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도 지혜로워야 한다

김헌태논설고문

2024-06-23 09:40:16

 

 

 

 파업(strike, 罷業)이란 노동자들이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하여 생산활동이나 업무 수행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집단행동을 일컫는다. 서울대와 세브란스,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이른바 빅5 주요 대형병원과 전국의 수련병원의 전공의 파업이 장기화하고 있다. 여기에다 동네 병·의원의 집단휴진 카드를 내밀고 단체행동까지 들어갔다. 이런 대한의사협회의 강성행동이 의료대란을 더욱 부추긴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서울대병원 교수들도 휴진사태를 빚었지만, 환자들을 위한다며 결국 휴진을 중단하였다. 사실 환자들을 생명을 담보로 한 집단휴진 강행은 시작부터 환자단체 등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참여율이 저조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끝을 모르는 채 강경 대치를 고수하고 있는 의료 파업의 현실이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깝다. 실제 이번 집단휴진사태로 진료를 제때 받지 못해 환자가 생명을 잃은 사례도 발생했다. 의사란 사실상 공인으로서 사회적 지도층으로 추앙을 받아왔다. 의사들이 노동자인지는 차치하고라도 이들이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의대 정원 증원과 관련하여 집단휴진이나 파업을 장기간 끌고 나가는 행위는 어딘가 1인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의협과 전공의 단체 간에도 불협화음을 빚고 있어 이 사태의 중심축이 누구인지도 아리송하다. 전공의 문제인지 의협 문제인지 무엇을 쟁취하고자 함인지 헷갈린다. 의대 정원증원 문제라면 이미 모든 것이 확정되어 되돌린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지금 국민의 피로감이 임계점을 넘어섰다. 환자단체들도 집단휴진 병·의원을 고발하는 사태도 빚어졌다. 심지어 법대로 처벌하라는 주문이 쇄도한다.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업무 수행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집단행동이 파업이라고 한다면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 국민이나 환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지혜로운 행동도 함께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어리석은 행태는 지양해야 한다. 더욱이 죽기 아니면 까무러지기식의 집단행동도 더욱 그러하다. 파업의 본질을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파업은 파멸이 아니다.

 

과거 미국의 한 신발 제조공장에서 일어난 파업이 타산지석으로 다가선다. 이 공장에서 파업에 돌입했는데 생산 현장의 가동은 멈추지 않고 신발 한쪽만 계속 생산한 것이다. 상품성이 없지만, 한쪽 신발은 계속 만든 것이다. 그러다가 파업이 종료되고 난 후 나머지 한쪽 신발을 만들어 상품성을 완성했다. 일하는 상생의 파업이다. 타산지석이 되는 지혜로운 파업이다. 생산활동을 중단하지도 않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는 상생의 지혜가 넘치는 파업 일화이다. 만약 신발 두 쪽을 다 만들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허송세월하며 피해가 컸을 것이다. 사업자와 노동자 모두가 함께 상생한 사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전의 모 택시업체는 강성노조의 험악한 파업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아 버렸다. 사업장이 사라진 것이다. 회사를 송두리째 다 무너트리는 강성노조 파업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반면교사의 사례다. 회사가 사라진 노조는 허망한 조직이 되고 노동자들은 결국 직장을 잃어버리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어리석음과 죽기 아니면 까무러지기식의 극단적인 파업은 결국 파멸을 자초한다는 사실을 반면교사로 보여주고 있다. 생산활동이나 업무 수행을 일시적으로 중단할 수는 있지만 회사가 사라지는 극단적인 사태까지 몰고 가는 파업은 공멸을 자초하는 것이다. 상기 두 가지 사례는 파업을 노동자의 무기로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상생의 기본을 망각하면 결국 직장을 잃고 공멸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솔로몬의 지혜와 같이 파업에도 지혜가 요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공의 파업과 의협의 집단휴진 사태 등으로 국민의 불편과 환자들의 고통,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그동안 타협점을 찾지도 못한 채 기약 없는 세월만 보내는 의료계의 강경 입장에 국민과 환자들이 뿔이 났다. 정부를 대상으로 법대로 강력하게 처리하라는 주문이 잇따르고 있다. 국민이 등을 돌리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과연 전공의나 의료단체들이 국민생명을 담보로 무엇을 쟁취하고자 함인지 자못 궁금하다. 벌써 주요 병원들의 경영악화가 극심해지고 있다. 주변 음식점 등 관련 업종들도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의대생들도 정상적인 수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유급 사태도 우려된다. 오로지 우리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국민도 환자도 내팽개칠 수 있다는 집단휴진 장기화까지 거론되자 일선 병·의원들조차 반발도 거세지며 자중지란이 일고 있다. 명분도 실리도 살리지 못하는 의료계의 파업은 그야말로 지혜롭지 못한 파업의 백미를 달리고 있다. 이런 수준의 투쟁이라고 한다면 실망만 가중하고 의사로서 추앙받던 사회적 분위기가 크게 달라질 것은 자명하다.  

 

지난 2월 20일 이른바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은 이날 오전 6시를 기해 근무를 중단했다. 전면파업이 4개월째를 넘기고 있다. 부분적으로 전공의가 복귀한 경우도 있지만 미미하다. 아직도 많은 전공의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 국민도 등을 돌린 지 오래다. 국민의 싸늘한 여론에 밀려 서울대병원 교수들도 집단휴진 중단을 결정했다. 환자 진료를 더 미룰 수 없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한 설문조사에서는 국민의 77.3%가 의료 파업에 반대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또 63.7%는 의사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파업 투쟁에 나섰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한다. 그동안 국민생명을 담보로 진료 현장을 떠나 무슨 성과를 얻었는지 모를 일이다. 동네 병·의원까지 끌어들여 강경 행동을 벌인다고 요란을 떨었지만, 고발사태만 촉발하고 불매운동까지 벌어졌다. 이제 국민도 지쳤다. 각 대학도 의대 정원증원 문제가 확정되자 내년도 신입생 모집 준비에 들어갔다. 국민은 환자 생명을 담보로 기약 없는 파업을 지속할 것인지 묻고 있다. 싸늘해진 여론을 접하였다면 이제 성찰의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파업 투쟁에 나섰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팽배한 것은 의료 파업이야말로 집단이기주의라고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말 의사직을 그만둔다는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못이기는 척하면서 의료현장으로 돌아갈 것인지 분명히 태도를 정리해야 한다. 

 

정부도 이들이 최악의 선택을 할 때를 대비해 의료 파업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신성한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의 파업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의 의료 파업은 상처뿐인 영광을 찾아 나서는 지혜롭지 못한 집단행동이 되고 있다. 노동시간을 버리지 않고 신발 한쪽만 생산하는 지혜로운 노동자 파업과 강성노조의 험악한 파업으로 결국 택시 사업장이 사라지는 어리석은 파업 중 어느 길이 올바른 길인지를 생각해 볼 때다. 정부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이유로 대화를 거부하고 국민 목숨을 볼모로 계속해서 의료 파업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면 이는 공멸하자는 것이다. 이겨도 진 게임이 있는가 하면 져도 이긴 게임이 있다. 선택은 자유지만 작금의 의료 파업은 참으로 모양이 좋지 않은 최악의 파업이라는 국민의 여론을 귀담아 새겨야 할 때다. 지혜로운 의료 파업 자세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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