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의 향연

한국영상대학교 연기과 교수 정인숙(배우)

2016-05-04 01:46:00

 

▲     © 행복세종타임즈

 

어느 새 늦봄이다. 산자락 나무들이 벌써 푸르다. 언제 저리도 컸을까. 아이들 가르친다며 이리저리 씨름하느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산천초목이 오늘따라 더 커 보인다. 나뭇잎 자라는 건 눈에 금세 들어오는 데 아이들 크는 건 그렇지 않아 무슨 비밀이라도 숨어있으려나 한 번 더 길게 바라본다. 봄비치곤 많이 내린 비에 아침나절 연두 빛이 어느새 초록이다.

    

늘 바쁜 일상이지만 4월은 더 분주했다. 5월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새내기들은 공연준비를 한다. 지난 두 달 동안 학교생활 적응하며 방과 후 동아리 활동까지 무릅쓰며 애쓰는 모습이 정겹기 그지없다. 아이들이 사랑스런 까닭은 따로 있다. 굳이 말은 안 해도 홈커밍데이를 기다리며 빈손으로 손님들을 맞이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어른들의 뜻 헤아리는 모습이 곱기만 해서다.

    

공연 때면 어김없이 부모님들이 오셔서 축하를 해 주신다. 뭐라도 대접하고픈 마음에 학생들과 어우러져 학교 주변에서 뜯은 쑥으로 절편과 찰떡을 준비하여 대접한지 어언 여러 해째다. 이제는 전통이자 역사가 되어 전 학년 한마음으로 이 일에 동참한다. 연기과 전 학생들이 산자락 흩어져 쑥 뜯는 모습은 그야말로 그 자체가 장관이다.

    

옆의 학생 하나가 신이 났다. “교수님, 대한민국에서 교수님과 쑥 뜯는 학생들은 우리 밖에 없을 거예요.” 하니 짙푸른 쑥 향이 더 푸르게 코를 찌른다. 한 번도 쑥 캐본 적 없다며 쑥처럼 생긴 풀을 잔뜩 뜯어 오는 녀석이 있는가하면 뿌리까지 캐 온 아이, 잎만 뜯어 온 아이, 제법 잘 뜯어 온 이들로 산자락 들판은 어느덧 웃음꽃 피는 쑥밭이 되었다.

    

대학에 들어와 누군가와 함께 일상을 보낸다는 건 또 다른 즐거움이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있다 보니 동기, 선배, 교수가 모두 가족이고 친구다. 인성교육이 부족하다며 요즘 말들이  많다. 핵 가족화한 집안에서 정작 아이들은 제대로 말할 상대도 없이 홀로 지내는 시간들이  대부분이다. 맞벌이 부모님과 형제 없는 외둥이들이 대부분인 가족구조 안에서 ‘인성’이란 걸 배울 기회는 자꾸만 줄어든다.

    

누군가는 “학생들과 쑥 뜯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 일이야말로 대단한 교육이다. 더불어 함께 하는 삶, 배려하는 마음, 그리고 떨어져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손끝과 가슴으로 자연의 향기를 묻히며 학생들과 함께 하는 순간들은 수업료로 계산할 수 없다.   

    

삶과 철학은 자연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부딪히며 깨닫게 된다. 5월 7일에 학생들은 부모님께 공연과 떡을 대접하며 색다른 보람을 느낄 것이고, 부모님들 역시 학생들이 직접 뜯어 떡을 만들었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에 놀라며 감동할 것이다. 비에 젖은 장군면의 봄은 밤까지 온통 쑥 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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