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 고르기를 마친 후 유일하게 찍은 사진 한 장..(보이는 컨테이너가 우리의 첫번째 살림집 이었다.)

들꽃향기

2015-12-07 07:34:00

 

▲     © 행복세종타임즈

 

그렇게 도착한 정선, 스므골 ...

주변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 그 자체 였다.

간혹 바람이라도 불어 숲이 흔들리면 바스락 거리는 숲 소리가 정적을 깨우는게 고작 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우선 집기며 살림살이를 컨테이너 살림집으로 옮기기 시작 했다.

나는 연신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무슨 말이라도 나올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의외로 담담하게 살림살이를

 

정리하며 때론 좌우를 둘러보는 여유도 부리며 그렇게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다행 이었다.

온 종일 정리를 마치고 저녁시간...

촛불을 밝히고 저녁상에 마주 앉았다. 도시에서의 그 어떤 훌륭한 음식이 놓인 만찬보다 근사한 식탁 이었다.

밤 하늘엔 별들이 쏟아지고 산과 들에서는 풋풋한 향내가 진동 했으며 풀 벌레 소리는 멋진 오케스트라가 되어

우리의 만찬을 축복해 주었다.

 

그날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으로의 우리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했고 계획도 세우며 정선에서의 첫 날밤을

그렇게 보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바로 우리의 살림집인 컨테이너 하우스의 보수공사를 시작 했다.

사실 전날 밤에 얼마나 춥던지...

딱히 난방 시설이라고는 장작 난로가 고작이고 바닥은 차가워 그 당시 유행하던 접이식 싸구려 침대를 구입하여 간신히 새우잠을 잤으니 추울만도 했다. 장작도 부족했고 무엇하나 변변한 것이 없으니 추운것은 어쩌면 당연 했다.

더구나 도시생활에서의 편리함에 익숙해 있던 우리로서는 추위는 가혹한 형벌같이 느껴졌다.

특히 아내는 더욱 힘들고 고달펐으리라 생각 되었지만 의외로 잘 견뎌 주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앞으로의 삶에 대해

 

무척 걱정을 많이 했었을 것이다.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우선 주변에서 장작이 될 만한 나무들을 그러 모으는 일부터 마치고 추위에 대비한 보강공사를 해 나갔다.

이사 오기전 마땅히 머물 숙소가 없어 고민 하던중 컨테이너로 대체하면 이동성도 좋고 여러모로 편리하니 그렇게 해 보라는 지인의 소개로 주변 카센터에서 쓰던 중고 컨테이너를 헐 값에 사들여 집 터에 가져다 놓았다. 그것도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옮겨온 컨테이너 였다.

길이 험하고 개울을 건너야 하는 어려운 현장 여건 때문에 운반이 덜미를 잡고 말았다. 사람들은 길도 험하고 개울 건너는 일 등을 두고 안 된다고 포기 하라고 말렸지만 당시로는 방도가 없었고 우격다짐 이라도 운반을 해야만 했다.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운반을 감행했다. 어차피 이곳에 온것이 미친짓이라고 생각 했던 만큼 더 미쳐도 손해 볼 것은 없었다.

컨테이너를 실은 운반 트럭과 포크레인이 합동 작전을 (?) 전개해야 했다. 밀고 당기며,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컨테이너를 제 자리에 옮겨 놓을 수 있었다. 내 고집의 승리 였다. 아니 하고자 한다면 할 수 있다는 굳센 의지의 결과였다.

 

그렇게 마련한 컨테이너 하우스...

하지만 추워서 잠을 자지 못 한다면 큰 일 이었다. 아직은 봄이라 해도 조석으로는 쌀쌀함이 옷깃을 여미게 했으며 더구나 산 속에서의 추위는 일반 도시의 그것과는사뭇 달랐다.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내에겐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사전에 내려와 내부는 그런대로 완성을 해 놓은 상태였다.

씽크대도 만들고 이불장이며 신발장,선반등...그것도 나무자재를 사용하여 친 환경소재로 그럴듯 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단열재도 듬뿍넣고 하여 보온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그렇게 단단하게 대비 하고 했지만 산 속의 추위는 그리 만만한게 아니었다.

문틈이며 창틀 주변등 바람이 들어올 만 한 곳은 철저히 손보고 하여 그런대로 작업을 마쳤다.

다시 밤이 찾아왔고 차가운 밤공기는 온 산골로 퍼져 나갔다.

장작난로는 지글거리며 활활 타올랐고 바람 들어 오는곳도 없었다. 훈훈한 가운데 잠자리에 들었다. 이젠 됐다 싶었다.

