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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 정말 바로 알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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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 조상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는 말도 있다. 말 속에 뼈가 있다는 말인데 어떻게 말 속에 뼈가 있겠는가 하지만 기실 예사로운 말에 단단한 속뜻이 있다는 말로서 의미심장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은 글자 그대로는 말의 길이 끊어졌다는 것인데 말이 안 되는 것을 일컫는다. 개소리라는 비속어도 있다. 이는 조리 없고 당치않을 말을 표현하는 비속어이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은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교묘하게 꾸미는 말과 은근한 얼굴표정을 가짜로 짓는 것을 말한다. 감언이설(甘言利說)은 귀가 솔깃하도록 남의 비위를 맞추거나 이로운 조건을 내세워 꾀는 말이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하는 견강부회(牽强附會)도 있다. 삼촌지설 강어백만(三寸之舌, 彊於百萬)은 ’세치 혀가 백만대군 보다 강하다‘는 말이다. 우리 속담에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입과 혀는 재앙과 근심의 문이고, 몸을 망치는 도끼다" 혀를 함부로 놀리지 말고, 말 한 마디도 조심하라는 의미이다.
어린아이들이 말을 부모로부터 배울 때도 좋은 말 아름다운 생각을 표현하도록 언어훈련을 하게 된다. 욕을 하게 되면 꾸중을 하고 바른 말 고운 말을 쓰도록 하는 이유는 바로 사회생활에 있어 말의 중요성을 몸으로 체득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실제 어린이 집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전 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말과 글은 아주 중요한 표현수단으로 자리하고 있다. 전 세계 언어는 줄잡아 2천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각 나라마다 고유한 말과 글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태어나서부터 자신들만의 말을 배우고 살아간다. 글을 몰라도 말을 하고 사는 민족들이 소개되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된다. 무엇보다도 언어 즉 말과 글은 인간의 의사 소통의 도구로서 필수불가결한 삶의 요소임이 분명하다. 매일 일상에서 말과 글을 사용하고 살아가지만 말 한마디 잘못해서 다툼이 일어나고 살인을 하고 사회지도층이나 정치인들의 말이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말을 잘하는 것과 말을 바르게 하는 것은 아주 다른 차이를 불러오게 된다. 말을 잘못해서 잡혀가던 시절도 있었고 말을 감시하던 시절도 있었다. 한마디로 말조심 입조심이라는 말이 생긴 이유이다.
요즘 정세균총리가 코로나 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신촌의 상인을 위로하기 위하여 만난 자리에서 “손님이 적어 편하시겠네요!”라고 한 농담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란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정총리는 발언이 논란이 되자 "어려움을 겪는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사과했지만 농담 삼아 했다는 말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작금의 상황으로 볼 때 생업조차 위협을 받는 위급한 처지에 놓인 소상공인들에게 던진 농담치고는 지나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물론 총리도 악의적인 마음을 갖고 던진 발언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번 잘못 던진 말이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야당들의 비난 공격은 그야말로 집중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SNS에서도 비난 글이 넘치고 있다. 요즘 장사가 되지 않아 고통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상인측은 선의가 왜곡되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격려를 받은 상인이나 직원은 기분 좋게 하루를 보냈는데 난데없이 매장과 총리가 구설에 오르내려 당혹스럽다고 했다. 정작 발언을 들은 당사자는 “손님이 적으니 편하시겠네요!'라는 발언의 취지가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근무강도가 약해져서 편하겠다는 노동자 입장에서 한 일상적인 내용이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의로 던진 농담조차도 작금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과하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사태가 다시금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를 보면 사회지도층이나 정치인들이 무심결에 던진 말 한마디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파장을 일으켰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이해찬 대표와 박인숙국회의원의 정신장애인 비하발언이 바로 그것이다. 장애인단체와 정신장애인가족단체들이 성토하며 큰 파문을 일으켰다. 결국 부적절한 발언이었다고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요즘 기독교계의 신성모독 발언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 해 10월 청와대 앞 집회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전광훈목사가 던진 발언이다. 말인 즉 “하나님 꼼짝마,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말이다. 일반인들이 들어도 섬뜩한 말을 목회자가 과연 이런 말을 할 수 있나 모두가 귀를 의심했다고 한다. 개신교 대형 교단들이 포함된 단체 '8개 교단 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 협의회'가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고 발언한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에 대해 "한국 교회의 신뢰와 전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비신앙적이라는 것이다. 개신교계에서 거센 비판이 이어지자 전 목사는 지난 1월 30일 열린 한기총 총회에서 "당시 성령이 충만했다"라면서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발언이 맞다"라고 인정했다. 기독계에서는 과연 이런 궤변이 있을 수 있느냐는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한마디로 “고무신도 짚신이 있다”라는 식이라는 것이다. 이는 종교적으로도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넘었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 짓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명분을 갖고 무슨 변명을 하더라고 이는 공감과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발언이 되고 있다. 좋지 않은 발언 역사의 한자리를 분명히 차지하고 있다. 과거에 정동영의원이 던진 “노인은 투표 말고 쉬세요”라는 노인폄하발언도 그 파장이 오래갔다. 발언 당사자도 곤욕을 치렀다. 지금까지도 정치적 상처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라서 거론되는 모든 것은 검색을 치면 그대로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무 말이나 던진다고 다 말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어불성설(語不成說) 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말이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아니한 것이다. 즉 “고무신도 짝이 있다”를 “고무신도 짚신이 있다”라고 하면 말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궤변(詭辯)과 같은 것이다. 얼른 들으면 옳은 것 같지만 실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억지로 둘러대어 합리화시키려는 허위적인 변론이다. 그래서 “궤변을 늘어놓는다!” 라는 말이 생겼다. 말이나 글이나 마찬가지이다. SNS에 글을 잘못 올리면 그 파장이 엄청나다. 캡처를 해서 삽시간에 퍼진다. 댓글조작도 마찬가지이다. 진실을 포장한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여론을 호도하려는 악의적인 시도이다. 그래서 이를 법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언어폭력도 매우 크다. 성추행도 언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여성들에게 잘못 던지 농담조의 말 한마디가 이른바 “미투’라는 이름으로 개망신을 자초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시대이다.
과거 아나운서가 인기 프로그램에 나와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있는 자는 물을 좋아한다는 의미를 갖는 논어에 나오는 ‘요산요수(樂山樂水)’를 ‘낙산낙수’로 말하다가 망신을 당하고 그 뒤부터는 방송에서 보이지 않았다. 좋아할 ‘요’를 즐길 ‘락’으로 풀이한 때문이다. 이처럼 작금의 사태를 보면 말이나 글이나 언어표현을 극히 정제되어야 함을 보게 된다. 특히 사회지도층의 언어는 더 더욱 그렇다. 말을 잘한다고 자랑하지 말고 글을 잘 쓴다고 자랑할 일이 아니다. 언제나 세치 혀를 잘못 사용하면 수십 년을 쌓은 명성을 일순간에 날리고 패가망신을 당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말과 글은 자칫 화를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뭐니 뭐니 해도 희대의 망발은 “하나님 꼼짝 마,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가 아닐 수 없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종교지도자이건 언어학자이건 그 누구건 나왔으면 좋겠다. 교만과 오만을 넘어 까칠한 망발(妄發)로 국민은 물론 신자들조차 경악케하는 목회자의 그릇된 허상의 발언은 그 무엇을 추구한다하더라도 이미 정도가 아니며 “정말 아니올시다!”라는 중론이다. ‘망발’이 어떻게 ‘성령’일 수 있는가 독실한 신자들은 묻고 있다. ‘요산요수’를 ‘낙산낙수’라고 주장하는 궤변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말은 곧 인격이고 품격이고 삶의 발자취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자신이 던진 말은 책임을 져야 한다. 얼렁뚱땅 넘겨서도 안 된다. 비겁함을 보이지 말고 말이다. 특히 지도층들은 말과 글을 우습게 알지 말아야 한다. 분명 바로 알아야 한다. 자칫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엄청난 것이다. 정말 “말과 글 바로 알고 삽시다!”라는 범국민적 캠페인이 절실한 시점인 것 같다. 다시금 강조하거니와 ‘세치의 혀’를 다시금 생각할 때이다.
