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쉴 새 없이 보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동한다. 생각은 자유롭게 할 수 있어도 말과 글과 행동은 반드시 신중하게 해야 한다. 주장은 다수의 이익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자기주장만 들릴 뿐이다. 교육은 창의보다 점수에, 예술은 정신보다 육체에, 정치는 통합보다 분열이, 사회는 안정보다 불안이, 미래는 예측보다 불확실(不確實)이 더 증대되고 있다.
올바른 선택은 올바른 가치관에서 얻어진다. 개성과 자유라는 말 앞에 사회적 가치관은 작아져만 간다. 학교에선 왕따와 학교폭력이, 밤거리에선 취객이, 사회에서는 성폭력이 난무한다면 가치관 바로 세우기에 전(全) 사회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두뇌의 크기는 점점 커진다. 지식(知識)을 무게로 달 수 있다면 선조에 비하여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지식이 훨씬 무거울 것이다. 그러나 지식의 양이 바른 가치관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보고, 배우고, 생각하고, 경험하고, 반성하는 과정에서 바른 모습을 갖추어나갈 뿐이다. 정보화시대답게 많은 사람들이 유명인의 언행을 비판 없이 따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언행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태양은 모든 생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꽃과 나무는 제 나름대로 커갈 뿐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무엇이 행복한 개인과 사회를 만들어 가게 할까. 누구나 공정(公正)을 말한다. 하지만 나와 너를 구분하여 이중 잣대를, 내 편 네 편을 갈라 고무줄 잣대를, 알게 모르게 구부러진 잣대를 들이대지는 않았는지. 모두가 깊이깊이 반성(反省)하고 생각해 봐야 한다.
인간의 마음속 잣대를 표준화할 수는 없지만, 누구든지 양심의 잣대를 만들고, 누구에게나 곧고 바른 방법으로 재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수험생이 있는 집 가족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금기의 말이 몇 가지 있다. 원서를 어느 대학에 냈느냐고 물으면 안 되고 합격 여부를 물어도 안 된다. 대학 입시는 한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까지 긴장하게 하는 중대사이고, 대학 입학은 개인의 삶은 물론이고 한집안의 흥망을 결정할 만큼 절대적이다. 자녀가 명문대(名門大)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신사임당(申師任堂)의 후예로 존경의 대상이 된다. 반대로 자녀가 그렇고 그런 대학에 들어가면 부모는 죄인이 된다.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龍)이 된 인물들의 전설(傳說) 같은 성공담이 있었다. 가난을 이겨 내고 명문대에 입학한 용들의 신화는 우리 사회의 희망이자 미래의 등불이었다. 이제 이런 신화의 시대는 지나갔다. 하지만 개천에서 용(龍)이 날 수 있는 시대를 꼭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는 살 만한 사회, 희망이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
명문대와 의대 진학률을 기준으로 볼 때 최상위 가정의 학생이 최하위 가정 학생의 17배라는 통계가 나왔다. 자녀의 성적은 부모의 경제력 순이라는 말이 실감나고, 부모의 경제력이 자식의 미래에 절대적 조건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겨우 19살에 선택한 대학이 나머지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것은 너무나 가혹(苛酷)하다. 부자를 부모로 두지 못한 것이 학생의 책임이 아닌데도 말이다.
명문대 졸업장이 대한민국에서 가지는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문인들도 자신의 약력을 쓸 때 명문대를 나온 사람은 꼭 출신 대학 이름을 넣는다. 사회적 지위가 약한 여자들은 더욱 그러하다.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문제는 자식의 성공을 부모의 성공으로 연결하는 대리만족(代理滿足)과 지나친 자식사랑이다.
명문대(名門大) 입학이 삶의 행복으로, 양질의 일자리 취업으로 반드시 직결되는 것이 아니다.
서울대의 대학원진학자를 제외한 취업률이 50%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대학 입학이 지닌 속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도 명문대를 향한 질주와 욕망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나면서부터 웃기 시작한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를 가진 아이도 본능적으로 웃을 줄 안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다지 많이 웃지 않는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일생을 80세로 볼 때 26년은 잠을 자고 21년은 일을 하지만 웃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22시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일생 동안 만 하루도 웃지 않는다니 인간이 왜 그렇게 웃음에 인색한지 모르겠다. 필자도 웃음에 상당히 인색하니 할 말은 없지만….
웃음은 영약이라고 한다. 사람이 크게 한번 웃으면 몸속의 근육 650개 중 231개 근육이 움직여 목․가슴․복부근육이 강해지고, 웃음은 1분 동안 실컷 웃기만 해도 10분 동안 에어로빅이나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한다.
미국의 한 대학 연구팀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10~15분 동안 웃으면 약 50 칼로리가 소모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웃음은 혈압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트레스호르몬 수치도 낮춰준다고 한다. 웃음은 호흡기 감염도 줄여준다고 한다. 웃음은 폐를 최대한 가동시키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폐는 위쪽의 1/3만 사용돼 몸으로 흡수되는 산소의 양이 적다고 한다. 그러나 웃으면 폐 전체를 사용해 더 깊은 호흡을 하기 때문에 몸을 깨끗이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웃음은 또 1천억 개에 달하는 뇌세포를 자극해 기억력과 인지기능을 향상시켜준다는 것이다. 유머가 섞인 강의나 대화가 잘 기억되는 것도 자주 웃어서다. 웃음은 전염성이 강해 내가 웃으면 주변 사람이 웃게 된다. 성격장애․불안증․우울증 등도 자주 웃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면 많이 개선된다고 한다. 웃어서 나쁠 것은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웃으면 복이 온다는 것이다.
웃음이 많은 사람은 면역력이 강해서 쉽게 병에 걸리지 않지만, 우울한 사람은 면역력이 약해서 한심할 정도로 쉽게 병에 걸린다고 한다.
웃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늘 웃으며 생활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웃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긍정적인 효과를 얻는다고 한다. 뇌는 거짓 웃음도 진짜 웃음과 똑같이 인지해 억지로 웃어도 90%는 웃겨서 웃을 때와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웃는 연습을 위해 스마일 라인을 정하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일정한 시간이나 상황을 정해두고 억지로라도 웃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상황이 어이없게 느껴지겠지만 자꾸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웃어 보면 기분도 좋아진다고 한다. 웃음 친구를 만들어 함께 웃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상대를 정해 날마다 정해진 시간에 잊지 않고 통화하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웃으면 된다고 한다.
일상에서 무심코 흘려보내지만 잘 생각해 보면 웃을 일이 많다. 일상 속에서 사소한 웃음거리라도 찾아서 웃어보자. 이때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것을 상상하며 웃으면 그 효과가 배가된다고 한다. 또한, 웃을 일이 있을 때는 일부러 더 크게, 더 오랫동안 온몸으로 웃는 것이 좋다고 한다. 자꾸 의식하다 보면 크게 웃는 것이 자연스러워진다는 것이다. 크게 소리를 내면서 웃으면 빙그레 미소를 짓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사소한 일에 웃음과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면 정신건강은 그 만큼 피폐해진다. 신체건강은 운동과 식습관이 가장 중요하지만, 정신건강은 긍정적인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청년취업난, 1명도 안 되는 출산율 등으로 웃을 일이 없지만,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행복하다는 윌리엄 제임스의 말처럼 억지로라도 자주 웃는 것이 건강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웃는 것이 쉽지 않으니, 웃음학원을 만들면 돈도 벌고 국민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