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뱀파이어 영화를 좋아하는가? 10대 때 우연히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라는 영화를 보고 매우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브래드 피트, 톰 크루즈가 뱀파이어를 연기했고, 10대 소녀의 눈에 뱀파이어의 모든 것은 에로틱하게 비춰졌다.
피라는 요소도 매우 섹슈얼하다.
인체의 여러 곳에 존재하는 정신적 힘의 중심을 이룬다는 차크라는 정수리와 척추를 따라 존재하는데, 7개가 명상과 신체 수련에서 중요시된다. 실제로 엉덩이 부위의 척추 바닥에 위치한 1번 뿌리 차크라(물라다라)의 상징적 색은 빨강이며 후각과 관련있다. 뱀파이어가 흡혈하는 모습은 기괴하나 어떤 면으로는 매우 섹슈얼하며, 스크린 가득 피를 빨리며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은 마약성 물질을 통해 엑스터시를 경험하는 이들과 다르지 않다.
영적 수행자들은 고차원의 영적 수행 끝에 해탈, 혹은 경지에 이르는 순간 극강의 엑스터시를 경험한다고 한다. 뱀파이어는 흡혈을 통해 공여자에게 오르가즘, 조이 또는 엑스터시를 경험케 하는 것이 아닐까? 에너지 교환의 관점에서 본다면, 흡혈 대상을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영적 도구 혹은 스승인 것이다. 성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 사이의 딜레마는 없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에게 섹스는 언제나 부끄럽고 두루뭉술하게 흘러가길 바란 무언가였다. 매번 연애에서 그것을 염두하면서도 정작 만나자마자 상대가 바로 섹스를 어필하면 서운해지면서 단호해졌고 노골적이지 않게 허울좋은 A, B, C가 잠자리 전에 수반되는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했다.
성은 영성과 不二라고 말하면서도 나의 섹슈얼리티는 스스로 누추하게 취급하고 적절한 맥락을 눈치 보게 만들었으며 주인공의 자리에 당당히 세우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신성한 의례를 준비하듯, 섹스를 준비한다면 어떨까. 마음을 열기 위해 서로에 대해 깊이 묻고 공유하며 세심하게 D-day를 준비하는 거다. 상상만 해도 간지럽고 부끄러우면서도 약간 두렵기도 할 테지만 한편으론 한번도 가운데 자리에 놓지 못했던 섹슈얼리티를 주인공 자리에 놓고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따뜻하게 박수 쳐주는 느낌이지 않을까.
여태 가져본 적 없었던 이런 발상은 내게는 매우 신선하다.
상호 충만한 섹스를 위함이라는 대전제하에 이루어지는 모든 대화는 사회, 문화의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해도 이상하게 몸이 달뜬다. 성적인 대화가 아니어도!
경건하고 조심스럽고... 그래, 매우 섬세하고 다정하게 섹스를 준비하고 맞춰본 적이 없었다. 상상만으로도 모든 감각이 예민해진다.
내가 단지 내 모습으로 존재해도 될 것 같은 느낌. 자신도 깨닫지 못한 채 잠자리에서 해왔던 굳어진 역할연기를 안 할 것 같은 예감.
고대 인도에서 비롯된 탄트라 수행은 성 에너지를 단순한 육체적 쾌락의 차원에서 벗어나 삶의 창조적이고 영적인 힘으로 바라본다. 이 에너지를 몸 전체로 확산시키고, 나아가 의식과 연결하여 더 깊은 치유와 깨달음,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섹슈얼리티 안에서 모든 에고를 내려놓고 단지 온전한 나로서, 상대로서 존재하길 바란다.
서로의 통로를 열고 연결되어 마침내 서로의 뮤즈로 우뚝 서길 의도한다. 단순한 성적 상대가 아닌, 서로에게 영감을 전달하고 치유와 성장을 돕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섹스가 공허나 집착, 열등감과 연결되는 것이 아닌, 인생을 보다 관대하게 다루고 본연의 아름다움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기회가 되길. 아주 오랫동안, 이것이 탄트라 수행이지 않을까.
◈ 황선영 (섹슈얼리티 커뮤니케이터)
스미다 인식전환교육연구소, 폭력예방통합교육 전문강사, 성교육 및 성인지교육 전문강사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성에 대해 글 쓰고 이야기하고 강의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