2020-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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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코로나 바이러스와 트렌스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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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모를 숫자가 세어진다. 자고 나면 늘어만 가는 확진자 및 사망자의 숫자가 이제는 무감각해지기까지 한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공포가 중국으로부터 이 땅에 전해진 지 벌써 한달이 넘어가고 있다.
중국만 놓고 보면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악화일로에 있고,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중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불편하다. 그리고 중국인 전체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는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중국에 대한 반중 정서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사드 보복으로 인해 우리가 받은 경제적 고통을 생각하면 反중국 정서를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중국이 바이러스의 진원지가 된 것이 처음도 아니다. 2002년 사스도 중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하여 중국에 대한 정서가 반대를 지나 혐오로 이어지면 이는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 대상이 중국이어서가 아니다. 혐오가 인류 보편의 감정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자를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정치권에서는 중국 눈치 보기라며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중국인들의 전면적인 입국 금지를 주장하고 있는데, 그 기저에는 우리의 세금으로 외국인들이 건강보험 혜택을 보고 있다라는 불만이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설사 그러한 주장이 사실이라해도 그것은 제도적인 보완을 통해 풀어나갈 문제이다.
우한 거주 교민을 국내 시설로 이송시키는 과정에서 공무원 시설 인근 주민의 반대로 처음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다수는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정부 정책을 비판한 것이고, 교민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중국에 거주했던 자가 내 주변에 온다는 사실만으로 두려움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을 수 밖에 없는 상식적인 감정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두려움도 있지만, 다행히도 그걸 극복할 수 있는 힘도 있다. 포용정신, 인류애 등이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그러한 인류애이다
최근 서울의 한 여대에 합격을 했던 트렌스젠더가 자진하여 합격을 포기한 사실이 보도되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가 그것을 포용하기에는 아직 사회적 합의가 덜 된 듯 하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는 감염과 죽음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는데 반해, 트렌스젠더는 이러한 위협이 없음에도 사람들은 이를 용인하지 않는다. 해당 대학내에서 일부는 찬성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함께 하기를 거부한다고 하여 그들이 틀렸다거나 잘못되었다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퀴어문화축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우리나라만 해도 점차 퀴어 축제를 개최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고 있다. 성소수자도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으로 함께 더불어서 살 수 있는 지혜를 논의하면 좋겠다.
라는 피케팅을 통해 중국 거주 교민을 따뜻하게 맞이 해준 최초의 아산 시민을 기억한다. 그 분이라고 두려움이 없었을까 ? 그럼에도 인류애라는 보편적인 사랑을 통해 이 사회가 더불어서 살아가야 하는 걸 보여준 그 분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우리 사회가 좀 더 포용적인 사회가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202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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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확인된 확진자들의 무방비 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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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코로나의 불안심리가 날로 고조되고 있다. 23번째 확진자인 57세 중국 여성의 동선을 보면 그야말로 활보이다.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쇼핑을 하고 이마트마포공덕점을 찾았다.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과 서대문구 숙소 등을 오간 것으로 드러났다. 23명을 접촉했다고 질병관리본부는 밝혔다. 관광목적으로 입국한 전수조사 대상자 중에 한명이라고 한다. 매장을 돌아다닌 세부동선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우려하던 장면이다. 롯데백화점 본점과 이마트마포공덕점은 휴점에 들어갔다. 물론 임시휴점이지만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문제는 한번 확진자가 다녀간 곳에는 영화관이건 식당이건 목욕탕이건 손님의 발길이 뚝 끊어진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개점 휴업상태인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국민들이 즉각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방역을 해놓았다고 해도 안 간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손세정제를 써도 불안감은 여전하다. 과도한 불안을 갖지 말라는 말이 오히려 공허하게 들릴 정도이다.
과거 메르스 때도 감염자가 이곳저곳을 활보하는 사태가 빚어져 난리를 피운 적이 있다. 신종코로나도 마찬가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확진자를 찾고 접촉자들의 추적관리를 강화하고 있지만 이런 허점이 드러나자 자화자찬 자치단체장의 발언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을 지경이다. 지금이 어느 시기인데 자화자찬 방역시스템을 논하는지 참으로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역에서 확진자들이 다녀간 곳을 중심으로 심각한 공동화현상을 빚고 있는 것을 보면 더 더욱 만심해서는 안 되는 상황임이 분명하다. 벌써 서울에서는 롯데백화점 본점이 뚫리고 대형마트가 사정권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바로 이런 점을 시사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19번째 확진자가 서울 송파구 거주자로 확인되면서 인근 초등학교 4곳이 휴업을 결정했다. 확진자가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파트 단지 주변에는 두 곳의 초등학교가 있다. 송파구 소재 빵집도 다니고 치킨집도 다니고 칼국수집도 다녔다. 확진자들을 보면 일반인들보다 더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17번째 확진자도 서울역에서 순두부를 먹고 빵집도 다니고 동대구도 다녀오고 KTX도 타고 SRT도 타고 버스도 타고 이마트도 다니고 약국도 다니고 병원도 다니고 본죽도 먹고 정말 확진자 아닌 사람들보다 더 곳곳을 누비며 다녔다. 이런데도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생각해보라. 국민들은 불안 그 자체이다. 이런데도 방역을 잘하고 관리를 잘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사람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가 묻고 싶다. 부천시에 거주하는 12번째와 14번째 확진자 부부는 지난 달 22일 가족과 함께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강릉에 가서 한 리조트에 묵은 것으로 확인됐다. 강릉에서도 커피숍 음식점을 들렀고 1박 후 KTX를 타고 서울역으로 이동했다. 뒤늦게 찾아 격리조치를 한다느니 난리를 피우고는 있지만 강릉 리조트는 자체 휴업에 돌입하고 주변 식당들도 개점휴업 상태이다. 특히 12번째 확진 환자는 능동감시를 받지 않았던 12일 동안 서울과 부천, 인천, 강릉, 정동진 등 수많은 지역을 지하철과 택시 등을 타고 돌아다녔다는 충격적인 소식이다. 지난달 19일 이후 30일까지 12일 동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증상을 보였는데도 지역사회를 곳곳을 돌아다녔다는 이야기이다. CGV 부천역점에서 영화도 보았다. 당연히 영화관을 치명타를 입고 있다. 확진자가 다녀간 군산의 한 목욕탕처럼 말이다.
한 마디로 확진자들이 이렇게 휘젓고 다니고 있는데도 뒤늦게 동선을 공개하고 호들갑을 떨며 사후약방문격이다. 이런데도 방역관리를 과연 “참 잘하고 있다”라며 공치사를 함부로 할 수 있는 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은 마스크 품귀현상에다 장사가 안되어 생업에 치명타를 입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모든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다중집합장소에는 사람이 없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마스크를 쓰고도 옆 사람이 기침이라도 하면 다른 칸으로 금방 자리를 떠나버리는 사람도 있다. 주변을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를 믿고 감염을 차단하겠느냐는 것이다. 확진자들이 택시, 버스, 지하철, KTX, SRT를 타고 서울역, 수서역, 강릉역 동대구역, 인천, 부천 곳곳을 누비고 다녔는데 과연 아무 일이 없기만을 바란다면 이는 참으로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국민들을 향해 과도한 불안은 금물이라는 말은 던질 수 있는가 말이다.
