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이정식을 논하다.

사진평론가 유태희

2017-03-27 09:35:00

 

▲     © 행복세종타임즈

 

 이정식은 사진작가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카메라 옵스큐라'라고 불리 우는 어둠상자의 바늘구멍을 통해 들어온 빛은 그 속에 거꾸로 된 상이 맺혀진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고, 르네상스시대에는 바늘구멍 대신 렌즈를 끼우고 그 크기를 작게 하여 화가는 사실적 묘사를 위해 그 안에 백지를 넣고 밑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19세기에 카메라가 나왔지만 발명 당시에는 초상화와 풍경 중심의 사진이 되어 사진이 독자성을 갖기 어려웠다. 그 후 일차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소형카메라의 발명은 사진이 회화의 틀에서 결별하고 강력한 영상언어로써, 현실을 있는 그대로의 재현이 아닌 사진가들 나름대로의 재해석으로 새로운 리얼리즘 세계를 열어 사진의 시각적 독창성을 가졌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그 선봉에 이정식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를 사진작가라는 틀에서 꺼내어 '예술가 이정식'이라는 관념적 단어를 붙여 세상에 내논다.

    

그리고 나는 바람의 섬 제주에서 사진작가 이정식을 만났다.

이정식은 사진에 대해선 여전히 단호했다. 이정식의 단호함은 진실함에서 나온다. 지금까지 그를 만나면서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사진을 만드는 현장에서 그것을 느꼈다.

    

현대의 사진에서는 '사진을 찍는다'는 개념에서 '사진을 만든다'는 개념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사진은 영상언어다. 미국의 사진가 파이닝거(Andreas Feininger)현대의 모든 상형언어 중 가장 완벽한 것이 사진이다라고 말하듯이 영상언어로서 다른 매체로 표현이 어려운 현실적 메시지를 잡아 시각화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사진이다. 또한 사진은 회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진발명 초기에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방편으로 사진을 생각하고 발명한 것이지 새로운 예술형식을 머리에 두고 발명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초기에는 사진은 회화의 한 부분으로 취급되었다. 또한 당연하게도 사진가 자신들도 화가와 같은 차원에서 예술가이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 점차 사진은 회화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이분법적 틀을 넘어섰고 회화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진의 독창성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므로 사진과 미술은 적어도 사물의 형태에 기초한 외형적 이미지로 작가의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는 시각예술이며, 삼차원의 공간에서 이차원으로 표현되는 평면예술의 공통점을 지니게 되었다.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사진을 통해 시각 언어를 확장하고, 사진을 활용해 보다 실제적이고 다이내믹한 표현을 이루려는 회화작품들이 양산되고 있다. 또한 극사실주의(Hyperreaslism)로서 주관을 극도로 배제하고 사진처럼 극명한 사실주의 묘사를 구현하는 미술 양식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삼십년을 넘게 사진작업을 해온 이정식도 회화적 사진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지금까지의 작품사진을 보노라면 옷매무새를 여미고 마주해야할 정도로 작품에 완성도가 높을 뿐 아니라 그의 심미적 혜안에 매료된다.

    

그렇다면 그의 예술적 충동의 원천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앞서 말한 것처럼 그는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다. 진지함과 경이로움을 가슴에 안고 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재현하려는 인지적 소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가 쓰는 언어의 재현 없이는 어떤 진리의 포착도 가능하지 않다. 그는 자연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회화적 구도를 만들고 빛을 통하여 자기의 예술세계를 온 몸을 던져 만드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반복되고 이어지는 자연현상을 회화적 특징으로 자기화하는 이정식의 작품세계는 자연을 항상 몽환적 패러다임으로 바꾸는 노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     © 행복세종타임즈

 

 

물론 사진 자체가 예술은 아니다.

사진의 심미적 기능이 심화되고 몸으로 부딪히는 현장성을 가져야 하기에 치열하고 단호해야 할 것이다. 자기의 눈으로 새로움을 발견하고 재해석하고 번역한 것을 인화지에 올리는 것이다. “인물사진을 만들 때는 그 사람의 마음을 찍고자 함이며 풍경사진을 만들 때는 겉의 모습이 아닌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표현하려 하지만 역시 사진은 열정의 농도만큼만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이정식에게 사진에 대해 질문을 하자 짧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보는 방식의 문제를 고민하는 회화의 화두를 단번에 제시하는 그는 대한민국의 사진계의 역량을 한 단계 끌어 올린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의 말처럼 사진은 새로운 풍경보다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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