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가르침에 대하여

한국영상대학교 연기과 교수 정인숙(배우)

2016-07-11 09:27:00

 

▲     © 행복세종타임즈

 

 

어느 날이던가 아이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다 나눈 얘기다. 문득, “너희들 뭐가 가장 먹고 싶니?”라는 뜬금없는 질문에 한 아이가 “집 밥이요!”라고 대답하는 게 아닌가. 순간 뭔가 알 수 없는 뭉클함이 가슴 속 저 밑바닥부터 일렁거렸다. 느닷없이, 그리고 대책 없이 밥상머리 교육이나 부활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한 것도 그때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학교 가기 전 아침식사시간에 혹은 저녁시간 잔소리를 해대시는 게 일이었다. 그것도 큰 소리 아닌, 조근 조근 작은 소리로 쉼 없이 그러셨다. “밥풀일랑 밥그릇에 남기지 말고 야무지게 먹어라, 똑바로 앉아 먹되, 수저질 젓가락질이란 이렇게 하렴. 네가 상대를 미운 마음으로 쳐다보면 상대 또한 그런 네 마음 모조리 다 읽는단다. 남 흉보고 욕 하면 넌 더 나쁜 사람 되는 거 알겠냐?” 하시며 이어지던 지청구는 내 귀의 장편소설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잔소리도 많이 들어둔 보람은 커 가면서부터였다. 50넘은 지금 뒤돌아보니 어머니 잔소리는 살아가는 진리며 지혜이자 이 세상 버티며 살아갈 힘이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아버지께 시집와 한글을 깨우친 분이다. 하지만 삶의 지혜와 살림하는 야무진 손끝만큼은 타고나신 분이다. 검소함과 겸손함마저 몸에 밴 어머니를 한없이 존경하는 이유다. 교육이 어디 꼭 이론과 학력의 결과이던가. 예수도 신학박사가 아니었고 링컨 역시 정치학 박사학위와는 관계없는 인물이었다.  

    

집에서 만들어 온 반찬으로 일주일에 두 번은 연구실에서 밥상을 차려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 새로운 기쁨이자 보람이다. “너희들 때문에 내가 하숙집 아줌마 다 됐다”며 가끔 투덜대기도 하지만 두 공기 세 공기 씩 밥을 먹어 치우는 아이들을 보면 마냥 뿌듯하기만 하다. 기껏해야 삼각 김밥 아니면 컵라면에 인스턴트 도시락이나 사먹는 아이들에겐 어쩌다 한 번 함께 먹는 밥상도 행복한 모양이다.

    

어느 날 처음 연구실 밥상을 함께 한 아이와 자리하게 되었다. 밥 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지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이었다. 하여, 물었다. “아가, 왜 밥을 안 먹니?” 했더니만 그 아이 왈, “이렇게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밥상을 언제 받아 보았는지 기억이 안 나서요.” 그 아이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아이도 나도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리고는 그 열기로 정신없이 함께 밥을 먹었다.

    

아이들과 밥을 먹으며 학교생활은 왜 열심히 해야 하는지, 교우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삶에서 형식은 때로 왜 중요한지, CC는 왜 좀체 성공하기 힘든 것인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나는 오늘도 걔네들 엄마처럼 잔소리를 해대고 있다. 그런데도 아이들 표정이 행복해 보이는 건 나만이 느끼는 즐거움이다. 어떤 방해도, 규칙도 없는 이 시간이 아이들의 생각마저 무장해제 시켜버린 탓일 것이리라.

    

밥 한 끼 감동이란 게 이런 걸까? 고기반찬도 없이 그저 김치와 나물에 멸치볶음이나 깻잎 아니면 김이나 마늘장아찌 같은 밑반찬이 전부인데도 “엄마가 해 주신 밥을 먹은 것 같아요”한다. 기대조차 하지 않고 함께 한 밥상인 데 내가 도리어 아이들한테 배우고 느끼니 감동은 상상 그 이상이다. 예전 10대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이 비록 내 말을 그냥 잔소리로 흘려들을망정 괜찮다 여기기로 한다. 잠시나마 반찬냄새 진동하는 연구실이 강의실보다 훈훈한 것도 언젠가는 다가갈 밥상머리 가르침이 걔네들에게 제법 기운쓸 것이리라 애써 위로해보니 말이다.

    

아무리 반찬을 싸와도 일주일을 못 간다. 못 먹인 아이들이 아직도 지천이니 언제 모두와 함께 할까 싶다. 밥상머리 교육이 최고라 해도 두 가지 다 하려니 우선 다짐할 일은 ‘기다림’이다. 하기야 세상 어딘들 밥상머리 아니랴 싶지만 이걸 터득할 때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내게 배우는 아이들도 그럴 것이리라 생각한다. 안 그래도 ‘화분에 물 주듯’ 하는 교육인데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어디 다를까. 저 위대하기 짝 없는 시간이 필요할 밖에, 게다가 기다림 밖에 길이 없음도 밥상이 일러주는 교육의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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