지나온 삶이 고스란히 담겨 문전성시를 이루었다는 2011년도 출판기념회의 기사가 인터넷을 장식하고 있다. 항상 낮은 자세로 따뜻한 동행을 강조하며 참으로 훌륭한 인사로 포장되어 있다. 이대로라면 정말 국민들의 박수가 늘 끊이질 않고 지역구인 파주에서도 찬사가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2년 전인 2013년 자신의 딸이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LG디스플레이의 경력 변호사 채용에 합격하는 과정에서 회사 측에 전화를 걸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고발까지 당했다. 당사자도 사과를 했다. 안 들켰으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이것은 직권남용죄와 뇌물죄도 적용된다고 한다. 아무튼 청탁불감증과 도덕불감증, 부패불감증, 국민불감증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따뜻한 동행인지 묻고 싶다. 작은 것도 침을 튀기는 해당 정당도 어쩐 일인지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어물쩍 넘어갔다. 한마디로 목불인견(目不忍見) 이다.
이처럼 이런 저런 비리와 부패로 개망신을 당한 국회의원이 19대 국회에서 20명이 넘는다고 한다. 적지 않은 숫자이다. 이들은 법의 심판대에 올라 감옥에 갔거나 현재 진행형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이다. 이들은 이른바 정당의 검증과정인 공천심사과정을 거친 사람들이다. 하지만 검증이 무색할 정도로 각종 불감증으로 얼룩져 대한민국의 제 19대 국회가 만신창이 되어버렸다. 어떤 사건이 벌어질 때가 돼서야 생소한 얼굴을 접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한마디로 “처음 보는 얼굴이네! 저런 사람도 있었어?”이다. 그런데 매스컴에 제법 알려진 불감증 국회의원들은 아는 만큼 국민들의 분노가 더욱 치민다. 머쓱하고 씁쓰레한 얼굴표정과 이중성 민낯이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그동안 속았다는 국민들의 배신감이 더욱 크다. “저 사람마저”란 탄식을 국민들은 토로(吐露)한다.
내년 총선에도 갖가지 공천심사조건을 갖다 붙이고 마치 최상의 후보자를 내세우는 양 요란을 떨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그동안 지역감정에 기대고 기득권에 기대어 반사이익을 챙겨온 국회의원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니 제대로 검증이 될 리가 없다. 국민들도 그동안 학연, 지연, 혈연 등에 얽매이지는 않았는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참으로 역겨운 불감증 국회의원들의 민낯을 보게 한 책임이 스스로에 있다. 총선을 앞두고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는 여야 그 어느 정당을 막론하고 대대적인 자기혁신이 절박하다. 허구 헌 날 그 밥에 그 나물이면 안 된다. 불감증 국회의원들이 다시 국회에 입성하고자 한다면 언감생심(焉敢生心) 꿈조차 꾸지 못하도록 철저한 검증노력이 필요하다. 19대 국회는 모든 면에서 한마디로 졸작이고 낙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가오는 20대 국회는 성숙하고 수준이 높은 국회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잃었던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고 정치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정치개혁, 정당개혁은 필수이다. 국민들의 날카로운 시선조차 불감증이면 안 된다. 국민배신의 불감증 국회의원들을 과감히 솎아내야 한다.
201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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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이여 힘내라
▲ © 행복세종타임즈
대한민국이 '헬조선'임을 보여주는 화면이 인터넷에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헬조선(Hell朝鮮)이란 2010년에 등장한 대한민국의 인터넷 신조어인데 헬Hell:지옥과 조선朝鮮의 합성어로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의미다. 특정 커뮤니티의 극소수의 네티즌들이 사용했으나 언론이 쓰면서 더 알려지게 되었다.
