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E NEWS
-
우한폐렴과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국민불안
© 세종타임즈
중국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즉 우한폐렴의 확산이 예사롭지 않다. 2일 현재 15명의 확진자가 발생해 차단과 예방조치에도 불구하고 국민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눈만 뜨면 확진자가 생기고 있다. 중국 우한에서 입국시킨 교민들은 아산과 진천에 수용되어 관리되고 있다. 초기에는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거세 큰 진통을 겪었다. 지역주민들의 거센 반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지금 3번, 4번 확진자들의 황당한 이동 동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도대체 감염자들이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은 채 친지들을 만나 불고기를 먹고 교회를 가고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니 참으로 도무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그러니 2차, 3차 감염자발생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난달 30일부터 사흘간 확진자 8명이 잇따라 확인되었다. 확산 속도인 지금 상황으로 볼 때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우려감과 불안감이 팽배하다.
지난 달 30일 WHO세계보건기구도 국제적 공중보건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다. 이는 지난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유행을 시작으로 이번이 6번째 '비상사태' 선포다. WHO의 비상사태 선포로 사람들의 공포가 가중되고 있다. 이는 현재의 상황이 말 그래도 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공포감이 밀려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라마다 중국 발 입국금지라는 초강수를 두고 있다. 심지어 북한마저 국경을 전면통제하고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인 우한폐의 진입을 차단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도 중국인들의 입국을 전면 금지하자는 청원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만큼 좌고우면하지 않고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차단하는 보다 강경한 차단대처방안이 절실하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운영되고 있지만 2차, 3차 감염자들의 발생으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일본 중동 대만 홍콩 곳곳에서 난리가 아니다. 아직 백신도 없고 차단을 막는 방법 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백신을 만들다 해도 1년 이상이나 소요된다고 하니 어찌 보면 막막하기만 하다. 중국을 비롯하여 12개국에서 개발을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지만 갈 길이 너무 멀게 느껴지기만 한다. 전 세계적인 지혜와 해법이 절실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당국의 적극적이고 철저한 대책이 우선되어야 한다. 현재는 국민들이 방역당국만 믿고 따르고 있다. 이런 점에서 국민들의 불안감과 혼선을 주어서는 안 되지만 유감스럽게도 2차, 3차 확진자들의 발생으로 불신이 커지고 있다. 도대체 이들을 어떻게 관리하였기에 백주대낮에 마구잡이도 돌아다니게 했는지 국민들은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과거 메르스 사태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서울에서 발생하여 난리를 피운 적과 흡사하다.
명칭에서도 처음에는 우한폐렴이었다고 하다가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라고 해서 일관성을 상실하고 있다. 지금도 두 가지 명칭이 혼용되고 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심각성을 따져볼 때는 우한폐렴이 더 국민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더욱 좋은 것 같다는 일반적인 여론이다. 명칭으로도 혼선이 생기고는 있지만 감염확산을 막고 국민들을 보호한다면 그 어느 것이 문제가 될 수 없다고 보다. 각종 모임이나 행사들이 취소되고 전국에 마스크 행렬이 이어지는 작금의 상황에서 지금의 확산상황을 단순하게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모두가 스스로 좀 더 철저한 관리와 조심을 해야 한다고 본다. 방역당국도 국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과감한 입국제한도 수반해야 한다. 지금의 상황은 세계적으로 비상사태임을 명심해야 한다. 교만과 허세를 부리는 대책으로는 금물이다. 사흘간 8명이 확진자가 발생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인 우한폐렴의 차단을 막기 위해 보다 근본적인 확산대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2020-02-02
-
참 이상한 여론조사
© 세종타임즈
오는 4월 15일 총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각 정당들은 뚜렷한 대책 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다. 물론 예비후보들의 대형 현수막은 도심 속에 현란하기 조차 하다. 그렇다고 유권자들이 지금 선거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장사꾼만 요란한 격이다. 중앙의 정치는 여전히 이합집산의 이해득실만 넘쳐나는 듯하다. 선거철 대목을 보려는 야심찬 셈법만이 눈에 보인다. 국민들을 위한 고뇌보다는 달라진 준연동형비례대표제의 셈법이 복잡해지는 듯하다. 여기에다 만 18세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이 부여되자 이 역시 유불리 셈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벌써부터 젊은 세대들을 위한 선심성 행정이 등장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런 가운데 선거철을 앞두고 여론조사기관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다. 곳곳에서 여론조사가 공공연히 펼쳐지고 있다. 지역 언론사들도 예비후보들의 여론조사를 발표하며 추이를 살피고 있다. 사실 유권자들은 무관심한데도 발동을 거는 형국이다. 예비후보들의 난립에다 기존에 유력 후보의 불출마 선언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물밑에서는 뜨거운 쟁탈전이 전개되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여론조사가 제대로 들어맞는다고 보기에는 다소 성급한 느낌이라는 지적이 많다. 왜냐하면 작금의 정치상황이 국민 불신이 매우 큰 때문이다. 여론조사 기관만 ‘개발에 땀’이 나고 있다.
요즘 정치 불신만 큰 것이 아니다. 여론조사에도 그다지 큰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이 휴대폰으로 조사 의뢰를 시작하면 곧바로 끊어버리는 사례가 다반사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름이 아니라 희한한 여론조사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유명 여론조사기관의 설문에 응대하던 응답자가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고 밝혔다. 모 유명여론조사기관의 전화를 받고 응답도중 연령대를 밝히고 나서 질문이 이어졌는데 지지하는 정당의 설문에 답변을 하자 곧바로 응답자는 설문조사대상이 아니라며 끊어버렸다는 전언이다. 참으로 황당한 여론조사를 접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여론조작을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여론조사를 입맛에 맞게 하는 것인지 무작위 추출을 잘못하는 것인지 모집단 선정을 주먹구구식으로 하여 전화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행위가 드러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에서 여론을 조작하여 발표한다고 한다면 이는 엄청난 범죄행위에 다름 아니다. 무시로 펼쳐지고 있는 여론조사가 조사기관 입맛대로 이뤄진다면 이는 여론조사가 아니다. 공정한 여론조사를 통하여 진실에 대한 접근이 이뤄져야 하는데도 조작을 통하여 여론이 공개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이런 여론조사결과가 시중 여론인양 대변이 된다면 이는 사기극에 다름이 아니다. 설문조사 도중에 조사대상이 아니라는 황당한 말이 어떻게 나오는지 모를 일이다. 마치 무슨 음모가 숨어있는 듯한 이런 여론조사의 행태가 버젓이 성행하고 있다니 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작태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러다 보니까 국민들 사이에는 여론조사 자체를 불신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런 불신을 받는 여론조사를 언제까지 의존해야 하는지 국민들도 답답하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선거철 여론조사로 한 몫 챙기는 곳도 있으리라 생각이 되지만 그래도 여론조사만큼은 불공정이 아니라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이상한 설문조사 방식으로 유권자들을 우롱하는 작태는 즉각 멈춰야 한다. 이제는 선거관리위원회도 여론조사를 불공정하게 실시하는 업체들이 난립하여 선거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가려내야 할 시점이다. 대한민국의 유명 여론조사 기관들도 예외가 아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어느 여론조사 기관이 공정한 곳인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중의 이야기이다. 그것은 하도 황당한 설문조사가 유권자들을 우습게 알며 공공연히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여론조사는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진실을 호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도 바로서고 나라가 바로서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순리대로 이뤄져야 한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공적인 일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국민 불신을 자초하는 여론조사는 그 방법이나 절차, 조사기관들이 공신력을 갖출 수 있도록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유도성 질문이나 황당한 문답으로 본질을 훼손하는 것은 여론조사가 아니라 여론조작에 다름이 아니다.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가오는 4월 15일 21대 총선은 매우 중요한 선거이다. 개정된 선거법인 ‘준연동형비례대표제’가 시금석이 될 것이다. 그래서 지지하는 정당의 표가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고 지지하는 정당에 대한 여론조사조차도 갈지자를 걷는다면 이 또한 국민 불신을 자초하는 것이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놓고 정치적 잔머리와 셈법이 엄청나게 펼쳐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 세간의 지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선거는 공정하고 깨끗하게 치러져야 한다는 기본 원칙은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 가운데 참 이상한 여론조사로 엉뚱한 셈법을 하는 곳이 있다면 그 결과는 국민심판과 법적 조치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여론조사가 바로 서야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가 치러지고 정치가 바로 설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할 시점이다.
