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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도 신입생을 뽑기 위한 ‘수시’가 한창 진행 중이다. 학교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배우 되기>를 향한 열기는 여전하다. 매년 배우가 되겠다는 학생들이 3000명 이상 입학하고 또 졸업한다. 대한민국 뿐 아니라 세계 어디든 배우가 되겠다는 인구는 매년 늘고 있다. 그러나 ‘좋은 배우’가 된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자신의 재주 하나 달랑 믿고 곧잘 힘든 도전을 감행하지만 부르지 않아도 다가오는 친구처럼 오만의 늪은 늘 속삭인다.
“배우는 예쁘고 연기만 잘 하면 되지” 혹은 “남에게 없는 장기를 많이 갖고 있으면 다른 배우들 보다 먼저 출세할 수 있지.” 그럴까, 과연?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배우가 되려면 아름다운 몸과 끝없는 자기 계발은 물론, 전통과 습관, 삶을 바라보는 자세, 자연의 이치와 우주의 진리를 먼저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진짜 배우가 될 수 있다는 걸 고민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의 리 스트라스버그는 배우이자 연출가로 유명한 아메리칸 메소드의 선두 주자였다. 그의 연기학교를 찾았던 안젤리나 졸리는 “실제처럼 연기하려면 배우가 과거의 기억, 경험, 감정을 이끌어내 연기해야 한다.”는 스트라스버그의 말을 듣고 끝내 2년 만에 그만 두었다고 한다. 극중 인물을 표현하는데 필요한 경험이 충분치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한 평생 얼마나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맡은 역할이 에이즈 환자라면 그 경험이 없어도 연기는 정녕 가능한 걸까? 배우들 대부분은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비슷하게 만들어 갈 것이다. 적극적인 배우라면 에이즈 환자를 직접 만나 얘기도 해보고 그들을 면밀히 조사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진짜 에이즈 환자처럼 보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연기를 하려면 상상력, 경험, 과거의 기억, 감정 조절 등 모두가 중요하다. 게다가 새로운 경험을 위해 ‘여행을 하는 것’도 배우에겐 일용할 양식과 같다. 지친 도심을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는 건 많은 걸 새로 느끼게 해준다. 그것은 돈으로 살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듣고 얻을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다.
국도 변의 산하가 울긋불긋 색칠을 시작했다. 어느 화가인들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그릴 수 있으랴. 그 아름다움일랑 멀리서만 보지 말자. 직접 땅을 딛고 산 기운, 하늘 기운마저 온몸으로 마셔 보자. 몸 안의 온갖 미움과 두려움 날려버리고 다시 일상의 삶으로 되돌아 갈 수만 있다면 배우로서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버리고 다시 채우는 힘과 필요하다면 이내 그걸 비울 수 있는 지혜가 관객을 의식하지 않는 ‘천연덕’과 기막히게 만나는 날, 배우 지망생들의 꿈도 어느덧 저 산과 하늘색으로 물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