지난 1일 오후 한 트위터 사용자는 트위터에 60개의 뉴스 방송 화면을 모아 올렸다. 각 방송화면에서 전하고 있는 뉴스는 , 등 한국의 열악한 삶의 질을 보여주는 통계의 화면을 사진으로 올렸다. 이 사람은 트위터에서 "한국이 놀라운 60가지 이유, 정말 놀랍다고 하면서 "이 외에도 최저 수면시간, 가계부채 증가율, 국가 부채 증가율, 산업재해 사망, 교통사고 사망, 실업률 증가율, 사교육비지출 등 이삼십 여 가지가 더 있는데, 동영상 보도를 찾기 어려워서 뺐다"고 설명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삶의 질이 최악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사회에선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이른바 '3포세대'도 등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즈음은 한발 더 나아가 3포세대가 아니라 '희망'과 '꿈'마저 내려놨다고 '7포세대'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2030세대 2천 8백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명 중 1명은 자신을 이른바 '5포 세대'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한배를 탔다. 그리고 우리는 이 생태적 한계를 극복하기는 좀처럼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를 위해서는 '같이 잘해보는' 길밖에 없다. 열심히 노력하면 나도 남들처럼 잘 살 수 있다. 희망이 없는 사회는 참 불행한 사회이지 않는가.
그런데 이때 모두 함께나 '모두 같이'가 취하는 방향이 매우 중요하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성장을 명목으로 경쟁과 승자독식을 부추기는 황폐한 사회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이제 비인간적일 뿐 아니라 비효율적 시대착오라는 진단에도 모두 공감하고 있다. 그런 방식이 내세운 '파이 키우기'나 '낙수효과' 같은 정치적 수사를 말하는 정치인조차 냉소의 대상이 되는 오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제 '이렇게 살지 않겠다'는 기운이 좀체 응집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지금 이 사회에 실제로 존재하는 붕괴 직전의 위태로운 삶들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만한 여유가 없는 것이다. 개개인의 불안이 증폭되어 이제 각자 알아서 살아남기 식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다시 예전의 새마을운동처럼 “같이 잘살아보자 같이 잘해보자”로 바꾸기 위해선 사회여론을 선도하는 오피니언opinion leader들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희망이란 위를 보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사회학자들이 진단하는 한국사회에서 갈수록 부富의 파이를 차지한 이들이 흘려보내는 부스러기 자체가 없어졌다고 말한다. 이것을 바꾸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선순환구조로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란 언제나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 변화여야 한다. 그것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변화라는 가정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변화를 말할 것이다. 일 년 내내 이슈가 되고 있는 ‘갑질횡포’의 속사정도 알고 보면 사회적 보편타당성이 결여된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는 희망이란 위를 보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래의 민초들이나 미생으로부터 채워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래로부터 변화를 이끌기 위해선 바로 위의 계층인 오피니언들의 올바른 역할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오피니언이란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나 태도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기 때문이고 언론의 대부분은 이를 취재하여 선도그룹의 변화를 보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못된 60가지가 있다면 우리가 잘하는 60가지도 있다. 잘못된 것도 고쳐야하지만 긍정의 60가지는 우리의 희망이다. 부끄러운 우리의 그늘도 노력으로 양지를 만들 수 있다. 그것을 우리의 희망으로 만들자.
지금 우리는 날이 갈수록 청년실업은 꼬리를 물고 그 위세가 크다. 하지만 오피니언들이 다시 한 번 혁신을 통해서 창조경제에 불을 붙이는데 동참할 수 있다면 모든 하위그룹도 이에 동조하여 희망의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국가는 이들에게 희망을 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기업인들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창조혁신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희망은 밑에서부터 자라고 채워지는 것처럼 오피니언들의 희망가가 전체로 울려 퍼지기를 빌어마지 않으며 분발을 촉구한다, 우리 모두 인문학적인 성찰로서 한 사람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한 사람을 위하여 횃불을 밝혀보자. 분명 그 앞에 희망이 자라고 있을 것이다. 오피니언들이여 힘내라, 분발해라 그대들이 우리의 희망이다.
2015-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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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의 산골사는 이야기
▲ © 행복세종타임즈
첫 발자국
2003년 4월 15일 새벽 4시30분 ...!
싸늘한 공기를 가르며 새로 구입한 1ton 트럭의 경쾌한 금속성이 새벽을 깨우고 있었다.
화물칸에는 나머지 이삿짐이 가득 실려 있었고 우리 부부는 혹시 잊은것이 없는지 집 안팍을 이리저리 둘러 보았다.
모든 것이 이상없이 잘 마무리가 되었다.
두 아들 에게도 오지 말라고 했다.공연히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출발만 하면 된다.
우리 부부는 차에 올라 그간 살던 정든집을 뒤로하고 서울을 떠나고 있는중 이었다.