중국에서는 벌써 사망자가 하루에 80명을 넘어서고 있다. 전체 사망자가 무려 700명을 넘어서고 확진자도 무려 3만 5천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른바 코로나 공포이다. 이는 정신건강과 맥을 같이 하는 대목이다. 감염자들은 감염자대로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치사율이 사스나 메르스 보다 낮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렇게 축소하려는 시도보다는 근본적인 처방을 위한 노력에 더욱 치중해야 한다. 이미 발생한 것을 놓고 과도한 불안은 금물이라느니 치사율이 낮다느니 하면서 축소 왜곡하는 사태가 빚어져서는 안 된다. 이미 전 세계적인 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황이다. WHO의 조치이다. 세계 각국에서도 신종코로나를 차단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 유럽에서는 인종차별까지 등장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국민들은 시시각각으로 전달되는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늘은 몇 명이 더 늘었는지 어떤 환자들이 그동안 어디를 활보하고 다녔는지를 꼼꼼히 챙기고 있다. 학부모들의 마음은 더욱 초조하다. 초중고 심지어 대학에 이르기 까지 휴업을 단행하고 있다. 개강도 연기하고 졸업식이나 입학식도 취소하고 있다. 확진자들이 오가거나 발생한 지역은 어김없이 휴업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유치원을 포함한 초중고 336곳이 개학 연기나 휴업에 돌입했다. 경기도 수원과 부천, 고양은 휴업명령이 시행돼 휴업이나 개학연기가 189곳으로 가장 많고 수원 99곳, 부천 77곳, 전북 군산 59곳 순으로 유치원 휴업이 많다. 신종코로나 여파가 결코 간단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들은 작금의 상황을 결코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감염염려증이 극심하다. 확진자들이 곳곳을 활보하고 있었다는 소식에 충격이 더욱 크다. 언제 어느 곳에서 덮칠지 모르는 신종코로나의 감염공포는 결코 과도한 것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서고 있다. 국민신뢰를 받으려면 동선 공개 등 정보를 감추지 않는 적극적인 조치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백번 잘해도 한번 잘못하면 방역은 무너지기 때문이다. 비상시기에 방역당국이나 정부는 보다 겸손하고 성실한 자세로 우리 국민들을 보호하려는 강력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뒤늦게 확인되는 확진자들이 감염상태에서 황당하고 무책임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감염원의 국내유입차단 대책이 새롭게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그렇다. 우리 국민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2020-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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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폐렴과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국민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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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즉 우한폐렴의 확산이 예사롭지 않다. 2일 현재 15명의 확진자가 발생해 차단과 예방조치에도 불구하고 국민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눈만 뜨면 확진자가 생기고 있다. 중국 우한에서 입국시킨 교민들은 아산과 진천에 수용되어 관리되고 있다. 초기에는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거세 큰 진통을 겪었다. 지역주민들의 거센 반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지금 3번, 4번 확진자들의 황당한 이동 동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도대체 감염자들이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은 채 친지들을 만나 불고기를 먹고 교회를 가고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니 참으로 도무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그러니 2차, 3차 감염자발생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난달 30일부터 사흘간 확진자 8명이 잇따라 확인되었다. 확산 속도인 지금 상황으로 볼 때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우려감과 불안감이 팽배하다.
지난 달 30일 WHO세계보건기구도 국제적 공중보건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다. 이는 지난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유행을 시작으로 이번이 6번째 '비상사태' 선포다. WHO의 비상사태 선포로 사람들의 공포가 가중되고 있다. 이는 현재의 상황이 말 그래도 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공포감이 밀려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라마다 중국 발 입국금지라는 초강수를 두고 있다. 심지어 북한마저 국경을 전면통제하고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인 우한폐의 진입을 차단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도 중국인들의 입국을 전면 금지하자는 청원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만큼 좌고우면하지 않고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차단하는 보다 강경한 차단대처방안이 절실하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운영되고 있지만 2차, 3차 감염자들의 발생으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일본 중동 대만 홍콩 곳곳에서 난리가 아니다. 아직 백신도 없고 차단을 막는 방법 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백신을 만들다 해도 1년 이상이나 소요된다고 하니 어찌 보면 막막하기만 하다. 중국을 비롯하여 12개국에서 개발을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지만 갈 길이 너무 멀게 느껴지기만 한다. 전 세계적인 지혜와 해법이 절실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당국의 적극적이고 철저한 대책이 우선되어야 한다. 현재는 국민들이 방역당국만 믿고 따르고 있다. 이런 점에서 국민들의 불안감과 혼선을 주어서는 안 되지만 유감스럽게도 2차, 3차 확진자들의 발생으로 불신이 커지고 있다. 도대체 이들을 어떻게 관리하였기에 백주대낮에 마구잡이도 돌아다니게 했는지 국민들은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과거 메르스 사태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서울에서 발생하여 난리를 피운 적과 흡사하다.
명칭에서도 처음에는 우한폐렴이었다고 하다가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라고 해서 일관성을 상실하고 있다. 지금도 두 가지 명칭이 혼용되고 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심각성을 따져볼 때는 우한폐렴이 더 국민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더욱 좋은 것 같다는 일반적인 여론이다. 명칭으로도 혼선이 생기고는 있지만 감염확산을 막고 국민들을 보호한다면 그 어느 것이 문제가 될 수 없다고 보다. 각종 모임이나 행사들이 취소되고 전국에 마스크 행렬이 이어지는 작금의 상황에서 지금의 확산상황을 단순하게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모두가 스스로 좀 더 철저한 관리와 조심을 해야 한다고 본다. 방역당국도 국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과감한 입국제한도 수반해야 한다. 지금의 상황은 세계적으로 비상사태임을 명심해야 한다. 교만과 허세를 부리는 대책으로는 금물이다. 사흘간 8명이 확진자가 발생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인 우한폐렴의 차단을 막기 위해 보다 근본적인 확산대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202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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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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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월 15일 총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각 정당들은 뚜렷한 대책 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다. 물론 예비후보들의 대형 현수막은 도심 속에 현란하기 조차 하다. 그렇다고 유권자들이 지금 선거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장사꾼만 요란한 격이다. 중앙의 정치는 여전히 이합집산의 이해득실만 넘쳐나는 듯하다. 선거철 대목을 보려는 야심찬 셈법만이 눈에 보인다. 국민들을 위한 고뇌보다는 달라진 준연동형비례대표제의 셈법이 복잡해지는 듯하다. 여기에다 만 18세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이 부여되자 이 역시 유불리 셈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벌써부터 젊은 세대들을 위한 선심성 행정이 등장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런 가운데 선거철을 앞두고 여론조사기관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다. 곳곳에서 여론조사가 공공연히 펼쳐지고 있다. 지역 언론사들도 예비후보들의 여론조사를 발표하며 추이를 살피고 있다. 사실 유권자들은 무관심한데도 발동을 거는 형국이다. 예비후보들의 난립에다 기존에 유력 후보의 불출마 선언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물밑에서는 뜨거운 쟁탈전이 전개되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여론조사가 제대로 들어맞는다고 보기에는 다소 성급한 느낌이라는 지적이 많다. 왜냐하면 작금의 정치상황이 국민 불신이 매우 큰 때문이다. 여론조사 기관만 ‘개발에 땀’이 나고 있다.
