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사랑을 담은 한 그릇의 호박풀대

이윤주 칼럼니스트

2024-12-22 13:53:21

 

 

 

사돈댁에서 얻어온 늙은 호박 세 덩어리가 내게 가져다준 것은 단순한 식재료 그 이상이다. 그 호박을 보며 어릴 적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던 호박죽이 떠올랐다. 나는 어릴적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던 호박죽을 호박풀대라고 부르셨던 기억으로 아직도 호박풀대라고 한다.  당시 나는 부엌 문지방에 턱을 괴고 앉아, 할머니가 낡은 놋숟가락으로 호박 껍질을 벗기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그 놋숟가락은 닳고 닳아 얇게 남아 있었지만, 할머니 손에 들려 있으면 마치 마법처럼 호박 껍질을 쉽게 벗겨냈다. 그 과정은 단순한 요리 이상의 무언가로 느껴졌고, 그 순간은 나에게 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호박풀대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어릴 적 꼬마였던 나는 호박풀대 한 그릇이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 내 나이도 60 중반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호박풀대를 좋아한다. 그 옛날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아직도 생생하다.

 

할머니는 어느 날 몸이 불편해지셨고, 그 후로 30년 넘게 누워 계셨다. 하지만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할머니가 건강하셨을 때 만들어주시던 그 호박죽의 따뜻한 맛이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고, 손끝에서 전해지던 정성이었다.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지금도 식당에 가면 항상 호박죽을 찾게 된다. 그 한 그릇의 호박죽을 먹을 때마다 할머니의 손길이 떠오르고, 그 시절의 기억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이제는 내가 그 전통을 이어가야 할 차례다. 할머니처럼 놋숟가락을 들고 호박 껍질을 벗기지는 못하지만, 그 정성과 사랑만큼은 이어가고 싶다. 호박을 밥솥에 넣고 찌면서 퍼져 나오는 달콤한 향기는 나를 다시금 어린 시절로 데려간다. 비록 손맛은 다를지라도, 그 음식에 담긴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다.

 

음식은 단순한 영양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사랑을 전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소중한 유산이다. 할머니와 엄마가 차려주신 그 따뜻한 밥상은 오늘날 내가 음식을 준비할 때마다 나를 다시금 과거로 데려간다. 그들의 손맛을 재현할 수는 없겠지만, 그 마음만은 결코 잊히지 않는다. 이젠 나도 할머니와 엄마의 그 마음을 담아 음식을 준비하며 가족에게 따뜻한 사랑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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