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에 사법부의 영장실질심사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분명히 중대한 범죄혐의가 드러난 사회지도층에게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적 관심을 모았던 50억 클럽의 박영수 전 특검에 대한 영장 기각이 바로 그것이다. 대장동 사업과 관련 50억 클럽의 의혹을 받는 박영수 전 특검의 영장 기각을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 않다. 대장동 민간 개발업자들을 돕는 대가로 금품을 수수했다는 이른바 '50억 클럽'의 핵심 인물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법원은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관대한 논리로 기각했다. 검찰 수사에 대비해 휴대전화를 파손하고 사무실 PC 기록을 삭제하는 등 증거인멸의 정황을 검찰이 포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각결정을 내리자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동안에는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가장 큰 잣대가 되어 구속하는 사람마다 이를 적용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런데 박 전 특검의 경우 이른바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묘한 적용이다. 아니 영장실질심사를 거치는 사건의 경우 다툼의 여지가 없는 사건이 어디 있는지 묻고 싶다. 8억 원 수수와 휴대전화 파손, PC 삭제 등 증거인멸의 정황을 왜 살펴보지 않았다는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판결내용을 살펴보아야 한다. 마치 변호사처럼 내린 관대한 기각결정은 어딘가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는 지적이 거세다. 마치 이현령비현령의 교묘한 화술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앞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대형 범죄 의혹 사건에 대한 기각결정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비아냥처럼 힘 있는 자들에 대한 관대한 법 잣대 적용을 엿보게 된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6월 30일 0시 40분경 “본건 혐의의 주요 증거인 관련자들의 진술을 이 법원의 심문 결과에 비추어 살펴볼 때 피의자의 직무 해당성 여부, 금품의 실제 수수 여부, 금품 제공 약속의 성립 여부 등에 관하여 사실적, 법률적 측면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다”라며 “현시점에서 피의자를 구속하는 것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보이는 바 현 단계에서는 구속의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한마디로 검찰의 수사를 뭉개고 마치 면죄부를 주는듯한 내용으로 점철된다. 언제부터 법원이 이처럼 관대한 영장실질심사를 해왔는지 참으로 의아하다. 왜 사회지도층의 범죄 의혹에 대해서는 이처럼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는 것이 국민적인 반응이다. 정의를 실현하는 마지막 보루라는 말이 무색하다. 영장실질심사에 대한 불신과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이현령비현령의 영장실질심사로는 정의를 지켜낼 수 없다. 이 순간에도 힘없는 자들은 상당수가 영장실질심사에서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라는 법적 굴레로 구속되고 있다.
우리는 5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은 김기춘 전 청와대비서실장의 경우를 보게 된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고 받은 시간 등을 사후에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원심이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됐다. 대법원 형사3부는 지난해 8월 19일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실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고받은 시간을 사후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84)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결국 무죄가 확정됐다. 지난 6월 29일 대법원 2부는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실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김 전 실장은 지난 2017년 1월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한 혐의로 처음 구속됐다.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 전 실장에 대해 구속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특정 인사들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재판을 다시 하라고 판결했다. 81세의 노령의 나이에 4년을 선고받은 김기춘 전 실장의 경우 일련의 사법적 과정에서 보인 구속은 결과적으로 부당했다는 방증이다. 무죄를 받고 원심이 파기되는 동안 옥고를 치르면서 겪어야 했던 심신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으리라 생각된다. 사법 정의를 넘어 지극히 정치적인 셈법이 작동한 희생양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 경우 박영수 전 특검의 영장실질심사와 너무나 극명하게 대비된다.
언제부터인가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팽배해지고 있다.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마지막 보루라는 사법부가 갈지자 행보를 걷고 이념과 진영논리에 젖어 법 정의를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어쩌다가 이 같은 상황을 맞고 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진보와 보수, 중도라는 논리가 작동하는 사법부의 인적 구성이 모든 법적 판단에 있어 형평성과 정도를 잃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도 일부 정치권 인사들에 대해서는 2~ 3년이 넘도록 재판을 질질 끄는가 하면 일부 지방자치단체장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전격적으로 당선무효형의 판결하는 묘한 모습이다. 지금도 재판에 계류 중인 사건 중에는 국민적인 관심사인 대형 사건들이 존재한다. 의도성을 갖고 재판을 지연한다면 이는 어찌 보면 직무 유기이자 국민 배신행위에 불과하다.
사법부가 정상을 되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에는 그동안 무수한 개혁이 추진됐다. 하지만 사법부의 개혁은 늘 뒷전이었다. 정의롭고 공정해야 하는 사법부의 모습은 당연하리라 믿어왔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었다. 정치권에 휘둘리는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이념과 진영논리에 따른 조직 구조의 불합리성이 지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늘 중요한 사건에 대해 석연찮은 판결로 사법부의 신뢰가 땅에 떨어지는 어리석음을 자초했다. 힘없는 자들에게는 가혹한 법 잣대가 적용되고 힘 있는 자들에게는 관대한 법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헌법정신을 왜곡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기 때문이다. 증거인멸을 외면하고 단지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관대한 논리를 내세워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것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인 ‘이현령비현령’영장실질심사라는 비난이 거세다. 이 세상에 법정에서 다툼의 여지가 없는 사안이 어디 있는지 말해보라. 죄가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봐주기 위한 것인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사법부의 행태에 국민적 실망감과 배신감이 증폭되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영장실질심사의 갈지 자 걸음이 우려된다. 정의와 공정을 위한 사법개혁의 필요성이 증대되는 작금의 상황이다. 모든 면에서 솔로몬의 지혜가 아쉬운 사법부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