2020-01-27
-
설 명절이 갖는 소중한 정신과 참된 가치
© 세종타임즈
음력으로 1월 1일인 오는 25일은 우리 고유명절인 설 명절이다. 영어로 ’lunar new year‘로 ’happy‘만 맨 처음에 붙이면 음력 새해를 축하하는 인사가 된다. 양력설과 음력설의 역사는 정말 민족적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지금은 설이란 이름으로 공식적인 휴일로 지정되어 있지만 역사적으로 참으로 수난 많은 명절이다. 우리 설날을 구정이라해서 타파해야할 구습으로 탄압을 하던 때가 일제 강점기이다. 피식민지인 한국인이 지내는 음력설을 없애야한다는 의미에서 구정이고 양력이야말로 신정이라는 것이다. 작곡자 윤극영의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 이래요”가 바로 이런 역사적인 아픔과 애환을 담고 있다.
해방이후에도 이중과세란 수난사가 지속되었다. 하지만 1985년 ’민속의 날‘이란 이름으로 지정해 공휴일로 지정했고 1989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음력설을 설날로 개정해 전후 하루씩을 포함해 3일을 공휴일로 지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번은 설날이 일요일이라 27일 월요일이 대체 공휴일이다. 4일간의 연휴이다. 민족의 정체성과 서구와의 물결 속에서 수난을 겪으면서도 지켜온 설날은 그만큼 우리에게는 소중한 명절이다. 아무리 일제가 탄압하고 이중과세를 이유로 탄압했지만 우리 민족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를 꺾으려는 그 어떤 정치적인 압력에도 굴하지 않았다. 신정과 구정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젊은 세대들은 다소 생소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고유명절인 음력설을 지키려는 우리 민족의 애환은 눈물겹기만 하다. 그 어떤 정치적 외압도 민족정기를 거스르지는 못했다.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고향으로 향하는 설렘이 가득한 명절이 바로 설 명절이다.
설 명절은 전통 재래시장에서부터 그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대목‘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이른바 ’설 대목‘이다. 하지만 무서운 경제 한파가 전통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기대이하의 실적으로 설 대목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의 선물세트 판매대도 한산하다고 한다. 예전 분위기나 명절 특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물론 여기에는 온라인 몰에 주도권을 빼앗긴 탓도 있지만 오프라인의 유통업계의 한숨소리는 꽁꽁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즐겁고 행복해야할 명절이 오히려 괴롭다는 자조 섞인 한숨이 나온다. 상인들이나 서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북적대고 푸짐한 선물준비에 신나는 분위기가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설날이 다가오면 그래도 다소 썰렁한 분위기가 덜하고 대목분위기가 되살아났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올해 설 경기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분석이 다소 씁쓰레 하다. 그만큼 실물경기가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정치권만 매화타령이고 ’등어리‘ 가려운데 발바닥 긁고 있다.
과거 설날을 세뱃돈을 고대하고 고운 옷을 한번 새로 입던 시절의 모습이 기성세대들에게는 추억으로 남아있는 설날이다. 콩나물시루 같은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으로 향하던 옛 정취는 사라지고 없지만 그래서 설 명절은 설 명절이다. 이제는 고속도로 정체가 설 명절을 말해주고 있다. 민족대이동이란 말이 등장한 것도 바로 명절을 지내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고 힘들더라도 설 명절은 우리네 마음에 벌써 와 있다. 중국도 최대명절인 음력설 춘제를 앞두고 민족대이동이 지난 10일부터 시작되어 다음달 18일까지 40여 일간 지속된다. 무려 30억 명 가량이 이동한다고 하니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올해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 때문에 중국도 이중고가 예상이 된다. 하지만 명절을 향한 마음은 매한가지인 것 같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라는 동요가 흘러나오면 기성세대들의 마음은 옛날로 돌아가게 된다. 설날은 누가 뭐래도 우리 민족이 지켜온 소중한 최대 명절이다. 외세에도 굴하지 않고 정치적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이를 지켜온 우리 민족이다. 우리는 그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는 민족이자 국민이다. 우리는 이를 통하여 가장 기초적이며 정상적인 마음가짐을 되새겨야 한다. 미풍양속을 지켜나가고 효와 인성을 바로 세우는 소중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바로 세배의 의미가 그렇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로의 건강과 복을 기원하고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설날이 되었으면 한다.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정신이 우리에게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역경을 딛고 일어서면 분명 좋은 날이 오리라는 확신이다.
2020년 ’우리 우리 설날‘은 모두에게 즐겁고 행복한 설날이 되고 기쁨과 소망이 넘치는 값진 명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려운 이웃들도 함께 살피면서 말이다.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가 올해도 변함없이 펼치는 홀몸 어르신, 노숙인, 힘겨운 이웃들을 향한 ’사랑의 떡국나눔‘도 우리네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21일부터 인천서구와 계양구를 시작으로 서울역과 인천 등지에서 4일간 펼쳐지게 된다. 이번 행사도 어려운 이웃을 살피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진다. 차고 넘치는 아름다운 나눔 행사로 많은 후원이 있었으면 한다. 경제 한파도 녹일 수 있는 이런 아름다운 나눔의 마음이 설 명절을 통해 예로부터 우리가 지켜온 소중한 정신이자 참된 가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2020-01-19
-
정치와 출판기념회
© 세종타임즈
요즘 출판기념회가 전국 곳곳에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출판기념회는 다름 아닌 책(冊)을 출간하여 이를 기념하는 자축(自祝)행사이기도 하다. 책을 내놓는다는 것은 작가의 정신세계와 영혼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책에 담고 있는 함축의미들이 그러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그 가치와 철학은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자서전의 경우는 작가의 삶의 역정을 살펴볼 수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자고이래(自古以來)로부터 매우 중요한 기록물로서도 그 가치가 엄청나다.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 책에 기록된 의술과 수학, 과학 등 엄청난 지식들이 유럽과 아시아 등 곳곳에 전파되어 세계문명을 변화시키며 인류 역사를 형성하여 왔을 정도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발명한 나라로도 세계사적 가치와 자부심이 매우 크다. 그것은 바로 고려시대 청주목(淸州牧)에 있었던 사찰 흥덕사(興德寺)에서 만들어진 인쇄물로 정확한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세간에서는 '직지' 또는 '직지심체요절'로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직지심체요절은 공식적으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의 승려 백운 화상이 중국에서 가져온 요절을 재구성하여 엮은 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본은 1372년 제작이 시작되어 1377년에 간행되었다. 이는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간행한 금속활자본 성경보다 78년 더 앞서니까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미루어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인류에게 남아있는 금속활자 인쇄본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 이 직지(直指)이다. 직지(直指)는 금속활자, 목판, 인쇄본(상하권), 필사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속활자는 복원판이 청주고(古)인쇄박물관에 있고, 목판도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있다. 인쇄본 중 상권은 행방불명이고 하권은 프랑스의 국립도서관 특별전시실에 있는데 구한말 프랑스에 약탈당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책(冊)의 사전적의미를 살펴보면 종이를 여러 장 묶어 맨 물건이나 일정한 목적, 내용, 체재에 맞추어 사상, 감정, 지식 따위를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여 적거나 인쇄하여 묶어 놓은 것이다. 한 인간의 내면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책에는 소설도 있고 시집, 수필, 자서전, 잡지, 심지어 교과서나 참고서도 있다. 과거에는 자주 쓰던 용어 중에 하나는 조잡하고 흥미위주의 소설책을 3류 소설책이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3류 소설도 음성적으로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책도 있었다. 분명히 책은 책이고 작가도 있었지만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내놓아라하는 베스트셀러작가들이 존재한다. 책을 읽는 습관이나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은 요즘 같이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에 너무나 중요하다. 요즘은 그래서 전자책도 나와 있다. 이른바 e-북이라 한다. 이런 저런 사연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책이다.
