假와 眞의 동일성에 대한 두 개의 소묘

논설위원 유태희

2016-07-10 12:07:00

 

▲     © 행복세종타임즈

 

나는 처음에 이 그림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랐다. 이 캔버스에 그려진 파이프를 보고서.

여기 담배를 피울 때 사용하는 파이프 하나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프랑스어로 이렇게 써 있다.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고 적혀있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니! 그렇다면 여러분은 ‘정말 파이프가 아니라고’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파이프를 그린 그림이지 이것은 실제 파이프가 아니란 뜻인가 하고?

그렇다면 작가는 관람객에게 ‘이것은 파이프가 아닌’ 작품을 보여주는 것인가? 작가가 관람객에게 거짓말을 하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마그리트가 던지는 이 주제는 ‘일상성’에 대한 생각을 제시하며 기존의 언어 질서를 흔들어놓는다. 눈으로 보는 그림에서 머리로 생각하는 그림으로의 전환이 눈부시다.

사진이론에서 프랑스의 롤랑바르트가 제시한 작가의 의도를 숙명적으로 만나는 스타디움studium에서 논리적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며 지각하는 데에도 아무런 분석이 필요치 않은 푼크툼punctum과 유사성이 있을 것이다.

    

    

    

    

▲     © 행복세종타임즈

 

이보다 먼저 확연한 철학적 메시지를 던진 조선의 선비들이 있었다.

 

조선 초기 문인들은 이상적이고 관념적인 산수를 선호했다. 그들에게는 그려진 화면이 실제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실제의 경치나 광경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여기 정선의 삼부연三釜淵을 보자.

    

   

철원 삼부연 폭포. 정상에서 보면 가마솥 같은 못 세 개가 펼쳐진다. 삼부연(三釜淵)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다. 겸재 정선은 300년 전 이곳을 찾아 오른쪽산수화 ‘삼부연’을 그렸다.

    

조선의 선비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림에 담겨진 정신이었다. 신숙주가 화가의 임무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가假로서 진眞을 빼앗는다라고 했다. 여기서 진眞은 선비들이 생각한 이상적인 산수의 이미지이고 가假는 그것을 그림으로 형상화하는 것을 가리켰다. 그들은 眞과 가假를 동질적으로 인식했으며 ‘가假’라는 지칭에는 이미 진眞을 잘 담아냈다는 함의含意가 있었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여기서 살펴보면 산수화가 산수山水를 비슷하게 그렸더라도 결코 산수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왜 굳이 산수와 닮게 그리려고 애쓰느냐는 지적을 했다. 산수가 진짜라면 산수화는 가짜일 수밖에 없다. 이는 가假와 진眞을 동일시했던 초기에는 꿈도 못 꾸었던 발언이다. 진경산수와 함께 진행된 오랜 담론 속에서도 산수화를 산수에 대한 가짜라고까지 말한 경우는 없었다. 박지원1737-1805은 “산수를 비슷하게 그린 산수화보다는 ”함축적 회화 언어로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산수화’가 더욱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어차피 그림은 가짜이기에 진짜처럼 되려고 애쓰기 보다는 ‘그림으로서 정신을 담아야’하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하고 솔직한 표현으로 대상이 무엇인지 또는 그리는 이의 정신이 무엇인지 전달 할 수 있다면 이야말로 훌륭한 그림이다.

    

‘왜 비슷해지려 하는가? 비슷함을 추구함은 진짜가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서로 같은 것을 ‘꼭 닮았다’고 하고, 분간이 어려운 것을 ‘진짜 같다’고 한다. 이 말 속에는 이미 가짜라는 뜻과 다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절대흉내내지 마라. 사물과 가슴으로 만나라.

색과 형에 현혹되지 마라. 핵심을 찔러라’

마치 창조에 대한 모범답안처럼 우리 선조들은 분명한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누구나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은 가짜의 길을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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