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안정인가, 서민의 좌절인가

– 10·15 부동산대책이 던진 희망과 불안의 갈림길에서 –

김헌태논설고문

2025-10-19 11:05:49

 

 

 

규제의 칼날, 시장의 숨통을 죄다

정부가 10월 15일 내놓은 ‘10·15 부동산 대책’이 시장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서울과 수도권의 과열된 주택시장을 겨냥해 투기성 자금의 유입을 차단하고, 대출 규제를 강화해 이른바 ‘갭투자 종식’을 선언한 것이다. 겉으로는 주택시장 안정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하지만, 정작 시장의 반응은 불안과 혼란이 교차하고 있다. 정책의 방향이 투기 억제에만 머물고, 실수요자와 서민의 내 집 마련 기회까지 함께 옥죄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쏟아진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강화하고, 다주택자와 고가주택 보유자에 대한 세금 부담을 높이는 조치는 그 자체로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규제가 서민과 실수요자에게까지 동일하게 적용되면서, 내 집 마련의 문턱을 더욱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결혼과 출산을 앞둔 젊은 세대는 물론, 30~40대 실수요층마저도 자금조달의 길이 막히자, 시장을 떠밀리듯 외면하고 있다. 결국 ‘집값은 잡았지만, 사람들의 희망도 함께 꺼버린 것 아니냐?’라는 냉소가 들려오는 이유다.

 

수도권은 냉각, 지방은 불안

이번 대책의 목표는 수도권 부동산 과열 억제다. 하지만 정책의 여파는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서울과 경기, 인천을 중심으로 매수 심리가 얼어붙자, 지방의 중소도시들에서도 거래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이 식으면 지방은 얼어붙는다’는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지방의 부동산시장은 이미 인구 감소와 산업공동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대출 규제 강화까지 겹치자, 중소 건설사들은 신규 분양을 미루거나 사업을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재개발과 재건축을 기다리던 주민들도 불안하다. 대출이 막히면 조합원 분담금 마련이 어려워지고, 사업성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정부의 규제가 수도권 투기를 잡는 대신, 지방의 재건축시장까지 옥죄는 부작용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특히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국가 비전과도 엇박자가 난다. 수도권 쏠림을 완화하겠다는 국토 정책의 큰 방향 속에서, 지방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부동산 규제는 결과적으로 수도권 집중을 더 심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지방의 주택공급과 경기 활성화를 위한 별도의 보완 대책이 절실하다.

 

‘갭투자 종식’의 명분과 현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갭투자 종식”을 강하게 내세웠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투기형 거래가 시장을 왜곡시켰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갭투자는 주택 가격 급등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그러나 문제는 시장의 전체 수요를 ‘투기’로만 보는 시각이다. 전세를 활용한 매입은 단순한 투자뿐 아니라, 장기적인 실거주 전환을 염두에 둔 수요도 존재한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채 일률적으로 대출을 막으면, 결국 시장에서 자금이 빠져나가고 주택공급은 위축된다. 건설경기가 냉각되면 일자리가 줄고, 지역경제도 타격을 입는다. 정부가 갭투자 억제의 명분을 내세우며 금융권을 옥죄는 사이, 시장은 이미 ‘거래절벽’으로 얼어붙고 있다. ‘투기 억제’가 곧 ‘경제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서민의 꿈, 정책의 벽에 가로막히다

이번 대책의 또 다른 그림자는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이 점점 멀어진다는 점이다. 실수요자 중심의 정책을 표방하면서도 정작 실수요자들은 대출 문턱에 가로막혀 집을 살 수 없게 되었다. 젊은 세대들은 이제 “정부가 집 사지 말라 한다”라는 체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출이 막히면 분양시장도 얼어붙는다. 미분양 물량이 늘고, 건설사의 자금경색이 심화되면 공공주택 공급까지 차질을 빚게 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분양 확대’나 ‘청년 맞춤형 주택 지원’도 결국 민간 시장과 연결되어 돌아가는 시스템인데, 민간이 멈추면 전체의 톱니바퀴가 멈추는 셈이다.

결국 부동산시장의 안정은 ‘억제’만으로는 달성되지 않는다. 안정은 균형 위에서 이루어진다. 규제와 지원, 공급과 수요, 금융과 주거복지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 지금은 ‘억제의 균형’이 아니라 ‘억눌림의 불균형’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정부의 방향은 옳지만, 속도와 방식은 문제다

정책의 방향성 자체는 나쁘지 않다. 투기 수요를 억제하고, 가계부채를 안정시키며, 건전한 시장 질서를 세우겠다는 목표는 분명히 옳다. 그러나 그 속도와 방식이 문제다. 시장은 생명체처럼 민감하다. 정책의 강도와 시기를 조금만 잘못 조절해도 급속히 위축되거나 과열될 수 있다.

특히 대출 규제는 단기간 효과는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부작용이 크다. 대출은 단순한 ‘빚’이 아니라, 경제의 순환을 움직이는 ‘혈액’이다. 이 혈류를 막아버리면 서민의 주거 기회는 물론, 중소건설업체와 지역경제까지 함께 마른다.

정부는 시장을 ‘교정’하는 역할을 해야지, ‘지배’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시장의 흐름을 읽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동산 정책은 단속과 규제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그 안에는 사람의 삶, 꿈, 그리고 경제의 맥박이 함께 뛰고 있기 때문이다.

 

내 집 마련의 희망을 되살려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규제의 완화’가 아니라 ‘균형의 회복’이다. 정부가 서민과 청년층의 내 집 마련 사다리를 복원하기 위한 실질적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 소득 수준별로 차등화된 대출한도,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대한 완화된 LTV·DSR 기준, 지방 중소도시의 재건축·재개발 지원 등 현실적 대책이 절실하다.

또한 단기적 시장 안정보다 중장기적 주거정책 비전을 세워야 한다. 부동산은 단순한 자산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다. 주거정책은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사회복지의 한 축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책은 국민의 신뢰 위에서만 작동한다. 규제와 세금, 통계와 수치 뒤에 가려진 ‘사람의 이야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집값의 하락이 아니라 ‘안정된 삶의 기반’이다. 부동산 정책이 그 본래의 목적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시장의 온기를 되살리는 용기

정부의 10·15 부동산대책은 분명 시장의 불안 요인을 억제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제는 ‘억제의 시대’를 넘어 ‘조율의 시대’로 가야 한다. 부동산시장에 필요한 것은 냉각이 아니라 온도조절이다.

시장은 언제나 인간의 심리 위에 존재한다. 정책은 그 심리를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민이 “이제는 살 만하다” 느끼는 순간이 진정한 안정이다. 냉정한 규제가 아니라 따뜻한 신뢰가 그 시작이다.

10·15 대책이 진정한 안정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정부가 ‘정책의 칼날’보다 ‘정책의 손길’을 기억해야 한다. 시장을 눌러서는 안 된다. 국민의 삶을 받쳐야 한다. 부동산 정책은 단순히 집값을 잡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희망을 세우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10·15 대책은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그 칼날이 서민의 가슴을 베어서는 안 된다. 집은 투기의 수단이 아니라 삶의 보금자리이다. 정부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 집 마련의 희망을 되살리는 길 위에서 다시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안정’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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