그런데 선거철만 다가오면 이곳저곳에서 출판기념회가 우후죽순처럼 열린다.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다. 요즘은 오는 4월 15일 21대 총선을 겨냥한 출판기념회이다. 언제 썼는지 모르는 책을 내놓고 엄청나게 요란한 출판기념회가 열리고 있다.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곳을 보면 대한민국의 베스트셀러가 탄생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기실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책보다는 한마디로 정치적인 세를 과시하는 현장인 것 같다.
그럴만한 정치인들이나 인물들이 총출동하여 출판기념회를 장식한다. 여기에다 책을 또 사야 하니까 생각이상의 돈들이 움직인다. 명분은 출판기념회이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총선의 출정식이자 정치자금 모금 창구이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일 90일 전에 마쳐야 하니까 오는 1월 15일까지 마쳐야 한다. 그래서 봇물 터지듯이 예비후보들의 출판기념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책을 쓰고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도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세상에 유명작가들의 출판기념회보다도 요란한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를 보면 아름답다는 느낌보다는 책조차 정치적인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 세간의 지적이다. 출판기념회를 연다는데 90일전까지만 하라는 공직선거법의 규제가 바로 이를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동안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정치인들이라고 출판기념회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찾아보기도 힘든 출판기념회를 꼭 선거철을 앞두고 해야만 하는 가이다. 훌륭하고 좋은 책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얼굴도장 찍으러 등장하는 인물들의 향연이 바로 출판기념회가 된다면 이는 본질을 벗어나는 것이다. 더욱이 책을 통한 정치자금 모금수단이 된다면 이 또한 출판기념회의 본질을 벗어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중차대한 기로에 놓여있다. 19대 국회, 20대 국회가 한 마디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실패작이라고 본다면 이번 총선을 그야말로 이에 대한 국민심판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가 국민 분열과 반목의 단초를 제공하고 국민들을 고통에 몰아넣는 부정적인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면 이제 이를 바로 잡아야 할 절체절명의 시기가 바로 총선임이 분명하다. 지금 국민들은 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들로부터 너무나 많이 속아왔다는 의식이 팽배하다. 바르게 다스리라는 정치가 이른바 악치가 되어 이 땅의 주인인 국민들 위에 군림한다면 이는 헌법정신에도 어긋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정치인들은 바로 이런 뜻들을 출간하는 책에 먼저 담아 바른 정치를 위한 각서와 반성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른바 언행일치가 되어야 하며 정직해야 한다. 부정부패, 불법과 탈법, 비리, 교만과 술수로부터 과감히 탈피하여 유럽의 국회의원들처럼 겸허하고 봉사하는 정신이 투철한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이런 마음과 자세를 갖추는 참된 출판기념회가 된다면 이는 가치 있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구태정치를 향한 3류 소설의 날개 짓에 불과할 것이다. 얼굴 알리는 과시의 정치에서 탈피해야 한다. 이제 새 시대 정치인들은 보다 낮은 자세로 국민을 위해 눈물짓는 참된 일꾼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언행이 일치하는 기초의식의 변화도 절실한 시점이다.
2020-01-12
-
교통지옥으로 가는 세종시 건설
© 세종타임즈
행정수도 세종시는 대한민국의 사실상 행정의 중심지이자 요충지가 되었다. 지난 2012년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가 지난 2017년 착공 10년을 맞았고 올해로써 13년째로 접어들었다. 세종시 인구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2019년 11월 말 기준으로 무려 34만 4,476명을 돌파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세종시 출범당시 인구 10만 751명에 비하면 8년 만에 3배가량이 증가했고 지금도 증가속도는 개발 속도와 함께 급증하고 있다. 차량등록대수도 16만3,489대에 달하고 있다. 43개가 넘는 중앙행정기관과 15개 국책연구기관 등이 줄줄이 이전하면서 공동주택 공급과 생활편의시설들이 확충되면서 세종의 변화는 가히 괄목상대할 정도이다. 특히 대전광역시에서의 유입인구도 상당히 증가하여 이제는 세종시에서 대전시로 역으로 출퇴근하는 행렬이 아침저녁 러시아워에 줄을 잇고 있다. 투기과열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그래도 2년 전 분양된 아파트 값도 배 이상이나 올랐다. 준공된 아파트에 입주도 속속 이어지고 있다. 아직도 공동주택의 건설은 각 생활권마다 대규모로 이뤄지고 있다. 주변 교통여건에 아랑곳없이 그렇다.
그러나 세종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곱지 않다. 특히 교통문제에 관한한 한심할 정도이다. 앞을 내다보는 계획도시인지 과연 행정수도가 맞는지 모두가 의아해 하고 있다. 행복청이 추진하는 각종 건설프로젝트는 가히 매머드 급이다. BRT를 자랑하고 고속BRT를 신설하느니 하는데 도무지 감흥을 주지 못하고 있다. 광역교통망 체계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 역시 향후 심각한 교통문제 우려의 시각이 팽배하다. 지하철을 확장 연결하느니 KTX역을 만드느니 하면서 각종 프로젝트를 쏟아내 놓고 있지만 과연 지금 같은 도로망과 도로 폭을 갖고서 제 기능을 다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은 증폭되고 있다. 지금의 도로 폭을 보면 과연 행복청이 세종시의 미래비전을 담아 교통체계를 고민했는지 참으로 의아할 정도이다. 그동안 행복청장이라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스쳐 지나가면서도 이런 문제를 제대로 진단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이는 직무유기에 다름이 아니라는 지적이 강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이른바 LH가 추진해온 세종시의 건설은 도로망에 관한 한 실패작이라는 비난이 들끓고 있다. 세종시의 인구 증가와 차량문제 등을 제대로 생각하지 않은 도로설계로 편도 2차선의 국도에다 편도 2차선의 시내도로가 지금도 출퇴근 시에는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도로를 지하화하고 우회도로를 신설한다고 떠들어 대지만 나들목의 병목현상 때문에 우회도로는 심각한 체증현상을 빚고 있다. 공주에서 진입하는 지하도로와 대전 반석동으로 오가는 도로, 대덕연구단지를 오가는 길은 출퇴근시 한마디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앞으로는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KDI방면에서 대평동 쪽으로 지하도로로 진입하는 도로는 아파트로 나가는 도로를 제외하면 1차선으로 접어들려는 차량으로 뒤엉켜 늘 사고 위험까지 상존하고 있다. 들어오고 나가는 지하도로가 곳곳에서 교통사고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는 비난이 거센 이유이다. 미래 교통량을 예상하고 편도 8차선 이상 12차선으로 도로를 만들던지 아니면 만들 수 있게끔 여건을 조성했어야 하는데 아파트와 상가가 다 도로에 접하여 이제 도로 폭을 넓힌다는 것은 불가능해지고 있다. 마치 유성의 리베라 호텔 옆 도로를 연상시킨다. 이미 들어선 건물과 엄청난 재원부담으로 확장을 사실상 포기한 병목구간이기도 하다.
지금의 세종시는 도로체계로 볼 때 중소도시의 조성보다 못할 정도로 앞을 보지 못하는 건설프로젝트들이 추진되고 있다. 화려한 구호가 무색할 정도의 열악한 정주여건이 형성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교통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세종시가 교통지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두가 한심하다는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도대체 행복청 실무자들이나 LH는 도로 현장을 가 보기는 했는지 궁금하다. 행여 도로 폭을 넓혀 기부체납을 하면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여 이런 도로 폭을 계획도시에 적용하지는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과거에 그런 행태를 대전에서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이른바 중리동 고갯길의 요철이 심한 것은 토공비를 줄이려고 제대로 도로정비를 하지 않은 탓이라는 뒷말이 있다. 또한 대전 용운동 택지개발지구의 도로망도 당초에는 편도 2차선으로 해놨다가 진입하는 편도 1차선으로 거꾸로 맞추는 바람에 감당을 하지 못하는 도로 형태로 일방통행로가 되고 말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개발전철이 세종시에 적용되어 기부체납율을 떨어뜨리고자 했다면 이는 교통지옥 유발 책임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 차제에 이런 도로망과 도로 폭을 도입한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여 책임자를 가려내야 한다.
