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이 가중되는 피로사회에서 살아남기

농협세종교육원 정산례교수

2020-11-22 04:32:00

 

  © 세종타임즈

남의 일, 남의 탓,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수많은 행동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자유를 넘어 침해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정보보호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니 말이다. 먼 옛날 갈릴레이는 지동설(태양이 우주의 중심이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주장한 학설)을 주장했지만 2020년 정보의 홍수 속에서 SNS등을 통해 개인을 중심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수도 인기스타도 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우주가 태양을 중심으로 라는 말에 비추어 개인의 삶을 중심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과 연결되는 삶인 것이다. 자유라는 것이 무색해질 만큼 개인의 인격보다 타인의 삶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개인이 살아가는 것이다.

 

반반으로 혹은 양자택일로 흑과 백을 나누어야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 마냥 목소리들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한 분야 혹은 개인의 문제는 아닐 것으로 보여 진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개인을 중심으로 주변이 밝아지고 주변을 중심으로 조직이나 사회가 좀 더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와 존중이 넘쳐흐르는 세상이 당연시 되는 것은 어려운 것일까? 2010년 가을 재독 철학자 한병철교수의 ‘피로사회’, 독일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피로사회’는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본문 중에는 우울증이 지배하는 시대에 대한 우아하고도 날카로운 철학적 진단을 함과 동시에 “피로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피로사회에서는 현대인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라는 글로 세상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피로사회는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문화에 대한 비판이 아니었을까?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2012년 16,000개의 컴퓨터로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던 시점의 피로사회와 컴퓨터가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면서 공상과학 속 상상이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인간다워 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함께 존재하는 2020년 이다. 오늘날 우리는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동시에 수많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안정적 성장과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변동성이 크고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한 시대이며 복잡하고 애매모호한 것들이 너무 많은 세상을 견디고 있는 것이 그저 기특할 따름이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2010년 피로사회에서도 한병철교수는 “절대적 경쟁(남과의 상대적 경쟁이 아니라 스스로 끝없이 뛰어 넘어야 하는 자기 자신과의 경쟁)의 무대로 몰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 무대가 2020년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지면서 전 세계 인구가 개인의 삶에 관전자가 된 것이다. 이러한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는 것이 답이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소소한 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존재해야 하는 것이었음에도 찾아야 보이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스스로가 영화 속 주인공 이라면 우리는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는 이유로 자기 감시와 자기 착취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살아있음에 감사하다는 말보다 다가올 미래의 불확실하고 복잡한 세상에 개인이든 조직이든 세찬 바람이 불어도 태풍이 몰아쳐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가진 뿌리 깊은 나무 혹은 차돌맹이 같은 삶을 위해 심신을 견고히 해야 하지 않을까? 힘겨울 때 마다 필자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온 날들 중 가장 힘든 날 이었는가?” 말이다. 이런 질문을 던지고 나면 곧바로 머릿속에서 생각이 답을 해 준다. “아니” 라고 말이다. 개인의 삶이 하루하루 명작이 될 수 있도록 가치(무엇이 얼마나 중요한지 판단하는 기준)를 만들어 가고 의미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힘겨움은 잠시 놓아 주고 소중한 것을 지키며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재정비 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자주 가지며 피로사회에서의 현명한 답을 찾아가는 날들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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