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가적으로 가장 큰 화두가 일자리 문제이다. 특히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층의 취업난이 심각하다. 노동시장에 진출해야 할 청년층들이 정규교육을 받고 공공이나 민간 부분에 취업할 일자리들이 많지 않아 허둥대는 모습이 안쓰러울 뿐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도 청년층만이 아닌 모두의 마음에 거슬리는 잘못된 사회 가치관의 언어적 산물인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일상화된 말들은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 예전 같으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처럼 부모가 자식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교육환경 조성에 관심을 두고 지원했으나, 현재는 단지 남보다 먼저 기회를 포착하려고 혹은 더 많은 정보를 빠르게 활용하려는 목적이 강하다. 결국 인간의 이중성의 문제, 즉 인간의 평등과 공정의 가치보다는 이기적인 사고의 발로에 기인하여 경쟁에서 앞서려는 소아적인 사고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이는 청년 자신의 노력보다 부모의 배경에 따라 장래가 결정된다는 젊은이들의 현실 자조의 표현이다.
‘금수저’는 돈 많고 능력 있는 부모를 둔 사람을 가리키는 반면, ‘흙수저’는 돈도 배경도 변변찮아 기댈 데가 없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문재인 정부는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약속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반칙을 일삼거나 공정한 기회보다는 독점적인 기회를 활용하는 위선적인 모습이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약속이 실현되기는 쉽지 않다.
심각한 청년층 취업난 때문에 이와 유사하게 떠도는 신조어인 ‘금턴’과 ‘흙턴’있다. 이는 ‘인턴 계급론’의 한 단면이다. 즉, 낙하산이 아니면 절대 채용될 수 없는 인턴을 ‘금턴’이라고 말한다. 금턴 아래로는 ‘은턴’과 절대 다수의 ‘흙턴’이 있다. 이러한 인턴의 계급화가 심화된 원인은 소위 금턴이라 불리는 인턴직의 채용과정이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월급과 근무시간 등 조건이 좋고 취업에 큰 도움이 될 스펙이지만 정식 공고를 내지 않거나 내더라도 결과는 정해진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제는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시대”라고들 한다.
이에 정부는 사교육을 억제하고, 서민층의 보육료를 지원하는 등 복지정책을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정책이 개천에서 용을 쉽게 나게 하기 위한 조치인지, 과연 우리 사회가 정말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사회’인지 되짚어볼 일이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혹은 ‘금턴’과 ‘흙턴’등 이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인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을 꾸밈없이 반영하고 있지만, 긍정적 의미부여 보다 갈수록 사회 계층화된 부의 편중과 대물림 현상이 더욱 심화가 되고 있음에 가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