 

한데 또 문제가 생겼다. 장작이 잘 타는것은 좋은데 너무 빨리 타 버리는 바람에 자다가 일어나 장작을 넣는것이 문제였다.

공기 조정기로 불의 강약을 조정해 주어도 별 효과를 보지 못 했다. 잠이 들만하면 일어나 장작 보충을 해야하니...

그것도 서너번은 깨어야 아침까지 무사히 설 잠 이나마 잘 수 있었다.이젠 별 방법이 없었다. 빨리 여름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그리고 빠른 시간안에 우리의 집을 짓는 방법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또다른 문제가 발생 했다.

화장실이 없다는 것 이었다. 할 수 없이 다급한 대로 앞에 있는 빈집의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수 밖에...

다행이 집 건너에는 오래전에 지은 허름한 집이 있었는데 여름에만 휴가 기간에 별장으로 사용하는 도시사람 소유의 집 이었다. 우선은 그곳을 사용 하기로 하고 화장실 짓는 일부터 착수하게 되었다.

 

화장실에 대한 웃지 못 할 일이 있었다.

때는 이월 말 경... 무척 추운 겨울 이었지만 4월 중순에 이사도 해야하고 집지을 자재며 공구도 미리 챙겨야 했기 때문에 자주 정선에 와야 했었다. 그때마다 잠 자리 때문에 항상 불편을 겪었고 불편 해소를 위해서는 컨테이너를 보수하여 임시거처라도 시급히 마련 하는것이 급선무 였다.날씨는 추웠지만 컨테이너 내부 수리를 위하여 공구를 챙겨 간신히 선잠을 자며 작업을 했다.

혼자 있으니 누가 챙겨 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근근히 끼니를 챙기며 일 을 해 나갔다.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근 일주일이 넘는 작업기간 동안 생리 작용의 해결을 위해서는 화장실은 필요 했다.대충 아무곳이나 살펴서 해결하면 되기도 했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하여 앞집의 화장실을 주인의 사전 허락도 없이 무단 사용하게 되었다.

화장실은 깨끗했다. 정리도 잘 되어 있고 깔끔하게 사용 하였다. 하지만 똥통에 문제가 있었다.

지난 여름 다니러 와서 사용을 하긴 한 것 같은데 내용물이 꽉 차올라 간당간당 수준 이었다.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고 급한대로 볼 일을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매일 이용 하다보니 추운 날씨라 넘칠 염려는 없었지만 산처럼 솟아 오르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다.마치 한라산이 솟아 오른것 처럼 뾰족하게 산이 하나 만들어져 있었다.

도저히 쭈그리고 앉을수가 없었다. 똥 산이 엉덩이를 치받으려고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데 급하니 어정쩡한 자세로 볼 일을 보았다. 그리고 무사히 일 을 끝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힘도 들었을 법 한데도 일을 마친 후련함에 다음 일은 생각치도 않고 다시 일에 몰두 하였다. 아니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다음날 드디어 문제가 터졌다. 도저히 앉을 수 없게 똥탑이 쌓여 있으니 도저히 볼 일을 볼 수가 없었다. 급한대로 삽을 가져와 똥탑을 퍼 보려 했으나 꽁꽁 얼어버린 똥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함마와 곡괭이까지 동원하는 대공사(?)를 하게 되었다.

우선 함마로 내려치니 워낙 똥산이 밋밋하여 똥가루만 날리고 끄떡도 하지 않았다.상황이 그러니 다시 곡괭이를 집어 들었다. 휙~ 곡괭이가 똥탑을 찍는 순간 똥 덩어리가 사방으로 튀었다. 하~~....

옷 이며 얼굴 이며 곡괭이를 내리칠 때 마다 예고도 없이 튀어 올랐다. 하지만 멈출 수 는 없었다.

왜냐하면 볼 일은 봐야 했기 때문 이었다. 똥탑은 드디어 무너지고 내 몰골은 만신창이가 되었다.하지만 치열한 똥탑과의 싸움에서 드디어 승리를 쟁취(?) 했다.ㅎㅎㅎㅎ... 아무튼 그놈의 똥탑 때문에 스타일 확~ 구긴 하루였다.ㅎㅎㅎ...

그 일, 즉 똥탑을 허물고 다음부터는 화장실 가는 일이 즐거웠다나 ㅎㅎㅎㅎ...

 

어쨌든 열심히 작업을 한 결과 컨테이너 내부 공사가 무사히 끝이 났다. 똥탑과의 싸움도 끝이 났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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