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는 농업안보전략을 구축하라.

논설위원 유태희

2017-08-27 11:05:00

 

▲     © 세종타임즈

식량은 평화다. 인류역사에서 식량문제가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유민(流民)이 발생한 사건은 셀 수없이 많았다. 1970년 노벨 평화상은 밀밭에서 땀을 흘리고 있던 한 과학자에게 주어졌다. 미국의 과학자인 노먼 볼로그(Borlaug, N. E. : 1914~2009)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농학자이며 식물병리학자인 그가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었을까?

    

1944년 빈곤에 시달리던 멕시코로 건너간 볼로그는 전 세계에 있는 수천 종의 밀을 이용하여 수확량이 많은 밀 종자를 만드는 연구를 하였다. 10여 년의 교배 실험 끝에 마침내 낱알이 더 많이 달려 수확량이 많고 병충해에도 강한‘소노라’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소노라의 보급으로 밀 수입국이던 멕시코는 1963년부터 밀 수출국이 되었으며, 파키스탄과 인도로 전해진 소노라로 인해 1965년에서 1970년 사이 이 지역 밀 생산량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볼로그가 만들어 낸 이 작은 밀알은 10억 명 이상의 사람들을 ‘굶주림’으로부터 자유롭게 했고, 이렇게 식량 증산으로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 공로로 볼로그는 노벨 과학상이 아닌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된다. 노벨상 수락 연설에서 그는 “식량은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의 도덕적 권리”라고 말했고, 그가 가진 과학 기술은 배고프지 않을 사람들의 기본 권리를 실현해 주었다.

    

그런데 이제 이런 전설 같은 신화는 더 이상 일어나기가 어렵게 되었다. 씨앗 때문이다.

 

WTO체제를 맞아 세계 농업계가 종자나 유전자원의 확보를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그 대비가 너무 허술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일본, 네덜란드를 비롯한 국가들이 국내에 대행사나 판매 대리점을 두고 국내진출을 꾀하고 있지만 종묘업계는 이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계기관의 유전자원확보까지 미진해 종자전쟁에 뒤쳐질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관계전문가에 따르면 각국별로 확보한 유전자원수(씨앗)가 미국 43만3천점, 중국 35만점, 러시아 31만점, 일본 18만1천점 등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이들 국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1만6천점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그동안 농산물분야의 국제특허기구라 할 수 있는 식물신품종보호연맹(UPOV)에 가입하지 않은 결과로 국내종자의 지적재산권을 보호받지 못하였음은 물론 UPOV에 등록한 신품종에 대해 로얄티를 내지 않고 비공식적으로 확보, 번식해 해외에 역수출하는 사례가 외국에 알려져 유전자원의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원산지가 우리나라인 콩의 유전자원을 우리나라보다 3배 이상 보유하고 있고 일본도 일제 때부터 최근까지 한국농산물과 토종식물의 종자를 우리보다 많이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 등 우리나라는 우리의 유전자원마저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가 종묘산업을 첨단연구에 포함, 연구개발과 유전자원 수집에 뒤늦게나마 주력하고 있지만 종묘개발과 개발을 위한 연구수준은 물론 생물다양성협약에 따른 외국 야생유전자원 확보의 제한, ‘신품종육성자보호’에 따른 종자도입의 어려움 등 많은 난제들이 종자산업의 앞길을 가로 막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종자 개량을 포함한 바이오 기술이다. 종자는 우수한 형질을 갖춘 품종을 5~10년에 걸쳐 개량해 상품화된다. 투자 규모가 크고 회수 기간도 길어 웬만한 국가나 기업은 뛰어들 엄두를 내지 못한다. 다국적 기업들이 종자 업체 인수에 나서는 이유다. 실제로 베르너 바우만 바이엘 최고경영자(CEO)는 “몬산토의 유전자 조작 종자와 바이엘의 작물보호제가 합쳐지면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투자 전문가 짐 로저스는 “농업은 앞으로 가장 유망한 산업 중 하나”라고 전망한 바도 있다.

    

지금까지 녹색혁명은 불어나는 인류를 부양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60년대 이후 같은 면적에서 재래종의 두 배 이상 수확할 수 있는 벼와 밀 품종이 보급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 배로 늘어난 인구를 먹여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작물보호제에 대한 내성 증가 등의 영향으로 쌀·밀 등 주요 농산물의 수확률 상승세가 정체되고 있다. 대안으로 유전자 기술을 활용한 생명공학(BT), 이동통신과 사물인터넷(IoT) 등 정보기술(IT)을 적용한 지능형 농장(스마트 팜) 등이 떠오르고 있다. 이것에 집중투자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여름과 겨울이 교차하는 우리나라는 차세대 바이오산업의 핵심인 유전자원이 풍부한 쪽에 속한다. 생화학자 노먼 볼로그 박사는 기존 품종보다 60% 이상 생산성이 높은 ‘소노라 64호’를 개발해 세계 기아 문제 해결에 일조한 공로로 197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가 신품종 육성에 활용한 품종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넘어간 우리나라 앉은뱅이밀의 후대 품종으로 알려져 있다.

 

안타까운 것은 외환위기 후 국내 5대 종자 기업 중 4곳이 외국 다국적 기업에 팔려나간 후 한국의 세계 종자시장 점유율은 1%대로 주저앉았다. 더구나 83년 중앙종묘가 개발한 청양고추는 몬산토 소유라는 것을 알면 국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지금이라도 식량안보에 대한 새로운 전략적 접근과 집중적인 투자와 연구가 필요하며 새로운 농업전략경영이 절실해 보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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