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정부는 국민에게 혼선을 주는 정책을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아 슬그머니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촌극을 연출해 빈축을 사고 있다. 그 첫째는 해외직구에 대한 것이다. 요즘 고물가 시대 서민들은 한 푼이라도 지출을 줄이고자 값싼 해외직구에 눈을 돌리고 있다. 지금은 세계화 시대이기 때문에 국내 제품애용만을 강요할 수 있는 그런 시대는 지났다. 특히 중국 구매사이트 직구의 저가 공세가 치열하여 이곳으로 자연스럽게 구매 손길이 집중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갑자기 KC 인증을 받지 않으면 해외직구를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갑자기 발표하자 시중의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정부가 다음 달부터 KC 인증이 없는 어린이 제품과 생활용품은 물론, 신고·승인을 받지 않은 생활 화학제품 등 80개 품목에 대해 해외 직접구매(직구)를 원천 금지하기로 한 것이다. 16일 이러한 내용의 ‘해외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하고 국민 안전을 해치는 해외직구 제품은 원천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등 중국 플랫홈을 통해 들어온 제품들이 발암물질 검출 등 국민 안전을 위협한다고 제동을 걸고 나섰다.
하지만 저가 제품 구입을 위해 해외직구를 의존하고 있는 소비자들의 반발하고 나섰다.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는 처사라는 시중 여론이 비등해지자 정부가 말을 바꾸며 갑자기 꼬리를 내렸다. 19일 해외 직접구매(직구) 제한에 대해 “80개 위해 품목의 해외직구를 사전적으로 전면 금지·차단한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며 “위해성이 전혀 없는 제품들의 직구는 전혀 막을 이유도 없고 막을 수도 없다”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앞서 지난 16일 국가인증통합 마크(KC) 미인증 해외직구를 금지한다는 방침을 밝힌 지 사흘 만에 사실상 철회한 것이다. 물론 유해성 제품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되었다고는 하지만 추진 과정이 대단히 졸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불과 사흘 만에 없던 일이 돼버려 이렇게 정책이 오락가락할 수 있느냐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
이번에 또다시 유사한 행정행태가 빚어졌다. 지난 20일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2024년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대책'을 발표했다.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 취지는 좋았지만, 문제가 된 것은 고령 운전자에 대한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한 부분이다. 발표 이후 해당 제도가 고령 운전자의 이동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거센 반발에 부닥쳤다. 이에 정부는 부랴부랴 특정 연령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고 해명하고 나서서 '고령자'를 '고위험자'로 정정했다. 하지만 정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고령의 운전자들이 발끈했다. 정부가 65세 이상 운전자를 고령 운전자로 규정한 만큼 불이익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운수종사자 79만1,291명 중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23.7%(18만7,859명)로 나타났다. 특히 개인택시의 경우 16만4,365명 중 절반 이상(51.5%)이 65세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노동강도가 높고 근무 시간이 길어 기피업종으로 분류되는 운수업의 경우 이미 고령층에 노동 인력을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분석으로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러한 현실에서 정부가 신중하지 못한 접근 자세로 갑작스럽게 규제 내용을 발표하자 반발이 거셌다. 대부분 "노인의 발을 묶는 정책이다", "사회 갈등을 조장한다", "생계형 운전자는 어쩌냐" 등의 비판이 거셌다. 그러자 조건부 운전면허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은 지 하루 만에 정부 태도가 "특정 연령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며 논란 진화에 나섰다. 경찰청까지 내세우며 추가자료를 통해 "조건부 운전면허는 이동권을 보장하고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이고 "의료적·객관적으로 운전자의 운전 능력을 평가한 뒤 나이와 상관없이 신체·인지 능력이 현저히 저하돼 교통사고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운전자만을 대상으로 한다"라며 부랴부랴 해명에 나섰다. 하루 만에 한마디로 없던 일이 된 것이다. 촌극도 이런 촌극이 없다. 해외직구에 이어 두 번째로 망신 사태를 빚었다. 공식적으로 정책을 발표해 놓고 혼선을 빚으며 국민 정서에 불을 질러놓고 반발이 거세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며 없던 일로 하자는 식인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예산을 투자해 추진하는 정부 정책이 이런 식이 되다 보니까 하는 일마다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저출산 대책에 소요된 280조 혈세 낭비도 이런 자세에 비롯된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2006년부터 2021년까지 16년 동안 280조 원을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붓고도 합계출산율 0.7명대로 세계 최저출산율을 기록했다는 사실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저출산 정책을 위해 그동안 무엇을 어떻게 해왔으며 예산은 얼마나 썼는지를 구체적으로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하루나 사흘 만에 사실상 철회하는 즉흥적인 정책추진 행태는 그동안 무리수를 두는 정책들이 통제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해왔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런 어리숙한 아마추어 행정이 없다. 물론 정책추진과정에서 시행착오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정부가 공식적인 발표하고 나서 시작도 하기 전에 심지어 하루 만에 꼬리를 내리는 정책철회 행태는 좋게 볼래야 좋게 볼 수가 없다. 국민에게 충격을 던져주고 혼선은 더하는 정책 입안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예산을 소비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단순히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발상이자 행정행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의료 개혁한다고 벌집을 쑤셔놓고 의료대란으로 국민만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사전에 충분한 토론과 협의 과정을 통해 종합적인 의견을 수렴한 뒤 국민적 공감대에서 추진해야 할 일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니까 의료계의 반발과 저항에 부닥치는 것이라는 지적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의료 개혁의 경우 정부와 의료계의 대립 상황에서 비록 정부가 이긴다고 하더라도 이는 상처뿐인 영광임을 알아야 한다. 국민 생명을 볼모로 한 의료파업이 국민의 절대적인 공감을 얻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의료파국의 원인을 제공한 지혜롭지 못한 정부의 행정행태도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것도 아니다. 환자들의 불편과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형병원들이 경영난에 허덕이고 인근 약국이나 식당 등 관련 업종들이 엄청난 타격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국민 신뢰를 상실하면 이는 생명력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다. 의료대란에서 뜨거운 맛을 본 정부라서 그런지 해외직구 규제나 고령 운전자에 대한 조건부 면허제 도입과 관련 국민 비난과 반발에 황급히 꼬리를 내리는 모습이 참으로 목불인견이다. 과거 보건복지부가 정신장애인들을 위한다며 졸속으로 추진해 시행 첫해부터 누더기 법이 되어버린 약칭 ‘정신건강복지법’의 한심스러운 작태를 보는 듯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정책이든 법이든 국민을 위해 올바른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하지 조령모개식으로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작금의 수준 이하인 정부 정책 추진행태가 바로 보여주고 있다. 황당하게 꼬리 내린 해외직구 규제나 고령 운전자에 대한 조건부 면허제 도입 정책추진이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정말 나랏일을 바로 하는 자세를 다시금 가다듬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