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봄날

시인/수필가 김병연

2024-08-29 17:03:39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화양연화(花樣年華)라고 하는데, 우리네 인생에서 봄날은 과연 언제일까. 
 지난날을 반추해 보면서 정말 우리가 행복의 절정을 이루고 별이 반짝반짝 빛났던 시기가 언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질풍노도의 시기로 젊은 날의 꿈과 희망으로 점철되어 활화산처럼 타오르던 열정이 가득했던 20대, 설익은 자신감과 포기가 함께 교차했던 30대, 이 시기는 때론 좌절감을 맛보면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가지치기를 해야 했던 취사선택(取捨選擇)의 시기였던 것 같다. 쓴맛과 단맛을 함께 알게 되면서 반드시 마음먹은 대로 인생이 전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 포기와 체념이라는 단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40대, 인간사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겸손과 함께 인생의 묘미를 알게 되는 50대, 우리 모두는 각자 인생의 봄날이 다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속에는 버리지 못하고 쌓여 있는 묵은 감정이 많아지는 법이다. 미움, 분노, 원망 등을 버려야 새로운 것들로 채울 수 있다는 지혜도 터득하게 되는 그날이 인생을 어느 정도 알게 된 중년 이후의 시기일 것이다. 
 

집안에 쓸데없는 것들을 과감히 버려야 새로운 것들로 채울 수 있듯이 묵은 상흔이 이해, 너그러움, 관용으로 바뀔 때 우리네 인생은 어느덧 성숙의 단계에 와 있고 봄날에 와 있지 않을까. 계절도 사계절이 있듯이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다. 
희망과 설렘으로 가득한 인생의 봄, 성하의 폭염을 닮은 듯 열정으로 가득한 인생의 여름, 우리가 뿌린 것들을 뿌린 대로 수확해야 하는 추수기 인생의 가을, 추위에 꿈과 희망 등 모든 것들이 얼어붙어 정지된 듯이 서글프게 느껴지는 인생의 겨울, 우리네 인생(人生)에서 봄날은 정녕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는 항상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먼 곳에 있어서 닿을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것들만 좇다가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에 진정한 봄날을 지나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인생의 황금기를, 인생의 봄날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흘려보내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희망을 품고 사는 이 시간이 인생의 하이라이트일지도 모르며, 아직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지 못했지만 희망과 설렘을 버리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는 이 순간이 또한 인생의 클라이맥스인지도 모른다. 봄꽃의 대명사인 벚꽃처럼 봄날은 병아리의 노오란 미소로 우리 곁에 다가온다. 
 

인생(人生)의 기억에는 구멍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이미 지나온 길이 우리가 다 겪은 길이 아니듯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우리 모두가 겪을 길은 아니다. 누구는 봄을 체험할 수도 있고, 누구는 겨울을 체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각자 성향에 따라 겨울로 보이는 힘든 시간이라도 따뜻한 봄날로 느낄 수도 있다. 우리는 진정한 봄날을 느끼기 위해 오늘도 꿈과 희망(希望)의 끈을 놓지 않고 움켜쥐고 있다. 
잡을 수 없는 신기루를 좇다가 생(生)을 마감하는 순간 이게 ‘삶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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