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직구 시대의 민심

김헌태논설고문

2024-05-20 08:58:05

 

 

고물가시대를 맞아 서민들의 삶이 말이 아니다. 생필품에서부터 시중 물가가 오르지 않은 것이 없다. 그만큼 팍팍한 경제활동이 되고 있다. 당연히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고물가에 따른 소비심리위축은 음식점 등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른바 손님이 뚝 끊어진 것이다. 혹독한 코로나19 사태를 견뎌왔는데 이제는 장사도 되지 않아 자영업자들의 폐업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시중의 경기는 활기를 잃고 있다. 심지어 부산지역에서는 대형마트의 폐업 사태도 빚고 있다. 전국의 주요 관광지도 숙박업소와 호텔, 콘도 등이 치명타를 입고 문을 닫고 있거나 개점휴업 상태를 방불케 하고 있다. 

 

건설업체도 무너져 내리고 있다. 건설업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 4월까지 폐업 신고를 한 건설사의 수가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 지식 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달까지 폐업 신고 공고(변경, 정정, 철회 포함)를 낸 종합건설사는 전국 187곳으로 집계됐다. 건설업 등록통계를 보면 올 1월부터 5월까지 총 12곳(종합건설사 2곳, 전문건설사 10곳)의 건설사가 부도처리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공사비 상승, 수주 경쟁 및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업체들의 도산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앞으로도 부동산시장 침체, 고금리 기조, 부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정리가 계속되면 건설업계 전반이 쇠퇴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이런 경제 불황 속에서 서민들은 더 값싼 물건을 찾거나 음식을 찾아 긴축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다 보니까 국내보다 값싼 해외직구 거래사이트를 찾아 물건을 구매하는 국민이 급증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가볍게 알고 정부가 헛발질하다 망신을 자초하고 있다. 지난 16일 정부는 △어린이 사용 제품 △화재 등 사고 우려가 있는 전기·생활용품 △유해 성분 노출 때 심각한 위해가 우려되는 생활 화학제품 등 80개 품목에 대해 KC 인증을 받지 않을 경우 해외직구를 원천 금지하는 내용의 방안을 발표했다. 당연히 민심이 들끓고 정치인들마저 나서 비판하는 게시글을 공개적으로 올리며 '국민 선택권 제한'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정부는 발표 사흘 만에 사실상 대책을 철회했다. 정부가 국가인증통합 마크, KC 미인증 제품에 대한 해외직구 금지와 관련해 "법 개정 여부 자체를 다시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애초에 발표한 정책에서도 "80개 위해 품목의 해외직구를 사전 전면 금지 차단한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며 사흘 전 정책 설명 과정에서 혼선이 있었다고 발뺌을 한 것이다. 잘못했으면 잘못한 것이지 견강부회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러니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날로 추락하지 않을 수 없다. 고물가시대 값싼 물건을 구매하려 안간 힘을 다하는 서민의 구매 활동까지 봉쇄하려던 정책 추진은 ‘국민선택권’이라는 저항에 부딪혀 사실상 사흘 만에 좌초한 것이다. 경제난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서민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결과이다. 서민 경제의 활력을 불어넣어 나라 경제를 생각하기는커녕 규제나 금지 등 부정적인 정책이나 대책에 급급하며 국민을 힘들게 하니 신뢰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흘 만에 끝난 촌극이지만 서민들을 향한 어리석은 규제는 그 이유가 어떻든 국민저항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동안 부동산값 폭등으로 인해 치솟았던 지방 도시의 아파트 시세도 급락하면서 소유자들의 아픔이 크다. 거래도 한산하고 큰 폭의 내림세를 보인 지방 도시에서는 고금리 주택담보대출과 집값 하락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수도권과 광역시, 세종시 등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도 지역별로 하락 폭이 심상치 않다. 일각에서는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고 있다며 묘한 수치를 제공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의 체감 시세는 간단치 않다. 대구지역에서도 아파트값 폭락 사태와 미분양사태가 빅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고금리와 공사비 급증으로 건설경기의 침체도 심각하다. 전국 곳곳의 재건축 재개발 분담금 사업장에서 시공사와 계약을 해지하거나 공사마저 중단되는 현장이 나오고 있다. 치솟는 분담금, 공사비는 결국 공사 중단 수준으로 이어지고 있다. 돈을 대준 금융권도 위험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건설경기는 자칫 부도 도미노 현상을 낳지 않을까 우려한다. 청약저축이 무색할 정도로 분양시장도 얼어붙어 있으니 건설경기도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부동산시장의 과열과 투기를 억제하여 부동산값 안정화를 위해 시도한 투기 과열 지역과 투기지역, 조정대상지역이 많이 해제됐다. 주택시장의 하락장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은 ‘고물가 경기 침체’를 일컫는 말이다. 경제 불황 속에서 물가상승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상태인데 미국 경제가 엄청난 타격을 안겨준 높은 인플레이션과 경제성장 둔화인 미국의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닮아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급격하게 오른 물가는 서민들이 감당하기 힘든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봉급이 그만큼 오르거나 벌이가 쉬운 시대가 아니다. 과일, 채소, 외식비까지 고물가가 계속되면서 먹고 마시는 비용을 줄이는 이들이 늘고 있다. 소득에 변화는 없는 상황에서 줄일 수 있는 것이 식비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장바구니 물가에서부터 고물가를 체감하고 있으니 당연히 값싼 물건을 사고 부담되는 음식점이용도 줄일 수밖에 없다. 대학가에서‘천원의 아침밥’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천원의 김밥’, ‘천원의 빵’ 등 이 시대가 낳은 먹거리 풍속도다. 편의점의 값싼 도시락 등도 인기다. 국밥 1만 원 시대 구내식당 정보 커뮤니티 등을 이용해 ‘값싼 식당’을 이용하는 사람도 늘었다. 값싼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로 일요일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동대문 일요시장의 모습에서 서민 경제의 실상을 보게 된다. 

 

하지만 고물가시대 소비 절감은 기존 음식점들이나 자영업자들에게는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2년 새 3배 이상으로 뛰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개인사업자 부문 대출 총액 중 1개월 이상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한 연체 금액은 올해 1분기(1~3월) 말 기준 1조3,560억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해 1분기 말(9,870억 원)보다 37.4% 급증한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고금리와 경기 침체, 물가상승이 지속되면서 빚어진 결과다. 폐업도 역대 최대인데다 폐업 비용 때문에 폐업조차 하지 못하는 자영업자도 급증하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처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백성들의 고통이 너무 크다. 누구의 책임이고 무엇 때문인지 모른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국민은 황당하기만 하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라고 큰소리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이렇다고 하면 정말 낯이 가렵지 않을 수 없다. 풍요 속의 빈곤이다. 노인빈곤율이 40%에 달하며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 1위라는 오명도 놓친 적이 없는 나라다. 민생을 챙긴다는 위정자들은 그동안 무엇을 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경제부터 제대로 살려놓고 큰소리쳐라. 추하게 국민 괴롭히며 권력을 휘두르는 행태는 멈춰야 한다. 소리 없는 눈물과 아우성이 국민 고통으로 다가서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다. 민심은 천심이다. 값싼 해외직구로 눈을 돌려야 하는 작금의 민심이 무엇 때문인지를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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