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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피 아닌 빵 먹고 자란다.

유태희 논설위원

2015-12-03 05:18:00
▲     © 행복세종타임즈


雲庭김종필(金鍾泌, 1926년 1월 7일 ~ )은 우리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박정희가 5.16 군사 정변을 일으킬 당시 중령으로 정변에 참여했다. 박정희의 조카딸 박영옥과 결혼했으며 35세에 육군 준장으로 진급 후 예편했다. 9선 국회의원으로 최다선 국회의원 출신이며 제11대, 31대 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 김영삼, 김대중과 함께 3김이라 불리며 대한민국의 정치를 이끌었으며, 민주공화당과 자유민주연합 등의 총재를 지냈던 분이다. JP김종필의 증언록 소이부답(笑而不答)을 연재 내내 흥미롭게 읽었다. 더구나 한국현대 정치사의 살아있는 증인의 증언을 듣자니 많은 감회가 있었다. 가난한 우리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고향인 충청도를 애향심으로 끌어안았다. 정치에 있어서 때로는 지혜를 때로는 뚝심으로 한 길을 가셨던 큰 어른이셨다. 살펴보면 말머리에 민주주의는 피가 아닌 빵을 먹고 자란다는 그 한마디가 바로 민심이요 천심이라는 것을 아셨던 분이다.

 

노자의 도덕경 70장에 보면 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 言有宗, 事有君, 夫唯無知, 是以不我知. 知我者希, 則我者貴, 是以聖人被褐懷玉이라 했는바 이는 내 말은 알아듣기 아주 쉽고 행하기도 아주 쉬운데 천하 사람들은 알아듣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하는 구나. 말에는 근본 종지가 있고 일에는 중심이 있는데 오직 모르기 때문에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를 이해하는 자가 드물고 그럴수록 나는 귀해진다. 그러므로 성인은 겉으로 베옷을 입고 있지만 안으로는 보배로운 옥을 품고 있다고 했다.

 

노자의 본문이 때로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도의 우주론적 법칙 같은 형이상학적 측면을 말하고 있기는 이 글을 따지고 보면 무위자연의 법칙으로서 물과 같이 자연스럽게 혹은 겸허하게 살라는 소박한 충고로서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는 내용이다.

운정 김종필의 그랬다. 쉬운 말이지만 그 안에는 천둥번개가 있고 따뜻한 햇살과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있었다. 정치사가 어찌 영광만 있었겠는가. 하지만 자갈길은 자갈길대로 흙길은 흙길대로 마다않고 묵묵히 소이부답하며 걸어온 대인의 길이었다.

 

하지만 우리도 그랬다. 무위에 입각한 노자의 삶의 방식을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행하지도 못했듯이 세상 사람들은 한 결 같이 명리(名利)만을 추구하거나 화려한 외모나 형식에 더욱 치중을 하고 있다고 한탄만 했다. 왜 그가 산 그림을 그리고 좋아하게 되었는지 영국의 불세출의 정객 처칠을 왜 존경하게 되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아무리 장삼이사의 삶이라하더라도 우리가 너무 무심했다. 고향의 어른을 너무 오래 모른 채했다.

 

인간사 잘산다고 하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 ‘비고 고요한 마음(虛靜)’으로 하늘의 이치와 자연에 부응하는 간단한 삶의 원리인데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니 노자는 그것을 비유하여 “성인은 거친 베옷을 입고 있지만 속으로는 보배를 품고 산다.”고 한 것이다. 그야말로 ‘피갈회옥(被褐懷玉)’이다. JP의 회한은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는 태양이 되고 싶었다”지만 한일협정에 큰 보람을 갖는다고 했다. 어쩌면 그는 우리가 가진 로맨티스트로서의 마지막 정객이다. 하는 말마다 지혜를 담고 그림을 그리며 예술인을 사랑하고 도와주었으며 행동을 하는데 절도와 절제를 알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무한(無限)에 무한을 보탠다고 증가(增加)가 일어나지 않는다. 무한은 무한일 따름이다. 유한(有限)은 무한 앞에 소멸하는 순연(純然)한 허무다.

 

프랑스 사상가 파스칼의 말인데 JP가 특별한건 유한에도 그에 적합한 가치를 부여하고 긍정했다는 점이다. 유한은 그저 허무하지만은 않다. 완성과 충족 속에서 무한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JP는 우리에게 그걸 남겼다. 일의 성취 속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일, 말이다.

 

“내 정치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62년)과 DJP 후보단일화 결단(97년)을 들고 싶어요. 그 일엔 비난과 욕이 쏟아졌지만 역사의 전면에 서는 도전과 성취의 보람이 있었다”고 하면서 말을 마쳤다.

 

이제 자기의 갈 길을 알고 자기의 설자리를 알며 마칠 줄 아는 운정 김종필에게 우리 모두 기립박수를 보내자. 한없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자. 부디 행복하고 안락한 노후를 빌어마지 않는다. 문득 미국의 계관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귀가 떠오른다.

 

 

 

“눈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

 

 

이게 누구네 숲인지 알듯하다

그 사람 집은 마을에 있지

그는 모르리라

내가 여기 서서 숲에 눈 쌓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걸

내 조랑말은 기이하게 여기리라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인가라곤 가까운 데 없는데

연중 가장 캄캄한 이 저녁에 길을 멈췄으니

말은 방울을 흔들어 댄다

뭐가 잘못됐느냐고 묻기라도 하듯

그 밖엔 오직 가볍게 스쳐 가는

바람소리, 부드러운 눈송이 뿐

숲은 아릅답고, 어둡고, 깊다

하지만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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