3년 전 세종도서관 건립과 관련 부실공사시비가 뜨거웠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 세종의 건설계획이 졸속으로 추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매우 컸었다. 특히 세종의 집중호우로 새롬동 종합복지센터와 보람동 복합커뮤니티센터 등 준공한 건물들에서 전혀 생각지 못한 물난리가 난 적도 있다. 주민센터 1층 바닥 침수피해, 빗물이 배관실을 통해 역류, 복지센터 1층에서 4층까지 누수 등등 아직도 회자되는 부분이다. 국도 1호선 주 지하차도도 하자보수 공사로 진통을 겪었다. 이런 졸속 건설현장이 세종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행정수도니 세계적인 도시니 하면서 거창한 구호를 외치면서도 허상의 도시가 되어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세종시는 상가공실과 BRT노선 상가들의 규제문제에다 영업난까지 겹쳐 자영업자들이 상상초월의 고통이 지속되고 있다. 심지어 망해나가는 곳이 세종시라는 푸념까지 들릴 정도이다. 여기에다 교통지옥까지 겹쳐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도시가 되고 있다.
한 방송사에서 최근 출퇴근 시간의 소요시간 등을 실제 현장취재로 방송하는 것을 주민들도 역시 공감하며 주의 깊게 보았다. 이는 교통지옥의 심각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담았다. 본보도 지난 2017년 7월 ‘세종행복도시 엇박자 이대로 안 된다‘는 글을 통하여 우려의 시각을 다음과 같이 이미 전한 바 있다. “세계적인 행정도시를 건설하겠다고 큰 소리를 치던 체면이 일순간 구겨지는 참으로 낮 뜨거운 일이다. 차제에 세종시에서 추진되는 모든 공공건설현장은 물론 민간 현장에도 보다 철저한 점검이 요구되고 있다. 앞을 내다보는 계획도시 건설을 내세우고 있지만 세종시의 진입도로망과 도로 폭을 살펴보면 한마디로 10년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향후 세종시의 유입인구를 감안하면 대전에서 진입하는 도로뿐만 아니라 첫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 등이 협소하여 향후 교통체증과 대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린다. 도로 폭은 물론 전근대적인 방사형 도로체계를 나선형으로 개선하는 등 교통전반에 대한 진단과 향후 대책이 수립되지 않는 한 세계적인 명품도시는 구호에만 그치고 교통대란으로 세계적인 교통지옥도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눈으로 보는 지금도 그런데 앞으로 여러모로 더욱 걱정이다. 세종의 엇박자 이대로는 안 된다.”
세종시는 우리나라 행정수도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신도시이다. 국회세종의사당도 건립하기 위하여 건립 설계비 10억 원이 올 예산에 책정되었다. 행정안전부도 지난 해 세종시로 이전했다. 이렇게 중요한 도시 세종시를 건설하면서 편도 2차선의 시내도로로 교통량을 감당하고자 했다면 천부당만부당한 생각으로 그 프로젝트 추진 선상에 있는 모든 인물들은 역사적 책임과 현실적 책임 두 가지를 모두 져야 할 것이다. 지금의 교통지옥은 출퇴근 시 세종시를 진출입하는 차량들을 살펴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심지어 BRT마저 콩나물시루가 따로 없을 정도로 때론 탑승자체가 불가능하다. 이것은 세종시의 자랑일 수가 없다. 하루빨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전반적으로 냉철히 살펴보아야 한다. 세종시 건설계획을 주도한 인물과 추진자들을 가려내어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의 언론들도 침묵하지 말고 주민고통의 현실을 직시하고 세종시의 교통지옥 실태를 심층 취재하여 문제점 해결에 공동대처해 나가길 바란다.
2020-01-04
-
경자년 새해 ‘꿈과 희망’을 소망한다
© 세종타임즈
2020년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흰 쥐 띠의 해이다. 쥐 캐릭터 미키마우스가 벌써부터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어린이들의 즐거움과 웃음을 선사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어딘가 영리하고 재미있고 바지런한 모습을 담고 있는 동물이다.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지만 다산을 상징하기도 한다. 올해는 어린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귀여운 흰 쥐 미키마우스 등 새로운 캐릭터나 조형물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풍요와 희망, 기회, 다복, 부와 부지런한 의미를 담은 흰 쥐를 다채롭게 선보이며 더욱 친근감을 안겨주고 있다.
예로부터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고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다. 과거 방송사에서는 ‘웃으면 복이 와요’란 개그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누리던 시절도 있었다. 미키마우스는 월트디즈니 컴퍼니의 심벌 의인화 캐릭터이다. 긍정적인 성격에 정의감이 강한 모습이 오랜 세월 전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캐릭터로 자리 잡고 있다. 디즈니 대표 애니메이션이자 모두가 좋아하는 익살스러운 캐릭터이기 때문에 흰 쥐 해 새해에는 더욱 기쁨과 행복이 넘친다. 한마디로 저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친근한 캐릭터이다. 월트디즈니의 캐릭터 미키마우스가 대중에게 공개된 지 90년 만인 지난 2018년에 대한민국을 찾아 희망과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웃고 또 웃고 웃음이 웃음을 낳고 계속 이어지는 꿈과 희망을 담는 아름다운 웃음이야말로 미키마우스가 던지는 소중한 행복과 긍정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새 해 흰 쥐 미키마우스가 웃음과 복을 듬뿍 담아 모두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웃음이 넘치는 가정과 사회 그리고 나라가 되기를 소망하는 흰 쥐의 해이다.
올해 참으로 중요한 21대 총선이 오는 4월 15일에 치러진다. 지난 달 17일부터 예비후보 등록을 하며 곳곳에서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을 받으면서도 새해벽두부터 예비후보들이 선거전에 돌입하며 나름대로 분주하다. 예비후보들의 선거사무소 건물 외벽에 걸린 초대형 현수막에는 온통 자기자랑 일색이다. 생소한 인물들의 등장도 아리송하지만 연동형비례대표제란 기형적 선거법이 나와 비례정당들이 우후죽순처럼 출현하는 묘한 선거전 돌입이 국민들의 실소를 자아내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다 정치 냉소주의까지 등장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화려한 구호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지키고 국민들의 삶을 행복하게 지켜줄 수 있는 참 인물들인가 하는 점은 늘 미지수로 남는다. 19대 국회, 20대 국회에서도 모두가 추한 몰골로 국민들의 실망과 극심한 정치불신을 자초한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선거철 공약은 그야말로 늑대소년의 외침처럼 듣고 있는 것도 숨길 수 없는 현실이자 국민정치 불신의 현주소이다. 주인인 국민을 상전처럼 모시고자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 위임한 권력으로 오히려 주인인 국민위에 군림하며 국민고통과 반목의 도구로 사용하는 어리석은 정치행태가 난무하고 있다. 국민들의 아픔에 눈물을 흘리고 국민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주려는 노력을 찾아볼 수가 없다.
