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없는 정치인은 물러가라.

유태희 논설위원

2016-11-10 03:24:00

 

▲     © 행복세종타임즈

 

정치철학은 무엇이냐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치의 원칙과 정치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의 근거가 되는 것이 정치철학이다. 그래서 정치인은 모든 질문에 일관성 있는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질문에 대하여 일관성 있는 대답을 하기위해서는 정치철학이 있어야 한다. 살펴보면 정치인이 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울지 모른다. 왜냐하면 민중들이 세상 모든 문제에 대책을 물을 때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기가 좋다고 정치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인기는 있지만 정치철학이 없는 사람은 투표를 통해서 정치인이란 자격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정치인으로서 역할은 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은 그런 정치인을 양산하는 곳이다. 왜냐하면 국민이 어리석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정치철학은 박근혜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정치철학이 없는 국민이 철학이 없는 정치인을 선출하는 것이다. 사람을 부리려면 자신도 알아야 부리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정치인에게 국민들은 정치철학이 무엇인지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정치철학은 물을 수 없는 국민은 올바른 정치인을 선출할 수 없다. 당연히 올바른 정치인을 선출할 수 없는 국민은 올바른 국가를 가질 수 없을 것이고 올바른 국가가 없을 때  국민은 존재자체를 안심하지 못하는 사태를 맞게 되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정치철학이 무엇인지 물을 수 없는 국민에게 올바른 국가가 있을 수 없다. 곧 국민의 정치철학이 국가의 정의를 만든다.

 

요즈음 철학과 폐지가 유행이다. 얼마 전 학생 충원의 어려움으로 경남대학교가 철학과 폐지를 결정한데 이어 대전지역 사립대 가운데 유일하게 철학과를 유지해온 대학까지 폐과를 결정했다. 대전의 어느 대학은 철학과를 폐지,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폐지하지는 안했지만 철학과를 비롯해 학생모집이 어렵다는 이유로 인문계 대학조차 위기를 맞고 있다아무리 명석한 학생들을 입학시켜도 학문탐구는 뒷전이고 취업이나 고시준비에 여념이 없는 대학, 일류대학의 여부가 취업률로 결정되는 현실에서 취업률이 낮은 대학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폐과라는 절차만 남겨 놓고 있다. 철학이 없는 사회는 멘탈이 붕괴하는 멘붕사회다. 오늘날 한국의 현실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 마실 물이며 숨 쉴 공기며 먹거리며 정치, 경제, 사회문화 어느 곳이 멀쩡한 곳이 없을 정도다. 속이고 죽이고 내게 이익만 된다면 남을 생각하지 않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막가파 사회가 되고 말았다그래서 강자만 살아남는 사회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철학이 없는 황량한 사회는 서바이벌 게임처럼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단 한 사람을 위해 모든 사람이 희생자가 되는 길을 우리는 말없이 지켜보고 남들을 따라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고유한 선비정신이 죽은 것이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찬반을 떠나 그의 정치철학을 이해하는 데 빠질 수 없는 고전이 크리톤이다. 다수의 대중을 어떻게 볼 것인지의 문제만이 아니라 흔히 법이 갖고 있는 두 원칙 즉 정의의 원칙과 법의 안정성 가운데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라는 대표적 논쟁을 다루고 있다. 또한 논의 과정에서 국가와 법의 관계, 계약의 의미, 더 나아가서는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논쟁점이 여기저기에 숨어있다. 크리톤만이 아니라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에게 탈출을 권했다. 열렬한 제자인 아폴로도로스가 눈물을 흘리면서 선생님! 당신께서 아무 죄도 없이 사형에 처해지는 것은 정말 견디기 어렵습니다.”라고 하자 그는 제자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사랑하는 아폴로도로스여! 너는 내가 죄 없이 사형에 처해지는 것보다 죄가 있어서 사형에 처해지는 것을 보기를 희망하고 있는가?”라고 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아내가 면회를 와서 당신은 부당하게 사형되는 것이라며 탈출을 권유하자 그러면 당신은 내가 정당하게 사형되기를 원하오?”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크리톤은 절친한 친구인 소크라테스가 죽으면 돈 깨나 있으면서 친구를 죽게 만들었다는 나쁜 평판을 우려해서 탈출을 설득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반박한다. “많은 사람의 의견에 구애될 이유가 무엇인가?

    

사실 많은 사람은 최대의 해를 끼칠 수도 있을 거야. 그렇다면 그들은 최대의 선도 이룩할 수 있을 게 아닌가?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어느 쪽도 하지 못하네. 그들은 사람을 현인으로도 바보로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야. 그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에 지나지 않아.”

대중은 무지하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든 별다른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러니 대중의 의견을 고려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이 논리대로 하면 다수 대중의 의견에 기초한 정치는 최악이다. 그래서 자네는 한 나라에서 분별 있는 사람은 소수이고, 자네가 미쳤다고 보는 무분별한 사람은 다수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면 자네는 우리가 그렇게 많은 미친 사람과 함께 무사히 나라를 꾸려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라면서 민주정치에 분노한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대중에게 갖고 있는 지독한 불신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중들이 그렇다 치고 그렇게 머리 좋은 공무원들이, 대부분이 최고의 학부를 나온 정치인들이 대통령이 부당하게 하는 일에 대하여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동조하고 못 본체하고 돌아섰을까. 왜 그들은 소크라테스처럼 독배를 받아 마시지 못했을까?

    

정치인들의 철학 없는 정치로 정부가 조폭처럼 변했다. 일주 공무원들이 일신을 위하여 간신으로 변했다. 이번엔 기필코 근본적으로 뿌리를 뽑아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산다. 도덕 없는 경제는 갈취다. 철학이 없으면 도덕도 없어진다. 정치인들이 올바른 철학을 가져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다. 철학이 없는 대통령과 정치인, 철학이 없는 CEO의 존재는 사회를 빈곤토록 한다. 이들이 철학을 가질 수 없던 이유는 바로 오늘 자본의 논리로 철학과가 연거푸 문을 닫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도 가늠할 수 있다.

    

프랑스가 1808'바칼로레아'가 만들어진 이유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기 위해서'였다. 우리 역시 바칼로레아에 깃든 이 높은 이상을 교육의 현장에서 실천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래야 우리의 희망이 완성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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