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별을 돈으로 포장한 야구장의 씁쓸한 풍경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열기는 뜨겁다. 특히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는 매 경기 매진 행렬을 이어가며 지역민들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 화려한 조명 뒤에는 씁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바로 장애인석을 가리고 ‘특별석’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해 이익을 챙긴 한화 구단의 행태다. 이는 단순한 관리 소홀이 아니다. 장애인의 이동권과 관람권이라는 기본권을 짓밟고, 사회적 약자를 향한 최소한의 배려마저 외면한 반인권적 행위다. 야구장이 단순한 스포츠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포용과 평등을 실현해야 하는 공공적 성격을 지닌 공간임을 생각한다면, 이번 사태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건이다.
장애인석 둔갑, 드러난 구조적 모순
대전시의 현장점검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2층 장애인석 90석이 인조 잔디로 덮여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고, 휠체어 접근로는 이동형 좌석이 막고 있었다. 이는 명백히 의도적인 구조 변경이었다. 나아가 구단은 이를 특별석으로 둔갑시켜 경기당 500만 원, 총 2억 원이 넘는 부당 이득을 취했다. 두 차례에 걸친 시정 명령에도 불구하고 구단은 이를 무시했고, 경찰 고발 직전에야 뒤늦게 원상복구 의사를 밝혔다. 이처럼 약자를 향한 권리 침해를 ‘이익 창출의 수단’으로 삼은 행위는 기업 윤리의 붕괴이자, 사회적 신뢰를 저버린 배임적 행위다.
장애인단체의 성토와 시민사회의 분노
대전 지역 44개 장애인단체가 참여한 연대는 “단순한 관리 소홀이 아니라 인권침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들은 2억 원의 부당수익을 장애인 편의시설 확충에 환원할 것을 요구했고, 시각 확보, 동반자석 설치, 안전요원 배치 등 실질적 개선책을 촉구했다. 시민사회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팬 단체와 KBO 감시단까지 나서 구단의 사과와 리그 차원의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이쯤 되면 이는 특정 구단의 문제를 넘어 한국 스포츠계 전반이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대전시의회 황경아 의원은 "장애인석을 기만하며 시민도 기만하는 아주 사기 행각의 극치라고 보고 있다"라고 질타했다. 구단은 횡령, 배임, 사기, 장애인 편의증진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화의 뒤늦은 사과, 그러나 남는 불신
한화 구단은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뒤늦게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한 언어의 사과가 아니다. 구단은 “이번 일을 계기로 장애인 친화적인 구장으로 만들겠다”라고 약속했지만, 이미 신뢰는 크게 무너졌다. 시민들과 장애인단체들은 “두 차례 시정 명령을 무시하다가 고발 직전에야 복구 의사를 밝힌” 구단의 태도에 대해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사과는 ‘발각되었기 때문에 하는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사과는 잘못을 뼛속 깊이 새기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실천적 다짐에서 비롯된다.
스포츠의 본질은 ‘평등’이다
스포츠의 기본 정신은 존중과 배려다. 선수나 팬,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을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동일한 공간에서 같은 감동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야구장은 특정 계층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장애인석은 단순한 좌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향한 존중의 척도다. 이를 상업적 수단으로 변질시킨 이번 사건은 스포츠 정신을 근본부터 훼손한 행위다. “차별은 곧 폭력”이라는 국제 스포츠 윤리를 다시 새겨야 한다.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이번 사태는 한 구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장애인에 대한 무심함’이 빚어낸 결과다. 아직도 많은 공공시설과 문화시설이 장애인 접근권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의 문제다. 법과 제도는 존재하지만 실천되지 않는 현실, 보여주기식 복지와 형식적인 점검으로는 진정한 변화가 어렵다. 장애인석 사태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인권 감수성이 부족한지를 드러내는 거울이다.
책임 있는 변화와 제도 개선을
한화 구단은 구호에 그치지 말고, 부당 이득을 사회에 환원하는 실질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KBO와 지자체 또한 단순한 행정 지시를 넘어 상시적 점검 체계와 강력한 제재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스포츠 경기장은 모두를 위한 공간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리그 차원의 접근성 가이드라인과 포용성 강화 정책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더불어 장애인단체와의 지속적 협의, 시민사회와의 투명한 소통이 동반되어야 한다.
인권 없는 수익은 공허하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창출이라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을 침해한다면 그 이익은 공허한 모래성에 불과하다.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기업은 결코 사회적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한화 사태는 우리 사회 모든 기업과 기관에 던지는 경고다. 약자의 권리를 무시한 채 얻은 부당한 이익은 결국 더 큰 사회적 비용과 불신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함께하는 사회를 위한 성찰
야구장의 장애인석은 단순한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하나의 경기를 즐기며 사회적 연대와 통합을 확인하는 자리다. 이를 돈벌이로 둔갑시킨 이번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사회적 약자를 얼마나 진심으로 배려하고 있는가.
한화생명 볼파크 사태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사회가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 ‘포용과 평등의 과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이제는 말뿐인 사과를 넘어 실천적 변화로 나아가야 한다.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야말로 진정으로 건강한 사회이며, 스포츠의 감동 또한 그런 사회에서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