교만과 오만과 불법과 부정부패가 판을 치는 정치판이니 이런 정치를 바라보는 주인인 국민들의 마음의 상처가 어느 정도일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대립과 반목, 보복과 분열의 상처가 국민들을 갈가리 찢어놓고 있는 정치현실 속에서 과연 선진 대한민국을 주창할 수 있을 까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정치가 있는 지 없는지 모르면서 평범하게 사는 순리와 정도의 사회, 그런 믿음직한 나라의 모양새는 언제쯤 갖출 수 있을지 안타깝다. 존경받는 정치지도자들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탄식이 국민들 사이에 나온 지 오래이다. 지도자 복이 지질이 없는 참으로 불쌍한 국민들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럴 때마다 변함없이 등장하는 용어들이 있다. 우리 사회가 참으로 즐겨 쓰는 말들이다. 이른바 ‘꿈’, ‘희망’, ‘행복’이다. 정치인이나 종교인 할 것없이 모든 이들이 말들을 무척 즐겨 사용한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긍정의 밝은 언어이다. 이는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이자 우리가 목표이기도 하다. 긍정적이고 보다 나은 내일의 아름다운 삶을 성취하고자 하는 미래비전을 함축하는 메시지로 이만한 단어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꿈과 희망, 행복은 같이 다니는 단어다. ‘꿈’이란 단어에는 재미있는 주석들이 망라되어 있다. 당초의 뜻은 바로 수면 중의 꿈이다. 이런 꿈에도 악몽의 뜻이 있다. 또 희망과 이상, 야심, 환상, 망상의 뜻도 있다. 재미있는 수식어도 붙는다. ‘참 꿈’, ‘개꿈’, ‘좋은 꿈’, ‘불길한 꿈’, ‘무서운 꿈’, ‘허황된 꿈’ 등이다. 학창시절 영어를 배울 때 접하던 문장인 “소년들이여, 꿈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도 청소년들에게 꿈을 통해 웅비하는 미래를 설계하는 좌우명이 되기도 했다.
흑인 인권 운동을 주도한 미국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명연설인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도 바로 희망의 꿈을 말하고 있다. 이 꿈은 인종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명연설로 깊은 감동을 안겨주며 회자되고 있다. 꿈이 있다면 시련과 고통과 모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바로 그것이다. 우리도 그 꿈을 이야기 하면서 우리 국민들에게 이만큼 커다란 울림을 던지는 명연설을 하는 지도자의 탄생을 그려본다.
꿈 못지않게 우리가 그리는 아름다운 세상을 담는 ‘희망(希望)’이란 단어도 새해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희망은 앞일에 대하여 어떤 기대를 가지고 바란다는 뜻이다. 소망과 기대, 요구 등을 함축하며 꿈만큼이나 다양하게 쓰여 진다. 밝은 빛과 긍정의 힘을 던져주는 상징 언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너무나 남용되다 보니까 쓰는 사람에 따라 마치 늑대소년의 말처럼 들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경우가 그렇다. 국민희망이니 희망한국이니 등등의 언어구사를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거짓과 허상의 언어유희라고 간주한다. 달콤한 포장으로 너무 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믿다가는 오히려 꿈과 희망이 모두 날아가 버리는 허황된 상황도 맞을 수 있다. 늘 그래왔다. 이제는 정치인들이 그려내는 꿈과 희망 보다는 마틴 루터 킹처럼 “나에게도 꿈이 있습니다!“라고 외치며 우리 스스로가 자신만의 멋진 꿈을 그려나가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고자 노력해야 할 절박한 시점이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의 행복한 삶이 소중하고 절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와 국가 나아가서는 세계를 향한 아름다운 이상도 함께 한다면 더욱 의미가 커질 수 있다. 사실 꿈과 희망을 갖고 이를 실현해나가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때로는 꿈과 희망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좌절과 고통을 맛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혜로운 마음으로 헤쳐 나가며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가는 산고(産苦)로 생각한다면 그 기쁨은 한층 배가될 것이다. 꿈과 희망이 없는 사람이나 사회, 그런 나라는 삭막하고 황량한 사막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그리는 사회는 부정부패, 불법과 탈법, 비리와 추악함, 거짓과 사기, 이중인격과 표리부동, 구밀복검, 양두구육, 양심불량, 위선, 도덕불감증, 후안무치, 안하무인, 사리사욕, 비상식, 배신과 모함, 표독한 언행, 폭력과 자살, 불신 등등 부정의 어둡고 악취 나는 세계는 결코 아니다. 이는 악몽이자 불행의 표상이다. 선을 가장하는 악인의 행태는 과감히 척결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경계해야 하는 것들이다.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잘못 선출하는 인물들은 국민고통의 산물임을 명심하여 오는 4월 21대 총선에서는 진실한 인물, 참된 일꾼을 뽑아야 한다. 주인에게 군림하는 표리부동한 인물들을 뽑아서는 국민 정신건강에도 이롭지 못하다.
이런 의미에서 2020년 경자년 새해에는 모든 것이 긍정으로 출발하여 웃음꽃이 만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길 소망한다. 우리 모두가 이런 분위기를 가꾸는 해가 된다면 새해 경자년은 우리에게 무한한 ‘꿈’과 ‘희망’을 안겨줄 것이다. 행복하고 건강한 사회도 분명 우리 앞에 바짝 다가설 것이다.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아질 것이다. 흰 쥐의 상징처럼 풍요와 번영이 넘칠 것이다. 여기에는 정치를 바로 잡는 국민들의 올바른 선거가 중심이 될 것이 분명하다. 나라의 운명이 바로 여기에 달려 있는 경자년이다. 국가 미래의 꿈과 희망이 21대 총선이 좌우한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를 국민들도 통감하고 있다. 대립과 반복, 분열의 사회를 봉합하는 것은 정치가 정상을 바로 찾고 국민을 위한 정치로 다시 거듭 태어나는 길 뿐이다.
새해가 밝았지만 지금 이순간도 청년실업과 경제난으로 실의와 좌절에 빠져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OECD국가 중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는 것도 숨길 수 없는 부끄러운 현실이다. 부패인식지수 45위의 부패공화국의 오명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이런 부정의 현실을 새해 슬기롭게 극복하고 행복한 사회를 지향하고자 꿈과 희망의 소중한 가치를 더욱 새롭게 되새겨야 한다. 새해는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배꼽이 빠져라 웃어대며 기쁨과 행복. 밝은 희망이 차고 넘치는 대한민국사회가 현실로 다가와야 한다. 2020년 경자년 새해를 맞아 개인이나 사회 구성원, 정치인 모두가 낡고 퇴행적인 부정의식을 과감하게 떨쳐내고 새로운 꿈을 향한 희망찬 새해설계로 보다 나은 긍정적인 미래가치를 찾아야 한다. 우리 사회,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도 소중한 새해 꿈이 있고 그 꿈은 반드시 실현되는 꿈이 되어야 한다. 정치도 나아지고 경제도 나아지고 취업도 잘되고 장사도 잘되고 사회도 잘되고 나라도 잘되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나아가는 그런 꿈과 희망이 넘치는 2020년 경자년 새해 소망을 그려본다.
2020-01-01
-
2019년 한해를 마감하며
2019년이 이제 저물어 가고 있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2019년이다. 우리는 한해를 마감하며 참으로 많은 회한을 가슴에 남기고 있다. 2019년 기해년 황금돼지 해라고 풍요와 풍성함을 소망했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해를 넘기는 시점에 서 있다. 세월이 유수 같다고 하던 옛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해마다 이맘 때 쯤 이면 늘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낸다는 말을 하게 된다. 회고하건데 2019년처럼 다사다난했던 때가 있을 까 싶다. 나라는 줄곧 전쟁과 평화의 사다리타기를 해 왔다. 평화의 한반도를 말하던 꿈같던 시간이 금방 지나고 수도 없이 쏘아대던 불상의 로켓들이 평화의 꿈을 앗아가 버렸다. 지금도 북미대화가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으르렁대는 모습이 마치 일촉즉발의 긴장감마저 흐르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금강산 시설물을 금방이라도 때려 부술 듯이 요란을 떠는 모습에서도 평화를 향한 길이 멀기만 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평화는 결코 구걸이 아님을 깨닫는 마음이 아쉬운 시점이다.