요즘 정치 불신만 큰 것이 아니다. 여론조사에도 그다지 큰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이 휴대폰으로 조사 의뢰를 시작하면 곧바로 끊어버리는 사례가 다반사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름이 아니라 희한한 여론조사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유명 여론조사기관의 설문에 응대하던 응답자가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고 밝혔다. 모 유명여론조사기관의 전화를 받고 응답도중 연령대를 밝히고 나서 질문이 이어졌는데 지지하는 정당의 설문에 답변을 하자 곧바로 응답자는 설문조사대상이 아니라며 끊어버렸다는 전언이다. 참으로 황당한 여론조사를 접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여론조작을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여론조사를 입맛에 맞게 하는 것인지 무작위 추출을 잘못하는 것인지 모집단 선정을 주먹구구식으로 하여 전화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행위가 드러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에서 여론을 조작하여 발표한다고 한다면 이는 엄청난 범죄행위에 다름 아니다. 무시로 펼쳐지고 있는 여론조사가 조사기관 입맛대로 이뤄진다면 이는 여론조사가 아니다. 공정한 여론조사를 통하여 진실에 대한 접근이 이뤄져야 하는데도 조작을 통하여 여론이 공개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이런 여론조사결과가 시중 여론인양 대변이 된다면 이는 사기극에 다름이 아니다. 설문조사 도중에 조사대상이 아니라는 황당한 말이 어떻게 나오는지 모를 일이다. 마치 무슨 음모가 숨어있는 듯한 이런 여론조사의 행태가 버젓이 성행하고 있다니 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작태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러다 보니까 국민들 사이에는 여론조사 자체를 불신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런 불신을 받는 여론조사를 언제까지 의존해야 하는지 국민들도 답답하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선거철 여론조사로 한 몫 챙기는 곳도 있으리라 생각이 되지만 그래도 여론조사만큼은 불공정이 아니라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이상한 설문조사 방식으로 유권자들을 우롱하는 작태는 즉각 멈춰야 한다. 이제는 선거관리위원회도 여론조사를 불공정하게 실시하는 업체들이 난립하여 선거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가려내야 할 시점이다. 대한민국의 유명 여론조사 기관들도 예외가 아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어느 여론조사 기관이 공정한 곳인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중의 이야기이다. 그것은 하도 황당한 설문조사가 유권자들을 우습게 알며 공공연히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여론조사는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진실을 호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도 바로서고 나라가 바로서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순리대로 이뤄져야 한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공적인 일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국민 불신을 자초하는 여론조사는 그 방법이나 절차, 조사기관들이 공신력을 갖출 수 있도록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유도성 질문이나 황당한 문답으로 본질을 훼손하는 것은 여론조사가 아니라 여론조작에 다름이 아니다.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가오는 4월 15일 21대 총선은 매우 중요한 선거이다. 개정된 선거법인 ‘준연동형비례대표제’가 시금석이 될 것이다. 그래서 지지하는 정당의 표가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고 지지하는 정당에 대한 여론조사조차도 갈지자를 걷는다면 이 또한 국민 불신을 자초하는 것이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놓고 정치적 잔머리와 셈법이 엄청나게 펼쳐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 세간의 지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선거는 공정하고 깨끗하게 치러져야 한다는 기본 원칙은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 가운데 참 이상한 여론조사로 엉뚱한 셈법을 하는 곳이 있다면 그 결과는 국민심판과 법적 조치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여론조사가 바로 서야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가 치러지고 정치가 바로 설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할 시점이다.
2020-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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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이 갖는 소중한 정신과 참된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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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으로 1월 1일인 오는 25일은 우리 고유명절인 설 명절이다. 영어로 ’lunar new year‘로 ’happy‘만 맨 처음에 붙이면 음력 새해를 축하하는 인사가 된다. 양력설과 음력설의 역사는 정말 민족적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지금은 설이란 이름으로 공식적인 휴일로 지정되어 있지만 역사적으로 참으로 수난 많은 명절이다. 우리 설날을 구정이라해서 타파해야할 구습으로 탄압을 하던 때가 일제 강점기이다. 피식민지인 한국인이 지내는 음력설을 없애야한다는 의미에서 구정이고 양력이야말로 신정이라는 것이다. 작곡자 윤극영의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 이래요”가 바로 이런 역사적인 아픔과 애환을 담고 있다.
해방이후에도 이중과세란 수난사가 지속되었다. 하지만 1985년 ’민속의 날‘이란 이름으로 지정해 공휴일로 지정했고 1989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음력설을 설날로 개정해 전후 하루씩을 포함해 3일을 공휴일로 지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번은 설날이 일요일이라 27일 월요일이 대체 공휴일이다. 4일간의 연휴이다. 민족의 정체성과 서구와의 물결 속에서 수난을 겪으면서도 지켜온 설날은 그만큼 우리에게는 소중한 명절이다. 아무리 일제가 탄압하고 이중과세를 이유로 탄압했지만 우리 민족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를 꺾으려는 그 어떤 정치적인 압력에도 굴하지 않았다. 신정과 구정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젊은 세대들은 다소 생소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고유명절인 음력설을 지키려는 우리 민족의 애환은 눈물겹기만 하다. 그 어떤 정치적 외압도 민족정기를 거스르지는 못했다.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고향으로 향하는 설렘이 가득한 명절이 바로 설 명절이다.
설 명절은 전통 재래시장에서부터 그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대목‘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이른바 ’설 대목‘이다. 하지만 무서운 경제 한파가 전통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기대이하의 실적으로 설 대목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의 선물세트 판매대도 한산하다고 한다. 예전 분위기나 명절 특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물론 여기에는 온라인 몰에 주도권을 빼앗긴 탓도 있지만 오프라인의 유통업계의 한숨소리는 꽁꽁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즐겁고 행복해야할 명절이 오히려 괴롭다는 자조 섞인 한숨이 나온다. 상인들이나 서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북적대고 푸짐한 선물준비에 신나는 분위기가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설날이 다가오면 그래도 다소 썰렁한 분위기가 덜하고 대목분위기가 되살아났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올해 설 경기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분석이 다소 씁쓰레 하다. 그만큼 실물경기가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정치권만 매화타령이고 ’등어리‘ 가려운데 발바닥 긁고 있다.
과거 설날을 세뱃돈을 고대하고 고운 옷을 한번 새로 입던 시절의 모습이 기성세대들에게는 추억으로 남아있는 설날이다. 콩나물시루 같은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으로 향하던 옛 정취는 사라지고 없지만 그래서 설 명절은 설 명절이다. 이제는 고속도로 정체가 설 명절을 말해주고 있다. 민족대이동이란 말이 등장한 것도 바로 명절을 지내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고 힘들더라도 설 명절은 우리네 마음에 벌써 와 있다. 중국도 최대명절인 음력설 춘제를 앞두고 민족대이동이 지난 10일부터 시작되어 다음달 18일까지 40여 일간 지속된다. 무려 30억 명 가량이 이동한다고 하니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올해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 때문에 중국도 이중고가 예상이 된다. 하지만 명절을 향한 마음은 매한가지인 것 같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라는 동요가 흘러나오면 기성세대들의 마음은 옛날로 돌아가게 된다. 설날은 누가 뭐래도 우리 민족이 지켜온 소중한 최대 명절이다. 외세에도 굴하지 않고 정치적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이를 지켜온 우리 민족이다. 우리는 그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는 민족이자 국민이다. 우리는 이를 통하여 가장 기초적이며 정상적인 마음가짐을 되새겨야 한다. 미풍양속을 지켜나가고 효와 인성을 바로 세우는 소중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바로 세배의 의미가 그렇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로의 건강과 복을 기원하고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설날이 되었으면 한다.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정신이 우리에게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역경을 딛고 일어서면 분명 좋은 날이 오리라는 확신이다.
