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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들의 책으로 불리는 정관정요貞觀政要는 당나라 태종이 근신들과 정치적인 문제를 논한 것을 현종 때 오긍(吳兢)이 항목을 분류하여 엮은 것으로 국가를 경영하기 위한치도治道의 요체를 말한 것이다. 당태종은 동양의 제왕들 중에서 성군으로 꼽히는 인물 중 하나다.. 그를 본받고자 하는 임금들에게 있어 이 책은 제왕학의 교과서 역할을 하였고 고려 시대 임금들도 특히 이 책을 중시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 초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 책에 대한 일화가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당태종은 근신이었던 위징이 죽은 뒤 울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 위징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마침내 나는 거울 하나를 잃고 말았다. 오직 위징만이 매번 짐의 허물을 지적했다. 그가 죽은 후 짐이 허물을 범해도 이를 명확히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 짐이 어찌 전에만 허물을 저지르고, 지금은 모두 옳을 수 있겠는가? 많은 관원들이 구차하게 순종만 하면서 가히 용린을 건드리는 것을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짐은 허심탄회하게 널리 의견을 구해 스스로 의혹을 풀고 깊이 반성하고자 한다. 혹여 진언을 했는데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짐이 그 책임을 달게 받도록 하겠다. 짐의 언행에 시비의 단서가 있을 경우 반드시 직언하고 결코 은폐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당태종은 누구를 가리지 않고 인재들을 주위에 두고 그들의 진언을 들어 정책에 반영했고, 그 같은 리더십이 세계 최강의 당나라를 가능케 했다. 이른바 제왕학의 교본이라 불리는 정관정요에는 당태종 이세민이 위징 등과 함께 대화를 나눈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위징은 당태종에게 수시로 간언을 했던 대표적 인물이었다. 하루는 당태종이 부인 장손황후에게 “그 시골 촌놈이 또 짐에게 대들었소, 그를 죽이지 않으면 마음속의 한을 풀 방법이 없을 것 같소”라고 말한 적이 있는 것을 보면, 위징이 얼마나 사사건건 당태종에게 제동을 걸었나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정치권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총선을 앞둔 시기인지라 ‘대통령이 생각하는 차기 대통령감’누구인지 세간에 떠오르면서 대통령의 조건까지 곁들여 화제가 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대통령은 내년 대선에서 자신의 기반인 영남과 반기문의 기반인 충청 표를 합치면 승산이 있다고 계산하고 있다. 게다가 원래 박대통령은 외교 안보 통일 분야를 중시했고 3년간 국정 경험을 하면서 외교 감각과 국제적 인맥을 갖춘 이가 한국의 미래에 필요하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가신이었던 권노갑 전의원은 언론들에서 “야당 지도자가 수권 정당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갖추려면 외교 안보 통일의 임무 수행 능력을 보여 주어야한다고 했다.” 김대중(DJ) 대통령도 용공으로 낙인찍혀 평생 고생하다 보수 정치인인 김종필(JP)과도 손잡고 ‘뉴 DJ’플랜도 만드는 등 갖은 애를 써서 대통령이 된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을 갖고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북한을 다뤄야 하는 자리다. 그래서 한국 정치의 핵심은 안보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야권 후보들은 국민들에게 군 통수권을 잘 행사할 수 있고 통일 외교를 여권 후보들보다 더 잘할 수 있음을 보여야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므로 냉정하게 살펴보면 우리 대한민국은 아직 안보문제가 경제보다 첫 번째다. 경제문제는 사람만 잘 써도 풀어갈 수 있지만 안보와 외교는 대통령이 직접 챙기지 않으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우리를 연구하는 외국의 학자들도 한국의 대통령은 외교 안보 통일 임무가 전체 업무 중 70% 이상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오늘 일어난 북한의 '수소탄 실험'에 대해서도 그렇다. 핵실험의 성공 주장에 대해 미국 핵전문가들이 북한의 기술력으로는 무리라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수소탄 실험' 성공 가능성을 내비쳤고, 박근혜대통령은 강력한 제재를 천명했다. 이렇듯 국가의 수반은 안보에 대한 정책결정을 내려야하기 때문에 안보는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두 번째로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덕목은 도덕성, 위기관리·경제 조정·사회 통합·통일 추진 능력 등이 중요 항목이지만 우선 검증해야 할 부분은 도덕성이 될 것이다. 도덕성은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첫 번째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중앙의 한 일간지가 ‘다음 대통령’의 자격을 물어본 2010년 국민 여론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도덕성이 49.6%였다. 다음으로 필요한 자질 중에 추진력이 39.0%, 위기 대응능력이 30.1%의 순이었다.
세 번째로 사회 통합 능력으로 다른 조건보다 더 중요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라는 이분법적 갈등이 우리 사회에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떠한가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단점을 감싸 안으려는 노력은 없고 서로가 서로의 상처만을 들추어내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더구나 세대와 지역 그리고 이념에 따른 깊은 갈등은 우리가 안고 있는 검은 그림자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빠트리지 말고 챙겨야 할 대한민국 대통령의 조건은 통일 추진 능력이다. 지금의 분단 상황에서 안보 위협은 영구적일 것이다. 국민 개개인에게 통일에 대한 절실한 욕구가 낮더라고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할 때 대통령의 통일 추진 능력은 절대충분조건이다. 통일이 남북한 관계뿐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과의 관계마저 뒤바꾸어 놓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동안 모든 대통령 후보들의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변화를 만들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어느 대통령 하나 아직까지 통일에 대한 비전을 우리 쪽으로 가져오지 못했다. 우리 같은 분단 체제에서 통일 추진 능력은 당연히 중요한 대통령의 조건이다. 급변하는 동북아의 정치지형과 시계제로의 북한도발의 상황에서도 인내심을 가지고 희망의 메시지를 만들어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야하기에 대통령의 리더십은 필수불가결한 상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