무엇보다 경제난은 국민들을 옥죄는 아픔이었다. 자영업자들이 쓰러지고 길거리에는 청년실업자들이 넘쳐나고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온 가족이 집단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모습이 12월까지도 이어졌다. 심지어 지난 7월 숨진 지 두 달이 지나 발견된 탈북민모자사망사건은 우리 사회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복지사각지대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버젓이 존재한다는 사실 앞에서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뒤늦게 법안을 발의하느니 뭐니 호들갑을 떨다가 이제는 시들해져 버렸다. 일가족 집단자살은 올 들어 계속되어 왔다, 사회안전망이 구멍이 뚫려도 뻥둟려 있음을 보게 된다. 송파 3모녀 자살사건이 충격을 주면서 무엇인가 달라지나 싶었는데도 올해 계속되는 일가족 자살사건이 대한민국 사회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복지정책은 어디로 갔는지 참으로 고통의 사회이자 비극의 현주소이다. 심지어 유명 정치인과 유명연예인들의 자살마저 잇따라 안타까움을 더해주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대구에서 일가족 4명이 생활고로 추정되는 집단자살사건이 발생했다. 이렇게 이어지는 집단 자살사건이 올 들어 서울, 화성, 시흥, 김포, 대전, 인천, 충북단양, 대구 등 모두 32번째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19년의 일가족 자살일지를 들춰보면 우리 사회가 지금 어느 정도로 망가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길거리에는 노숙자들이 넘쳐나고 심지어 청년들조차 무료급식소를 찾아 이른 새벽부터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소득주도성장이 무엇인지 국민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내년이 더욱 걱정이라고 한다. 생계형 가족들의 집단자살이 풍요로운 말장난을 비웃듯이 다반사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심각한 경각심을 던져주는 대목이다.
무엇이 우리 사회 우리 국민들을 이처럼 극단으로 몰고 가고 있는지를 냉철히 파악해야 한다. 이처럼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는 일가족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무엇 때문인지를 헤아리는 정치를 해야 하는데 이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어느 누구 책임을 통감하는 정치인들이 눈에 보이질 않는다. 아픔을 같이 나누고자 하는 눈물이 보이질 않는다. 오로지 권력욕과 국회의원 자리에만 탐닉하는 정치권의 모습만 보인다.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정치를 하고 국회의원을 하는지를 망각하고 있다. 국민들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목숨을 끊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나라마저 등지고 떠나는 이민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 법마저 이현령비현령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비난도 거세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정신은 온데 간데 없고 교묘한 말장난으로 형평성을 저버리는 이상야릇한 일들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서민들은 교통법규 하나면 어겨도 10만원에 가까운 생돈을 물어대고 있는 판국인데도 위법이 드러나도 힘이 있는 자들에게는 솜방망이를 휘둘러 대니 이게 과연 올바른 사법정의를 구현하는 나라인지를 의심케 하고 있다. 언제부터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이현령비현령의 법 적용을 해왔는지를 국민들은 묻고 있다. 법관의 양심과 법대로 해야 할 일들이 정의롭지 못하고 ‘가래 끓른 소리’로 들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스스로 통찰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이제는 사법 불신까지 팽배해지고 있다. 이런 2019년을 보내왔다.
올해 우리 국민들은 비정상이 판을 치는 정치판을 목도했다. 국민을 앞세우며 대립과 반목을 부축이고 각종 부정부패의 연쇄 고리들이 구석구석에서 판을 치고 있는 것을 체감했다. 아직도 썩은 부패의 고리를 감추고 분칠을 하며 양두구육의 모습으로 버젓이 행세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요즘 일본에서도 수뢰혐의를 받는 의원이 체포되고 그 일련의 비리과정을 속보로 전하면서 대서특필하고 있다. 부패정치인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사회악임이 틀림이 없다. 법을 어기면서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언제나 들통이 나면 그 이상 개망신을 당한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부패한 정치인들의 연결고리가 다 파헤쳐지지 않고 내년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2019년의 부패 수사는 종료가 아니라 진행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19년 한해를 마감하며 느끼는 것은 올 한 해 국민들의 고통지수가 매우 높았다는 사실이다. 광화문에서는 엄청난 인파가 모여 정치구호를 외쳐댔고 서초동 거리에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집회 모습도 보았다. 아침이 무서운 자영업자들은 삶이 너무나 버거웠다.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데도 적자에 허덕이며 눈물로 폐업을 해야 했다. 국민 불신의 단초를 제공하는 일부 언론들은 불의에 침묵하고 외면하고 호도하고 정치권력에 아부를 하며 정치시녀임을 자임해 왔다. 역대 이런 언론 시대는 없었다. 언론이 정치를 감시하고 비판하며 국민들에게 올바른 지향점을 제시해야 하는데도 정도언론의 길을 망각하며 아직도 매화타령만을 일삼고 있다. 이런 2019년의 언론의 모습도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임을 국민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2019년의 대한민국은 평화를 외치면서도 늑대소년이 되고 소득주도성장을 외치면서도 생계형집단자살이 잇따르고 사법정의가 무너져 내리고 부패정치인들이 활보하고 권력에 아부하는 치졸한 언론행태가 판을 치고 경제가 추동력을 상실하고 저출산고령사회의 기형적 사회구조가 나라의 근간을 흔들어 왔다. 뭔가 나사가 빠진 형국이다. 곡예를 하는 나라처럼 보인다. 올해 대한민국은 나라 안팎으로 브랜드가치를 스스로 추락시킨 역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참담한 한 해였음을 회고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참으로 씁쓸한 한해로 모두가 뼈아픈 자성의 해로 삼았으면 한다. 해왕성 밖에서 보이저 2호가 보내온 사진에 창백하고 푸른 점인 지구 속 대한민국의 2019년은 모두가 참으로 힘든 한해였다. 부디 2020년은 달라지기를 바랄 뿐이다.
2019-12-27
-
국회를 바로 세우는 길
▲ © 세종타임즈
선거법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지만 내년 총선을 향한 경주가 막이 올랐다. 지난 17일부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면서 현수막이 내걸리며 어딘가 어색하면서도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생소한 사람들이 지역의 새로운 일꾼이 되겠다며 나서는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국회에서는 연동형비례대표제라는 것을 놓고 정당 간에 동상이몽의 셈법을 헤아리고 있는 것도 국민들의 눈에는 비정상적으로 비춰지고 있음도 숨길 수 없는 요즘의 모습이다. 총선이 내년 4월 15일로 12월이 지나면 사실상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런 데도 갖은 머리를 다 쓰며 오로지 향후 권력쟁탈을 위한 계산만 하고 있으니 국민을 위한 정치보다는 권력을 위한 정치가 되어버렸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자들은 우선 자유민주주의의 기본부터 제대로 갖추고 나와야 한다. 선거 때마다 화려한 정치공약으로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려고 온갖 꼼수를 다 동원하지만 선거 이후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표변하는 모습이 정치인들의 풍속도라는 조롱도 받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회의 기능이 정상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2020년도 예산안 처리도 한마디로 주먹구구식으로 졸속처리하여 어영부영 지나고 있다. 나라의 엄청난 예산을 심의 의결하는 처리 절차가 국민들에게 투명하지 못하게 처리될 정도로 엉뚱한 일에만 골몰하니 나라꼴이 제대로 돌아갈리 만무하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선거법이니 공수처법이니 뭐니 하면서 세월만 죽이는 정치를 하니 가득이나 어려운 국민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다. 광화문과 청와대 앞에서는 집회가 끊이질 않고 있다. 과거 울산시장 선거와 관련 청와대의 선거개입문제도 뜨거운 감자가 되어 세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뒤늦게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늘 그렇듯이 그 연결고리가 교묘하기 때문이다. 검찰의 수사로 그 전모가 밝혀지길 바라지만 국민들은 벌써부터 그 썩은 냄새를 감지하고 있다.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유권자들에게 당당할 정도로 자기관리를 잘하고 나온 사람인지는 알 수가 없다. 선거철마다 각 정당들은 마치 흠결이 없고 도덕적인 인물들을 선정하여 공천을 주는 듯 해 왔지만 실상은 그렇게 커다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해 온 것도 사실이다. 함량미달인 자들이 교묘하게 포장되어 국회를 향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에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멸시당하는 사태까지 빚고 있다.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자들이 바로 국회의원들이라는 비아냥거림이 거세다. 지금 여의도의 국회가 바로 이런 국민실망의 진원지가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검증을 받고 선택받은 자들의 행보가 이러할진대 국민들이 과연 신뢰와 존경의 마음을 보낼 수 있다고 보는지 불문가지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볼 수 없는 위험천만한 의식구조와 이념 철학을 가진 자들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으니 이런 모순이 어디 있는지 국민들의 허탈감과 상실감이 매우 큰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 국회는 선거법이 문제가 아니라 인물선정에서부터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일꾼의 자세는 찾아보기 힘들다. 교만과 오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4년마다 머리를 조아리며 표만 얻으면 된다는 식의 인물들의 모습은 어찌 보면 참으로 추하다. 지금 같은 나라 형국이라면 국회의원 전원이 사퇴하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 해야 할 지경이다. 그만큼 책임이 무겁다는 것이다. 국민대립과 반목을 조장하는 정치 갖고는 대한민국의 올바른 미래가 열릴 수 없다. 연동형비례대표제에 목숨을 걸듯이 나서는 정당들의 모습도 추하긴 마찬가지이다. 300명 국회의원 정원을 슬그머니 그 숫자를 늘리고 싶어 안달을 하지만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도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은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차제에 국회의원들을 무보수 명예직으로 바꿔버리는 것도 좋지 않으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9명이나 되는 보좌관들도 모두 없애면 국민혈세도 줄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갖고 있는 특권도 모조리 없애는 혁신이 선거법과 함께 나온다면 이것이야 말로 국민을 위한 국회로 환골탈태하는 진정한 모습이 될 것이다.
