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한 달여 있으면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시작된다. 하지만 작금의 국내 정치판을 들여다보노라면 참 가관이라고 할 수 있다. 시시각각 개인의 영달을 위해 계파의 이익을 위해 모이고 흩어지며 서로를 중상 모략하는 이합집산의 행태들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선진국인 미국은 선거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
요즈음 미국에서 치러지는 대통령선거는 예전과는 다른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유럽의 투표 패턴에도 흥미로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젊은이들이 연장자들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투표하는 것이다. 소득, 교육, 젠더보다는 유권자의 세대에 기반한 큰 분열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럴까? 여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일단은 아이티세대와 아날로그세대가 특성 때문이다. 그것은 곧 고령자와 젊은이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의 과거가 다르고, 앞으로의 전망도 다르다. 예를 들어 냉전은 현재 젊은이들 일부가 태어나기도 전에, 혹은 어린이였을 때 끝났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와 같은 단어는 과거와 같은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것이 북한과 일본에 대하여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영향이 미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젊은이들은 만약 사회주의가 일자리도 보장되고 서로 공유하는 우려가 관심을 받는 사회를 만들던지 타인들과 환경을 아끼는 사회를 만드는 거라면 사회주의도 나쁠 것이 없다는 의견들이 젊은이들 사이에 넘쳐나고 있다. 요즈음 미국의 대통령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은 버니 샌더스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도 제가 벌링턴 시장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공화당 의원을 16퍼센트 차로 누르고 버몬트 하원의원이 될 거라고, 버몬트 주의 최고 갑부를 물리치고 상원의원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지금 미국에서 선거혁명을 이끌고 있다. 그는 1941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가난한 페인트 판매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981년 시장에 당선될 때까지 정장 양복 한 벌조차 없었던 진보 정치인이었다. 100년 이상 공화당의 아성이던 버몬트에서 가가호호 방문과 타운 미팅으로 주민들을 한 사람씩 설득해 뼛속까지 공화당 지지자였던 주민들을 '뼛속까지 버니 샌더스 지지자'로 탈바꿈시킨 집념의 풀뿌리 정치인이기도하다. 버니 샌더스는 미국의 변화에 여러분이 있어야한다면서 지지해줄 것을 외치고 있다. 그렇다면 변화는 무엇일까? 예술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변화란 창조를 의미하지만 정치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변화란 혁명을 의미한다. 또한 제도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변화란 이탈을 의미한다. 그 변화가 지금 대한민국에도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변화의 필요를 느낀 유권자는 표를 통해서 실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행위들의 모두는 용기를 기본으로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먼저 출발선 상에 서기 위한 용기가 첫 번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고, 달리고 있다는 그 자체이다. 끝이 보이지 않더라도 용기를 내어 출발선에 서 변화의 주역이 되어보자. 그리고 이것만은 기억하자. 목적지에 다다르거든 관용을 기억하자. 그것은 함께 달리는 법을 준비하는 것이다. 출발선은 모두에게 공평하지만, 모두가 함께 출발하지는 않는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달리지도 않는다. 그러한 현상을 이해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달릴 수 없다. 나보다 앞선 사람도 존중하고, 나보다 뒤쳐진 사람도 존중하는 것은 자신의 경주를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이것이 바로 변화를 주도하고 변화를 맡기 위한 지혜로운 자들의 행동철학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