2020년 ’우리 우리 설날‘은 모두에게 즐겁고 행복한 설날이 되고 기쁨과 소망이 넘치는 값진 명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려운 이웃들도 함께 살피면서 말이다.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가 올해도 변함없이 펼치는 홀몸 어르신, 노숙인, 힘겨운 이웃들을 향한 ’사랑의 떡국나눔‘도 우리네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21일부터 인천서구와 계양구를 시작으로 서울역과 인천 등지에서 4일간 펼쳐지게 된다. 이번 행사도 어려운 이웃을 살피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진다. 차고 넘치는 아름다운 나눔 행사로 많은 후원이 있었으면 한다. 경제 한파도 녹일 수 있는 이런 아름다운 나눔의 마음이 설 명절을 통해 예로부터 우리가 지켜온 소중한 정신이자 참된 가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2020-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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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출판기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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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출판기념회가 전국 곳곳에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출판기념회는 다름 아닌 책(冊)을 출간하여 이를 기념하는 자축(自祝)행사이기도 하다. 책을 내놓는다는 것은 작가의 정신세계와 영혼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책에 담고 있는 함축의미들이 그러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그 가치와 철학은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자서전의 경우는 작가의 삶의 역정을 살펴볼 수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자고이래(自古以來)로부터 매우 중요한 기록물로서도 그 가치가 엄청나다.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 책에 기록된 의술과 수학, 과학 등 엄청난 지식들이 유럽과 아시아 등 곳곳에 전파되어 세계문명을 변화시키며 인류 역사를 형성하여 왔을 정도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발명한 나라로도 세계사적 가치와 자부심이 매우 크다. 그것은 바로 고려시대 청주목(淸州牧)에 있었던 사찰 흥덕사(興德寺)에서 만들어진 인쇄물로 정확한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세간에서는 '직지' 또는 '직지심체요절'로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직지심체요절은 공식적으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의 승려 백운 화상이 중국에서 가져온 요절을 재구성하여 엮은 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본은 1372년 제작이 시작되어 1377년에 간행되었다. 이는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간행한 금속활자본 성경보다 78년 더 앞서니까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미루어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인류에게 남아있는 금속활자 인쇄본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 이 직지(直指)이다. 직지(直指)는 금속활자, 목판, 인쇄본(상하권), 필사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속활자는 복원판이 청주고(古)인쇄박물관에 있고, 목판도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있다. 인쇄본 중 상권은 행방불명이고 하권은 프랑스의 국립도서관 특별전시실에 있는데 구한말 프랑스에 약탈당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책(冊)의 사전적의미를 살펴보면 종이를 여러 장 묶어 맨 물건이나 일정한 목적, 내용, 체재에 맞추어 사상, 감정, 지식 따위를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여 적거나 인쇄하여 묶어 놓은 것이다. 한 인간의 내면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책에는 소설도 있고 시집, 수필, 자서전, 잡지, 심지어 교과서나 참고서도 있다. 과거에는 자주 쓰던 용어 중에 하나는 조잡하고 흥미위주의 소설책을 3류 소설책이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3류 소설도 음성적으로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책도 있었다. 분명히 책은 책이고 작가도 있었지만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내놓아라하는 베스트셀러작가들이 존재한다. 책을 읽는 습관이나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은 요즘 같이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에 너무나 중요하다. 요즘은 그래서 전자책도 나와 있다. 이른바 e-북이라 한다. 이런 저런 사연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책이다.
그런데 선거철만 다가오면 이곳저곳에서 출판기념회가 우후죽순처럼 열린다.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다. 요즘은 오는 4월 15일 21대 총선을 겨냥한 출판기념회이다. 언제 썼는지 모르는 책을 내놓고 엄청나게 요란한 출판기념회가 열리고 있다.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곳을 보면 대한민국의 베스트셀러가 탄생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기실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책보다는 한마디로 정치적인 세를 과시하는 현장인 것 같다.
그럴만한 정치인들이나 인물들이 총출동하여 출판기념회를 장식한다. 여기에다 책을 또 사야 하니까 생각이상의 돈들이 움직인다. 명분은 출판기념회이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총선의 출정식이자 정치자금 모금 창구이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일 90일 전에 마쳐야 하니까 오는 1월 15일까지 마쳐야 한다. 그래서 봇물 터지듯이 예비후보들의 출판기념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책을 쓰고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도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세상에 유명작가들의 출판기념회보다도 요란한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를 보면 아름답다는 느낌보다는 책조차 정치적인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 세간의 지적이다. 출판기념회를 연다는데 90일전까지만 하라는 공직선거법의 규제가 바로 이를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동안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정치인들이라고 출판기념회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찾아보기도 힘든 출판기념회를 꼭 선거철을 앞두고 해야만 하는 가이다. 훌륭하고 좋은 책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얼굴도장 찍으러 등장하는 인물들의 향연이 바로 출판기념회가 된다면 이는 본질을 벗어나는 것이다. 더욱이 책을 통한 정치자금 모금수단이 된다면 이 또한 출판기념회의 본질을 벗어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중차대한 기로에 놓여있다. 19대 국회, 20대 국회가 한 마디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실패작이라고 본다면 이번 총선을 그야말로 이에 대한 국민심판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가 국민 분열과 반목의 단초를 제공하고 국민들을 고통에 몰아넣는 부정적인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면 이제 이를 바로 잡아야 할 절체절명의 시기가 바로 총선임이 분명하다. 지금 국민들은 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들로부터 너무나 많이 속아왔다는 의식이 팽배하다. 바르게 다스리라는 정치가 이른바 악치가 되어 이 땅의 주인인 국민들 위에 군림한다면 이는 헌법정신에도 어긋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정치인들은 바로 이런 뜻들을 출간하는 책에 먼저 담아 바른 정치를 위한 각서와 반성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른바 언행일치가 되어야 하며 정직해야 한다. 부정부패, 불법과 탈법, 비리, 교만과 술수로부터 과감히 탈피하여 유럽의 국회의원들처럼 겸허하고 봉사하는 정신이 투철한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이런 마음과 자세를 갖추는 참된 출판기념회가 된다면 이는 가치 있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구태정치를 향한 3류 소설의 날개 짓에 불과할 것이다. 얼굴 알리는 과시의 정치에서 탈피해야 한다. 이제 새 시대 정치인들은 보다 낮은 자세로 국민을 위해 눈물짓는 참된 일꾼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언행이 일치하는 기초의식의 변화도 절실한 시점이다.
2020-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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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지옥으로 가는 세종시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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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수도 세종시는 대한민국의 사실상 행정의 중심지이자 요충지가 되었다. 지난 2012년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가 지난 2017년 착공 10년을 맞았고 올해로써 13년째로 접어들었다. 세종시 인구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2019년 11월 말 기준으로 무려 34만 4,476명을 돌파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세종시 출범당시 인구 10만 751명에 비하면 8년 만에 3배가량이 증가했고 지금도 증가속도는 개발 속도와 함께 급증하고 있다. 차량등록대수도 16만3,489대에 달하고 있다. 43개가 넘는 중앙행정기관과 15개 국책연구기관 등이 줄줄이 이전하면서 공동주택 공급과 생활편의시설들이 확충되면서 세종의 변화는 가히 괄목상대할 정도이다. 특히 대전광역시에서의 유입인구도 상당히 증가하여 이제는 세종시에서 대전시로 역으로 출퇴근하는 행렬이 아침저녁 러시아워에 줄을 잇고 있다. 투기과열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그래도 2년 전 분양된 아파트 값도 배 이상이나 올랐다. 준공된 아파트에 입주도 속속 이어지고 있다. 아직도 공동주택의 건설은 각 생활권마다 대규모로 이뤄지고 있다. 주변 교통여건에 아랑곳없이 그렇다.
