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전공의의 집단행동이 벌써 두 달째를 맞고 있다. 대한민국의 이른바 ‘빅 5병원’을 비롯해 전국의 전공의들이 지난 2월 20일 사직서를 제출하며 집단행동을 돌입해 의료대란이 현실화했다. 그동안 대화를 모색한다고 했지만, 정부와 전공의 측, 의사협회의 강경 입장으로 뚜렷한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계속 표류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의료계뿐 아니라 노동계, 환자단체, 시민 단체가 추천하는 전문가들로 '의료개혁특위'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에 여야, 정부, 의료계,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특위를 구성해 사회적인 대타협안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의사단체는 "사회적 협의체라는 건 말이 안 된다. 협의체는 의료계와 정부가 '일대일'로 대화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대위 관계자도 "의료계와 관련이 없는 국민은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정부와 똑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의사들 사이의 갈등은 여전히 평행선을 걷고 있다.
비상 의료체제를 가동하고 있지만 현실화한 의료대란은 극심한 피해를 불러오고 있다. 대형병원들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두 달째를 맞으면서 1년 내내 환자로 북새통을 이루던 대형병원들의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이른바 '빅5'를 비롯한 대형병원이 중증·응급환자 치료 위주로 재편되고 경증 환자들은 병·의원급으로 옮겨가면서 병원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좀처럼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 가운데 환자들의 불안과 남은 의료진의 피로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환자 수 감소로 수입이 크게 줄어든 수련병원들은 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했다. 무급휴가와 희망퇴직, 병동 통폐합 등 여러 방식으로 손실을 줄이려 몸부림치고 있다. 병원을 찾는 이들이 크게 줄면서 병원 인근의 식당과 약국, 상점들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실제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전공의 사직 사태 발생 직후인 올해 2월 마지막 2주부터 지난달까지 500병상 이상 수련병원 50곳의 전체 수입은 지난해 2조6천645억 원에서 올해 2조2천407억 원으로, 약 4천238억3천만 원(15.9%) 줄었다. 환자가 줄어든 영향으로, 병원당 평균 84억8천만 원가량 수입이 감소했다. 병원들은 비상 경영체제 돌입하고 직원 무급휴가·희망퇴직, 병동 통폐합, 마이너스 통장 활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손실을 대비하고 있다. 의료 공백의 직격탄을 맞은 '빅5' 병원 가운데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연세의료원), 서울대병원은 이미 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의료대란이 자칫 병원붕괴의 단초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서울 아산병원 측은 40일간 순손실이 511억 원으로 비상 운영 체제에 돌입했다. 무급휴가를 권고하고 희망퇴직 신청 등 경영난 타개 대책을 실시하고 있다. 물론 정부는 비상 진료체계를 위해 예비비와 건보재정 5천억 원 넘게 투입한 상태다.
문제는 위급한 환자들이다. 의료 공백 두 달째 국민이 겪는 불편은 상상 이상이다. 절규에 가까운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적절한 치료를 못 받아 숨지거나 상태가 악화한 환자들이 전국적으로 수천 명은 족히 넘을 것 같다"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의사들이 불리할 때마다 국민 목숨을 볼모 삼는 행태를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한다"라고 강경 발언도 등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길어지는 의료 공백의 직접적 피해는 치료가 시급한 환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3차 병원이나 대학 부속·협력병원에서 진료 및 수술 일정을 잡기가 어렵다. 수술 예약 포기 사태도 빚고 있다. 전공의 집단이탈 장기화는 모든 병원 진료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기둥뿌리가 흔들리는 위기 상황을 자초하고 있다. 5월 초 넘어가면 의료대란을 넘어 자칫 의료재앙을 겪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국민생명을 담보한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의료대란 상황이 지속되고 국민은 불안감에 떨고 있다.
하지만 전공의 측이나 의사협회 측은 의대 증원은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전공의들은 복귀 조건으로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 외에도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 파업권 보장, 보건복지부 차관 경질 등을 내세우며 새로운 조건을 첨가했다. 지난 2일에는 전공의 1만2천774명과 의대생 1만8천348명에 의대 증원에 대한 의견을 물은 설문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에 따르면 집단행동을 벌이는 전공의와 의대생 96%는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줄이거나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의와 의대생의 66.4%(1천50명)는 '차후 전공의 수련 의사가 있다'라고 응답했다. 이를 위해서는 '의대 증원·필수 의료 패키지 백지화'(93.0%·복수 응답), '구체적인 필수 의료수가 인상'(82.5%), '복지부 장관 및 차관 경질'(73.4%), '전공의 근무시간 52시간제 등 수련환경 개선'(71.8%)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답했다. "정부는 전공의들에게 '환자를 버리고 환자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다'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대신, 더 이상 의료체계가 불능이 되지 않도록 의대 증원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해 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결국 의대 증원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정부와 백지화를 주장하는 전공의의 강경 대치는 극과 극을 치닫고 해법을 찾지 못하는 꼴이 되고 있다.
국민은 묻고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이 철회되지 않으면 이대로 의료대란을 넘어 의료재앙으로 가는 상황도 마다하지 않을 것인지 말이다. 응급환자의 수술이 미뤄지고 예약을 포기하고 생명을 잃어가는 절박한 의료현실을 외면한 채 의대 증원 백지화만을 끝까지 주장할 것인지 묻고 있다. 언제까지 국민생명을 볼모로 치킨 게임에 몰입할 것인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정치권도 모두가 하나가 되어 이 문제의 해법을 함께 찾아야 한다. 정부에 떠밀 일도 아니고 정치적 득실만을 따질 때가 아니다. 정치권을 열 일을 제치며 벌써 한풀이 행각을 서슴지 않고 있다. 지금 이문제를 제쳐놓고 무슨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국민은 묻고 있다. 시급한 우선순위의 긴급사태를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는 정치권의 우유부단한 처사를 질책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틈만 나면 국민을 그처럼 외쳐대면서도 정작 국민이 위태로운 상황에 대한 대처는 왜 늑장을 부리는지 답해야 한다. 국민생명과 안위보다 중차대한 일은 없다. 의료대란이 의료재앙으로 사태가 악화하여 초가삼간 다 태우는 식의 불행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자세는 금물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고 사후약방문이 되지 않도록 이제 특단의 조치가 나와야 한다.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2,000명 증원 규모를 자율적으로 조정하게 해달라는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수용할 것이라고 하지만 과연 이것이 해법일 될지는 미지수다. 정부와 전공의, 의료계, 정치인, 시민 단체 등이 모두 나서서 의료재앙을 막을 합리적인 대안을 찾는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