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정신질환자에 의한 살인사건이 전국을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다. 조울증을 앓던 30대 정신질환 외래 환자 박모씨가 저지른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전문의 임세원 교수 사망 사건 관련한 파문이 거세다. 수법이 참으로 황당하고 흉측하기 그지없다. 진료실에 들어가 갑자기 문을 잠그더니 의사를 흉기로 위협하고 비상탈출구로 도망가 간호사들을 대피시키던 의사를 끝까지 쫓아가 넘어진 故임교수의 가슴부위를 수차례 흉기로 찔러서 사망에 이르게 한 흉측한 사건이다. 조현병 환자에 의한 2016년 5월 17일 새벽 강남역 살인사건에 이어 2018년 12월 31일 오후 조울증 환자에 의한 전문의 살인 사건은 또다시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박 씨가 "머리에 소형폭탄을 심은 것에 대해 논쟁을 하다가 이렇게 됐다"는 진술을 했고 "폭탄을 제거해 달라고 했는데 경비를 불렀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황당하기 그지없다. 국민적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번 살해 사건 피의자가 조울증 환자였다는 점을 들어 조울증 등 정신질환자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더해지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신질환 환자에 대한 막연한 오해와 사회적 편견을 부추기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신질환자의 범죄 연관성에 대해 섣부른 오해와 편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조차 말하고 있다. 늘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나오는 말이다. 물론 사회적 편견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분명히 사라져야 한다는 점은 아직도 고통 속에서 투병중인 많은 선의의 정신질환자들에게 절실한 것이다. 고 임세원 교수의 유가족들도 허망한 가운데도 평소 고인이 사회적 낙인 없이, 고통 받는 사람들이 치료받길 원했다며 이번 사건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낙인은 없어야 된다는 뜻을 전했다. 참으로 숭고한 고인의 뜻으로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자 모두를 매도하지 말고 되새겨 보아야 한다.
그러나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막고 의료진 안전보장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의견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속속 올라오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의료관계자들도 긴급하게 나서고 있다. 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선 진료실 내 대피통로(후문) 마련, 비상벨 설치, 보안요원 배치, 폐쇄병동 내 적정 간호인력 유지 여부 등 일선 정신과 진료현장의 안전실태 파악을 추진한다고 한다. 진료환경 안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이에 필요한 제도적·재정적 지원방안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물론 지난 해 8월 보건복지부는 치료를 중단한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지원방안을 수립·발표하였다. 지원방안의 주요 내용으로 퇴원환자 방문 관리 시범사업 도입, ‘정신과적 응급상황 대응 매뉴얼’ 발간, 지역사회 정신질환자 보건-복지 서비스 연계 강화 등이다. 또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정신의료기관에서 퇴원하는 환자의 정보를 관할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통보하고, 지역사회 정신질환자에 대한 외래치료명령제도를 강화하고자 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어 이를 재점검할 모양이다. 나아가 진료실 폭행에 이어 제 2의 임세원을 막고 의료인보호대책을 위한 의료법개정에 공감대도 확산되고 있다.
경찰도 나서고 있다. 고 임세원 교수 피살사건 같은 강력범죄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해 경찰이 과거 전력까지 고려해 입원조치 여부를 판단하기로 한 것이다. 경찰청은 이 같은 내용의 '고위험 정신질환자'에 대한 응급·행정입원 판단 매뉴얼을 지난해 말 개정해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정된 매뉴얼은 경찰관이 치안활동 중 정신질환으로 남에게 해를 끼칠만한 사람을 발견하면 과거 진단과 치료 이력을 중심으로 정신질환 여부를 판단해 응급입원 조치하거나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입원시키도록 했다. 이전에는 생명·신체에 대한 위해, 재물 파손, 언어 위협 등을 주된 판단 기준으로 삼았지만, 지금은 과거 112신고나 형사처벌 이력, 정신질환 치료 중단 여부, 흉기 소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인권침해 소지를 없애기 위해 지자체를 통한 입원이 불가능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응급입원 조치하도록 하고 있다.
이미 보건복지부는 지난 해 '정신응급 대응체계 개선방안'을 마련해 일선 정신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의견수렴에 나서기도 했다. 정신질환자의 응급 입원 과정을 단계별로 나눠 병원 이전의 현장단계, 응급 치료단계, 급성기 치료단계 등 각 단계별로 추진과제를 마련해 이 가운데 가장 핵심은 활성화되지 않았던 응급 치료단계를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에 따라 정신질환자의 사회 복귀가 증가하자 정신 응급 상황체계 개선에 나선 것이다.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에 따른 탈원화 현상이 범죄 등 사회 안전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자 마련한 긴급 대응책으로 풀이된다. 사실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른바 대책 없는 탈원화 정책이 빚어진 현상이다. 탈원화는 정신 의료기관에 타의로 입원되는 사람들을 구제하고 환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생겼다. 여기에 탈원화를 내세우며 법조차 전면 개정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신질환자들의 입원 절차와 형식은 아주 복잡해졌다. 비전문가들에게 입원 판정에 대한 전문적인 권한마저 일부 이양됐다.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까다로운 입원 절차와 형식에 맞지 않다 보니, 퇴원하거나 입원을 거부당하는 진성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후속 조치가 마련되지 않아 시행 상 문제가 자주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질환자 관리 시스템이 사각지대를 노출하고 있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오고 있다.
