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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인 세종시로 내려왔지만 국회가 있는 서울 여의도에서 오래 살았기에 그곳은 내게 제2의 고향 같아 그리워질 때도 있다. 그런데 요즈음 언론계 후배들에게 들은 여의도 정가 이야기가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해외 순방의 여독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박근혜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에서 “만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고 하면서 자기 할 일은 하지 않는다. 위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국회가 다른 이유를 들어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은 직무유기이자 국민에 대한 도전”이라는 말도 했다. 대통령의 입장으로는 경제활성화 법안과 노동개혁 법안,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며 발목 잡는 국회, 특히 야당이 얼마나 미웠을까?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미울 만도하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이기 때문이다. 그 한마디로 정국은 얼어붙고 협상의 정치가 길을 잃게 된다. 더구나 박 대통령이 언급한 국회 심판론에도 치명적 약점이 있다. 3권 분립의 원칙상 입법은 국회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이다. 전해들은 바로는 한중 FTA 비준안 처리를 호소하러 간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야당 간사를 만나지 못해 5시간이나 국회 주변만 맴돌다 발걸음을 돌렸다는 말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 입법부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첫째가 국민의 여론이 압력이 되어야하고, 둘째는 대통령의 앞장서는 설득의 리더십이라 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웹사이트 방송에 출연해 건강보험 개혁안, 일명 오바마케어를 홍보하고 시리아 정책에 반대 의견을 피력해 온 공화당 의원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설득하는 것은 좋 정치의 본보기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정쟁의 정치가 아니라 타협과 설득의 통해 정국을 이끌어가야 한다. 불의와도 타협을 할 수 있는 것이 정치인데 왜 그런 장을 마련하지 못하는가? 정무수석이나 장관에게 일정부분의 전권을 주어 조정하고 설득하는 통로를 가동해야 한다.
벌써부터 정가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제기될 야당의 ‘정권 심판론’이 먹혀들지 않도록 대통령이 ‘역(逆)심판론’ ‘국회심판론’을 펴는 것은 아닌지 의심어린 말도 나오고 있다. 얼마 전 6월에 있었던 국무회의에서 ‘배신의 정치 심판’발언과 11월에 있었던 ‘진실한 사람 선택’해 달라는 ‘국회 심판론’으로 여당의 의석을 180석 이상을 확보하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얘기도 떠돌고 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더라도 본인이 옳다고만 생각하는 독선적 리더십으로 나라를 망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국가장으로 예를 다한 김영삼 전대통령은 설득의 리더십으로 칼국수정치를 한 사람이다. 이렇게 모두가 설득과 타협의 정신으로 한자리에 모여 자꾸 의견을 조율하고 조정해야 정치가 산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오히려 예전보다 못한 퇴행수준으로 가고 있다.
정치의 퇴행은 정치인 수준 저하와 동전의 앞뒷면 관계다. 정치가들이 욕을 먹으면 유능한 사람들이 정치 참여를 주저하고, 그 자리를 얄미운 생계형 정치인들이 들어서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흔히 말하는 소명으로서의 정치가 아니라 생업으로서의 정치다. 이런 정치인들은 절대로 스스로 나가지 않는다. 왜야하면 생계 수단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명으로서의 정치가 아니라 생업으로서의 정치는 언제쯤 멈출 수 있을까.
그러나 희망은 있다. 내년에 치러지는 총선에서 단합된 국민의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언론과 시민단체가 만들어내는 대한민국 의회 의정보고서를 꼼꼼히 살펴보고 멋진 투표권을 행사하자. 그 길만이 나라를 구하고 애국하는 길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