그러나 세종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곱지 않다. 특히 교통문제에 관한한 한심할 정도이다. 앞을 내다보는 계획도시인지 과연 행정수도가 맞는지 모두가 의아해 하고 있다. 행복청이 추진하는 각종 건설프로젝트는 가히 매머드 급이다. BRT를 자랑하고 고속BRT를 신설하느니 하는데 도무지 감흥을 주지 못하고 있다. 광역교통망 체계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 역시 향후 심각한 교통문제 우려의 시각이 팽배하다. 지하철을 확장 연결하느니 KTX역을 만드느니 하면서 각종 프로젝트를 쏟아내 놓고 있지만 과연 지금 같은 도로망과 도로 폭을 갖고서 제 기능을 다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은 증폭되고 있다. 지금의 도로 폭을 보면 과연 행복청이 세종시의 미래비전을 담아 교통체계를 고민했는지 참으로 의아할 정도이다. 그동안 행복청장이라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스쳐 지나가면서도 이런 문제를 제대로 진단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이는 직무유기에 다름이 아니라는 지적이 강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이른바 LH가 추진해온 세종시의 건설은 도로망에 관한 한 실패작이라는 비난이 들끓고 있다. 세종시의 인구 증가와 차량문제 등을 제대로 생각하지 않은 도로설계로 편도 2차선의 국도에다 편도 2차선의 시내도로가 지금도 출퇴근 시에는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도로를 지하화하고 우회도로를 신설한다고 떠들어 대지만 나들목의 병목현상 때문에 우회도로는 심각한 체증현상을 빚고 있다. 공주에서 진입하는 지하도로와 대전 반석동으로 오가는 도로, 대덕연구단지를 오가는 길은 출퇴근시 한마디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앞으로는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KDI방면에서 대평동 쪽으로 지하도로로 진입하는 도로는 아파트로 나가는 도로를 제외하면 1차선으로 접어들려는 차량으로 뒤엉켜 늘 사고 위험까지 상존하고 있다. 들어오고 나가는 지하도로가 곳곳에서 교통사고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는 비난이 거센 이유이다. 미래 교통량을 예상하고 편도 8차선 이상 12차선으로 도로를 만들던지 아니면 만들 수 있게끔 여건을 조성했어야 하는데 아파트와 상가가 다 도로에 접하여 이제 도로 폭을 넓힌다는 것은 불가능해지고 있다. 마치 유성의 리베라 호텔 옆 도로를 연상시킨다. 이미 들어선 건물과 엄청난 재원부담으로 확장을 사실상 포기한 병목구간이기도 하다.
지금의 세종시는 도로체계로 볼 때 중소도시의 조성보다 못할 정도로 앞을 보지 못하는 건설프로젝트들이 추진되고 있다. 화려한 구호가 무색할 정도의 열악한 정주여건이 형성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교통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세종시가 교통지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두가 한심하다는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도대체 행복청 실무자들이나 LH는 도로 현장을 가 보기는 했는지 궁금하다. 행여 도로 폭을 넓혀 기부체납을 하면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여 이런 도로 폭을 계획도시에 적용하지는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과거에 그런 행태를 대전에서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이른바 중리동 고갯길의 요철이 심한 것은 토공비를 줄이려고 제대로 도로정비를 하지 않은 탓이라는 뒷말이 있다. 또한 대전 용운동 택지개발지구의 도로망도 당초에는 편도 2차선으로 해놨다가 진입하는 편도 1차선으로 거꾸로 맞추는 바람에 감당을 하지 못하는 도로 형태로 일방통행로가 되고 말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개발전철이 세종시에 적용되어 기부체납율을 떨어뜨리고자 했다면 이는 교통지옥 유발 책임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 차제에 이런 도로망과 도로 폭을 도입한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여 책임자를 가려내야 한다.
3년 전 세종도서관 건립과 관련 부실공사시비가 뜨거웠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 세종의 건설계획이 졸속으로 추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매우 컸었다. 특히 세종의 집중호우로 새롬동 종합복지센터와 보람동 복합커뮤니티센터 등 준공한 건물들에서 전혀 생각지 못한 물난리가 난 적도 있다. 주민센터 1층 바닥 침수피해, 빗물이 배관실을 통해 역류, 복지센터 1층에서 4층까지 누수 등등 아직도 회자되는 부분이다. 국도 1호선 주 지하차도도 하자보수 공사로 진통을 겪었다. 이런 졸속 건설현장이 세종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행정수도니 세계적인 도시니 하면서 거창한 구호를 외치면서도 허상의 도시가 되어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세종시는 상가공실과 BRT노선 상가들의 규제문제에다 영업난까지 겹쳐 자영업자들이 상상초월의 고통이 지속되고 있다. 심지어 망해나가는 곳이 세종시라는 푸념까지 들릴 정도이다. 여기에다 교통지옥까지 겹쳐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도시가 되고 있다.
한 방송사에서 최근 출퇴근 시간의 소요시간 등을 실제 현장취재로 방송하는 것을 주민들도 역시 공감하며 주의 깊게 보았다. 이는 교통지옥의 심각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담았다. 본보도 지난 2017년 7월 ‘세종행복도시 엇박자 이대로 안 된다‘는 글을 통하여 우려의 시각을 다음과 같이 이미 전한 바 있다. “세계적인 행정도시를 건설하겠다고 큰 소리를 치던 체면이 일순간 구겨지는 참으로 낮 뜨거운 일이다. 차제에 세종시에서 추진되는 모든 공공건설현장은 물론 민간 현장에도 보다 철저한 점검이 요구되고 있다. 앞을 내다보는 계획도시 건설을 내세우고 있지만 세종시의 진입도로망과 도로 폭을 살펴보면 한마디로 10년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향후 세종시의 유입인구를 감안하면 대전에서 진입하는 도로뿐만 아니라 첫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 등이 협소하여 향후 교통체증과 대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린다. 도로 폭은 물론 전근대적인 방사형 도로체계를 나선형으로 개선하는 등 교통전반에 대한 진단과 향후 대책이 수립되지 않는 한 세계적인 명품도시는 구호에만 그치고 교통대란으로 세계적인 교통지옥도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눈으로 보는 지금도 그런데 앞으로 여러모로 더욱 걱정이다. 세종의 엇박자 이대로는 안 된다.”
세종시는 우리나라 행정수도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신도시이다. 국회세종의사당도 건립하기 위하여 건립 설계비 10억 원이 올 예산에 책정되었다. 행정안전부도 지난 해 세종시로 이전했다. 이렇게 중요한 도시 세종시를 건설하면서 편도 2차선의 시내도로로 교통량을 감당하고자 했다면 천부당만부당한 생각으로 그 프로젝트 추진 선상에 있는 모든 인물들은 역사적 책임과 현실적 책임 두 가지를 모두 져야 할 것이다. 지금의 교통지옥은 출퇴근 시 세종시를 진출입하는 차량들을 살펴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심지어 BRT마저 콩나물시루가 따로 없을 정도로 때론 탑승자체가 불가능하다. 이것은 세종시의 자랑일 수가 없다. 하루빨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전반적으로 냉철히 살펴보아야 한다. 세종시 건설계획을 주도한 인물과 추진자들을 가려내어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의 언론들도 침묵하지 말고 주민고통의 현실을 직시하고 세종시의 교통지옥 실태를 심층 취재하여 문제점 해결에 공동대처해 나가길 바란다.
202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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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 새해 ‘꿈과 희망’을 소망한다
© 세종타임즈
2020년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흰 쥐 띠의 해이다. 쥐 캐릭터 미키마우스가 벌써부터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어린이들의 즐거움과 웃음을 선사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어딘가 영리하고 재미있고 바지런한 모습을 담고 있는 동물이다.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지만 다산을 상징하기도 한다. 올해는 어린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귀여운 흰 쥐 미키마우스 등 새로운 캐릭터나 조형물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풍요와 희망, 기회, 다복, 부와 부지런한 의미를 담은 흰 쥐를 다채롭게 선보이며 더욱 친근감을 안겨주고 있다.
예로부터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고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다. 과거 방송사에서는 ‘웃으면 복이 와요’란 개그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누리던 시절도 있었다. 미키마우스는 월트디즈니 컴퍼니의 심벌 의인화 캐릭터이다. 긍정적인 성격에 정의감이 강한 모습이 오랜 세월 전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캐릭터로 자리 잡고 있다. 디즈니 대표 애니메이션이자 모두가 좋아하는 익살스러운 캐릭터이기 때문에 흰 쥐 해 새해에는 더욱 기쁨과 행복이 넘친다. 한마디로 저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친근한 캐릭터이다. 월트디즈니의 캐릭터 미키마우스가 대중에게 공개된 지 90년 만인 지난 2018년에 대한민국을 찾아 희망과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웃고 또 웃고 웃음이 웃음을 낳고 계속 이어지는 꿈과 희망을 담는 아름다운 웃음이야말로 미키마우스가 던지는 소중한 행복과 긍정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새 해 흰 쥐 미키마우스가 웃음과 복을 듬뿍 담아 모두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웃음이 넘치는 가정과 사회 그리고 나라가 되기를 소망하는 흰 쥐의 해이다.
