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의 정치판 막전막후의 암투로 얼룩지다.

유태희 논설위원

2016-03-30 01:00:00

 

▲     © 행복세종타임즈

 

총선이 임박하면서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 후 수도권 및 대구지역 등에 출마한 무소속 후보들의 연대움직임이 점차 가시화되는 가운데 친박근혜계의 견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본격적인 선거전이 전개되면서 과거 '진박 마케팅'과 유사한 '무소속 연대 마케팅'이 구체적인 태동 움직임을 보이면서 자칫 여당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친박근혜계를 중심으로 무소속 연대에 대한 '평가절하'가 이어지는 정치현실의 오늘이다. 정치판을 살펴보면 우려와 걱정이 앞서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이 정도를 걷고 행한다면 무엇이 문제이랴.

 

제대로 정치를 하려면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한 해 두 해가 가면서 본래의 모습은 없어지고 괴물로 변한 것이 자기인줄 안다. 그래서 자신을 직면하려면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행위, 즉 피드백이 반드시 필요하다. 보기 싫더라도, 추하더라도, 거울에서 자신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비로소 고칠 수도, 꾸밀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용기가 있어야하며 통찰이 있어야 그 자리에 설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의 당태종이 '정관의 치(治)'라 불리는 태평성대를 이루며 중국역사상 손꼽히는 황제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세 가지 거울을 곁에 둔 덕분이었다. 그것은 바로 얼굴을 비춰보는 도구로서의 거울, 충신이라는 거울, 역사란 거울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당태종은 거울을 보듯 피드백을 통해 수양하고자 했다. 그는 신료들과 국사를 논하는 자리에서 항상 즐거운 모습을 보이고자 애썼다. 신료들의 논쟁과 진언을 충분히 듣고 정치와 교화의 득실을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위징, 방현령 등 자신의 부족함을 비춰줄 거울 같은 스승 급 신하를 곁에 두고 천하를 다스렸다. 훗날 위징이 죽자 태종은 슬퍼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히 할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흥망성쇠와 왕조교체의 원인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득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나는 일찍이 이 세 가지 거울을 가진 덕분에 허물을 막을 수 있었다. 이제 위징이 죽었으니 짐은 거울 하나를 잃고 말았다.”

 

여기서 잠시 다산 정약용의 정치론(政治論)을 살펴보면 정치(政治)의 정(政)의 뜻은 바로잡는다(正)는 말이다. 똑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토지의 이택(利澤)을 겸병(兼幷)하여 부유한 생활을 하고, 누구는 토지의 이택을 받지 못하여 빈한하게 살 것인가. 이 때문에 토지를 개량하고 백성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어 그것을 바로잡았으니 이것이 정(政)이다. 똑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풍요로운 땅이 많아서 남는 곡식을 버릴 정도이고, 또 누구는 척박한 땅도 없어서 모자라는 곡식을 걱정만 해야 할 것인가.

 

때문에 주거(舟車)를 만들고 권량(權量)의 규격을 세워 그 고장에서 나는 것을 딴 곳으로 옮기고, 있고 없는 것을 서로 통하게 하는 것으로 바로잡았으니 이것이 정(政)이다. 똑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강대한 세력을 가지고 제멋대로 삼켜서 커지고, 누구는 연약한 위치에서 자꾸 빼앗기다가 멸망해 갈 것인가. 때문에 군대를 조직하고 죄 있는 자를 성토하여 멸망의 위기에 있는 자를 구제하고 세대가 끊긴 자는 이어가게 하는 것으로 바로잡았으니 이것이 정(政)이고, 다산 정약용의 '원정(原政)'이란 글에서 밝힌 내용이다. 무릇 정치의 고전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글이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판의 미래가 지금의 발판으로 일어서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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