문제는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범죄가 해매다 증가하고 있다는데 있다. 지난 해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윤재옥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발생한 정신이상·정신박약·조울증 등 정신질환자 범죄는 총 3만 559건에 달하며 매년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 추이를 보면 △2014년 6265건 △2015년 6980건 △2016년 8287건에 이어 지난해 9027건으로 1만 건에 육박해 지난 2014년과 비교해 4년 동안 무려 44%인 2762건이 증가한 수치다. 이같이 정신질환자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최근 우울증이나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데도 원인이 있지만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에 따른 탈원화 유도로 치료도중에 병원 밖으로 퇴원하는 환자들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신질환 범죄는 최근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하거나 범죄 수법이 즉흥적이고 잔인해지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물론 2017년 발표된 대검찰청 범죄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비정신질환자 범죄율은 1.2%,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0.08%로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비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지를 확률의 15분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의 재범률이 높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2017년 경찰청에 따르면 정신질환 범죄자의 재범률은 65%로 전체 범죄자 47%보다 훨씬 높았다.
이에 따라 재범 위험성이 높은 정신질환 범죄자는 앞으로 치료감호가 끝나도 보호관찰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2017년 4월 11일 국무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치료감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이는 "지난 2016년 강남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과 2017년 3월 조현병 치료를 받던 10대 소녀에 의한 초등학생 살해 등 최근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국민들의 우려가 크다"며 종합적 관리대책 마련을 절박하다는 인식아래 단행했다. "지금은 정신질환자에 의한 각종 범죄로 부터 국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며 이같이 밝혔었다. 법무부, 복지부 등 관계부처에서는 정신질환자 범죄에 대한 종합적인 관리대책을 마련·추진해 국민 불안감을 해소하는데 주력한다는 입장은 이미 나와 있다. 의료계에서도 벌써부터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 및 관리가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해 오고 있다. 나올 건 다 나와 있다.
복지부는 지난 2017년 5월 30일 정신건강 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정신건강복지법)의 시행에 들어가 정신질환자의 범위를 중중정신질환자로 축소 정의하고 인권보호를 명분으로 입원요건을 강화하여 치료차원에서 예방 및 보호차원으로 정책을 대폭 수정하고 사실상 탈원화 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다. 이에 따라 법 시행 이전부터 일선 병원에서는 알코올 환자들을 비롯하여 의료급여 환자들의 퇴원과 감축을 기정사실화하며 이를 수용해 오고 있는 상황이다. 정신병원의 입·퇴원 풍속도마저 달라지고 있다. 심지어 장기입원 의료급여 환자들에게는 입원 기간에 따라 15%까지 식비까지 감액하는 불이익까지 주며 탈원화를 강력 추진하고 있다. 일선 정신의료계에서는 기존에도 6만 5천명의 입원 환자들을 10%이상 탈원화를 시킬 것으로 봐 왔다. 그러나 이로 인해 사회 사각지대에 방치된 환자들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국가정신건강현황보고서 퇴원한 중증정신질환자 5만 4152명 중 퇴원한달 내 최소 1회 진료를 받은 환자는 3만 4,304명으로 전체 63.3%에 머물고 있다는 통계가 그 시사 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한마디로 퇴원 후 사례관리라든지 외래치료명령제의 시스템 작동이 전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강제입원절차마저 까다로워졌다. 퇴원 후 외래진료 의무화방안이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력범죄가 잇따르자 정신질환자 탈원화 정책이 실패했다는 주장이 비등하며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시행하고 있는 정신건강복지법에 따가운 시선이 모아지고 있기도 하다.
각종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후약방문격으로 대책마련의 시동을 걸고 있지만 정신질환자의 입·퇴원의 문제는 이제 냉철히 점검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교차진단도 시행이후 지금까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해 연말까지 연장 시행되었던 정신병원 입원과 관련한 교차진단제도가 2019년도에도 계속 연장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준비가 미흡해도 보통 미흡한 것이 아니다. 탈원화를 위해 급조된 법은 정신장애인이란 법적 근거마저 뒤흔들어 놓고 있다. 지금도 정신의료계에서는 정신건강복지법의 맹점을 지적하고 탈원화의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급기야 청와대 게시판에는 “국가정신건강위원회 설치를 청원합니다”라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지금까지 정신질환치료에 대한 모든 문제가 함축되어 있다. 참으로 훌륭하고 모든 문제에 대한 현실진단이 촌철살인과 같다는 평가이다. 내용에는 치매국가책임제의 범위를 좀 더 넓혀 ‘국가정신건강위원회’를 청와대 직속기관으로 설치하여 정신질환 등 국민정신건강에 대한 모든 문제를 총체적으로 풀어나가기를 청원하고 있다. 참으로 시의적절한 청원내용이다.
모든 일에는 유비무환의 자세가 필요하다. 정신질환 탈원화에 골몰하다가 질환치료의 본질을 훼손하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는 것은 곧바로 사후약방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치료도중에 퇴원을 유도하는 것이야말로 인권유린이자 진료차별이다. 차제에 졸속 추진된 정신건강복지법의 맹점과 준비가 되지 않은 탈원화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과 개선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강남역 살인사건에 이어 고 임세원 교수의 살인사건과 같은 제 2,제 3의 유사사례를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탈원화의 후폭풍이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 너무 거세다. ‘법을 만든 사람들 따로 법 시행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 따로’라는 신조어가 나온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다. 이런 의미에서 국민청원으로 제기된 국가정신건강위원회 설치는 통합시스템의 구축 차원을 물론 국민정신건강차원에서도 시의적절하며 아주 훌륭한 제안이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