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있는 퇴진의 길을 열어라.

논설위원 유태희

2016-11-30 10:42:00

 

▲     © 행복세종타임즈

 

오늘 날 국정농단 사태에 피의자로 연루돼 국민에게서 사퇴 요구를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293차 담화문을 발표하자 법조계 관계자들은 국회를 이간하려는 술책이라며 비판의 날을 거두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국민과 대통령의 싸움을 자신의 대리인인 새누리당과 야당의 싸움으로 옮겨놨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시대가 열리며 그 어느 때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회자되는 일이 잦았다. 한쪽에선 박근혜대통령 정부가 박정희의 정치적 역사적 유산을 계승함으로써 종말을 고한 지 한 세대를 넘긴 박정희 체제가 계속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었고 다른 한 편에서는 새로운 희망을 말했다. 그리고 다시 유신 때에 변질되어 거대 집단으로 성장한 언론공룡과 군부세력도 유신의 반면을 비춰주고 있었다. 하지만 유신체제를 떠받친 유신헌법의 반민중성과 폭력성, 일상적 문화, 사유체계 등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일종의 트라우마Trauma로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대통령 스스로가 박정희 신화를 깼다

    

그동안의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호를 가졌던 과정을 살펴보면 박근혜대통령은 민중들이 만든 박정희 신화로부터 나온 신의 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능력과 판단이 아니라 아버지의 신탁(神託)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그의 언어는 아버지의 그것이고, 그의 국가관도 아버지가 끌고 가던 유신체제의 그것이다. 하지만 박근혜대통령은 아버지의 시대에 성장이 멈추어버린 신의 딸이다. 그는 사람을 잘 믿지 못하여 좋은 사람을 곁에 두지 않았고, 국가와 개인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시대착오적 국가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나랏돈을 빼돌려 최순실에게 주어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고, 자신을 비판한 사람들에게 냉혹한 보복을 하였다. 그러므로 박근혜대통령을 지배한 것은 박정희의 신탁이 아니고 무엇일까.

    

얼마 전 JTBC 뉴스룸은 최순실의 PC에서 박근혜의 연설문들(대통령 기록물로 유출은 불법)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뉴스룸은 박근혜의 연설문들이 실제 연설이 있기 전에 최순실에게 전달됐다고 밝혔다. PC에서 발견된 연설문들 중 상당수에서 수정한 흔적이 나왔고, 실제 연설에서 거의 다 반영됐다고 한다. 연설문들을 수정한 사람이 최순실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없지만 박근혜의 연설문들이 사이비 종교인의 사전 결제를 받았다는 추론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한 고발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김기춘은 오랜 전부터 최순실의 건물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때 최순실과 김기춘이 박근혜 정부 초기의 국정운영을 구상했다고 하니, 박근혜의 비서실장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김기춘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윤회가 박근혜 정부 2인자를 노리는 김기춘과의 권력암투에서 패배한 후 최순실로부터 버려진 것까지 고려하면 김기춘이 연설문을 최순실에게 보내 최종 수정을 가했을 수도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제 주말이면 다시 전국에서 박근혜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봇물 터지듯 열릴 것이기에, 국정원과 정치검찰과 정치경찰을 총 동원해도 국민의 분노를 제압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지식인들의 대다수는 박근혜대통령이 박정희와 똑같은 최후를 맞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라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국회에서 탄핵하는 것보다는 국민의 힘으로 퇴진시키는 것이 상책이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박근혜대통령이 이번 담화문을 발표했다고 해서 헌법 근거 없이 정치적으로 타협해서는 곤란하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특검·탄핵소추·국정조사가 예정대로 진행돼야 한다. 특히 국회 진상규명 노력과 대통령이 질서 있는 퇴진을 말한 것은 별개로 봐야한다. 대통령 거취와 별개로 진상규명이 이뤄져 헌법질서를 지켜내야 한다

  

아울러서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분리와 상호견제는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이다. 지금까지 거국내각을 꾸리자는 것은 지금 행정부가 제 역할을 못하니 입법부인 국회에서 사람을 정해 운영해보자고 하는 논리이다. 청문회를 통해 밝힐 수야 있겠지만 내각의 임면권은 분명히 대통령에게 있다. 그 대통령의 권한을 당사자들의 합의로 국회에, 정확히 말하자면 야당에 조금 잘라주자는 것인데, 아무리 현대정치가 대중정당정치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헌법에서 정한 권력구조를 여야가 합의해서 교정하겠다는 것 자체가 위헌적인 발상이다. 그것은 아무런 법률적, 민주적 정당성도 확보하지 못한 발상이다. 또한 책임정치의 실종 민주주의 체계 하에서 행정권을 누가 행사할지는 이른바 정치인들이 적당히 여론의 눈치를 살피면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선거라는 신성한 절차를 통해서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행정권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작은 정책에서부터 나라의 운명까지 좌지우지 되는 중차대한 것이다. 특히나 대통령제에서는 역대 정권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정권이 모든 면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고, 모든 면에서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정권은 공과를 남기고, 국민들은 지난 정권의 공과를 따지고, 자신에게 정권을 달라는 정파의 약속을 따지고, 국민들이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다음 정권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정권은 그 공과의 최종 책임자가 되는 것이다. 야당이 지명한 총리에, 여야가 적당히 선출한 각 부 장관들이 근 1년간 정부를 운영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단기정부의 공과에 대해서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어떤 것을 공으로 볼 것이며 어떤 것은 과로 볼 것인가. 여당 대통령에 야당 총리에 여야를 버무린 장관들로 통일적인 정책집행이 가능할리도 만무하거니와 그 실패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지겠다는 것인가. 그러므로 최상의 선택의 수는 대통령의 이번 담화는 퇴진요구에 일부 응한 것이라고 보는바, 하야나 탄핵보다는 질서 있는 퇴진으로 혼란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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