올해 참으로 중요한 21대 총선이 오는 4월 15일에 치러진다. 지난 달 17일부터 예비후보 등록을 하며 곳곳에서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을 받으면서도 새해벽두부터 예비후보들이 선거전에 돌입하며 나름대로 분주하다. 예비후보들의 선거사무소 건물 외벽에 걸린 초대형 현수막에는 온통 자기자랑 일색이다. 생소한 인물들의 등장도 아리송하지만 연동형비례대표제란 기형적 선거법이 나와 비례정당들이 우후죽순처럼 출현하는 묘한 선거전 돌입이 국민들의 실소를 자아내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다 정치 냉소주의까지 등장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화려한 구호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지키고 국민들의 삶을 행복하게 지켜줄 수 있는 참 인물들인가 하는 점은 늘 미지수로 남는다. 19대 국회, 20대 국회에서도 모두가 추한 몰골로 국민들의 실망과 극심한 정치불신을 자초한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선거철 공약은 그야말로 늑대소년의 외침처럼 듣고 있는 것도 숨길 수 없는 현실이자 국민정치 불신의 현주소이다. 주인인 국민을 상전처럼 모시고자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 위임한 권력으로 오히려 주인인 국민위에 군림하며 국민고통과 반목의 도구로 사용하는 어리석은 정치행태가 난무하고 있다. 국민들의 아픔에 눈물을 흘리고 국민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주려는 노력을 찾아볼 수가 없다.
교만과 오만과 불법과 부정부패가 판을 치는 정치판이니 이런 정치를 바라보는 주인인 국민들의 마음의 상처가 어느 정도일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대립과 반목, 보복과 분열의 상처가 국민들을 갈가리 찢어놓고 있는 정치현실 속에서 과연 선진 대한민국을 주창할 수 있을 까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정치가 있는 지 없는지 모르면서 평범하게 사는 순리와 정도의 사회, 그런 믿음직한 나라의 모양새는 언제쯤 갖출 수 있을지 안타깝다. 존경받는 정치지도자들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탄식이 국민들 사이에 나온 지 오래이다. 지도자 복이 지질이 없는 참으로 불쌍한 국민들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럴 때마다 변함없이 등장하는 용어들이 있다. 우리 사회가 참으로 즐겨 쓰는 말들이다. 이른바 ‘꿈’, ‘희망’, ‘행복’이다. 정치인이나 종교인 할 것없이 모든 이들이 말들을 무척 즐겨 사용한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긍정의 밝은 언어이다. 이는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이자 우리가 목표이기도 하다. 긍정적이고 보다 나은 내일의 아름다운 삶을 성취하고자 하는 미래비전을 함축하는 메시지로 이만한 단어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꿈과 희망, 행복은 같이 다니는 단어다. ‘꿈’이란 단어에는 재미있는 주석들이 망라되어 있다. 당초의 뜻은 바로 수면 중의 꿈이다. 이런 꿈에도 악몽의 뜻이 있다. 또 희망과 이상, 야심, 환상, 망상의 뜻도 있다. 재미있는 수식어도 붙는다. ‘참 꿈’, ‘개꿈’, ‘좋은 꿈’, ‘불길한 꿈’, ‘무서운 꿈’, ‘허황된 꿈’ 등이다. 학창시절 영어를 배울 때 접하던 문장인 “소년들이여, 꿈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도 청소년들에게 꿈을 통해 웅비하는 미래를 설계하는 좌우명이 되기도 했다.
흑인 인권 운동을 주도한 미국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명연설인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도 바로 희망의 꿈을 말하고 있다. 이 꿈은 인종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명연설로 깊은 감동을 안겨주며 회자되고 있다. 꿈이 있다면 시련과 고통과 모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바로 그것이다. 우리도 그 꿈을 이야기 하면서 우리 국민들에게 이만큼 커다란 울림을 던지는 명연설을 하는 지도자의 탄생을 그려본다.
꿈 못지않게 우리가 그리는 아름다운 세상을 담는 ‘희망(希望)’이란 단어도 새해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희망은 앞일에 대하여 어떤 기대를 가지고 바란다는 뜻이다. 소망과 기대, 요구 등을 함축하며 꿈만큼이나 다양하게 쓰여 진다. 밝은 빛과 긍정의 힘을 던져주는 상징 언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너무나 남용되다 보니까 쓰는 사람에 따라 마치 늑대소년의 말처럼 들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경우가 그렇다. 국민희망이니 희망한국이니 등등의 언어구사를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거짓과 허상의 언어유희라고 간주한다. 달콤한 포장으로 너무 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믿다가는 오히려 꿈과 희망이 모두 날아가 버리는 허황된 상황도 맞을 수 있다. 늘 그래왔다. 이제는 정치인들이 그려내는 꿈과 희망 보다는 마틴 루터 킹처럼 “나에게도 꿈이 있습니다!“라고 외치며 우리 스스로가 자신만의 멋진 꿈을 그려나가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고자 노력해야 할 절박한 시점이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의 행복한 삶이 소중하고 절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와 국가 나아가서는 세계를 향한 아름다운 이상도 함께 한다면 더욱 의미가 커질 수 있다. 사실 꿈과 희망을 갖고 이를 실현해나가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때로는 꿈과 희망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좌절과 고통을 맛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혜로운 마음으로 헤쳐 나가며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가는 산고(産苦)로 생각한다면 그 기쁨은 한층 배가될 것이다. 꿈과 희망이 없는 사람이나 사회, 그런 나라는 삭막하고 황량한 사막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그리는 사회는 부정부패, 불법과 탈법, 비리와 추악함, 거짓과 사기, 이중인격과 표리부동, 구밀복검, 양두구육, 양심불량, 위선, 도덕불감증, 후안무치, 안하무인, 사리사욕, 비상식, 배신과 모함, 표독한 언행, 폭력과 자살, 불신 등등 부정의 어둡고 악취 나는 세계는 결코 아니다. 이는 악몽이자 불행의 표상이다. 선을 가장하는 악인의 행태는 과감히 척결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경계해야 하는 것들이다.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잘못 선출하는 인물들은 국민고통의 산물임을 명심하여 오는 4월 21대 총선에서는 진실한 인물, 참된 일꾼을 뽑아야 한다. 주인에게 군림하는 표리부동한 인물들을 뽑아서는 국민 정신건강에도 이롭지 못하다.
이런 의미에서 2020년 경자년 새해에는 모든 것이 긍정으로 출발하여 웃음꽃이 만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길 소망한다. 우리 모두가 이런 분위기를 가꾸는 해가 된다면 새해 경자년은 우리에게 무한한 ‘꿈’과 ‘희망’을 안겨줄 것이다. 행복하고 건강한 사회도 분명 우리 앞에 바짝 다가설 것이다.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아질 것이다. 흰 쥐의 상징처럼 풍요와 번영이 넘칠 것이다. 여기에는 정치를 바로 잡는 국민들의 올바른 선거가 중심이 될 것이 분명하다. 나라의 운명이 바로 여기에 달려 있는 경자년이다. 국가 미래의 꿈과 희망이 21대 총선이 좌우한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를 국민들도 통감하고 있다. 대립과 반복, 분열의 사회를 봉합하는 것은 정치가 정상을 바로 찾고 국민을 위한 정치로 다시 거듭 태어나는 길 뿐이다.
