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드라마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한국영상대학교 연기과 교수 정인숙(배우)

2016-02-29 02:46:00

 

▲     © 행복세종타임즈

 

현실은 연극이 아니다. 영화보다 연극보다 혹독한 게 현실이다. 게다가 죽음을 부를 만큼 가혹하다. 삶은 그 같은 현실 속에서 숱한 곡절들을 만들어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명분과 뒤돌아볼 핑계마저 같이 빚는 모두의 애물단지다. 슬픔도 미련도 그래서 그 와중에 스스로 만들어 낸 그들의 전유물일 뿐, 삶은 삶대로 굴러갈 동력을 놀랍도록 재생산한다.

 

 제 스스로 극한을 배양하는 삶과 가혹하도록 아름다운 현실의 공생. 그리고 도저히 같이 있을 수 없는 것들의 강제적 공존. 뿐만 아니라 ‘조화(調和)’란 가증(可憎)스런 언어에 가려 고스란히 굽히고 눌려 내일을 준비하면서 낡아져만 가는 삶의 이치를 사람들은 짐짓 모른 채 살 따름이다. 그래서 흔히 산 자들은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고 말하며 그 극적(劇的) 극단성이 주는 상황의 한계와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또 하나의 극한(ext- remity)을 산 채로 즐긴다. (이인성,『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서울 : 문학과지성사, 1995). 이름 하여 타인의 갈등이 선사해주는 쾌감과 저들의 불행이 야기하는 행복을 자신과는 무관한 채 즐기며 앞으로 나타날 또 다른 미지의 고통에 미리 진저리칠 줄도 알게 되는 건 어쩌면 삶의 덤 같은 이치일 것이다.

 

땅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운행이 엄연하고 하늘엔 낮과 밤의 구분이 분명하다. 햇빛에 낙엽이 녹고 달빛에 꽃잎이 물드는 이치도 사람들은 도저히 거역하지 못한다. 그 같은 자연의 삶과 우주의 운행을 ‘섭리(攝理)’로 이름붙이는 한, 인간은 이러한 그 속의 질서와 이치를 거슬러 살 수 없다. 하지만 기를 쓰고 그에 맞서거나 순리(順理)의 흐름을 막아서며 욕망에 탐닉할 때, 세상이 정(定)한 자신의 역할을 쉽게 잊거나 타자의 삶이 훼방과 간섭 속에서 숱한 곤란(困難)과 갈등적 투쟁에 끊임없이 노출되는 일은 너무나 흔한 것 또한 현실이다.

 

우리네 삶 속의 일상은 늘 창조적이며 현재의 시간의 흐름 속에 계속 진행된다. 그러나 연극 속의 삶은 결국 작가가 만든 텍스트를 갖고 새롭게 창조하는 삶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고 무대 위에선 배우들의 끊임없는 에너지 충돌과 갈등 그리고 투쟁의 모습을 통해 삶의 지평을 확장시킨다. 따라서 연극에 비치는 현실이 기왕의 현실 그 자체보다 더더욱 드라마틱하게 보여 지는 것이다.

 

연극 예술은 바로 이 같은 우리의 현실 삶을 ‘연극적 방식’으로 ‘바꿔 보여 주는’ 예술이다. 바꿔 말해 연극은 기본적으로 삶의 모습을 창조하는 예술이다. 영화 · 춤 · 음악도 삶의 모습을 다루긴 마찬가지다. 예술이라고 칭하는 그 어떤 것도 보여 지는 것이 다를 뿐 그 본질은 삶의 모방이라고 하는 것을 거스를 수는 없다.

꽃샘추위가 지나가야 봄이 온다더니 맞는 말이다. 오늘 쏟아지는 눈 속에 학생들과 질척거리는 눈을 치우며 깔깔대고 옷이 눅눅해지도록 아침을 즐겼다. 하얗게 쌓여가는 장군봉의 눈꽃을 보며 한 폭의 그림 같기도 하고 영화 속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겨울이기에 볼 수 있는 금암리의 멋진 풍광을 보며 살아있다는 짜릿한  행복감은 나만의 기분일까?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