내년 21대 총선의 선거전이 사실상 막이 올랐지만 선거법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만약 선거법이 이렇게 지지부진할 바에는 개정하지 말고 종전의 법을 그대로 적용해 선거를 치르는 것이 더 낫다. 코앞에 다가온 총선을 앞두고도 당리당략에만 눈이 어두워 제 갈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국민들만 안타까울 뿐이다. 정치를 하자는 것인지 하지 말자는 것인지 마치 이판사판으로 사사건건 부딪히는 대한민국의 정당정치 행태를 보면 이것이 과연 민주주의를 하는 국가인지 조차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모두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깜깜이 선거’도 선거지만 예비후보를 등록하고 돌아다니는 인물들의 모습조차 머쓱해 보이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대한민국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내년 총선은 참으로 중요한 선거이다. 난마처럼 얽힌 대한민국의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고 치유해야 하는 거대한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치 불신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양상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헝클어진 대한민국 사회를 바로 잡고 상처받은 국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길은 훌륭한 새 인물들이 국회에 많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지금 같은 인물들로서는 이 난국을 돌파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대폭적인 물갈이로 진부한 정치꾼들을 퇴출시켜 국회의 자정능력을 극대화해야 한다. 그 밥에 그 나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맡은바 소임을 묵묵히 다해 나가는 훌륭한 인물들을 발굴하여 국민들을 위한 진정한 국회의원들로 세워야 한다. 정치선진국인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유럽 국회의원들의 무보수 명예직의 유럽의 국회의원들의 성실한 자세를 타산지적으로 삼아야 한다. 이들처럼 인생의 마지막 삶을 이웃과 나라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갖은 참된 인물들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많이 나서기를 바란다. 그것만이 나라를 바로 잡고 국회다운 국회를 만드는 길이다. 내년 선거는 국민심판의 선거이자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린 역사적인 선거가 될 것이다. 국민들도 부정부패의 비리정치인이나 선동적인 정치판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묻지 마 투표’, ‘묻지 마 선거’의 부끄러운 자세를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불행은 국민 스스로가 자초하게 될 것이다. 총선을 통하여 국민들의 손으로 만신창이 된 국회를 바로 세워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올바른 민주의식과 자정능력을 되찾을 시점이다.
2019-12-21
-
부패가 없는 세상을 누가 감히 말하는가?
▲ © 세종타임즈
국제투명성기구(TI: Transparency International)는 지난 1995년부터 매년 각 국가별로 공무원과 정치인의 부패정도에 대한 기업인 및 애널리스트들의 인식정도를 국가별로 지수화하여 발표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부패인식지수를 발표하는 것인데 국가 사회 및 특정 기관의 부패정도에 대한 관련자들의 인식을 지수화한 것으로 주로 공공부분의 부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통하여 대한민국사회를 청렴성을 살펴볼 수 있다는데 매우 큰 의미가 주어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는 바닥을 걷고 있다. 올해 1월에 독일 베를린에 본부를 둔 국제투명성기구(TI, Transparency International)에서는 2018년도 각 국가별 부패지수기준이라 할 수 있는 부패인식지수 2018(2018 Corruption perception Index)이 발표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부패인식지수(CPI)는 100점 만점 중 57점으로 조사대상 180개국 중 45위이다. 이전보다 6계단 상승했으나 30위 이하로 기준되는 부패지수 국가로 여전히 부패한 국가로 분류됐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가 부패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부패유발의 주체도 대부분 정치인들로 지목하고 있다.
그동안의 부패지수를 살펴보면 우리나라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첫해인 1995년 조사대상국 41개국 중 27위를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1996년 54개국 중 27위, 1997년 52개국 중 34위, 1998년 85개국 중 43위에 이어 1999년 99개국 중 50위를 차지했다. 이는 부패척결을 외치면서도 아직도 구호에 그치고 있다는 반증이다. 특히 정경유착의 지표(PRS)는 지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낮은 수준인 100점 만점에 50점에 머물고 있다. 공직사회의 부패정도가 다소 개선된 반면 정경유착의 전반적인 부패수준(PERC)은 45점에서 42점으로 점수가 오히려 내려갔다. 정치인들이 부패의 온상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니 아직도 부패공화국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의 자화상이 이렇다. 북한의 경우는 최하위에 가까운 171위였으니까 이를 쳐다보며 대견해 할지 모르지만 이를 비교한다면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문재인정부가 적폐를 청산한다고 하지만 실제 이는 생각대로 되지 않고 있다. 올해 대한민국을 혼돈에 빠트린 사건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아직도 관련 정치인들이 검찰의 수사선상에서 부정부패의 썩은 고리가 들춰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러니 국민들의 마음과 정신이 얼마나 피폐해지고 있는지는 불문가지이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썩어있는 지 끝이 보이질 않는다. 더욱 가관인 것은 거짓과 위선으로 이를 포장하며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도무지 자기성찰이 보이지 않는다. ‘도덕불감증’인지 아니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인지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살펴보기 힘들다. 이런 사회와 국가를 우리는 병든 사회, 병든 국가라 일컫는다. 안타깝지만 대한민국이 이런 형국으로 국민고통은 날로 배가되고 있다.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반부패와 청렴을 부르짖는 사람의 모습에 이런 기운이 감돈다는 사실이다. 부패를 말하면서 스스로가 부패한지 모르는 양두구육의 부패운동이 혹세무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자신들은 부패하지 않은 사람인양 포장하며 뒤돌아서서는 부패의 갖은 추악한 짓을 서슴지 않고 있다고 한다. 반부패, 청렴운동을 말하면서 갖은 명목으로 금전을 요구하며 이른바 반부패장사를 일삼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러니 부패운동을 그렇게 해도 나라가 아직도 부패공화국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과거 환경운동을 한다면서 갖은 약점을 이용하여 기업체들을 괴롭히고 돈을 뜯어내는 형국과 다름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 대상층이 너무나 다양하고 선량한 참여자들이 알게 모르게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깝다. 우리는 반부패운동을 명목으로 상식을 벗어나는 행각을 일삼는 행위에 대하여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이는 또 다른 부패이기 때문이다. 부패한 자들이 반부패를 외치는 황당한 사회가 대한민국의 사회이고 반부패 청렴운동이 되어서는 부패공화국을 청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부패방지조직이 부패온상이 되어 사회적 지탄과 조롱거리가 된다면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이는 환경운동을 빙자하며 기업체들에게 돈을 뜯던 무리들이나 다름이 없다. 반부패 청렴운동을 한다면서 사리사욕을 취하는 무리들이 존재한다면 이는 과감히 척결해야 할 심각한 적폐이자 사회적 해악이다.