어찌보면 빚쟁이에 몰려 새벽에 아무도 몰래 도망치듯이 그렇게 서울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긴 세월 그래도 정 붙이며 살던 그런 곳 이었지만 우리는 뒤도 안 돌아보고 정선으로의 첫 발자국을 그렇게 내 디뎠다.
아직 사방은 캄캄했고 인도에는 가끔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 외에는 그나마 차분한 시간 이었다.
그렇게 조용한 시간의 터널을 뚫고 서서히 서울을 빠져 나왔다.
중부 고속도로로 접어들 즈음 사방은 천천히 어둠속에서 깨어나고 있었고 저 멀리서 아침이 찾아오고 있었다.
차를 타고 출발한 후 우리는 한마디의 대화도 없이 트럭의 금속성과 어두움을 익히며 그냥 그렇게 내 달렸다.
중부고속도로를 지나 어느덧 영동 고속도로 분기점에 접어 들고 있었다.
차창밖 으로는 봄기운이 완연한 찬란한 아침이 어느새 활짝 열려 있었다.
그 동안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키던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을뿐, 그동안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막상 가보지도 않았던 강원도 정선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오랜 침묵 끝에 내가 말을 걸었다.
" 여보... 괜찮아..."
아내는 별 이상 없다는듯
" 나는 괜찮아..."
하고 나를 바라 보았다.
나는 한편으론 미안한 생각에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단호하고 경쾌하게 대답해 주는 아내가 고마웠다.
차는 영동 고속도로를 달려 문막 휴게소에 도착 했다.
우리는 아침 식사겸 휴식을 위해 휴게소에 잠시 머물기로 했다.
아침 식사로 소머리국밥을 한그릇씩 비우고 자판기에서 커피도 마시며 조금씩 마음을 편안하게 안정시키고 있었다.
약 30분간의 휴식을 끝내고 다시 정선으로의 갈 길을 재촉 했다.
새말 인터체인지에서 국도를 따라 안흥 찐빵 마을을 지나 점점 도로가 험해지는것을 느끼며 평창을 지났다.
산세는 점점 가파라지며 도로는 꾸불꾸불 춤을 추었고 오르락 내리락을 수차례, 어느덧 정선의 관문격인 비행기재 터널을
지나 점점 정선속으로 빨려 들어 가고 있었다.
자연의 신비는 극치를 이루었고 봄기운으로 물이 오른 산과 들은 연한 녹색의 향연을 뽐내고 있었다.
간간히 보이는 나즈막한 농촌의 집들은 정겹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느새 차는 가리왕산 자연 휴양림을 지나 정선 읍내로 들어서고 있었고 자그마한 시골도시의 정겨움이 우리를 따뜻하게
환영해 주는듯 했다.
정선읍을 지나 약 20분경...
우리는 드디어 우리가 살아갈 약속의 땅 입구에 도착했다.
하늘은 맑고 높은 하늘엔 새털구름이 멋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곳 입구에서 목적지 까지는 약 30분...!
비포장도로에 그것도 산길, 길 이라야 경운기가 힘겹게 다닐 정도의 잡초가 우거진 길 아닌 길을따라 개울을 7군데를
건너야 우리의 최종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길은 돌 투성이의 거친길 이었다. 꼬불꼬불 산길을 돌고 돌아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 버리기라도 하듯 개울을 지나
비틀비틀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 한발한발 더디게 다가갔다. 좌우로는 우거진 숲으로 사열하듯 빼곡했고 하늘은 숲에 가려
가끔 힐끔 거릴뿐 침침한 숲 터널을 한참을 더듬어 올라가야했다.
드디어 저멀리 빼꿈히우리의 터전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을 떠나 4시간여 만에 우리의 목적지에 어렵게 도착할 수 있었다.
사방은 고요했고 봄볕은 따사로웠다. 숲 사이로뚫린 하늘은 푸르다 못해 푹 빠지고 싶을 정도로 맑고 깊었다.
숲속에선 이름모를 산새들의 합창소리가 우리를 환영이라도 해주는것 처럼 소란 스러웠다.
아니면 이 조용한 산속 자신들의 보금자리에 왠 불청객이 나타나 무슨일인가 궁금해서 그런지도 모를일 이었다.
우리 부부는 따사로운 햇살의 축복과봄날의 싱그러움속에 마음의 짐을 털어 버리고 최종 목적지에 첫 발자국을
내딛게 되었다.
2015-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