새해가 밝았지만 지금 이순간도 청년실업과 경제난으로 실의와 좌절에 빠져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OECD국가 중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는 것도 숨길 수 없는 부끄러운 현실이다. 부패인식지수 45위의 부패공화국의 오명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이런 부정의 현실을 새해 슬기롭게 극복하고 행복한 사회를 지향하고자 꿈과 희망의 소중한 가치를 더욱 새롭게 되새겨야 한다. 새해는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배꼽이 빠져라 웃어대며 기쁨과 행복. 밝은 희망이 차고 넘치는 대한민국사회가 현실로 다가와야 한다. 2020년 경자년 새해를 맞아 개인이나 사회 구성원, 정치인 모두가 낡고 퇴행적인 부정의식을 과감하게 떨쳐내고 새로운 꿈을 향한 희망찬 새해설계로 보다 나은 긍정적인 미래가치를 찾아야 한다. 우리 사회,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도 소중한 새해 꿈이 있고 그 꿈은 반드시 실현되는 꿈이 되어야 한다. 정치도 나아지고 경제도 나아지고 취업도 잘되고 장사도 잘되고 사회도 잘되고 나라도 잘되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나아가는 그런 꿈과 희망이 넘치는 2020년 경자년 새해 소망을 그려본다.
202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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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해를 마감하며
2019년이 이제 저물어 가고 있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2019년이다. 우리는 한해를 마감하며 참으로 많은 회한을 가슴에 남기고 있다. 2019년 기해년 황금돼지 해라고 풍요와 풍성함을 소망했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해를 넘기는 시점에 서 있다. 세월이 유수 같다고 하던 옛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해마다 이맘 때 쯤 이면 늘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낸다는 말을 하게 된다. 회고하건데 2019년처럼 다사다난했던 때가 있을 까 싶다. 나라는 줄곧 전쟁과 평화의 사다리타기를 해 왔다. 평화의 한반도를 말하던 꿈같던 시간이 금방 지나고 수도 없이 쏘아대던 불상의 로켓들이 평화의 꿈을 앗아가 버렸다. 지금도 북미대화가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으르렁대는 모습이 마치 일촉즉발의 긴장감마저 흐르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금강산 시설물을 금방이라도 때려 부술 듯이 요란을 떠는 모습에서도 평화를 향한 길이 멀기만 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평화는 결코 구걸이 아님을 깨닫는 마음이 아쉬운 시점이다.
무엇보다 경제난은 국민들을 옥죄는 아픔이었다. 자영업자들이 쓰러지고 길거리에는 청년실업자들이 넘쳐나고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온 가족이 집단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모습이 12월까지도 이어졌다. 심지어 지난 7월 숨진 지 두 달이 지나 발견된 탈북민모자사망사건은 우리 사회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복지사각지대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버젓이 존재한다는 사실 앞에서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뒤늦게 법안을 발의하느니 뭐니 호들갑을 떨다가 이제는 시들해져 버렸다. 일가족 집단자살은 올 들어 계속되어 왔다, 사회안전망이 구멍이 뚫려도 뻥둟려 있음을 보게 된다. 송파 3모녀 자살사건이 충격을 주면서 무엇인가 달라지나 싶었는데도 올해 계속되는 일가족 자살사건이 대한민국 사회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복지정책은 어디로 갔는지 참으로 고통의 사회이자 비극의 현주소이다. 심지어 유명 정치인과 유명연예인들의 자살마저 잇따라 안타까움을 더해주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대구에서 일가족 4명이 생활고로 추정되는 집단자살사건이 발생했다. 이렇게 이어지는 집단 자살사건이 올 들어 서울, 화성, 시흥, 김포, 대전, 인천, 충북단양, 대구 등 모두 32번째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19년의 일가족 자살일지를 들춰보면 우리 사회가 지금 어느 정도로 망가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길거리에는 노숙자들이 넘쳐나고 심지어 청년들조차 무료급식소를 찾아 이른 새벽부터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소득주도성장이 무엇인지 국민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내년이 더욱 걱정이라고 한다. 생계형 가족들의 집단자살이 풍요로운 말장난을 비웃듯이 다반사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심각한 경각심을 던져주는 대목이다.
무엇이 우리 사회 우리 국민들을 이처럼 극단으로 몰고 가고 있는지를 냉철히 파악해야 한다. 이처럼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는 일가족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무엇 때문인지를 헤아리는 정치를 해야 하는데 이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어느 누구 책임을 통감하는 정치인들이 눈에 보이질 않는다. 아픔을 같이 나누고자 하는 눈물이 보이질 않는다. 오로지 권력욕과 국회의원 자리에만 탐닉하는 정치권의 모습만 보인다.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정치를 하고 국회의원을 하는지를 망각하고 있다. 국민들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목숨을 끊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나라마저 등지고 떠나는 이민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 법마저 이현령비현령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비난도 거세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정신은 온데 간데 없고 교묘한 말장난으로 형평성을 저버리는 이상야릇한 일들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서민들은 교통법규 하나면 어겨도 10만원에 가까운 생돈을 물어대고 있는 판국인데도 위법이 드러나도 힘이 있는 자들에게는 솜방망이를 휘둘러 대니 이게 과연 올바른 사법정의를 구현하는 나라인지를 의심케 하고 있다. 언제부터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이현령비현령의 법 적용을 해왔는지를 국민들은 묻고 있다. 법관의 양심과 법대로 해야 할 일들이 정의롭지 못하고 ‘가래 끓른 소리’로 들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스스로 통찰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이제는 사법 불신까지 팽배해지고 있다. 이런 2019년을 보내왔다.
올해 우리 국민들은 비정상이 판을 치는 정치판을 목도했다. 국민을 앞세우며 대립과 반목을 부축이고 각종 부정부패의 연쇄 고리들이 구석구석에서 판을 치고 있는 것을 체감했다. 아직도 썩은 부패의 고리를 감추고 분칠을 하며 양두구육의 모습으로 버젓이 행세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요즘 일본에서도 수뢰혐의를 받는 의원이 체포되고 그 일련의 비리과정을 속보로 전하면서 대서특필하고 있다. 부패정치인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사회악임이 틀림이 없다. 법을 어기면서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언제나 들통이 나면 그 이상 개망신을 당한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부패한 정치인들의 연결고리가 다 파헤쳐지지 않고 내년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2019년의 부패 수사는 종료가 아니라 진행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19년 한해를 마감하며 느끼는 것은 올 한 해 국민들의 고통지수가 매우 높았다는 사실이다. 광화문에서는 엄청난 인파가 모여 정치구호를 외쳐댔고 서초동 거리에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집회 모습도 보았다. 아침이 무서운 자영업자들은 삶이 너무나 버거웠다.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데도 적자에 허덕이며 눈물로 폐업을 해야 했다. 국민 불신의 단초를 제공하는 일부 언론들은 불의에 침묵하고 외면하고 호도하고 정치권력에 아부를 하며 정치시녀임을 자임해 왔다. 역대 이런 언론 시대는 없었다. 언론이 정치를 감시하고 비판하며 국민들에게 올바른 지향점을 제시해야 하는데도 정도언론의 길을 망각하며 아직도 매화타령만을 일삼고 있다. 이런 2019년의 언론의 모습도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임을 국민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2019년의 대한민국은 평화를 외치면서도 늑대소년이 되고 소득주도성장을 외치면서도 생계형집단자살이 잇따르고 사법정의가 무너져 내리고 부패정치인들이 활보하고 권력에 아부하는 치졸한 언론행태가 판을 치고 경제가 추동력을 상실하고 저출산고령사회의 기형적 사회구조가 나라의 근간을 흔들어 왔다. 뭔가 나사가 빠진 형국이다. 곡예를 하는 나라처럼 보인다. 올해 대한민국은 나라 안팎으로 브랜드가치를 스스로 추락시킨 역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참담한 한 해였음을 회고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참으로 씁쓸한 한해로 모두가 뼈아픈 자성의 해로 삼았으면 한다. 해왕성 밖에서 보이저 2호가 보내온 사진에 창백하고 푸른 점인 지구 속 대한민국의 2019년은 모두가 참으로 힘든 한해였다. 부디 2020년은 달라지기를 바랄 뿐이다.
2019-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