반부패 척결에는 너와 내가 있을 수 없다. 우리 모두가 대상이며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거짓과 사기는 안 되는 것이다. 오로지 정의와 진실만이 존재하는 것이 바로 반부패청렴운동이다. 김영란법을 만들어 청렴사회를 위한 발판이 마련되어 있다. 심지어 검찰조직에까지 반부패전담부서가 생겼다. 일시적인 외침이나 구호만으로는 청렴사회를 이루기가 어렵다. 어릴 때부터 청렴교육을 생활화하고 표리부동하지 않은 심성을 가꾸어나가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반부패를 외치는 사람이 썩어 있거나 청렴을 내세우는 사람이 추악한 모습을 감추고 있다면 이는 어불성설이며 국민사기극에 다름이 아니다. 좋은 게 좋다고 불의와 허상에 타협하며 협잡을 하면 이 또한 공동정범이다.
차제에 국민권익위원회는 산하 부패방지관련 단체들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여 바른 길을 걷고 있는지를 점검하기를 바란다. 이들 조직에 대한 투명성과 반부패성을 오히려 살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재원마련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이 재원들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이들의 세입세출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는지를 분명히 살펴야 한다. 기존에도 많은 추한 문제점들이 노출되어 아직도 세간에 비난을 받고 있는 사례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도감독을 소홀히 하거나 조직운영전반에 대한 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는 직무유기이며 향후 심각한 사태에 직면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반부패 청렴운동은 누구의 전유물이 될 수 없음을 모두가 깊이 깨달아야 한다. 여기에는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사랑하는 애국애민 정신이 투철해야 한다. 거짓과 사기, 불의와 퇴행, 교만과 협잡, 부정부패의 온상에서 탈피하여 진실과 선행, 정의와 겸손, 그리고 청렴한 마음가짐을 다시금 재정립하며 자신들부터 되돌아보아야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그래야 대한민국 반부패정신과 청렴의 정신이 바로 설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는 말이 있다. 우리말 속담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라는 말이 있다. 이 모든 말은 바로 나부터 먼저 깨끗하고 나서야 남을 탓할 수 있음을 말한다. 하물며 성경에는 “네 오른 눈이 너로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서 내버려라. 신체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낫다.”고 하였다. 반부패에 대한 강력한 경종이다. 일그러진 모습으로 반부패를 외치는 추한 모습은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지향점이 아니며 죄악임이 분명한 것이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국회가 민주절차를 포장하는 정당들의 야합으로 예산을 통과시키는 것을 국민들이 잘했다고 박수를 칠 리가 없다. 제대로 심의가 되었을 리가 만무하다. 그 피해자는 국민이다. 민주주의가 부패하고 퇴행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더 나아가 국민을 위하여 일한다고 나선 정상모리배들이 국가 중요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중요 직책을 맡아 갖은 추악한 비리와 부정부패를 일삼는 것은 한마디로 내면의 정신세계가 썩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지만 온 세상이 경멸하는 들보를 눈에 담고 다니는 격이다. 이런 자들 때문에 나라의 부패지수가 높아진 것이다. 이제 사회고위층인사에게 부여되는 높은 도덕적 수준을 의미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Oblige)’를 다시금 생각해야 한다. 정치인이든 기업인이든 유명연예인, 사회단체의 리더들이든 모두가 지켜야 하는 가치이자 의무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2019년 세밑 지나온 잘못과 허상을 집어 던지고 환골탈태하는 자기성찰 속에서 다시금 변화해야 한다. “부패가 없는 세상을 누가 감히 말하는가?”에 대한 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야 보다 깨끗한 마음가짐으로 2020년 경자년 새해를 당당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2019-12-14
-
2019년 12월 세밑 단상
▲ © 세종타임즈
2019년 12월이 가고 있다. 해마다 이 때쯤이면 다사다단했던 한해를 보내는 마음을 세월이라는 단어에 담아 회고하게 된다. 사건사고로 얼룩진 한해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이 기억과 역사 속으로 남겨진 채 말이다. 한해에 세웠던 계획이 잘 성취되었는지 생각해보면 누구나 아쉬움을 토로하게 된다. 세월(歲月)이란 단어는 흘러가는 시간을 일컫는다. "가는 세월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 세월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고 가더라" 고려 말 선비가 세월의 빠름과 나이 듦의 속절없음을 한탄하며 썼다는 시조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라는 노년의 자조 섞인 말도 인구에 회자된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은 금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미국 100달러 지폐 속 초상화의 주인공인 벤자민 프랭클린이 서점의 점원 시절에 한 말이다. “Time is money.(시간은 금입니다.)” 이 말은 누구나 알고 있는 명언 중에 명언이다. 하지만 금으로 시간은 사지 못한다. 시간은 그만큼 값진 것이고 우리 삶에 있어 소중하다. 멈추지 않는 시간, 돌아오지 않는 시간,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이 순간 이 시간의 의미는 너무나 중요하다. 시간은 우리가 머무는 공간과 더불어 보이지 않지만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시간을 멈추는 공간인 블랙홀, 빛조차 빠져 나올 수 없다는 블랙홀의 삶이라도 한번 쯤 차원을 달리해 생각해 보지만 부질없음을 느끼게 된다.
지금 정치는 식물정치가 되어가고 있다. 예산은 법정시한을 넘기고도 처리하지 못하여 국회의원들이 불법과 직무유기를 자행하고 있다. 이에 대한 처벌규정은 없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가 하면 내년 4월 15일에 치러지는 21대 총선을 앞두고도 선거법하나 확실하게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 이럴 바에는 그냥 기존대로 선거를 치루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각종 민생법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도 ‘너는 너 나는 나’이다. 민주적인 질서나 협치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세월을 말하는데 쓰는 또 다른 말이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그 많은 국회의원들이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들의 도끼자루가 썩고 있다. 주인인 국민들이 일꾼인 국회의원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를 모른다면 주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무노동 무임금의 적용을 국회의원들에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이 귀한 시간에 민주정치는 어디로 갔고 왜 대립과 반목만 일삼고 있는 지 국민들만 속을 끓이고 있다. ”못된 강아지 콧잔등 아물 날 없다“고 했다. 딱 그 짝이다. 일하기 싫으면 그만 두어야지 왜 세비만 꼬박꼬박 받아먹고 있는지 답을 해야 한다. 주인인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알기에 이런 행동이 다반사로 나오는지 참으로 후안무치하다.
모든 것이 정상을 벗어나 추악한 모습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참으로 다사다난한 한해였다. 이런 가운데도 오히려 서민들이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김장김치를 담아서 함께 나누며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사랑을 펼치고 있다. 역 광장 등지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이 온도가 오르고 있다. 구세군의 자선냄비의 종소리도 어김없이 등장해 세밑 분위기가 서서히 고조되고 있다. 곳곳에서 송년모임도 시작되고 있다. 2019년 황금돼지의 해가 이제 서서히 머물고 2020년 기해년 쥐의 해가 다가오고 있다. 이를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고 하지만 황금돼지의 꿈을 키우며 풍요로움을 소원했던 서민들의 마음은 한해의 끝자락에 서서 아쉬움만 더해 가는 것 같다.
지혜의 왕 솔로몬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도 모두 지나가고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찾아오길 소망해 본다. 분명 고통스럽고 어두운 시간은 지나가야 한다. 시간이 멈춘다하더라도 이런 곳과 순간을 원하지 않는다. 국민을 위한 시간을 헛되게 버리는 정치인들, 무위도식하며 시간을 버리는 어리석은 자들, 위선과 거짓으로 혹세무민하는 사기꾼들 등등 모두에게 시간은 지나가고 있다. 다만 그 시간의 가치를 참되고 선하게 활용했느냐 아니면 사리사욕과 양두구육의 표리부동한 삶을 살아가는 데에 쓰고 있느냐 하는 여부에 쏜 살 같이 지나가는 세월의 영욕이 갈린다고 생각한다. 세월이 멈추지 않는다면 아니 멈출 수 없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딛고서 후회없는 삶의 자세로 자신들을 돌아보는 세밑의 자성의 순간을 한번 쯤 가져봄이 어떤지 권면해 본다.
2019-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